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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비싸다고 좋은 땅이 아닙니다” - 『신정일의 新택리지』 신정일

“강물은 유장하게 흐르는 것이 임무다. 가만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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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얼마나 걷습니까. 이 질문, 단지 걷는 거리만을 묻는 게 아닙니다. 걷기를 통해 얼마나 많은 세상을 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등에 대한 질문도 함께 있습니다.

하루, 얼마나 걷습니까. 이 질문, 단지 걷는 거리만을 묻는 게 아닙니다. 걷기를 통해 얼마나 많은 세상을 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등에 대한 질문도 함께 있습니다. 장 자크 루소가 그랬죠.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긴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어떤 차를 소유하고, 얼마나 빨리 가느냐를 더 흔하게 묻는 시대지만, 부작용이 부쩍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걷기’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죠. 건강뿐 아니라, 잘못된 가치를 바로잡을 기본으로서.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를 쓴 조지프 아마토는 이리 말했습니다. “걷기는 말하기다.” 그는 인류가 직립보행의 첫 발걸음을 뗀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걷기사(史)’를 말합니다. ‘걷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바꿔왔는지, 실존적이며 명료한 소통의 언어인 ‘걷기’를 통해 무엇을 소통하고 나눴는지 순례자의 걸음으로 내딛습니다.

그렇습니다. 걷기는 철학(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루소가 그랬듯, 플라톤, 몽테뉴, 칸트, 헨리 데이비드 소로, 키르케고르, 니체 같은 철학자들은 걷기를 통해 사유를 했다지요. 아마도 걷기는 생각을 자극하고, 실존에 대한 행복감과 생명력을 불러일으켰을 겁니다. 그러니, 하루에 얼마나 걷습니까?, 라는 질문은 당신이 행한 생각을 묻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혹은 세상을 바꾼 혁명의 기제로서, 세상의 중심으로 걸어간 혁명 군중들의 걷기도 생각할 수 있겠고, 전체주의 국가의 군대의 획일적인, 생각을 지운 걸음도 떠올릴 수 있겠지요.

그러니, 다시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걷기를 하세요? 마흔일곱에 요절한 시인, 철학자 강신주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인문정신의 핵심’이었던 김수영 시인의 시, 「아픈 몸이」. 걸을 때마다 이 시의 한 구절,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를 읊거나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분이 있습니다. 천생 ‘걷는 사람’이며, 길에서 배우고 사유하다보니, ‘길 위의 철학자’라고 불리기도 하시죠. 뭣보다 느리게 걷습니다.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해서죠.

걷는 사람, 우리나라 걷기여행의 산 증인, 신정일 선생입니다. 문화사학자로 길의 삼박자, ‘쓰리고’를 주창하시는 분입니다. 즉 ‘찾고, 잇고, 걷고’의 쓰리고. 역사와 문화가 담긴 옛길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걷기의 일상을 회복하자고 걷고 또 걷는, ‘걸어야 사는 사람’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신 선생은 인간이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 중의 하나인 ‘걷기’를 통해 지평을 넓혔고,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했으며, 인간보다 더 큰 자연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많은 책을 읽는 것을 병행했고요. 길 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만났습니다.

30여 년간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두 발로 디딘 신 선생은 이중환의 『택리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책을 내놨습니다. 『신정일의 新택리지』. 역사와 지리, 인문기행뿐 아니라, 그동안 읽은 수많은 책의 편력, 수없이 거닌 국토, 사라지고 더해진 것을 덧붙여 수백 년 전의 모습과 비교하고 이 땅을 우리가 어떻게 지켜야할 지에 대한 것을 담았습니다.

지난달 27일, 가슴과 머리, 다리로 쓴 역작, 『신정일의 新택리지』의 총 10권 완간을 앞두고, 전주에서 올라오신 신 선생을 홍대 부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길 위의 철학자를 잠시 멈추게 해서 나눈 이야기를 함께 나누시죠.

그 길에서 느낀 것은 산천이 나의 것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것, 그 길들을 올곧게 보존해서 후세에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발 한발 걸으며 지나온 산과 강, 그 길을 걸으며 내가 발견했던 것은 바로 나였고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우리의 국토였으며, 그 국토를 몸서리치도록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신정일의 新택리지 - 살고 싶은 곳』, p.10)


이중환의 『택리지』를 현대에 맞춰 새로 쓰다, 『신정일의 新택리지』


총 10권으로 기획된 『신정일의 新택리지』의 완간을 앞두고 계신데, 기분이 어떠세요?

“오랫동안 묵은 짐이었어요. 지금,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요. 한편, 하나의 길이 끝나면 또 다른 길이 시작되듯, 큰 짐을 벗어나 새로운 걸 모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런 심정이에요. 낙동강을 걸었는데, 10km가량 남은 부산 구포였어요. 혼자 외롭고 쓸쓸했는데, 다시 걷는다면 새롭게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책을 낸 지금 그런 생각이 들어요.”

30여 년간 우리 땅 구석구석을 두 발로 걸어온 결과물을 총 열 권으로 완결하게 되었다. 역사와 지리, 인문기행을 더해 수백 년 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고 선조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흔적을 고스란히 담으려 노력했다. 빌딩이 산의 높이를 넘어서고, 강의 물길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산수와 지리는 우리 삶의 근간이다. 우리가 바로 지금 두 발로 선 이 땅을 자연과 사람 모두가 더불어 사는 명당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일 것이다. (『신정일의 新택리지 - 살고 싶은 곳』, p.13)

이중환의 『택리지』를 현대에 맞춰 다시 쓰시고자 했던 이유가 있었다면요?

“85년 답사단체를 조직해서 오랫동안 걸으면서 읽던 『택리지』였습니다. 스승 없이 공부했는데, 일생의 스승처럼 여겼던 사람이 이중환이었습니다. 그런데, 『택리지』를 다시 쓴 사람이 없었고, 다시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2002년 한강역사 탐사를 하다가, 한 기자가 쓰고 싶은 책을 묻기에, 더 떠돈 다음 『택리지』를 쓰고 싶다고 했어요. 기사가 나갔고, 50여 곳 출판사에서 요청이 왔는데, 거절했어요. 더 떠돈 다음에 쓰겠다고. 그러다, 어쩔 수 없이 기획을 해서 썼는데, 약간은 부족한 상태로 책을 냈어요.”

나는 이 책을 이중환의 『택리지』에 기반을 두고, 인문지리 내지는 역사지리학의 측면에서 ‘지금의 택리지’로 다시 쓰고자 했다. 이중환이 살다간 이후 이 땅에서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명멸해 갔는가. 그것을 시공을 뛰어넘어 시냇가에서 자갈을 고르듯 하나하나 들추어내고 싶었고, 패자 내지는 역사 속으로 숨어들었던 사람들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했다. (『신정일의 新택리지 - 살고 싶은 곳』, p.11)

2004~2006년에 5권으로 나온 『다시 쓰는 택리지』가 그것인가요? 어떻게 다른가요?

“많이 보완했어요. 그땐 6,500매였는데, 이번에 13,000~14,000매정도 되니까, 많이 보강됐습니다. 쓸 말은 다 썼어요. 약간 보완할 순 있어도, 다시 쓴다는 건 불가능해요. 다른 누군가가 택리지를 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유명 사진가가 ‘사진으로 본 택리지’를 쓰고 싶다고 했었는데, 사진으로 보여줄 수 있는 택리지는 아닌 것 같아요. 역사?지리?인문이 다 들어간 것이 택리지거든요.”

『신택리지 - 북한』을 쓰기 위해 북한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떠셨어요?

“2003년에 갔다 왔습니다. 삼지연 공항을 통해 북한 쪽으로 백두산에 올라갔어요. 긴 시간은 아녔지만, 온 몸으로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풍경이 가슴 아팠어요. 온 산의 나무는 사라지고, 미루 나무만 있는 것을 보고 통일이 되면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료가 부족해서 나무를 베어다 쓰고, 산에 경작지를 만들어서 나무가 없어요. 명산인 구월산, 묘향산, 백두산, 금강산에만 나무가 남아있고, 「성불사의 밤」에 나온 정방산마저도 그래서, 가슴이 아팠어요.”


어디서 살 것인가의 문제


『신택리지 - 살고 싶은 곳』을 보면 살 곳을 정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주에 살고 계신데, 숱한 곳을 다니신 분이 거처로 정한 전주는 어떤 곳인가요.

“전주에 1980년부터 자리 잡아서 32년째입니다. 교통편도 괜찮고, 답사하기도 좋아요. 어디든 접근성도 좋고요. 살다보니 정도 들었고,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웃음)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을 썼으면, 돈 되는 곳에 땅을 사야 되지 않느냐 얘기하는데, 내가 바라보는 땅은 그런 땅이 아닙니다. 집값이 비싸고 교육시키기 좋은 곳이 좋은 땅이 아니에요. 한평생 사는 것이 여행자처럼 사는 건데, 경치가 좋고, 인정이 두텁고, 온화한 곳이 좋은 땅이에요.”

살 곳을 정하는 문제는 단순히 생활의 윤택함을 도모하는 것을 넘어서 인(仁)을 추구하고 지혜를 추구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의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신택리지 - 살고 싶은 곳』, p.10)

살 만한 땅이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사는 곳이라고 하습니다.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요?

“이중환 선생은 끝내 살만한 땅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땅을 내가 결국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했어요. 사람도 자연이고, 대자연의 일부라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제대로 보존하면서 살아간다면, 내가 사는 곳이 살만한 곳이 아닐까요.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고, 사람이 모든 것보다 우수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잠시 살다 가는 곳이라는 마음으로 자연에 대해 겸허한 자세로 섬긴다면 삶이 평화롭지 않을까요.”

행복의 조건으로서의 ‘어디서 살 것인가’를 따지는 문제. 지금의 많은 사람들은 ‘집값이 얼마인가’ ‘집값이 오를 것인가’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중환 선생은 십 리 거리에 아름다운 산수가 있는 곳을 마련해두고 걸어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좋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산수는 눈을 화사하게 하고, 정신 함양에도 좋아요.”

이중환은 『택리지』「복거총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산수는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하는 것이다.… 십 리 밖이나 반나절쯤 되는 거리에 경치가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 가끔씩 생각이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시름을 풀고, 혹은 하룻밤쯤 자고 돌아올 수 있는 곳을 마련해 둔다면 이것은 자손 대대로 이어져 나가고 괜찮은 방법이다. (『신정일의 新택리지 - 살고 싶은 곳』, p.39)

“어떤 면에선 돈이 중요하나, 다른 면에서는 하찮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돈에 얽매여 서울이나 근교의 좁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조선의 혁명가이지 문장가인 허균은 세상을 집으로 여겨, 천하에서 가장 넓은 집에 산다는 호탕한 기개를 보였습니다. 100~200평짜리 집이 아니라, 옛 사대부들은 초막을 지어놓고 별을 보고 내 것이라 여긴 기개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돌아다니다보면 걱정도 앞서요. 전국에 펜션, 별장이랍시고 많은데, 비어버린 별장이 얼마나 많은데요. 도시에 길들여진 사람은 시골로 돌아가기가 힘든 것 같아요.”

웰빙을 추구하는 삶에서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따지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이다. 공자는 “군자는 살 만한 마을을 반드시 가려서 택한다”라고 하였으며, 당나라 때의 풍수가인 복응천은 『설심부』라는 풍수서에서 “지리란 조리, 즉 문리와 맥락의 이치를 갖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신정일의 新택리지 - 살고 싶은 곳』, pp.23~25)

『신택리지 - 우리 산하』를 보면서, 이 산하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헌데, 아름다운 산하의 젖줄인 강이 파헤쳐지고 인공적으로 변형되고 있다는 사실도 각인이 됐습니다. 4대강 사업, 어떻게 보시는지요.

“강연할 때 강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고 요청을 받아요. 4대강, 8강을 돌아본 사람으로서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합니다. 강물의 노래가 있습니다. 사람이 100년을 못사는데, 강물은 세대 천천 흘러가잖아요. 자연의 위대함입니다. 강물은 유장하게 흐르는 것이 임무에요. 예전에 태풍 매미가 왔을 때, 강원도가 큰 피해를 당했습니다. 강물이 넘치고 그랬는데, 사실 강물은 본연의 기개를 찾은 겁니다. 강물이 스스로 길을 찾은 거죠. 피해를 당한 집들은 보상해주고 다른 곳으로 옮겨서 살게 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자연은 우리가 그냥 두어도 제대로 흘러갑니다. 강물이 늦게 흐른다고 떠밀지 마세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슬로시티에 대한 얘기도 있는데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고 있지요. 지금은 주차간산이지요. (웃음) 풍경을 휙휙 지나가고 생각도 없다보니 문제가 많이 생겨요. 조선 사대부들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이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주자학을 창시한 주자는 견문이 넓은 사람이 안목도 넓다고 했어요. 즉, 많은 곳을 바라봐야 안목이 넓어집니다.

박지원의 『연암집』에는, 화담 서경덕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화담이 밖을 나갔다가, 스무 살 청년이 울고 있어요. 왜냐고 물어보니, 다섯 살부터 맹인으로 살다가, 문득 햇빛을 바라보고는 눈이 뜨였는데, 집에 돌아갈 수 없어 울고 있다는 거예요. 화담이 말하길, 집에서 나올 때처럼 지팡이를 짚고 돌아가면 갈 것이다.

이 일화는 본연으로 돌아가라는 얘기입니다. 본연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건 걷기를 통해 나타나는 것 아니겠어요? 천천히 거닐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세상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마음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전 국토를 걸어 다니셨습니다. 현재 ‘우리땅걷기’ 모임의 대표도 맡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걸으셨고, 요즘 하루에 얼마쯤 걸으세요?

“공식적으로 6만km 가량 되고, 비공식적으론 몇십만km가 될 거예요. 하루에 가장 많이 걸었던 것은 64km가 기록이었고, 대개 35~40km 걸었는데, 요즘은 좀 줄여서 25~30km 걷고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잘 하는 게 걷기입니다. 두렵다는 사람도 있는데, 태어나서 가장 많이 한 일이 걷기에요. 걷다가 아프다고 하면 김수영의 「아픈 몸이」를 읊어줍니다. 그러면 대부분 걸어요. (웃음) 붓다가 길 끝에 자유가 있다는 얘기도 같은 얘깁니다. 걷는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삶이에요. 산다는 것은 떠돈다는 것이고, 쉰다는 것은 죽는다는 거죠.”

걸어 다니면서, 위험한 순간도 맞닥뜨렸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많았죠. 국도를 걷다보면 트럭과 차가 많이 지나가요. 그 차들이 쌩쌩 지나가면 쓰러지기도 하고, 용케 살았는데, 아직 운이 좋아 걷는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은 관동대로를 걸을 때, 같이 간 건축사가 매연 때문에 힘들대요. 매연을 안 마시는 방법이 있냐고 물었죠. 없대요. 니체의 말을 들려줬어요. “인간의 위대성을 나타내는 공식은 운명애다. 필연적인 것을 감내할 뿐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 그 뒤 계속 걸었습니다. 모든 게 우연인 것 같아도, 살다보면 필연이에요. 필연을 거부하면 더 힘듭니다. 걷는 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옛길 복원, 보행자 전용도로 등에 대한 문제의식과 메시지를 던지고 있으신데요.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들어달라고 2006년 청와대에 청원을 했습니다. 만들겠다고 회신이 왔었는데, 아직 안 되고 있어요. 또 작년에 ‘길의 날’ 제정과 관련한 세미나를 했고, 국회에서 상정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길문화축제가 매년 11월11일 열리는데, 5회째하고 있어요.

특히 5월 둘째 주 금?토요일, 지리산에서 올레길, 둘레길, 바우길 등 길과 관련한 단체들이 모여서 ‘한국 길모임’을 발족합니다. 서명숙 대표(제주 올레 이사장), 김주영 대표(한국의 길과 문화 대표), 이순원(바우길 개척단장), 도법스님, 저 다섯 명이 공동대표를 맡았습니다. 걸을 때는 같이 걷는 사람도 중요해서, 도반(道伴)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65억 명 가운데 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아파하면서 걸어갈 수 있다는 것, 대단한 인연이거든요. 정말 중요한 인연은 같이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걸을 땐, 직업의 귀천이나 학벌도 없어요. 저는 그렇게 모두 도반이 되는 사회를 꿈꿉니다.”



창조의 기쁨을 만끽하는 방법


산하를 거닐면서 역사와 삶의 궤적도 따르고 좇고 계신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10대 중반부터 독학을 했어요. 철학가와 문학가를 좋아했고,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읽으면서 우리와 세계 역사에 눈을 떴습니다. 누군가는 왜 불우했던 시대나 사람만 좋아하느냐고 물어요. 그들은 불우했지만, 사상과 흔적이 역사를 진보시킨 원동력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재평가 돼야한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론 내 삶이 온전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웃음)”

최근 낸 『우리 역사 속의 천재들』도 같은 맥락이지 싶은데요. 역사에 대한 관심도 걸으면서 생겨난 것이었는지요?

“걷다가 역사적인 인물의 자취가 있는 곳을 가면, 여러 생각도 하게 되고 공부를 하게 됐어요. 역사가 궁금하고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역사와 역사적 인물이 왜 소중한지, 체화가 됐어요. 길에서 배웠고 책을 통해 배운 거죠. 제게는 이중환, 김시습 등이 스승이에요. 이들은 평생 두 발로 걸어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김삿갓도 그렇고요.”

다작을 하시는 편이십니다. 그 비결과 아울러 평소 글쓰기를 어떻게 하시는지요.

“책은 세어보진 않았지만, 줄잡아 2~3만 권 읽은 것 같아요. 학교 공부에 얽매이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책만 읽었는데, 청소년기에 많이 읽어서 그게 내재됐어요. 글은 전사처럼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그냥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백지를 보면 현기증을 느끼기도 해요.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어요. 김지하 선생은 그러더군요. 글은 나올 때가 있다고. 다작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때그때 써두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힘입은 거죠.”


대미를 장식할 『신택리지 - 택리지 완역』은 언제 나오며, 이후 집필 계획은 어떠신지요?

“5월에 나올 거예요. 제가 무거운 책을 많이 썼는데, 실은 감성적인 사람이거든요. (웃음) 앞으로 유연하고 부드러운 책을 낼 계획입니다. 현대인들은 메말라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도 기뻐할 줄 몰라요. 매월당은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주저앉아 통곡했고, 임재는 술을 마셨고, 화담은 춤을 췄어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야 좋은 삶을 살고, 그런 풍경을 만나려면 많이 돌아다녀야 합니다. 조선시대엔 문사철을 겸비한 사람을 아름답다고 여겼습니다.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김시습 모두 문사철을 겸비했고, 백과사전식으로 공부를 했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항상 하는 얘기가 있어요.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것을 하시라. 세상의 좋은 책 다 읽고, 좋은 경치 다 보고, 좋은 사람 다 만나는 것, 옛 사람들의 꿈인데, 지금도 유효합니다. 좋은 경치를 두 발로 보면 제일 좋고요. 나 같은 사람은 정규학력이 없는데도, 강의도 하고, 산천을 돌아다니며 책을 냈잖아요.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혼자서도 하는 거고, 독학의 기쁨은 대단한 기쁨입니다.

우리는 너무 형식화되고 규격화된 사회에 살고 있어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데, 우리는 너무 틀에 박혀 있어요. 들뢰즈가 이런 말을 했어요. “창조란 불행한 것들 사이로 자신의 길을 금 그어 나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창조하려고 하지 않고, 가지 않은 길을 안 가려해요. 황동규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뚫어놓은 길만 걷”는 자들인데요, 창조는 대단한 기쁨입니다. 남이 뚫어놓은 길보다 내가 원하는 길을 가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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