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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에 저자 본인도 당황

정의없는 사회는 왜 정의를 필요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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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톡 까놓고 말해서 독자들이 지금 마이클 샌델이라는 개인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샌델이 유명한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논의를 반박하는 철학자라든가, 미국 정치철학의 흐름에서 그가 어떤 위치를 점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관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정의에 대한 열망?


미국 하버드대학 철학과 교수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가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하버드대학에서 이루어진 대형 강의 내용을 정리한 이 책은 ‘정의론’이라는 다분히 전문적인 정치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강의라는 특성에 맞게 정치철학에서 일반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정의의 문제에 대한 개론적인 접근을 제공한다는 미덕을 갖고 있다.

물론 이런 개론적 성격이나 알기 쉽게 기술되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 책이 한국 독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 같지는 않다. 정치철학에 대한 알기 쉬운 개론서는 서점에 가면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이 정의론 일반에 대해 쉽게 풀어쓴 입문서라는 ‘성격’은 이 책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

어떤 이들은 ‘하버드대학 교수’라는 샌델의 직위 때문에, 그리고 이를 적절하게 이용한 마케팅전략 때문에 이 책이 호평받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아예 근거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하버드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교수의 책이 처음 한국에 번역된 것도 아니고, 이런 마케팅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샌델의 책에 대한 폭발적 반응은 더욱 흥미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톡 까놓고 말해서 독자들이 지금 마이클 샌델이라는 개인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샌델이 유명한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논의를 반박하는 철학자라든가, 미국 정치철학의 흐름에서 그가 어떤 위치를 점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관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 책에 대한 한국사회의 호응은, 미국이라면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었을 법한 이런 요소들을 제거한 상태에서 발생했기에 상당히 징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징후적인 것이라는 말은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회해서 간접적으로 드러낸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둘러싼 현상은 한국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나타난 문화적 징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을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징후는 욕망의 지시대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시대상은 항상 ‘거짓’이지만, 그 거짓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진리의 논리를 읽어낼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나는 나를 사랑해”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해”는 거짓말이지만, 이 말을 내뱉는 그 상황의 논리는 ‘진리’인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은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사랑해”라는 진심을 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거짓말이 없다면, 이 진심은 드러나지 않는다. 거짓말을 통해 진심이 드러나는 이 논리의 구조가 진리인 셈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사랑해”가 기본적인 사랑의 진리이기에 우리는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에 공감할 수 있다. 이 발화야말로 사랑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미안하다”라는 도덕적 진술은 사랑이라는 욕망의 물질성을 은폐한다. 여기에서 은폐라는 것은 가린다기보다, 문자 그대로 덮는다는 뜻이다. 윤곽이 어렴풋하게 드러나게 사물에 덮어씌우는 것, 이것이 도덕의 기능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징후의 소용돌이에서 정작 마이클 샌델의 논의가 위치해 있는 지형을 발견하기 어려운 까닭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정의라는 문화상품

흥미롭게도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의를 논하는 철학담론으로 수용되고 있는 것이라기보다,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상품화는 근본적으로 탈맥락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탈맥락화라는 것은 어떤 사물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이탈해서 전혀 다른 의미를 얻게 된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상품은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 보편화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즐겨 인용하는 것 중 하나가 맥도널드 광고이다. 영국 유학시절에 텔레비전에서 봤던 광고였는데, 교외지역에 사는 부모가 런던 시내에 거주하는 아들을 방문하는 내용이었다. 한적한 교외의 생활습관에 익숙한 부모는 아들에게 끊임없이 런던 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그런데 아들과 함께 맥도널드에 들어가서 ‘빅맥’을 주문한 뒤에 조용해진다. 이 광고가 전하는 메시지는 “어디를 가나 맥도널드는 똑같다”는 것이다.

시골과 도시의 차이를 단번에 뛰어넘어버리는 이 보편화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전 세계의 맥도널드화를 비판하는 것과 맥도널드의 보편화 전략을 논의하는 것은 서로 다른 사안이다. 전자가 이데올로기적 문제라면 후자는 문화비평의 문제이다. 문화비평은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택하기보다, 그 입장을 결정하는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사회에서 소비되는 방식은 충분히 문화비평의 대상일 수 있다고 하겠다.

탈맥락화는 보편화의 전략이고, 이런 측면에서 사물이 고유성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던 자신의 자리를 벗어남으로써 상품은 존재하기 시작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상품의 존재근거는 ‘팔리는 것’이다. 팔린다는 뜻은 단순한 교환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물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사물은 상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내가 필요해서 생산하고 사용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다. 남에게 팔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잉여가치를 위해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상품이다. 이런 관점은 다분히 ‘생산자’와 ‘판매자’의 입장에서 상품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상품은 무엇일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상품이다. 잉여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상품은 소비자의 욕망을 과잉으로 넘쳐흐르게 한다.
너도나도 형형색색 치장을 하고 상품은 소비자를 유혹한다. 나를 사가라고 말이다. 이 상품을 선택하면 엄청난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온갖 ‘감언이설’이 동원된다. 소비자는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사회의 법칙을 체현한 존재이다. 자신의 만족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만족을 만족이라고 말하는 사회를 위한 행위가 소비이다. 화폐가 있다면 더 비싸고 고급한 것을 사고 싶다는 욕망이 발생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화폐는 저금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욕망을 ‘과소비’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비판하겠지만, 자본주의의 상품은 기본적으로 과잉소비를 목적으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소비행위를 한번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단순하게 하버드대학 교수가 집필했기 때문에, 또는 출판사가 훌륭한 마케팅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여기에 잉여 또는 과잉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의’라는 것이다. 이 책이 정의론을 다루는 것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하버드대학 교수가 집필을 했다고 해도 이처럼 호응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버드대학 교수나 출판사의 마케팅이라는 ‘물질적인 차원’을 초월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치’가 바로 정의라는 철학적 범주이다.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는 공유의 대상이 정의라는 말인 것이다.

따라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인기는 일상을 넘어선 욕망의 결과물이다. 이 욕망은 ‘내 것 줄 테니 네 것 다오’라는 교환의 관계를 넘어간다. 이 교환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의 쾌락을 즐기는 것이다. 이 원칙이 이른바 공정한 시장주의의 이념이라고 틇 수 있다.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근대국가의 권력자들은 시장의 교환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근대의 시장은 자본주의의 상품교환이라는 법칙을 따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교환은 잉여가치라는 ‘과잉’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여기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비밀이 숨어 있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 잘 팔리고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에 대해 누구보다도 신기하게 생각한 장본인은 방한한 샌델 교수 자신이었다. 특별강연을 위해 한국에 온 샌델 교수는 자신에게 쏟아진 열광적인 환영을 접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정치론 개설에 가까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특별한 샌델의 정의론이 담겨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학술적으로 본다면, 정의론과 관련한 다양한 논문과 학술서적은 이미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지만, 이런 내용은 전혀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샌델은 이런 대중적 열기에 대해 “한국사회가 정의에 대해 갈구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말하자면, 정의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의를 절실하게 원하고, 그래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논하고 있는 자신의 책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한국을 잘 모르는 정치철학자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정치적인 모범답안이라고 할 수 있다. 샌델의 말이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샌델의 말이 실제로 『정의란 무엇인가』의 인기에 대한 공통적인 진단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공통적인 진단이라는 것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용’해서 특정한 정치적 문제의식을 건드리고자 하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그 문제의식이라는 것은 ‘한국사회에 정의는 없다’는 믿음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사회에 정의는 없다’는 문제의식을 진보와 보수 모두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샌델의 주장이 진보나 보수 모두에게 정의롭지 못한 한국사회를 개탄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샌델이 무엇을 주장하든, 결국 그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의’라는 범주이고, 이 범주를 샌델이라는 하버드대학 교수가 ‘보증’해준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샌델의 정의론은 분명히 ‘정치철학’이고, 따라서 일정한 정치적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샌델의 정의론은 한국에서 지극히 ‘비정치적인 것’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것이야말로 상품화가 만들어내는 효과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효과는 샌델의 정의론을 중립의 차원에 놓게 만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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