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은희경이 5년 만에 신작 장편 『소년을 위로해줘』를 펴냈다. 은희경은 “『새의 선물』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독을 넣은 예방주사같은 소설이었다면, 『소년을 위로해줘』는 근육이완제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년을 위로해줘』는 열일곱 평범한 소년 연우가, 힙합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어 나가는 성장소설이다. 경직된 가치관, 상투성에서 벗어난 유연한 삶의 모습을 다루고자 했다. 이에 맞추어 작가 본인이 먼저 유연해지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작품이다.
“이전까지는 치밀한 구성, 완벽한 문장 등 전격 소설에 대한 강박이 많았어요. 이 소설에서는 구성이나 문장이 나를 제약하지 않도록, 자유롭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내가 얼마만큼 유연해질 수 있을까 싶어 많은 부분을 이야기 흐름에 맡겼어요.”한국에서 작가라는 기득권층으로 지내면서, 스스로 경직되는 것이 두려워 미국으로 갔다는 은희경 작가는,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래도록 눈물을 쏟았다.
“지금까지 의무적으로, 나를 존재증명하기 위해 겪어낸 시간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은 작가로서의 나를 포함해 나의 많은 것들과 결별이었어요.”“결국 나도 보수적이고 기성화 된 기득권을 휘둘렀던 어른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에 그녀는 이렇게 느낀 것을 소설로 쓰기로 결심, 이 작품 집필에 착수했다. 문제의식만 가지고 어떻게 풀어낼지 막막한 순간에 실마리를 제시해 준 것이 힙합 가수 키비의 노래 「소년을 위로해줘」였다.
“무엇다워야 한다는 가르침에 난 또 놀라. 습관적으로 모든 일들에 익숙한 척 가슴을 펴지만 그 속에서 곪은 상처는 아주 천천히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어. 우리는 진짜보다 더 강한 척해야 하므로” - 「소년을 위로해줘」 가사“노래를 듣자, 이 세계를 생각하며 쓰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이 음악은 헤드폰으로 들어야 해요. 제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음악은 실내에서 편안하게 듣는 음악이었는데, 헤드폰으로 힙합을 듣자 1대 1로 나에게 말을 걸더라고요.” 이 노래에서 이야기하는 소년의 불안, 힙합이 가지고 있는 마이너 정서가 소설의 길을 열어주었다.
“힙합이 대중음악 속에서도 마이너의 세계이고, 일종의 혁명성을 갖고 있잖아요. 사회 속에서의 혁명이 아니라, 못나고 평범한 자기 세계 속에서 혁명을 발견하는 소년의 이야기에요. 기존 성장 소설에서처럼, 노력해서 자기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소년이 ‘나는 나다’ ‘나인 채로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었어요.”소년이 가진 서툴고 불안한 정서, 경직된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힙합이 갖고 있는 정서와 잘 맞아떨어졌다.
“경직된 17살을 보낸 제 어린 시절과는 전혀 닮지 않은 이야기에요. 하지만 정서는 지금의 저와 같다고 생각해요. 이 소년이 아이, 고등학생이라는 사회적인 신분을 떠나 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은희경은
“우리 모두가 낯선 우주를 떠도는 고독한 소년”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현실과 1대 1로 대응하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위로받아야 할 소년이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세상에 숨어 있고 싶고, 튀지 않는 중간에 머물고 싶어 하는 소년 연우가 내면의 혁명을 이루고 세상으로 나갈 때 지닌 무기는 두 가지다. 힙합과 달리기.
“저도 이 소설을 쓰면서 많이 달렸어요. 본질적인 나 자신과의 싸움을 상투적이지 않게 실감하고 싶어서요. 저도 힘이 필요할 때마다 힙합을 듣고, 달렸어요. 하프 마라톤에 나가서 3등을 한 적도 있어요.(웃음) 저는 이제 시속 10킬로입니다. 달리고 나면, 이 거리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게 됐어요.” 자신의 좌표로 세상을 살아가는 소년과 정서적으로 동화되기 위한 시간이었다.
은희경은 작가의 말에, ‘사랑이 식는 힘’으로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책이 출간되는 순간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작가의 말’을 쓰는 마지막 순간이 되자 마음이 싸늘히 식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때야 할 말이 떠올랐어요.” 거기서 한 수 배웠다고 은희경은 덧붙였다.
“세상은 이렇게 식는 힘으로 사는구나. 후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냉정한 마음이 든 것 같아요.” 소설을 집필한 5년 동안
“단 한번도 퇴근한 적이 없었다”고 심정을 밝힐 만큼, 공을 들여 쓴 작품이다.
“이제 (소년을) 키워놨으니까, 어떻게든 살아내겠지 싶다”고 출간 소감을 밝힌 작가는 다음번에 지독한 연애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 소설 속에서 다 풀어내지 못한 정서를 성인버전으로 써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