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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大 인기 강의, 한국인이 왜 열광하나?

“좀 더 나쁜 시민이 되어야 한다” 2011년에도 멈추지 않는 정의 열풍 『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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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열차 운전사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데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 이대로 가면 앞쪽에서 공사중인 인부 다섯 명을 치여 죽일 수 밖에 없다. 한편 선로를 바꾼다면 다른 철로에서 혼자 일하는 인부가 죽게 된다. 이럴 때 당신은 핸들을 꺾어 한 사람을 향해 돌진하겠는가?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으니 그 한 사람을 희생하는 일은 옳은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가장 옳은가?

지난 해, ‘YES24’뿐 아니라 여러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히며, 출판계를 강타한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올해에도 부동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책은 정의에 대해 정의를 내려주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정의에 관한 이론들을 소개하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각 이론의 장단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는 일이 가장 정의로운가 질문한다.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끼어든다. 구제금융이나 상이군인훈장, 대리 출산이나 동성혼, 소수집단우대정책이나 군 복무, 최고경영자의 임금이나 골프 카트 이용권을 두고 어떤 논란을 벌이든, 정의는 영광과 미덕, 자부심과 인정에 관한 대립하는 여러 개념과 밀접히 연관된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p.362)

하버드 1학년들이 주로 듣는 이 수업에서 마이클 샌델은, 이쪽도 저쪽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딜레마적 상황을 제시해, 선택과 동시에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게끔 유도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당신은 열차 운전사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데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 이대로 가면 앞쪽에서 공사중인 인부 다섯 명을 치여 죽일 수 밖에 없다. 한편 선로를 바꾼다면 다른 철로에서 혼자 일하는 인부가 죽게 된다. 이럴 때 당신은 핸들을 꺾어 한 사람을 향해 돌진하겠는가?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으니 그 한 사람을 희생하는 일은 옳은가?

만약, 후자가 옳다면 이런 문제는 어떨까?

각기 다른 장기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 다섯이 있다. 지금 당장 이식 수술을 하지 않으면 환자들은 죽을 지도 모른다. 당신은 의사다. 방금 옆 진료실에 장기가 멀쩡한 환자가 주사를 맞고 잠들어 있다. 잠들어 있는 새에 이 사람의 장기를 꺼내어 이식하면 다섯 사람을 살릴 수 있다.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사람을 살리는 일은 정말 옳은가?


정의란 무엇인가? 답은 없다

장정일은 “2010년 한 해 동안, 한국인들이 ‘정의’라는 기표에 목매달고 또 목말랐다는 사실, 실은, 그게 2010년 최대의 국내뉴스”라고 말했다

이 책의 원제(what’s the right thing to do?)처럼,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인가’ 설명하기 위해 마이클 샌델은 정의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한다.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의 추구.

이는 각각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장한 벤담의 공리주의, 우리 모두는 자율적으로 결정한 각자의 도덕률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칸트의 자유주의, 가장 좋은 삶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그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주의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마이클 샌델은 특정한 상황을 설정해 각각의 정의론이 지니고 있는 오류를 증명해낸다. 그러한 것들을 주춧돌 삼아 결과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공동체주의’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것도 하나의 대안일 뿐이다. 샌델은 ‘공동체주의’가 앞선 이론들의 오류를 수렴하는, 결론적 대안처럼 제시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중립적인 정의로 규정할 수 없다.

마이클 샌델의 주장처럼, 정의의 문제는 ‘도덕적, 종교적 입장을 정리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것 분명하지만, 모든 논란에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직접적으로 개입시키는 일’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단적으로 최근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이 “모든 대법관을 기독교 신자로 채워야 한다”는 발언은 종교적으로 그 바람을 헤아릴 순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종교 편향 발언’ 이자 ‘파문’이 된다. 이런 논리라면, 종교전쟁은 정당성을 갖는다.

고로 정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마이클 샌델이 주장하는 ‘공동체 주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독자들은 다시금 맨 첫 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가장 옳은가? 결국 답이 없는 것이 아닌가?

답은 없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 문제의 종결자가 아니다. 벤담, 칸트가 골몰했던 문제를 이 시대의 담론으로 끌어와 함께 고민하는 또 한 명의 철학자일 뿐이다.

답 없는 ‘정의’담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신년기획으로 방송되고 있는 EBS 하버드 특강 <정의>,
책 못지 않게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답 없는 문제를 골몰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이 대답은, 이달 3일부터 방영되고 있는 EBS 하버드 특강 <정의>에서 찾아보는 게 좋겠다.

마이클 샌델의 수업을 그대로 방영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첫 회에서, 앞으로 강의해나갈 정의의 문제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실려있지 않지만 샌델은 이런 말을 덧붙인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고, 많은 철학자들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질문했지만 누구도 그 해답을 제시해주진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 역시 해결하지 못할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결되지 않은, 해결되지 않을 이 문제에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논의되어 왔다는 사실이, 거꾸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러한 도덕적 논의를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 공부가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까닭은 그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낯설게 만들고, 생각을 뒤흔듭니다. 때론 문제를 더 복잡하게 생각하게끔 만들 것입니다.”


샌델은 정의에 관한 공부가, 오히려 나쁜 시민이 되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정책이나 사회 문제를 그저 수용하기 보다는, 의문을 품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함께 읽어나갈 벤담, 칸트, 존 롤스의 책들이 각자의 삶을 뒤흔들지 모른다고 (매력적인) 경고를 한다.

마이클 샌델의 목소리를 쭉 읽어나가는 책과는 달리, TV로 보는 <정의>에서는 샌델의 질문에 대답하고 토론하는 하버드 대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시) 하버드 학생들은 샌델의 논의에서 다른 쪽으로 물꼬를 틀어 참신한 생각을 제시하기도 하고, (비록) 하버드 학생일지라도 엉뚱한 대답이나 질문에 적합하지 않은 대답을 내놓기도 한다.

샌델은 어떤 대답이든 단순히 넘기지 않고, 재차 심도 깊은 질문을 던져 학생들 스스로 문제의 길을 찾아가게끔 유도한다. 책에서 샌델이 수많은 사례를 제시하며. ‘정의’ 논의의 흐름을 꼼꼼하고 매끄럽게 짚어준다면, 강의 속에서 샌델은 하나의 사례마다 여러 질문을 통해 차근차근 접근해 나간다. 학생들의 토론을 이끌며 시청자 역시 능동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돕슴다. 학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고, 학생들이 논쟁을 하게끔 유도하는 샌델의 수업 스타일을 보는 재미도 더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비극이라고 해야지, 정의가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정의의 담론을 일상 속으로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정의란 무엇인가』가 제시하는 딜레마 게임을 즐기는 데에서 머문다면, 장정일의 말대로 ‘순진한 책 읽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정의 신드롬’에 답하기 위해 기획된 『무엇이 정의인가?』는 샌델의 텍스트를 좀더 비판적으로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 책은 정의 열풍에 묻힌 진짜 정의 담론을 캐내고자 한다.

장정일은 다양한 딜레마적 상황을 제시해, 질문을 통해 답을 유도하는 마이클 샌델의 신파술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처음에 이런 사례들을 놓고 어느 쪽이 정의냐?고 묻는 사람의 정신상태와 지적 취약을 의심했다.” 이러한 사례 제시는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건 비극이라고 해야지 정의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철학을 공부하는 노정태 역시 그가 제시하는 딜레마적 사례에 문제를 제기한다. 위에도 언급한 철도 기관사 딜레마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을 쏴야 할지 말아야 할 지의 문제, 폭탄테러범을 어떻게 다룰지에 관한 문제를 제시할 때 “샌델의 눈높이는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지 않다.”

노정태는 샌델이 언제나 강자(철도 기관사, 미군)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선택하게끔 만든다는 점에 주목한다. “샌델이 제시한 딜레마에서 행위의 주체는 곧 ‘초법적 주권자’다.” 때문에 우리는 옳은 것을 선택할 때 올바른 윤리와 가치의 문제 이전에 어떤 선택이 ‘전략적’으로 타당한지 고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무엇이 정의인가?』는 현재 『정의란 무엇인가』가 소비되고 있는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조명한다. 문화평론가 이택광은 이 열풍이 ‘한국사회에 정의는 없다는 믿음’에 대한 문제의식을 건드리고자 하는 의도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샌델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이 책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비정치적으로 소비되고, 오히려 진보/보수를 막론한 정치인들에게 ‘공정’이나 ‘정의’ 같은 말들을 자기의 이해관계에 유리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는다.

좀 더 나쁜 시민이 되어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면 이 책에서 거론하는 철학의 원전들을
읽어보는 편을 권할만 하다.(…) 그 어떤 해설서를 읽는 것보다 좋다,
(노정태, 『무엇이 정의인가?』, p.286)


그럼에도, 한동안 자기계발서가 채우던 베스트셀러 목록에 인문서적이 장기간 주목 받고 있는 현상만큼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철학자 이양수는 “만연된 부조리, 부정의, 부당함을 외치기 싶고 때문”이라며, 비록 아직은 제도적 개혁이 요원해 보이나 이러한 외침이 어둠 속의 침묵을 깨뜨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 서평꾼 이현우 역시 이러한 현상이 “시민들의 의식을 깨우는 일의 시작”이고, “우리에겐 더 많은 도덕적 사고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70만 독자로도 ‘깨어있는 시민의 출현’이 미흡하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700만 독자고 시민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무엇이 옳은가? 우리는 더 많이 읽고 생각 할 필요가 있다. 마이클 샌델이 강의 첫 시간에 언급했듯, 우리는 당연한 것들을 좀더 의심하고, 좀더 나쁜 시민이 되어야 한다.

결국 옳은 일, 좋은 삶에 대한 판단은 하버드 대학교수나 철학자, 언론 그 어떤 권위가 제시하는 정답도 쉽게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걸, 샌델도, 『무엇이 정의인가?』도 말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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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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