1980년대는 마이클 잭슨, 프린스, 라이오넬 리치 등 흑인 남성 싱어 송라이터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시기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인 남성 뮤지션의 자존심을 지킨 이는 바로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제네시스의 드러머, ‘필 콜린스’였죠. ‘피터 가브리엘’이라는 또 한 명의 천재 뮤지션과 함께했던 ‘제네시스’시절, 그리고 그의 솔로 앨범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감성은 팝 적인 감각에 밀착한 것이었습니다. 1985년작 <No Jacket Required>입니다.
필 콜린스(Phil Collins) <No Jacket Required> (1985)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에 이어 아트 록 밴드 제네시스(Genesis)의 리더가 된 드러머 필 콜린스(Phil Collins)는 1981년과 1982년에 두 장의 솔로앨범
<Face Value>와
<Hello, I Must Be Going!>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제네시스보다 유연한 자신의 음악세계를 건설했다. 하지만 이 음반들에서 싱글로 발표한 「In the air tonight(19위)」과 「I don't care anymore(39위)」는 여전히 제네시스(Genesis)의 잔향이 남아있는 프로그레시브 트랙이었다.
1984년에 필 콜린스는 서정적인 발라드와 리듬감이 꿈틀거리는 업비트 곡으로 대중성의 간을 본다. 전미 차트 1위를 차지한 영화 <Against All Odds>의 주제가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와 펑크(funk) 밴드 어스 윈드 &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드러머 필립 베일리(Phillip Bailey)와 듀엣으로 취입해 2위에 오른 흥겨운 록 트랙 「Easy lover」로 성공적인 예행연습을 마친 필 콜린스는 1985년 1월에 발표한 세 번째 솔로앨범
<No Jacket Required>로 비밀스런 침묵보다 화려한 대중성을 택한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보컬리스트였던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와 함께 미국 시카고에 있는 고급 식당에 갔을 때 재킷을 입지 않아 출입을 거부당했던 경험을 음반 타이틀로 정한
<No Jacket Required>는 아트 록의 진지함 대신 편한 옷으로 음악을 들어달라는 소박한 바람이 투영된 위트 넘치는 중의적인 제목이기도 하다.
<No Jacket Required>는 타이틀처럼 형식을 구애받지 않는 필 콜린스의 낙천적인 성격이 음악으로 삼투된 작품이다.
1985년 봄에 빌보드 싱글 차트 넘버원에 오른 「One more night」은 「Against all odds」와 함께 필 콜린스의 이름을 국내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발라드 곡. 음악 분위기에 맞게 어두운 바에서 홀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필 콜린스의 쓸쓸한 모습을 담은 뮤직비디오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85년 여름에 정상을 탈환한 두 번째 싱글 「Sussudio」는 필 콜린스의 노래 중 가장 펑키(funky)한 곡으로 드러머인 그가 자신의 비트 감각을 최대한 과시한 넘버. 정박으로 연주하는 드럼 위로 신시사이저와 리듬 기타의 16비트 연주와 어스 윈드 & 파이어 스타일의 혼 섹션은 그루브감을 배가하며 필 콜린스의 또 다른 면을 부각한다. 하지만 「Sussudio」가 프린스(Prince)의 「1999」와 비슷하다는 의견에 대해 필 콜린스는 “나는 프린스의 팬이다”라며 그 주장에 대해 부인하지 않아 옥의 티로 남아있다.
제네시스가 1981년에 발표한 「No reply at all」에서 어스 윈드 & 파이어의 멤버들을 초빙해 브라스 연주를 경험한 필 콜린스는 「Sussudio?외에도 「Only you know and I know」와 「Who said I would」에서 다시 후련한 혼 섹션을 구사해 위대한 펑크(funk) 밴드에게 존경을 표했다.
같은 해 가을에는 세 번째 싱글 「Don't lose my number」로 4위를 차지하고 겨울에는 댄스 영화
<백야>에 삽입된 마릴린 마틴(Marilyn Martin)과의 아름다운 듀엣 곡 ‘Separate lives’로 1위에 올라 필 콜린스는 한 해에만 모두 3곡의 넘버원 싱글을 배출했다.
1986년에는 제네시스의 밴드 메이트였던 피터 가브리엘과 폴리스(Police) 출신의 스팅(Sting)이 백 보컬로 참여한 네 번째 싱글 「Take me home」이 7위를 랭크하며
<No Jacket Required>에서 모두 2곡의 넘버원과 2곡의 탑 텐 입성이라는 잭팟을 터뜨렸다. 켄 케이시(Ken Kesey)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Take me home」은 2003년에 힙합 그룹 본 석스-&-하모니(Bone Thugs-&-Harmony)가 「Home」으로 리메이크해 1980년대에 태어난 힙합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다.
이 네 곡 외에도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비장감 넘치는 「Long long way to go」와 1980년대 팝 록의 구성과 사운드를 포용한 「I don't wanna know」, 음반 전체에서 가장 화려한 드럼 연주를 들려주는 「Doesn't anybody stay together anymore」그리고 제네시스의 후반기를 연상시키는 숨겨진 보석 「Inside out」까지 거의 모든 노래들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며
<No Jacket Required>를 명반 대열에 합류시킨다.
<No Jacket Required>의 성공으로 필 콜린스는 1985년 7월에 있었던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서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의 무대를 마친 후 비행기를 타고 미국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경기장에 도착해 한 공연에서 두 무대를 밟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인쇄했다.
미국과 영국을 포함해 캐나다, 독일, 호주, 스웨덴 등 많은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한
<No Jacket Required>는 미국에서만 모두 1천만 장 이상이 팔려 다이아몬드 레코드를 기록했고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프로듀서 그리고 전 해에 이어 최우수 남성 팝 보컬 부문 2연패까지 모두 3개의 트로피를 수상했다.
싱글 히트곡들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자연스럽고 능청스런 연기 덕분에 필 콜린스는 1988년에 영화 <버스터>에서 주연을 맡아 비틀스의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헬프>에서 아역배우로 출연한 경험을 되살리며 연기자로서도 성공적인 런칭도 완수했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프린스(Prince),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로 대표되는 미국 흑인 남성 가수들의 무한질주 속에서 필 콜린스는 영국 백인 남성 가수의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중량감 없는
<No Jacket Required>의 성공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필 콜린스는 4년의 충전과정을 거친 1989년 말에 대중성과 사회성을 황금률로 엮은
<But… Seriously>를 통해 다시 한 번 대중과 그래미의 선택을 받는다. 이 모든 출발점이 바로
<No Jacket Required>였다.
글 / 소승근(gicsucks@hanmail.net)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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