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과 임동민은 각별한 사이다. 1996년 열여섯의 나이로 국제 청소년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005년 열린 쇼팽 콩쿠르에서는 한국인으로 사상 처음으로 입상했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며 알려졌으나, 그의 첫 번째 앨범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집>이었다.
계명대 음대 부교수로 재직하며, 한동안 무대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임동민이 쇼팽 레퍼토리로 채운
<쇼팽 앨범>을 냈다. 쇼팽 녹턴 op 55중 2번, 바르카롤(뱃노래) op.60, 소나타 3번이 실렸다. 지난 4월 30일에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연주회도 가졌다. 리사이틀의 부제는 ‘로맨틱 이고이스트’
“예술의 전당에서 3년 만에 가진 두 번째 리사이틀이었어요. 작년이 쇼팽 탄생 200주년이었잖아요. 작년에 앨범도 내고 연주회도 갖고 싶었는데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미뤄졌어요.” 공연 때는 임동민이 좋아하는 작곡가라는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도 연주했다. 김선욱, 조성진 등 신예 피아니스트들이 연주에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라는 말에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다”며 임동민은 고개를 내젓는다.
“물론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인 것은 맞아요. 어느 작곡가보다 로멘틱에 강한 작곡가이고, 표현하는 방법이 나와 가장 잘 맞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표현력이 끌리는 부분이 많아서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쇼팽 콩쿨 이후 6년. 임동민은 다시 대면한 쇼팽에게서 어떤 음악을 끌어내고자 한 것일까? 이번 앨범은 2011년 2월 21일부터 사흘간 독일 뉘른베르크에 위치한 콘서트 홀에서 녹음했다. 그는 녹음 작업은 수월했다고 전했다.
이번 앨범에서 그는 조금 더 다른 표현력을 담아내려고 했다.
“쇼팽의 감성이나 음악을 표현하는 데 있어 좀더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고 했고요.”
그는 1번 트랙에 실린 ‘바르카톨(뱃노래)’과 2번 트랙의 ‘녹턴’을 가장 좋아하는 음악으로 꼽았다.
“저와 잘 맞는 쇼팽의 감성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물론 들으시는 분의 몫이겠지만요.”
이전에 진행한 타 매체의 인터뷰에서도 임동민은 ‘바르카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쇼팽의 단 한 작품이 남아야 한다면 ‘바르카롤’이 남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소나타와 협주곡은 쇼팽이 형식과 정서의 표현 사이에서 갈등한 면이 있지만, 바르카롤만큼은 스케르초보다 더 적나라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니까요.”
야마하아티스트서울 매장 내 콘서트살롱에서 만난 임동민은, 어떤 질문에도 이내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대부분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어떤 것도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듯 보였다. 혹은 입 밖으로 말할 수 없는 느낌을 고정시키고 싶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쇼팽과 이번 앨범에 대해
“들어야 알 수 있다”거나
“들리는 대로 알 수 있다”고 대답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이야기를 재촉하기보다는 연주를 들려달라고 청했다.
“어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가 원수라고 하더라고요. 친구라고는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피아노가 즐겁진 않아요. 피아노를 다루는 건 어려워요. 제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이지만,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아홉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쳐온 그였다. 열두 살 때부터 콩쿨에 나가 두각을 보였으며,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 입학하기까지 임동민은 한 길을 걸어왔다.
“어렸을 때는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접했어요. 계속 하기까지 매번 고민이 많았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상도 받고, 공부도 계속 하면서 그만둘 수 없었어요.”
임동민은 3년 째 계명대 음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스물여덟에 시작했으니, 비교적 적은 나이로 교수직을 맡았다. 그가 맡은 열여덟 명의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한두 명 눈에 띄는 실력을 가진 친구들이 보인다.
“피아노를 이렇게 칠 수도 있구나, 느끼게 해주죠. 뭐라고 지적하거나 조언하지는 않아요. 모두 각자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그 특징을 일러줄 뿐이에요.” 가장 자주 해주는 말을 묻자,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음악적으로 항상 생각하라고 하죠. 악보에 충실해라.”
그렇다면 임동민의 피아노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이 역시 듣는 이의 몫이겠지만 그가 스스로를 보기에
“노래하듯이 치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기본음 연습을 하더라도 그냥 치는 적이 없어요. 성악가가 노래하듯이 칩니다.”
“항상 생각합니다. 악보를 잘 보는 것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래도 피아노는 늘 어려워요. 이런 걸 슬럼프라고 한다면 맨날 슬럼프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일에 크게 연연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그에게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묻자,
“그 순간순간 제 할 일을 하면서 산다”고 일축했다.
“지금의 삶에 충실하면서, 표현하고 싶은 것에 최선을 다하는 거죠. 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국내 리사이틀을 마치고 5월에는 중국, 12월에는 일본에서도 리사이틀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