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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에서 수천 명이 갑자기 푹푹 쓰러져… -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1995년 3월 20일, 도쿄의 지하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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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곳에선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일본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 뒷이야기 - 난 잘 쓰여진 논픽션을 상당히 좋아한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한 지인(知人)은 “‘선데이서울류’를 좋아하시는군요”라고 말한다. 이런!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억관 역 | 문학동네
1990년대 일본에 큰 충격을 던져준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사건을 다룬 무라카미 하루키의 르포르타주. 당시 사린사건의 피해자를 하루키가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이 작품은 하루키가 스스로 자기 문학의 터닝 포인트라고 부를 만큼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아무 예고 없이 닥친 재앙에 갑자기 노출되어버린 보통사람들의 담담하고도 충격적인 회상과 고백이, 압도적인 분량만큼이나 거대한 울림을 전한다.

난 잘 쓰여진 논픽션을 상당히 좋아한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한 지인(知人)은 “‘선데이서울류’를 좋아하시는군요”라고 말한다. 이런! 우리나라에선 논픽션/르포문학이 ‘비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대충 뭉뚱그려지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데, 잘 쓰여진 논픽션은 소설보다 더욱 드라마틱하고 영화보다 더 박진감 넘친다. 진실이 가져다 주는 무게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언더그라운드』는 하루키가 95년 일본에서 일어났던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하여 발표한 논픽션으로, 98년 국내 출간되었으나 이번에 재출간되기까지 한동안 절판 상태였다.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살포는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당시 일본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주범 아사하라 쇼코의 망령은 아직까지도 일본 열도에 드리워져 있다.

출판계를 강타했던 화제작 『1Q84』가 옴진리교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렇다면 『언더그라운드』를 발표했던 것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한 초석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인기 덕분에 책이 다시 출간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가졌는데, 역시나 『1Q84』의 인기 덕에 『언더그라운드』는 물론 이전에 출?되지 않았던 『약속된 장소에서 : 언더그라운드 2』까지 함께 출간되었다. (『약속된 장소에서 : 언더그라운드 2』는 ‘가해자’라는 단어 뒤에 가려져 있던 옴진리교 신자와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700페이지가 넘어가는 두꺼운 책에는 사고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일반 시민 60여명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경상인 사람들부터 목숨을 잃은 이들의 가족,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의 가감없는 인터뷰가 그대로 실려있다. 하루키는 1년 여에 걸쳐 이 인터뷰를 진행하였다고 하는데, 이들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하루키가 왜 이러한 형태로 책을 썼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하루키는 뉴스에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명사화되었던 이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고, 각자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60여명이 겪은 3월 20일은 모두들 비슷비슷하다. 대개 샐러리맨인 이들은 도쿄 외곽의 집에서 아침 일찍 나서서 지옥과도 같은 도쿄 지하철에 올라탔다. 평소와 다를 바 없지만, 지하철에선 달짝지근하면서도 이상한 냄새가 났다. 다들 조금씩 신경이 쓰였지만 크게 문제삼진 않았다.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하고,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지만 독가스에 중독된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며칠씩 입원해야 했고, 경우에 따라선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후유증으로 인해 사회에서 냉대를 받는다던지 하는 2차 피해까지 받고 있기도 하다.

아사하라 쇼코를 증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시스템과 사고방식을 지적한다.하루키는 당초 ‘지하철’ ‘어둠’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인터뷰집을 집필했다고 하는데, 예고없이 닥친 재앙에 갑자기 노출되어버린 이들의 담담한 이야기들은 절규나 분노보다 더욱 가슴 묵직하게 다가온다.

사실 우리나라도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참사,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등의 사건 사고가 많았으며, 그때마다 매스미디어에선 엄청난 양의 보도를 쏟아낸다. 그러나 각 사건에 대한 심층적이고도 분석적인 기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계획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러한 일들을 기록하고 복기하여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의 상처와 문제를 드러내는 괴로운 작업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작가들도 이처럼 사회적 이슈에 눈을 돌리고 이를 기록하는 일에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무라카미 하루키

1949년 일본 교토부 교토시에서 태어나 효고현 아시야시에서 자랐다. 국어교사이자 다독가였던 양친의 영향으로 많은 책을 읽고 일본 고전문학에 대해 들으며 자랐으나, 일본적인 것보다는 서구문학과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중학교 시절에 러시아문학과 재즈에 탐닉하였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 손에 사전을 들고 커트 보너거트나 리차드 브라우티건과 같은 미국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하게 되었다. 1968년 와세다대 문학부 연극과에 입학해 격렬한 60년대 전공투 세대로서 학원분쟁을 체험한다. 1971년 학생 신분으로 같은 학부의 요코(陽子)와 결혼,1974년 째즈 다방 '피터 캣'을 고쿠분지에 연다.「미국영화에 있어서의 여행의 사상」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7년간 다녔던 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했으며 이 작품으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수상했다.
조선영 (인문, 사회 담당)

12월생. 취미는 웹서핑과 지르기, 특기는 정리정돈. 책에 파묻혀 지내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고 싶어 2001년부터 인터넷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초 바람과는 달리 책에 깔려 지낸다고 하소연하곤 한다. 추리소설과 만화를 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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