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자 배우 중 누구 좋아하세요? 저는 꽤 오래 전, 일본문화 팬이라면 한번쯤은 거치기 마련인 ‘기무라 타쿠야-오다기리 죠’ 코스를 완주한 후 한동안 맘에 드는 남자배우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본의 20대 배우는 남자보다 여자 쪽이 매력적이라고 늘 생각해 왔었죠.
특히 드라마 <백야행>, <호타루의 빛>의 아야세 하루카, 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와 시대극 <아츠히메>의 미야자키 아오이, 영화 <눈물이 주룩주룩>, 드라마 <골드>의 나가사와 마사미 등을 보면서, 멜로면 멜로 코믹이면 코믹, ‘이 언니들 참 연기 잘 하네’ 감탄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요즘 슬슬 남자 배우들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영화를 보다가 “아, 저 친구 괜찮은데?”, 드라마를 보다가 “아, 여기 또 나오네?” 싶은, 관심 가는 남자배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들 이제 겨우 20대 초반의 나이지만, 다양한 작품에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파라는 게 특징입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세 명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요즘 10~20대 일본 여성들에게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야?” 라고 물으면, 대략 이 세 명 안에서 답이 나오더군요.
미우라 하루마
미우라 하루마라는 존재를 처음 인지한 건, 지하철에 도배된 헤어왁스 ‘우노’의 광고에서였습니다. 이제 20대 후반에 접어든 쟁쟁한 선배들, 츠마부키 사토시, 오구리 슌, 에이타와 함께, 얼굴은 알겠는데 이름은 가물가물한 청년이 섞여 있는 겁니다. 짙은 눈썹과 턱밑의 점 때문인지, 얼핏 본 첫 인상은 약간 촌스럽다는 느낌이었습니다.
1990년생인 미우라 하루마는 1997년 NHK 아침 드라마 <아구리 (あぐり)>에 아역배우로 출연하며 데뷔했습니다. 2008년 <블러디 먼데이>로 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으니 이제 막 재능을 펼치기 시작한 따끈따끈한 배우임이 확실합니다.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높인 작품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너에게 닿기를(君にとどけ)>이었습니다. 시나 카루호가 그린 같은 제목의 만화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었죠. 음산한 겉모습 때문에 ‘사다코(공포영화 ‘링’의 주인공 이름)라고 불리는 여주인공 사와코가 그런 자신을 거리낌없이 대해주는 인기남 카제하야 선배를 동경하다 사귀게 된다는 내용의 순정만화입니다.
만화 속 남자 주인공 카제하야 군은 여자들이 원하는 남자친구의 요소를 모두 갖춘 치명적인 매력남이어서, 이미 청춘과는 거리가 먼 누나들의 마음까지도 살랑살랑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 ‘상큼 그 자체’의 남자주인공을 누가 맡을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만, 영화가 공개된 후 미우라 하루마가 정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미우라 하루마는 그동안 <블러디 먼데이>나 <고쿠센> 등의 작품에서 주로 어두운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만화 주인공, 왕자님 이미지보다는 기가 센 젊은 연기파 배우의 느낌이 강했었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 과일향이 퐁퐁 풍길 것만 같은 남자 주인공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려내, 까다로운 만화팬들까지 “인정!”을 외치도록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이 영화 한편으로 단박에 일본 10~20대 여성들에게 가장 어필하는 배우로 떠오른 그는 올해 초부터 후지TV에서 방송중인 게츠쿠(월요일 9시) 드라마 <소중한 것은 모두 네가 가르쳐 주었어>의 주인공을 맡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약혼녀인 동료 교사와 자신에게 의지하는 여학생 사이에서 갈등하는, 착한 심성을 가졌지만 옆에 있었으면 한 대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우유부단한 남자를 연기합니다. 미묘한 삼각관계를 다룬 드라마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짜증나면서도 문득문득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미우라 하루마의 섬세한 표정 때문에 자꾸 보게 됩니다.
사토 타케루
사토 타케루를 처음 봤을 땐 ‘그냥 조연급’의 느낌이었습니다. 눈이 참 예쁘구나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작품 전체를 휘어잡는 남자 배우로서의 카리스마는 부족해 보였죠. 1989년생인 사토 타케루는 일본의 수많은 이케멘(‘꽃미남’을 뜻하는 일본속어)을 배출한 특촬물 <가면라이더> 시리즈 출신입니다. 이후 이케맨들이 집단으로 출연한 <루키즈>나 <메이의 집사> 등에 출연해서 인기를 얻었죠. 그러던 그가 지난해 일본 전국민의 사랑을 받은 시대극 <료마전>에서 칼솜씨는 뛰어나지만 마음은 한없이 여린 무사 오카다 다이조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면서, 젊은 연기파 배우의 전당에 오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사토 타케루를 좋아하게 된 것은 헤롤드 사쿠라이의 원작 만화를 영화로 옮긴 작품 <벡(BECK)>에서였습니다. 원작만화의 팬인지라,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줄곧 개봉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본 후, 기대를 넘어선 120%의 만족감으로 극장을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맘에 들었던 것이 만화를 보며 상상했던 그대로의 주인공 다나카 유키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유키오를 연기한 배우가 사토 타케루였죠.
이 만화는 록밴드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음악 이야기 말고도 독자들을 공감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너무 평범하고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그래서 남 같지가 않은 주인공 유키오의 캐릭터였습니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유키오가 뜨거운 천재 기타리스트 미나미 류스케와 만나면서 변화하는 모습이 이 작품의 핵심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 무심히 교실 창 밖을 내다보는 사토 타케루의 옆모습을 보면서 순식간에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토 타케루의 가장 큰 매력은 어떤 감정이든 리얼하게 담아내는 크고 맑은 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인기 걸그룹 ‘AKB48’의 마에다 아츠코와 함께 출연한 드라마
에서 약간 어벙벙하면서도 귀여운 남학생을 연기해 10대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쿠사나기 츠요시가 주연을 맡고 있는 멜로 드라마 <겨울의 벚꽃>에 남자 주인공의 동생으로 출연 중입니다.
오카다 마사키
1989년생이니 아직 이십대 초반인데도, 요즘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남자 배우가 바로 오카다 마사키입니다. 지난 달 열린 제 34회 일본아카데미상시상식은 영화 <고백>과 <악인>이 대부분의 상을 나눠가졌는데요. 오카다 마사키는 이 두 영화에 모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해, 이론의 여지 없는 우수조연남우상을 수상했습니다.
젊은 배우들 중에는 드물게 TV드라마가 아니라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2009년 한 해 동안만해도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영화 <중력 삐에로> <하프웨이> <호노카아 보이> <내 첫사랑을 너에게 바친다> 등 4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일본아카데미상을 비롯해 각종 영화상의 신인상 부문을 휩쓸었습니다. 새하얀 피부에 가늘가늘한 외모는 전형적인 꽃미남과인데, 영화 속에서의 그는 “같은 사람이야?” 싶을 정도로 배역 속에 녹아 드니 참 신기합니다.
혹시 아직 그의 진가를 모르시겠다면 2010년에 개봉했던 그의 영화 3편을 나란히 보는 게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3월 말에 한국에서 개봉하는 영화 <고백>은 딸을 잃은 여교사의 충격적인 복수를 그린 미나코 가나에의 소설 『고백』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었죠.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만든 나가시마 테츠야 감독이 연출을 맡아, 원작의 한없이 잔인하고 비극적인 스토리에 묘한 생동감과 유머를 가미했습니다. 그 결과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나 재밌으면서도 충격적인 신기한 영화가 탄생했죠. 이 작품에서 오카다 마사키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열혈교사 역할을 맡아 영화 전반에 엉뚱하고 밝은 기운을 불어넣습니다.
인기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악인> 역시, 우발적인 살인사건을 통해 선과 악의 본질을 묻는 어두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습니다. 츠마부키 사토시, 후카츠 에리라는 걸출한 두 배우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에서 오카다 마사키는 살인사건의 원인을 제공하는 대학생을 연기합니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고도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무감각하고 영악한 젊은이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많은 장면에 나오지는 않지만 등장하는 장면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아오이 유우와 출연한 시대극 <번개나무>에서는 비극적인 사랑에 빠진 무사 역할을 맡아 또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이상이 요즘 예의주시하고 있는 세 명의 남자 배우들입니다. 물론, ‘요즘 가장 핫한 배우’로 무카이 오사무를 빼놓을 수 없지만, 세 사람에 비해 뒤늦게 빛을 본(1982년생) 탓인지 이미 중견의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그 외에 드라마 <신참자> <버저비트 : 벼랑 끝의 히어로> 등에 출연했던 미조바타 준페이와, 영화 <벡> <오오쿠> 등에서 발견한 나카무라 아오이도 요즘 주목하고 있는 배우들입니다. 두 사람 다 ‘미소년 선발대회’로 알려진 ‘주논 슈퍼 보이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로 뽑혔죠. 외모는 검증됐으나 실력은 아직 검증이 안된 이 청년들, 이제부터 ‘엄마미소’로 지켜보며 응원할 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