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프란츠 카프카, 카렐 차페크…… 작가들의 도시
프라하는 도심에 단 하나의 높은 빌딩도, 개선문도 찾을 수 없는 보기 드문 대도시 중 하나다. 많은 궁전들도 내부는 화려하지만 외관은 거의 군대막사처럼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실제 크기보다 더 작아 보이도록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20세기 초에만 해도 협소함이나 지방색으로 느껴졌을 지 모르는 것을 우리는 지금 오히려 기적적으로 보전된 인간적인 차원으로 인식한다.(p.14)
밀란 쿤데라의 소설 『프라하의 봄』을 통해 이름이 알려진 이후 낭만적인 사랑의 도시로 각인된 프라하. “영광이 별까지 닿을 위대한 위대한 도시”(체코 건국 신화에 나오는 공주 리부셰의 말) “백 개의 첨탑이 있는 도시”라고 불리는 프라하는 밀란 쿤데라 외에도 프란츠 카프카, 카렐 차페크, 얀 네루다 등 세계적 작가의 도시기도 하다.
체코의 대표작가 14명의 단편집 『작가들이 사랑한 도시 - 프라하』 출간기념회가 서교동 체코정보문화원에서 열렸다. 벽에는 체코 작가들의 연표가 걸려 있었고, 한 켠에는 사진작가의 독특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프라하 작가들의 번역된 소설들도 살펴볼 수 있었다. 출간 기념회 자리에는 의자가 없었다. 체코의 파티 방식에 맞춰 스탠딩으로 준비된 것.
낭만과 유머의 도시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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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 등장한 고은 시인 | |
“진짜 체험은 선험에서 시작한다.” 이날 출판기념회를 찾은 고은의 말이다. 그의 두 번째 시집이 체코에서 발간될 예정이다. 이런 인연으로 자리를 빛낸 고은은
“오늘 밤은 체코 문학과 체코에 취해보자”며 책의 출간을 축하했다.
구시가지, 신시가지, 구유대인 지역, 카를 다리, 말라스트라나, 페트르진 언덕 등 프라하의 유명한 거리와 언덕 그리고 다리와 건물들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프라하 도시 자체다.
『작가들이 사랑한 도시- 프라하』는 체코 문학의 거장과 함께 프라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다.
동유럽의 고도 프라하는 독일과 러시아 등 인접 강대국에 휘둘리고, 독립된 이후에는 나치독일의 침공, 공산정권과 정권의 붕괴 등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갖고 있다. 독일인, 유대인, 체코인, 슬라브인 등 다양한 민족들로 뒤섞여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고 그 속에서 세계적인 작가를 배출했다.
“프라하 혁명의 무기는 조롱과 풍자, 그리고 농담이었다.”라는 이반 클리마의 말처럼 프라하는 어려운 시대상황 속에서도 예술적 감성과 사상적 저력을 품고 있었다. 유명한 시인 바츨라프 하벨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나라기도 하다.
이 책에 출간에 있어 숨은 공로자가 있다. 저자가 여러 명인 탓에 각각의 저자에게 저작권을 따로 계약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주한 체코 대사 야로슬라브 올샤가 발벗고 나서 도움을 주었다.
“모든 작가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허락을 받았다.”야로슬라브 올사의 한국문화에 대한 애정 역시 남달라, 체코 문화를 국내에 소개하는 것만큼이나 한국 문화를 체코에 소개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야로슬라브 올사는 이 자리에서 고은 시인과의 특별한 인연을 밝히기도 했다.
“체코 대사로 2008년 8월 취임받고, 공식적으로 진행한 행사가, 고은 시를 낭독하는 일이었다.(웃음) 한국문학과 체코문학이 더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프라하』같은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은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한다.”이에 고은 시인은
“지금 우리는 아무런 입국 수속 없이 프라하에 온 거다. 이 곳은 체코 수도 프라하보다도 프라하 정신이 담겨 있는 곳”이라고 올샤의 인사에 화답했다.
“9년 전에 프라하 작가 축제가 있어 프라하에 들른 적이 있다. 거기서 그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다. 그 이후 몸의 정수에 프라하는 항상 붙어 있었다.”“여기에 온다는 것은, 한 번 이상 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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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를 위해 준비한 시 “나의 프라하”를 낭송하는 고은 시인 | |
고은 시인은 특히 얀 네루다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얀 네루다는 체코 국민문학의 창시자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그의 이름을 따서 필명을 지었을 만큼 낭만주의 시인으로 명성이 높다.
“그분의 생애가 독특하다. 살아서는 저널리스트였고, 죽어서는 시인이 되었다. 한 사람이 무덤에 묻힌 이후에 시인이 되는 그런 운명도 있는 거다. 프라하에 들렀을 때 그의 무덤에 찾아갔다. ‘내가 당신을 보러 왔소. 나 이제 가오’ 하고 돌아왔는데, 그가 떠나지 않고 계속 따라와 지금까지 여기에 있다.(웃음)”고은 시인은 이 자리를 위해 적어온 ‘나의 프라하’라는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여기에 온다는 것은/ 한 번 이상 온다는 것/ 여기에 머문다는 것은/ 일 년 더 머문다는 것// 세상의 도시들은 날마다 부풀어간다/여기는 그럴 수 없는 곳/ 오래오래/ 저 스스로 피어나는/ 지상의 꽃// 미움이 미움 이전으로 돌아가는 곳/ 나의 프라하”“체코에서는 책이 처음 나오면 샴페인을 붓는 전통이 있다.”고 소개한, 고은 시인과 야로슬로브 올샤 주한 체코 대사는 책에 샴페인을 부었다. 올샤는
“아름다운 체코의 수도에 얽힌 그림 같은 이야기와 함께 프라하를 찾는다면, 다른 여행자들은 느끼지 못할 색다른 경험을 얻는 값진 여행이 될 것이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들려오는 체코 작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p.255)”고 추천사를 남기기도 했다.
[프라하 문학, 어떤 것이 소개됐나]
[사진으로 보는 그날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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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 체코정보문화원 3층에서 마련된 출간기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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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번역된 체코 문학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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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로슬로브 올샤 주한 체코 대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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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하며 함께 웃고 있는 올샤 대사와 고은 시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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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에서는 책이 처음 나오면 샴페인을 붓는 전통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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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출간을 기념하며 건배하는 모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