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그 남자의 이야기. 말하자면, 그 남자가 커피에 빠진 이유.
그 남자, 타향살이 중이었다. 그러니까, 이맘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렷다. 햇살 좋은 가을날의 주말이었다. 어느날, 카메라를 사고 싶다며 동행해 달라는 그녀의 부탁. 아니, 어느 안전이라고 거부했겠나. 미인 앞에선 한 없이 수줍던 그 남자. ‘예, 예’ 넙죽 받아든, 그 남자.
접촉장소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누군가 사뿐사뿐 걸어온다. 어라? 그런데, 저게 뭐야. 햇살을 등에 받으며 걸어오는 그녀에게 후광이 번쩍번쩍.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파란색 자켓, 얼굴을 감싸는 챙 넓은 모자와 푸른 선글라스. 아, 그 남자의 심장이 박동소리를 높인다. 두근두근 쿵쿵. 바다 건너까지 들리는 그 박동의 우렁참. (사랑)접촉사고 징조가 농후하다. 가을햇살, 참 좋다. 뉴타운 말고, 다운타운, 평소 때와 다르다. 아, 저기,
커피 한 잔 하러갈까?
그녀의 제안이었다. 백화점 옥상 테라스에 위치한 커피하우스. 못 가본 곳도 아니다. 풍경이 참 좋았고 커피 가격도 저렴한 그곳. 커피 한 잔 25센트. 응, 가자. 그녀와 그 남자, 가을햇살이 부추겨서 였을까, 커피 맛이 좋아서였을까, 수다를 따따부따. 그런데, 그 남자, 놀랐다. 커피, 맛있다. 쓰기만 한 것이 커피인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아, 이 노래,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사고다. 사랑사고. 삐뽀삐뽀~ 25센트짜리 커피 한 잔 마시며 새긴 25만 달러짜리 그 남자의 가을의 추억. 그 남자, 아마 이렇게 씨불댔지! “조잘대던 그녀의 입술, 가을햇살 담은 그녀의 맑은 눈, 빙긋 미소 지을 때 들어가는 그녀의 보조개, 내 말에 자지러지던 그녀의 함박웃음, 그리고 내 심장박동을 뛰게 하던 당신. 나는 그날, 그 순간을 그렇게 기억한다.” 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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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토 나올 뻔했다. 내가 아는 그 남자, 이후 인스턴트커피가 아닌 원두커피에 맛을 들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커피는 원두커피여야 했다. 커피메이커로 시작된 그 남자의 본격적인 커피라이프. 왜 그때, 그 커피가 그렇게 맛있었을까. 나중에야 알았다. 어디선가 봤던, 무릎을 탁, 쳤던 이 말. “커피가 맛있는 것은, 단순히 맛뿐만 아니라 추억과 사람과 온기와 그리움이 커피에서 환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아직은 가을. 어떤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훌쩍 떠난 연인 같은 가을. 커피가 일상이 된 그 남자의 가을은 추억이라는 결정적 부재료가 섞인 커피가 달래준다. 특히나 비 내리는 가을날의 아침, 커피 맛은 죽인다. 아침에 일어나 체온이 낮고 몸이 나른할 즈음, 커피 카페인은 몸의 신진대사를 끌어올리고, 그런 날은 커피 향이 잘 흩어지지 않아서이다.
11월1일. 전날인 시월의 마지막 날, 17주기였던 리버 피닉스를 꼴깍 마시곤 뭔가 찌뿌듯했던 가을날의 오전.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커피가 절실했다. 그것도 맛있는 어떤 커피가. 그러니까, 이런 맛있는 커피.
“커피를 맛있게 만들려면, 좋은 커피 생두를 잘 볶아서 추출하기 바로 직전에 분쇄하여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게 적절히 향미 성분을 추출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결코 맛있는 커피가 되지 않습니다.”(p.4)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서울 압구정동으로 향했다. ‘허형만의 압구정커피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맛있는 커피와 함께,
『허형만의 커피스쿨』을 잉태한 곳. 커피가 절실히 필요했던 나는, 그 알싸하고 야릇한 커피 향에 온몸을 맡겼다. 허형만 선생님의 커피 이야기에 온 신경을 몰입했다.
‘엘 시스테마’의 음악이 그러하듯, 커피도, 소통의 다른 수단이자, 세계라는 창을 이해하는 다른 방법이며, 행복의 다른 형태다. 커피를 알면? 즐기는 것이 하나 더 생기고, 생의 결은 좀 더 풍부해진다. 약간 과장하자면, 당신도 ‘그냥’ 커피가 아닌 TOP가 될 수 있다. 물론, 원빈이 되고, 신민아가 된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커피를 즐기는 것이 좋다면, 커피를 즐기고 싶다면, 여기 ‘28년 달인’, 허형만 선생님의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도 커피 없인 못 살아!
를 외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커피는 일상에서 물 다음으로 음용이 많이 된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사람의 증가는, 곧 향기와 맛을 즐긴다는 것은,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고 말씀하신다. 경제적인 여유는, 즐김을 유도한다. 커피믹스의 편의성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향기와 맛이 제대로 된 것을 찾는 단계로 진입한다는 거다. 그것은 한편으로
“문화선진국으로 가고 있”는 신호라고 허 선생님은 해석한다.
커피는 어떤 음료보다 향기와 맛이 특이하고 특출하며 풍부하다. 그것이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 중의 하나다. 커피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생산량도 많아지고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기호식품이 됐고, 알맞게 마시면 약리효과도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긴다고? 포화상태 아니냐고? 아니다. 아직은 한국에서 인스턴트커피가 대세다. 편리성 때문에, 그리고 관성 때문에라도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아직은 절대 다수다. 원두커피는 조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지만, 진짜 커피의 향과 맛, 맛있는 것을 즐기려면,
“귀차니즘을 극복해야 한다. 인스턴트에 비해 원두커피는 향기가 좋고 마시고 나서도 맑고 개운하다. 인스턴트는 목구멍이 칼칼하고 떫고 뒤가 좋지 않아 물로 헹궈야 한다. 신선하고 맛있는 커피는 바로 조리해서 마시면 입도 맑고 개운하다.”
원두커피를 권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인스턴트는 일률적인 맛으로 개성을 무화한다. ‘삶의 미세한 결들 속에 숨은 매력적이고 거추장스러운 문제’인 취향을 따질 수 없다. 취향이 없다는 건, 존재감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원두커피는 다양하다. 코스타리카, 에티오피아, 파푸아뉴기니, 콜롬비아, 탄자니아, 동티모르…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위 25도에 걸친 커피벨트(커피존)에 위치한 커피산지마다 맛이 다르다. 산지마다 특색을 갖고 있으므로,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내 미각이 어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지, 안다는 것. 그것은 나 자신을 아는 일과도 관련이 있다.
여기에 블렌드(Blend)라는 마술(?)도 있다. 각기 맛과 향이 다른 산지의 커피를 섞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
“튀는 맛은 줄이고 어울려서 새로운 맛과 향을 창조한 것이 블렌딩이다. 물론 그냥 막 섞는 게 아니다. 커피에서 최고의 경지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블렌딩이기도 하다.” 오케스트라를 생각하면 되겠다. 서로 다른 화음이 섞여 하나의 새로운 음을 창조하는 일. 단종 커피를 마시거나, 블렌드 커피를 마시거나, 물론 선택은 당신의 취향에 따르라.
“원두커피는 크게 블렌드 커피와 단종 커피로 나눌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부드럽고 평온한 느낌의 블렌드 커피를 즐기는 반면, 개성이 강한 예술가들은 뚜렷한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단종 커피를 즐기는 편이다.”
그렇다면, ‘맛있는’ 커피는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따른다. 다양한 맛이 존재하는 커피고, 사람마다 맛있는 커피를 정의하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기호식품이니까 사람마다 맛있는 커피가 다를 수 있다. 취미로 커피를 즐기는 사람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 다만, 직업적으론 맛있는 커피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게 있어야 한단다.
“식었을 때도 맛있는, 입안이 개운하고 목 넘김도 좋은, 마신 뒤 한 잔 더 마시고 싶은 커피가, 맛있는 커피다.” 그것은, 이런 조건이 뒤따른다. 좋은 쓴맛이 있다. 마시고 난 뒤 신맛의 여운이 따른다. 신맛 뒤에 단맛이 받쳐준다. 마신 뒤 개운하고 향기가 감돈다.
반대는 말하자면, 이렇다. 마시고 난 뒤에도 계속 쓰다. 혓바닥이 떫다. 목구멍이 칼칼하다. 즉, 나쁜 쓴맛이다. 쓴맛의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방법. 한 두 모금 마셨을 때 쓴맛이 줄어드는가. 식었을 때 쓴맛이 줄어드는가. 설탕을 넣었을 때 쓴맛이 줄어드는가.
커피에 ‘쓴맛’만 있다는 건 편견이다. 커피를 마시다 보면, 내 미각에 초점을 맞추면, 좋은 신맛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정말이다. 위가 좋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면, 커피의 좋은 신맛을 느끼면 커피가 새롭게 다가온다. 허 선생님 왈.
“보는 것만큼 알게 된다.”
마시고 난 뒤 더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드는 커피, 마실 때 목 넘김이 편하고 차갑게 식어도 맛이 좋은 커피, 그것이 바로 맛있는 커피다. 맛있는 커피는 좋은 쓴맛과 상큼한 신맛, 단맛의 여운이 감돌며, 뒷맛이 개운하고 입 안에 향기가 가득하다.(p.17)
“커피, 이왕이면 제대로 즐겨라”
커피는 먹을거리 이상의 것이 되고 있다. 취미생활로 커피를 즐기기 위해서, 좀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도, 공부가 필요하다. 그것은 세계를 넓힐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지식과 상식을 알면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식(食)을 알게 되면, 약(藥)을 알게 되고, 음식을 섭취하고 즐기면 삶이 즐거워진다. 과거 어느 광고멘트 중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했는데, ‘열심히 일한 당신, 맛있는 것을 찾아 떠나라’가 돼야 한다. (웃음)”
허 선생님의 철학은 이렇다. 이론과 실기가 겸해졌을 때 제대로 된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취미로 하는 사람이라도, 배움을 위해 마음의 문을 열고, 고정관념이 아닌 폭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것.
“혼자 즐기는 것도 좋은데, 그건 한계가 있다. 제대로 된 스승에게 배우고 홀로서기가 될 때까지, 부족한 것을 메우면 하산해도 된다.”
그러니까, 커피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세상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겠으나, 이왕 마시는 커피, 향 좋고 맛 좋다면, 금상첨화다. 집에서 마실 때도, 그래야 한다. 무엇이 필요할까. 허 선생님은, 일단 커피를 조리할 수 있는 실력, 추출실력이 있어야 한단다. 커피를 내릴 때마다 맛과 향이 다르면 좋지 않으니까. 아울러 향과 맛에 대한 분별력.
“개론을 마스터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직접 커피를 볶지 않는다면, 어느 커피하우스가 커피를 맛있게 볶는지 알아보면 좋겠다. 맛있게 볶았는지 아닌지 구분을 해야 집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책을 통해서도 추출기술 등은 어느 정도 섭렵은 가능하나, 맛과 향의 분별력은 배워야 한다.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맛을 보고 구별하지 못한 채, 혼자 즐기는 건 자가당착, 주화입마의 단계가 될 수도 있다. (웃음)”
커피하우스 아닌 마트 등에서 커피 구입할 때, 주의점도 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라고 봉지에 적혀 있다. 그러려니, 하고 산다. 그러나 봉지를 잘 살펴야 한다. 블루마운틴 옆에 조그맣게 타입(Type), 스타일(Style), 블렌드(Blend) 등이 적혀 있을 것이다. 짜가요, 짝퉁에 가깝다. 100% 오리지널이 아니다. 좋은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샀는데, 그게 아니라면, 도로아미타불.
“공부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옳고 그른 것을 알기 위해, 분별하기 위해서다.”
“커피의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대부분 ‘블루마운틴 블렌드’, ‘블루마운틴 스타일’, ‘블루마운틴 타입’ 등으로 제품명 뒤에 작게 표시한다. 그래서 일부 소비자들은 100% 진품 블루마운틴 커피인 줄 알고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커피 구매 시 커피 포장을 잘 살펴야 원하는 맛과 향을 가진 커피를 구매할 수 있다.”(p.128)
?시 커피를 구입할 때, 주의할 점은 제조일자를 확인하는 것. 물론 제조일자와 볶은 날짜가 일치하느냐는, 신뢰의 문제다. 커피콩을 자주 볶는 곳에서 사는 것이 좋다. 길어야 보름치. 이 때, 취미생활로 즐기고자 할 때도 꼭 필요한 것이 분쇄기다. 미리 갈아진 커피는 죽은 커피에 가깝다. 갈리는 순간, 커피향미가 훅~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커피를 마시기 직전에 분쇄기를 통해 커피를 갈아주는 센스!
“가능하면 전동분쇄기를 사고 제대로 된 것을 사야 한다. 기계나 기구 살 때도 고수에게 추천을 받으면 나중에 이중 수고를 안 겪을 수 있다.”
보관의 문제도 한 번 따져보자.
커피를 제대로 보관하지 못해서 커피의 향과 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는 큰 목적 중의 하나가 향과 맛을 즐기는 것인데, 보관을 잘 못하면 그야말로, 꽝. 갓 볶은 커피가 좋은 것이야 두말해 잔소리고.
“커피를 갈지 않고 사서, 냉장 보관하면 한 달, 실온이면 일주일 정도로 보는데, 밀폐용기에 반드시 넣어야 한다. 냉동보관하면 오래가는 대신, 끄집어냈을 때, 이슬점(결로)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커피를 꺼내 표면의 물기가 없어진 뒤 마시는 것이 좋다.”
“볶은 커피는 커피 생두의 조직이 열에 의해 파괴된 상태이다. 벌집처럼 다공질로 이뤄진 볶은 커피는 공기 중의 산소나 습기, 보관온도에 민감하고 햇빛에 노출되면 변화가 심하다. 건냉암소(건조하고 차가우며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 맛있는 커피의 맛과 향을 오래 즐길 수 있다.”(p.140)
커피 추출, 취미로 즐길 때 자신의 손이 닿는 부분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핸드드립의 경우를 보자. 허 선생님 왈. 커피 추출은 볶은 커피 속에 있는 향미 성분 중에 사람이 좋아하는 성분을 뽑아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억지로 이를 다 녹여 내면 떫고 칼칼한 커피가 추출된다.
“사람이 좋아하는 성분이 앞에 잘 나온다. 뒤에 나오는 성분은 커피를 칼칼하게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원하지 않는 성분까지 뽑아내선 안 된다. 커피 추출의 핵심은 알맞게 향미 성분을 뽑아내는 기술이다. 드립포트로 물을 부을 때, 가늘고 천천히, 중간 중간 쉬어가면서 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말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냥 물을 벌컥벌컥 끼얹을 것이 아니란 말씀. 물을 부으면서 짧게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불완전 추출을 방지하기 위함이란다. 물줄기는 가능한 가늘고 물 붓는 속도는 세 번째, 네 번째 물붓기를 하면서 조금씩 빨라져야 하고.
“과다추출이나 떫고 칼칼한 성분이 안 나오도록 하는 것이 속도다. 그러니 속도를 빨리하는 것은 좋지 않다. 천천히.”
“원두커피 속의 향미성분 중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분만을 뽑아내는 기술이다. 덜 추출하면 향미성분이 부족하여 뭔가 허전한 느낌의 커피가 되고, 너무 많이 추출하면 쓰고 떫으며 목구멍이 칼칼하고 거친 느낌이 난다. 커피는 알맞게 추출하면 벨벳처럼 입안과 목구멍이 부드럽고 깨끗하며, 지나치게 많이 추출한 것보다 덜 추출한 것이 마시기 편하다.”(p.156)
이만하면, 물론 충분하진 않다.
좀 더 풍요로운 취미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공부다. 허형만 선생님은 그것을 위해 커피스쿨을 운영한다. 허 선생님은 그러니까, 교장선생님이다. 꽤 많은 사람이 몰린다.
“2001년 8월14일이 시작이었다. 딱 한 분과 커피스쿨을 시작했다. 한 분씩 번호를 매기는데, 지난주 수요일까지 4540번 정도가 됐다. 여기에 오시는 분들은 보다 원리적으로 제대로 즐기고자 하는 분들이다. 성향을 보면 제대로 된 커피를 맛있게 즐기고자 하는 분들이 절반 정도고, 나머지 절반은 창업이나 커피하우스를 운영하거나 일하는 분들이다. 매주 한 번씩 7주 과정이 기초반이고, 중급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익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커피강의를 듣고 배웠으면 익혀서 내 것을 만들어야 한다. 대개 배우는 건 잘 하는데, 그걸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서 좀 안타까운 측면도 있다.”
허 선생님도 이 커피스쿨이 즐겁다. 대개 자발적으로 와서 집중도가 좋다. 스펀지가 물 빨아들이듯 몰입하는 것을 느낀단다. 가르치면서 스스로 배우고 발전하는 계기도 되기 때문에 그는 이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커피에 대한 지식을 잊지 않게 된다. 늘 살아 있는 상태다. 새로운 것을 가르치게 되고, 늘 공부가 된다.”
무엇보다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커피를 통해 궺계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재미다.
“가르치다보니, 예를 들어 음악 공부도 하게 되고, 사진 공부도 겸하게 된다. 인격을 형성하는데도 보탬이 된다. 맛없는 커피를 안 만들려고 정갈함에도 신경을 쓰고, 뭣보다 몸이 건강해야 함을 느낀다. 정적이고 동적인 다른 활동을 하게 되고, 여유로움에서 제대로 된 커피가 나온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 내 커피의 결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원인을 제거하는 것.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최고의 커피로 우뚝 올라서지 않을까 하는 기대. 커피를 만드는 그가 스스로 만든 생활신조는 이것이다.
1. 건강을 지키자.
2. 기본에 충실하면서 공부를 꾸준히 하자. 나와의 싸움이다.
3. 게으름과 나태함과의 싸움이다. 미루지 말자.
4. 공부하고 알게 됐다고 교만하고 자만하고 오만해지지 말자.
창업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씀도 있다.
요즘 직장의 구조조정이나 인생 이모작 등으로 커피하우스를 창업하고 싶은 분들도 꽤 많다. 스스로도 ‘사오정’ 출신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도 45세에 자의반타의반 창업을 했는데, 염려와 걱정이 많았다. (웃음) 커피하우스를 하고자 하는 분들은 먼저 직장생활을 하면서 커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맛과 향을 익혀야 한다. 이론과 실기까지 곁들이면 창업이 보다 쉬워진다.”
아울러, 커피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남과 똑같은 커피하우스는 곧, 레드오션.
“나만의 특징을 갖춘 커피하우스 콘셉트를 정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를 한 사람과 아닌 사람은 분명 차이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커피하우스‘나’ 해볼까‘하며 ’나‘자를 붙이는 사람은 좋지 않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일터가 놀이터가 돼야 한다. 일이 놀이가 되는. 커피하우스는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구도장이 될 수 있다. 커피하우스는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철저한 준비가 중요하다. 또 스승과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제대로 되는지 점검도 받고. 홀로서기도 좋은데, 망하면 골치가 아프거든.”
물었다, 허형만의 커피 인생 28년.
고수가 됐겠지, 하고 생각하지만, 허형만 선생님은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진짜 고수는 에스프레소만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고수다. 나도 상황에 따라 우유나 설탕 등을 넣어서 마신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 의하면, 고수는 만 시간(10년)을 투자해야 한다지 않나. ‘아웃라이어’가 되려면 때도 맞아야 한다. 세상이치를 터득할 수 있는 것도 커피의 장점이다. 커피가 어렵다는데, 설익게 아는 것보다 확실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알면 실천해야 하고. 습관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게 운명을 바꾸고 팔자를 고친다.”
28년 고수, 허 선생님은 커피업계 고참으로서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돼야 할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커피를 하면 저렇게 잘 살고 재밌을 수 있구나. 사법고시 안 보고 커피를 해도 괜찮구나.
“나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커피스쿨을 통해 향과 맛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도 양성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커피도 하나의 문화로서 분명하게 자리매김하고, 질적인 향상도 되겠지.”
그가 좋아하는 글귀가 임제선사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다. 항상 지금 내가 처해 있는 곳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라. 그는
『허형만의 커피스쿨』을 계기로, 4년 후 개정판을 생각하고, 커피와 생활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나 그 과정에서 깨친 삶의 이야기 등을 엮은 책도 생각한다.
커피가 곧 ‘인생’이며 혹은 ‘결혼’이라고 말하는 허 선생님. 그의 삶이 녹아든 것이 커피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각기 다른 환경에 살았던 사람이 조화와 균형을 이뤄 가정을 이루듯, 커피 역시 조화와 균형 속에서 맛을 찾는다는 점에서 결혼이다. 부부유별, 즉 이심이체 같은 것쳀 또한 커피다. 혹은 커피는 마시는 보석이란다. 커피 하는 후배가 말해준 그 말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이 커피를 즐기고 싶고,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이 말도 새겨들어보는 건 어떤가.
“즐기기 위해 공부하는 커피 하나를 봐도 그 사람의 삶의 자세를 읽을 수 있다.” 요즘 커피 배울 곳도 많다. 다양한 강좌에 참여해 경험을 쌓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기중심을 갖고 판단하는 자세. 그것은 커피 뿐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자세와도 일맥상통한다. 취미는 때론 그렇게 하나의 세계를, 우주를 바꿀 수도 있다. 당신의 취미생활을 응원하는 이유다. 시작해 보자. 새로운 계절이 당신에게 올 테다.
마침, 허형만 선생님을 만났던,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11월)’의 첫 날은 28년 전, 허 선생님이 커피에 입문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어쩌면 모든 것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내가 아는 그 남자도 그랬다. 그 남자는, 지금 허술하고 어설프지만 ‘커피 만드는 사람’이 됐다. 무엇이 그렇게 이끌었는지는 모르겠다. “커피는 단순히 하나의 음료로만 간주하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수많은 사건들의 일부로서 존재했다.”(『커피 러버스 소울』, p.74)
그 남자는, 커피와 함께 한, 커피향 같은 그녀와 마주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 남자는 여전히 아직도, 당신을 감탄한다, 는 말을 남겼다. 강릉의 커피축제는 끝났지만, 11월 하순의 카페쇼가 남아 있다. 우리의 커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남자는 지금, 2046잔의 커피를 건네고 싶은 누군가를 위해 커피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 누군가를 위해 그의 커피는 전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로‘에스프레소’에는 ‘something prepared especially for you’라는 뜻도 있다.
한편으로 그 남자, 커피를 만들고 마시다가, 아주 어쩌다가 울컥하는 순간이 있다. 그 남자를 행복하게 만든 이 커피가 누군가의 고된 노동을 토대로 축적된 것임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 남자는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동료들의 노동을 보면서, 커피는 감성적이라지만, 어쩌면 지극히 이성적인 것도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허형만 선생님의 커피스쿨에서 공부를 했던 그 남자, 지금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다.
“‘영원’이란 아침에 커피 한 주전자를 우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작자 미상)
아니면,
“커피만 충분하다면 나는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작자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