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투표하자고 외친다. 그것의 진정성을 모를 바는 아니나, 내가 겪은 한 투표는 세상을 바꾸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믿고 정치적 권리를 맡겼건만, 세상은 거의 한결 같았다. 혁명은 오지 않았고, 혁명 같은 변화도 없었다. 투표를 의심했다. 내 정치적 권리에 대해서도 의심했다. 고로, 대의민주주의를 의심했다. 이른바 ‘대표자’는 진짜 맞나? 지금의 선거 제도는 옳은 것, 맞나? 그래서, 투표하지 않을 권리, 투표하지 않는 것에 담긴 함의와 목소리를 생각했다. 물론 투표 자체가 가진 목소리를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달 27일 보궐선거를 앞두고도 ‘투표하자’는 말이 빗발쳤다. 당연, 관심은 있었지만 ‘투표하자’는 말 뒤에 있는 다양한 함의가 무엇인지, 나는 그 맥락을 알고 싶었다. 단순히 투표하자는 말로만 세상을 읽어선 안 되니까. 투표율이 높은 때문인지, 집권 여당은 패했다. 야당 가운데 의석수가 가장 많은 정당은 희희낙락했다. 서식지가 다른 탓으로 투표를 하진 않았지만, 궁금했다. 과연 뽑힌 저들은 메시아라도 될까? 투표 외에는 거의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은 과연 옳은가.
#2. 멕시코 치아파스 사람들의 커피. 커피 만드는 사람인 내가 현재 다루고 있는 공정무역 커피 중의 하나. 물론 공정무역 커피면서 혁명단체인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Ejercito Zapatista de Liberacion Nacional, EZLN)과 관련 있다는 점이 이 커피를 다루게도 했는데, 치아파스 역사에서 (투표에 대한) 자각이 있었던 한 지점. 사파티스타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1994년 1월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효력을 발휘하면서였다.
사파티스타는 지주들이 고용한 사병(私兵)의 폭력에서 농민을 보호하던 활동을 펼치던 단체였다. 그러다 1988년 선거에서 큰 부정이 발생하면서부터 농민들의 신망을 폭넓게 확보했다. 선거를 통한 권익 확보가 힘들다는 자각 덕분이었다. 선거?투표가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수 없다는 깨달음.
그런 와중에, NAFTA는 농민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멕시코 정부는 자국의 국민이자 기반을 버렸다. 커피가격 보조금 등 농민의 기본적 생존권 보장을 위한 정책을 포기했고, 1917년 혁명헌법이 보장했던 제27조 공동토지소유 조항도 폐지했다.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된 에르네스토 세디요는, 이듬해 사파티스타 근거지에 대한 공격을 단행, 내전이 벌어졌다.
재밌는 것은, 같은 해 8월, 사파티스타는 정부협상을 앞두고 민중투표를 실시했다. 정부와 싸울 것이냐, 멈출 것이냐. 직접 투표였다. 3천여 원주민 부족민들이 일일이 투표했다. 수개월에 걸친 직접 투표, 사파티스타가 정치세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중단과 원주민 자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터져 나왔다. 아, 나는 이런 지역의 사람들이 다루는 커피를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강신주와 이권우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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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저자이자 철학자 강신주의 귀띔이었다. 그는 대의민주주의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아름다운 서재>6호 발간 기념으로 열린 ‘철학에 이르는 길’ 강연회에서였다. 강신주와 도서평론가 이권우가 더블 포스트로 독자들이 함께 ‘철학과 삶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름다운 서재>는 책으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의 회원사들이 한 해 동안 정성들여 만든 책들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는 도서목록으로, 이번 강연과 함께 했다. 우선 이권우가 물었고 강신주가 답했다.
강신주는 왜 철학을 하게 됐는가?
“정전기 때문이다. 80년대에는 보통 대학 3학년2학기에 취업을 했는데, 나는 당시 울산에 있던 유공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전기가 나더라. 처음엔 짜릿,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스파크가 나더라. 당시 지방으로 내려가면 호텔을 잡아줬다. 호텔에서 직장생활 해 봤나? (웃음) 정전기가 왜 났을까 알아봤더니, 내가 너무 작아져 있었던 거다. 부당한 것에도 바로 위 대리랑도 맞장도 못 뜨고. 당시엔 돌 던지는 게 일종의 유행이었는데, 나는 책을 더 강하게 읽었던 학생이었다. 그러다 취업을 하니 정전기가 일어났고, 그래서 대학원을 준비했다.
처음에 철학을 했던 이유는 지적 허영심 때문이었다. (웃음) 어려워서 매력적이었다. 지금 하라면 안 한다. 사회학, 정치학, 소설 다 쉬웠는데, 네(철학)가 얼마나 어려운가 보자, 해서 철학을 시작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건 30대 후반이 돼서 였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역시 정전기가 났다. 정전기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서 학교를 나왔다. 내겐 이것이 생물학적 반응이다. 지금도 정전기가 나면 안 한다. 사소하지만, 내겐 바로미터다.”
어렸을 때도 철학책을 읽었나?
“100% 추리소설을 읽었다. 철학책은 안 읽었다. 철학을 제대로 하게 된 건, 성장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학부를 철학과에 갔어도, 이리 안 됐을 거다. 나는 그렇게 철학이 절실했는데, 지금 철학과를 가는 건 대부분 대학보고 가는 거잖나. 나는 억압된 사회를 통과하면서 나중에 철학 공부를 했다. 조건이 좋았던 거다. 어렸을 때도 주변에 철학책이 없었던 것도. 어렸을 때 철학책을 안 읽었으면 좋다.
철학을 너무 크게 봐선 안 된다. (철학이) 굉장히 훌륭하게 대접받는 것 같지만, 사실 철학처럼 폄하되는 학문이 없다. 나처럼 매사에 정전기가 난다면 철학할 수밖에 없다. 사는 게 힘들지 않으면 철학하지 마라. (웃음)”
동양철학을 전공하려 대학원에 간 건가?
“우리가 가진 동양정신으로 들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본 동기는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고, 하루에 논문 3편을 읽으면서 대학원에 붙었다.”
지금 철학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권해주고픈 순서가 있다면?
“김용옥(도올)이 가장 낫다. 독창적이진 않지만 레토릭(수사학)이 독창적이다. 그의 책을 다 봐라. 다른 사람이 그를 질시하는 건, 스타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정통적으로 배웠고, 그래서 보수적이다. 그가 있다는 건, 우리에겐 축복이다. 신영복 선생의 동양철학은 깊이에서 좀 떨어진다. 『여자란 무엇인가』를 권한다. 그걸 읽으면 훅 간다. (웃음)
(단점은 하다 만다는 건데, 인문서는 서문이 중요하다.) 프롤로그는 최강이다. 재미있다. (좋은 인문서는 서문만 봐도 좋다. 동양철학 입문으로는 김용옥이 좋고 재밌다.) 도올의 하버드 논문엔 통찰력이 부족했으나, 중요한 건 안목이다. 김용옥은 글로 평가해야 한다. 평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책을 보면 좋을까?
“내 책을 봐야지. (웃음) 『철학 vs 철학』에서 동양철학을 서양철학과 맞장을 뜨게 한 건 자랑스럽다. 김용옥의 책은 주석이 되게 길다. 주석이 한 권의 책 같다. 동양철학 고전은 철학책이 아니어도 좋다. 가급적이면 번역이나 한문투는 제외하고 대화의 문맥이 잘 나온 책을 봐라.
고전은 갖은 주석이 달리지만, 주석이 없어도 읽힌다. 고전이 왜 살아남느냐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충실한 우리말로 된 책을 봐라. 나도 15권을 썼지만 계속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이 어려운 문체는 국어를 못해서다. 서문이 충분히 읽히면 좋은 번역서다.”
장자가 전문인데, 비트겐슈타인도 공부를 하고…
“한계를 직감한 사람이 자유를 알고, 자유로워 본 사람만이 구조를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자유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한계를 발견하고 한계를 발견하는 순간 좌절하거나 넘어간다. 박사과정 대부분은 비트겐슈타인에게 할애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서늘하다. 말할 수 없으면 침묵하라고 한다.
논문으로 장자를 선택한 건, 지도 교수가 장자 전공이라서. (웃음) 장자를 좋아하나 가장 좋아하는 건 아니다. 영원히 그를 신봉하면 종교가 된다. 그는 친구였고, 논문을 쓸 때도 즐거웠다. 지금은 헤어졌는데, 삶에서 헤어진 건 아니고.
지금 가장 관심이 있는 건, 개개인이 정치 주체로 거듭나서 혁명까지 가능해질 수 있을까, 이다. 옛날에 책을 너무 안 읽은 게 지금에는 무척 좋다. 안 읽어본 책이 많아서, 읽어볼 책이 많아서 좋다.”
고전, 프랑스 현대철학, 인문서 등으로 좋은 책이 있다면?
“프랑스철학 입문서로는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책이 좋다. 데카르트 전공인데, 김수영 관련한 글도 많이 썼다. 『해체론 시대의 철학』은 체계적이지 않아서 매력적이다.
우리나라 서양철학에서 자기 글을 쓰는 사람은 김상봉, 김상환 정도다. 나머지는 앵무새다. 김상환도 최근 책보다는 교수가 되기 전까지의 책이 특히 반짝반짝 빛난다. 특히 김수영과 데리다에 관련한 책은 최강이다. 김상환의 글은 또한 아름답다. 이 두 사람이 무척 중요하고.
현대 프랑스철학의 원전이자 정수로 들어가려면, 들뢰즈가 지은 『프루스트와 기호들』을 통과해야 한다. 20세기의 탄생과 파국을 다룬 세 명을 꼽자면, 프루스트, 조이스, 카프카가 있다. 나는 카프카 전집을 권하고 싶다. 카프카가 이솝 우화처럼 읽히는 날, 우리는 시대를 견딜 수 있다고 본다.
딱 한 권만 고르라면 『프루스트와 기호들』을 꼽겠다. 20세기 인문학의 핵심을 가로지를 수 있다. 프랑스 철학의 중심은 들뢰즈다. 국내에선 열화당에서 나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는데, 완역이 안 됐다. 2/3 정도 번역됐는데, 프랑스에서도 잘 됐다는 소문이 났고, 이 책을 봐도 좋다.”
철학을 이렇게 보자, 하는 게 있나?
“철학은 포커스가 엄청 많다. 앵글 조정을 잘 하는 게 철학자다. 조국 교수는 법, 장하준 교수는 경제로만 이야기한다. 원래 철학은 종합이고, 철학자는 포커스를 잘 맞춰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세상을 하나로만 보는데, 법이나 경제로만 모든 것의 초점을 맞출 순 없다.
철학이 언제 필요하냐? 한 치 앞도 못 나가고 길을 잃었을 때, 제자리를 맴돌 때다. 뭔가를 해결하려면 초점과 포커스가 맞춰져야 한다. 그래야 셔터를 누를 수 있다. 김수영은 그랬다. 나의 시가 끝나는 순간은 행동의 계시를 완료하는 순간이다. 이건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프레임을 못 잡고 있다는 거다.
철학은 프레임의 자유다. 조국과 장하준이 때론 필요하고 맞지만, 때론 위험하다. 실천을 유발하는, 포커스가 맞는 그림을 던져줘야 한다. 철학은 그런 것이다. 매순간, 한걸음씩 내딛을 수 있는 놀라운 감수성.”
독자들과 나눈 대화
직장생활을 하면서 철학을 가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철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에 대해.
“직업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철학으로 빠질 수 있다. 철학은 한걸음 내딛게 하는 것이다. 사르트르를 얘기하면서 실천하지 못하면 그게 뭔가. 진짜 알고 보이는 사람은 걸어간다. 철학을 종교로 활용하면 안 된다.
지금 우리 인문학의 적은 종교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절이나 교회로 간다. 자본은 원래 적이었다. 진짜 적은 종교다. 한 사람이 죽어갈 때 종교적 프레임은 필요하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를 때릴 때 기도가 뭐가 중요하나.
철학자를 맹신하면 안 된다. 왜 혁명을 할 수 없는지 아나? 아직 소련식의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나 인문학은 문제를 직면하고 한걸음씩 거닐도록 한다. 인문학은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 중요하다. 옳은 길이 중요한 게 아니다. 등이 가려운 사람에겐 등을 긁어줘야 한다. 철학‘관’을 가진 사람은 위험하다. 그건 종교다. ‘관’이 없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작년에 삼성이 『논어』를 읽는다고 하면서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이건희, 그렇게 나쁜 사람이 없다. 이건희에게 욕 못하는 사람은 상태가 안 좋은 것이다. 나쁜 놈은 나쁜 놈이다. 돈이나 권력이 잇다고 나쁜 놈이 좋은 놈이 되진 않는다.”
학교에서 철학세미나를 하려고 한다. 어디서 시작하면 좋은가?
“친구들이 대화를 하는 건 이유가 있다. 각자 느끼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세미나가 스터디처럼 합의를 보자는 모임이라면 때려 쳐라. 남들이 하니까 하자는 것이면 왜 하나? 김수영을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아나? 그는 인문정신의 정수이자 핵심이다. 자신을 꾸미지 않는다. 솔직함으로 세계를 본다. 반팔 메리야스를 입고 아우라가 나오는 남자는 김수영밖에 없다. (웃음) 나도 해봤는데, 안 되더라.”
(이권우 보충 :
“인문학이 유행이 되거나 당장의 필요 때문에 하지는 말라는 얘기다. 서로 토론하면서 다른 의견도 받아들이고 모임을 만들어 봐라.”)
정직하게 성실하게 일해도 뜻대로 되지 않고, 패배감에 휩싸인 직장 동료가 있다. 어떤 이야길 해주고 싶나?
“축하한다고. 사람이 힘든 건, 옳은 걸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옳은 걸 끌고 가기 때문이다. 김수영의 「거미」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든 건, 기다리고 옳은 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버리면 돌멩이가 된다. 기다림이 있어서, 옳은 게 있어서 힘들고, 옳은 게 있어서 행복해질 거다. 그 친구를 어린애처럼 보면 안 된다. 살아있는 거다. 우리는 죽어가는 지도 모른다. 바라는 것도, 옳다는 것도 없어서 힘들어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모든 글은 기대하는 것, 옳은 것에 대한 글이다. (장 자크)루소는 옳은 것을 끝까지 갖고 갔다.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강렬하다. 그건 자신의 경험에서 옳은 것에 대한 기다림에서 나온 책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옳은 것을 하나씩 지우고 사는 거다. 옳은 것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연애가 안 될 때, 글을 쓴다. 연애가 잘 되면 편지를 안 쓴다. 생각해보라. 언제 글을 쓰나. 안 되니까.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사회계약론』을 쓴 로크나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비겁하다. 나는 허점이 많아서 김수영을 좋아한다. 김수영은 일찍 죽은 게 복일지도 모른다. 기다리고, 서러웠던 것도 많았던 사람이니까.
옳은 것, 기다리는 것, 서러운 것, 그런 게 없으면 어떻게 글을 쓰나. 울분도 없는데 어떻게 글을 쓰나. 인문학은 절규다. 김수영이나 카프카가 무슨 스토리텔링인가. 글을 제대로 쓰고 싶으면 옳은 걸 갖고 있어야 한다. 인간은 기다리고, 옳은 걸 끌고 가는 거구나. 좋은 사람들은 다 힘드네. 이런 것을 알아야 한다.”
철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듣고 싶다.
“내가 옳은 걸 가지고 있느냐의 바로미터는 힘들고 서러운 게 있느냐, 이다. 진리는 여러분을 들들 볶을 거다. 힘들고 서러우면, 옳은 게 있어서 그렇다. 돌아가서 눈 감으면 ‘오늘 하루 잘 살았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선거는… 참여하지 마라. 나는 사람이 대표성이나 정치적인 권리를 양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표자를 뽑는 순간, 자신의 권리를 다 넘겨주고 노예가 되는 거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권리를 남에게 넘겨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거라는 ‘쇼’에 불만족이 크다. 대의민주주의는 투표율을 떨어지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자유로운 공동체는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에서 나온다. 가령, 교육감 선거라고 하면 아이들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 그러면 그 아이들이 얼마나 당당해지겠나. 투표장에 가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같이 살아가면 투표해야 한다. 아이들 교육 문제에 왜 아이들이 참여 못하게 하나. 왜 학부모가 교육감을 투표하나. 약속의 주체와 약속의 객체가 같은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