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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된 남성패션잡지 GQ 편집장 이충걸

“저의 언어가 아니잖아요. 전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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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충걸식 글쓰기라고 얘기되곤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비유인데, 이런 거다. “암소 같은 패션 피플 족속”, ”무덤 같은 아름다움과 천진함” 같은….

2011년, 첫 소설집이 나왔다는 것은 그간의 그의 작업을 봤을 때 솔직히 늦은 감이 있다. 1980년대 한복판에 대학을 다니면서 오로지 책 보고 영화보고 탁구만 치던 이 “독특”하고 “어린애” 같아 보이는 남자가 20년 넘는 시간 동안 <보그>

<페이퍼> 등에서 보여준 그의 글은 뭔가 달랐다. 일상적으로 흔히 접하는 상황에 깃들어 있는 무수한 탐욕과 질투와 분노와 수치심, 아름다움과 자랑스러움에 반응하는 기민함, 그 상황의 이면을 분석하는 통찰력,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기 머리 속의 생각에 가장 걸맞는 언어를 찾아내려는 욕구와 그 욕구를 만족시킬 영리함, 고집, 성실함이 그에게 있었다. 기사를 쓰면서도 그는 이미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는 소설 쓸 생각 못했는데, 에디터 생활 하면서, 주변의 선배나 사람들이, 제가 소설을 쓸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기사를 쓰는 글 투에서 소설을 쓸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보신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을 쓰는 일이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단계로 다가왔어요. 소설의 격, 품질과 상관없이 자연스러운 단계인 것 같아요.”


흔히 이충걸식 글쓰기라고 얘기되곤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비유인데, 이런 거다. “암소 같은 패션 피플 족속”, ”무덤 같은 아름다움과 천진함” 같은…. 패션 피플 족속이 암소 같다는 표현에서 '암소가 어땠지?' 생각하게 하고, 무덤에서 아름다움과 천진함을 느껴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지점.

“있었던 언어를 빌려서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물에 젖은 솜처럼 피곤하다, 같은 흔히 쓰는 클리쉐들. 그런 걸 제가 쓰면 아무도 이상하지 않게 읽어나가겠지만, 그건 저의 언어가 아니잖아요. 전 그렇게 쓰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태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태반처럼 땅에 질질 끌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식으로 쓰고 싶어요. 그래야 작가의 독창적인 언어가 건축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점심에 반주를 한 잔 했을까? 논현동에 위치한 GQ 사무실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붉게 반짝였고, 매우 도수가 높아 보이는 안경 너머에 있는 눈도 조금 붉었다. 음료수를 권하며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 받고 의자에 앉아 그를 보았다.

“한편 부담이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패션지 편집장이 쓴 소설로 접근을 하시더라구요. 칙릿 계열의 소설이나, 약삭빠르게 배부른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인상. 그렇게 받아들여지기에는 억울한 부분이 있어요.”


패션지 편집장이 쓴 소설은 얄팍하리라는 편견이 그에게 적용되는 것은 억울할 만하다. 왜냐하면 2002년부터 그가 매월 한 권씩 출산해내는 GQ를 패션지로 가볍게 분류하기엔 왠지 찜찜하게 만드는 면이 있어서다.

“700만원 짜리 신발”을 소개하는 물성의 극치를 보여주면서도 이성복, 최승자 같은 시인의 얼굴 사진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감함. 문학지가 아니라 일반 미디어로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장 긴 인터뷰를 게재한 근성. GQ에는 섹스 기사마저에도 도시를 살아가는 남녀 밑바닥에 있는 심리를 묘사하려는 인문학적 통찰이 깃들어 있다. GQ 100호 특집호의 부록을 은희경, 김영하, 백가흠 등의 작가가 쓴 슈트라는 주제의 단편소설집으로 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 아니었다.

“5월 달에 자랑스러운 기획이 있습니다. 차화연, 이보희, 김혜옥. 김보연, 금보라……. 예전에 멜로를 했던 여배우가 엄마 역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 여배우를 보면, 그들이 자신을 엄마역에만 어울린다고 생각할 것 같지 않아요. 여전히 자신은 여자이고, 사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런 분들을 모시고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했는데, 역시 사진에 ‘나 안죽었어, 나 여전히 사랑 받아야 돼’ 이런 마음이 읽혀요. 굉장히 감동이었어요. 이성복, 최승자 같은 선생을 모시고 싶은 이유는 이런 분들이 더욱 존중 받고 보고, 추앙 받아야 하는데 그 빛이 굉장히 스러져버렸잖아요. 그들을 비추는 당대의 빛이 굉장히 남루하고 추잡해요. 이렇게 자본주의 첨병 속에서 세속적인 극단을 달리면서, 세상을 예쁜 것, 미운 것으로 측량하는 잡지가 그들에 대해 존경심을 보인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이런 잡지 조차 그들에 대한 가치, 존경심을 보인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물성화시키고 있는 피처기사들 뒤에 숨은 죄의식을 탕감하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1994년도에 처음 소설을 시작했지만, 두 번에 걸쳐 500매와 300매를 날린 후 소설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소설가 박민규가 에디터로 일했던 <베스트셀러>라는 잡지에서 청탁이 왔다. 그 때 쓴 작품 중 하나가 이번 소설집 표제작인 「완전히 불완전한」. ‘맞물린 관계들의 무한한 연속선 위에서 단지 그 순간만 사는 어린아이들. 우린 다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완전히 불완전한’ 사람들이었다.’(p.58) 라는 빛나는 문장을 품고 있는 「완전히 불완전한」은 예민한 묘사로 겹겹히 쌓아 올린 예쁜 집 같다.

무미건조한 남자 친구와 자의식 강한 여자 친구가 겪는 은밀한 모텔 체험기 「성년의 날」은 유쾌하고, 부인의 바람과 이혼선고를 대책 없이 받아들이는 남자이야기 「좋게 헤어지는 건 없다」는 친구의 수다처럼 친근하다. 갖은 노력 끝에 얻은 아이를 결국 사산하게 되는 과정 속에 있는 여자의 마음을 그린 「우주인」은 “실제로 유산 경험이 있고, 관련 지식이 많은” 지인의 고증 과정을 거친 소설 답게 실감난다. 이번 소설집에서 그가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작품은 「발광하는 입술」. 성악가 출신 남편과 함께 살며 평생 음치로 지내 온 여자가 노래를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알게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발광하는 입술」은 곤경에 처한 여자가 곤경을 극복하면서 나중에 기쁨을 찾는 전형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음악으로 접근해서 괴롭게 헤엄을 쳐나가는 과정을, 음악을 잘 모르거나 구조에 대해 습득하지 않으면 쓰기 곤란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잘 썼다고 생각하고, 대사가 요란하지 않은 것도 좋았고, 여자가 원한 건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노래를 불러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그 부분이 서사의 광채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에요. 일상에는 무신경한 사람 천지인데, 여기는 다 예민하고, 기본적으로 동작 하나에 결마다 숨어있는 의미를 캐내려고 하는 사람이에요. 적어도 공중 도덕을 지키는 사람인 거죠. 그게 제 기질과 맞아요. 누구 하나 끝내주게 멋있는 사람은 없지만, 다 예민하게 사색할 수 있어요. 속물이건 아니건 그런 점에서 애정이 있어요.”


욕조에서, 귀가 수면 아래 오도록 가만히 누워 있으면 물이 출렁거림을 멈춘다. 청각은 천천히 몸 안으로 스며든다. 처음엔 심장 소리를, 그 다음에는 심장 아래 관 속을 질주하는 피의 소리를 듣는다. 노래를 부를 때 나는 노래의 표피를 빠져나가 반대쪽 세계로 들어간다. 저편의 마비된 공간 안에서 나는 내 몸을 관찰한다. 주의를 기울이면 내가 내는 소리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뜨는 해처럼 오르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낮은 ‘파’음은 중력의 중심점에서 진동한다. 그 아래 ‘미 플랫’은 척추의 앞쪽 끝 부분에서 맴돈다. ‘레’와 ‘레 플랫’은 굳게 밀착된 가슴뼈를 달그락거리게 만든다. 그리고 드물게 내는 ‘도’음은 저 아래에 머물고, ‘시’는 성난 발톱이 되어 쥐어선 안되는 것들을 움켜잡는다. (p.178, 「발광하는 입술」 중)

기본적으로 동작 하나에 결마다 숨어있는 의미를 캐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마 그 자신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스스로가 자랑 삼아 얘기하는 사색의 결과로 짚어주는 문장들- “그 다음에는 당연한 듯 젊음에 대해, 그리고 우리 중 누가 먼저 그 젊음을 소진해 버렸는지에 대해 생각했다.”(p.52), “어쩌면 그녀의 자위가 우리 결혼을 그나마 곧고 좁게 지켜온 걸까? 어쩌면,이라는 부사는 나를 미치게 했다. 그녀가 숨기는 것보다, 그녀가 숨긴다고 내가 추측하는 것들이 더 무서웠다.” (p.127)이 소설 속 인물들의 것이라기 보다는 그가 실제로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면서 이런 사색을 하고 있으리라는 추측.

괴팍한 외양의 소년에서 허세부리는 중년에 이르기까지 오직 과민한 자부심만 남았다. 입는 것과 말하는 것에 있어서의 자부심, 사소한 좌절과 구차한 변덕 속에서 가까스로 품위를 찾게 해주던 자부심, 너무 얇은 무질서 속에서 잡지와 나 사이, 긴밀한 교환의 증거가 된 자부심」(그의 트위터에서)

흐린날, 웅숭그리며 앉은 에디터들을 보니 괜히 막연한 기분이 든다. 살사댄서처럼 하나,둘‥일곱, 세고는 업앤백 하는, 자꾸 늘어나는 역설. 왜 나는 이 일말고 다른걸 고르지 않았을까. 왜 그 긴시간 동안 삶의 가변성을 알기 위해 애쓰지 않았을까.알고 싶어하지조차 않았을까. (그의 트위터에서)

남다르게 예민해서일까. 매일 거르지 않고 술을 마신다는 이 남자, 사색의 결과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언어의 궁극인 소설로 건축을 하고 싶어하는 이 남자는 어쩌면 잡지 에디터나 소설가보다는 철학자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름은 이충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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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정희

독서교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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