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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매니지먼트계의 빅마마 박성혜 (下)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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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맹물같이 맛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배우를 처음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면 느낌이 확 올 때가 있어요. ‘이 사람은 참 이 매력이 좋다, 이것을 강화시켜서 보여줬으면 좋겠다, 내가 매력 있다고 느끼면 대중들도 느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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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스토리를 만들듯 배우를 만든다”- 연예 매니지먼트계의 빅마마 박성혜 (上)

배우를 픽업할 때 어떤 점을 중요시하나요? 재능보다 어떤 태도, 애티튜드를 더 중시한다는 느낌도 받는데요. 영민함보다는 배우로서의 진지함, 연기에 대한 태도 같은 것 등등.

“매력을 보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매력.”

매력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그 매력이 다 다르잖아요. 그런 매력이 있는 사람이 좋은데, 어떤 사람은 맹물같이 맛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배우를 처음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면 느낌이 확 올 때가 있어요. ‘이 사람은 참 이 매력이 좋다, 이것을 강화시켜서 보여줬으면 좋겠다, 내가 매력 있다고 느끼면 대중들도 느끼겠지’ 하면서 이 매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그것으로부터 모든 게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태도가 너무 좋고, 너무 매너 좋은 배우가 있었어요. 처음에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만났는데, 너무 젠틀하고, 너무 호기 있고, 그래서 저는 완전 부담스럽더라구요. 나랑 안 맞겠다 싶어서 거절했을 때 황당해하던 그분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나도 맞는 사람이 있고, 안 맞는 사람들이 있어서 스타성과 상관없이 그렇게 일을 한 것 같아요. 아무리 매력 있고 스타가 될 것이 빤히 보여도 안 맞으면 일하는 것이 너무 고역이거든요. 그 사람도 그렇지만 나로서도 그러니까,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그게 나은 것 같습니다. 나랑 맞는 사람과 해도 힘든 일이 많은데, 주로 나랑 맞는 매력, 그리고 그 사람의 매력을 보지, 본질을 보고 그런 것은 없어요. 사람이 사람의 본질을 안다는 것이 감히 말하기 힘든 얘기인 것 같아요. ”

지진희 씨 같은 경우 배우를 안 하겠다는 사람을 1년을 넘게 설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배우의 자질을 어떤 부분에서 본 건가요?

“내가 딱 좋아하는 얼굴이에요.(웃음) 그의 목소리와 생김새가 제 스타일이에요. 머리가 길었는데, 내가 머리 긴 남자를 좋아했구요. 목소리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리고 이 친구가 완전 특이했어요. 말이 다 단답형이고 독특하고 그런데 비주얼도 좋고, 목소리도 좋고 그래서 나는 그 캐릭터에 순간적으로 빨리 집중이 됐던 것 같아요. 배우하기에 너무 좋은 얼굴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

그렇게 설득을 했으니 부담감이나 책임감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데뷔과정이 쉽지는 않았잖아요. 배우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데뷔까지 시간이 좀 걸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책임감을 가장 많이 느낀 사람이었는데요. 지진희 씨가 연기자 지망생이 아니었잖아요. 내가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은 건데요. 그렇기 때문에 잘못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책임감은 많이 가졌는데요. 대신 단 한 번도 안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진 적은 없었어요. ”

같이 일하던 배우 중에서 이 사람은 조금 더 잘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는 배우는 없나요?

“아쉬움이 있던 배우? 이지은 씨, 배우로서보다 사람을 좋아했는데, 그 사람에게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는 친구구요. 개인적으로,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친구예요. 너무너무 착한 친구구요. 언급했던 세 명의 배우만큼은 아니지만, 비교적 오래 일했던 배우들이 있어요. 황정민 씨도 그렇고, 임수정 씨도 그렇고. 아, 공유 씨한테 많이 미안하죠. 같이 일하자마자 <커피프린스 1호점>을 하게 됐는데, 그게 대박이 났잖아요. 그후 공유 씨가 군대를 갔구요. 같이 한 첫 작품이 잘됐으니까 끝까지 같이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런데 공유 씨가 제대하니까 내가 일을 관뒀어요. 결국엔 한 작품의 예쁜 추억만 가지고 있는 셈이죠. ”

매니저 일이라는 것이 일이 많기도 하지만,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든 요소가 많잖아요. 대부분 홀수 년 차에 지쳐서 떨어져나간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1년 차를 넘기면 3년 차, 5년 차 이런 식으로 위기가 온다던데, 고비들이 꽤 있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넘기셨어요?

“매니저 일이 내게 천직이고, 평생 해야 될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넘어져도 일어날 수밖에 없었구요. 가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했습니다. 잠시 힘들었던 경험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직업을 바꿔본다거나 다른 일을 해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매니저를 오래하면 다양한 제의들을 받아요. 프로듀?를 해보면 어떻겠느냐, 같이 제작을 해보면 어떻겠느냐, 관련된 일들 중에서 제안을 받는데, 매니저면 매니저지 각자 분야가 있는데, 라는 생각을 했죠. 힘들었어도 내 직업은 이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돈도 벌어야 했구요.(웃음) ”

확실한 목표가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목표인가요?

“내가 기업형 매니지먼트 회사에 계속 있었잖아요. 안정적인 회사의 존재를 뿌리내리고 싶었고, 그 안에서 내가 성장하고 싶었어요. 내가 개인 회사를 차려서 박성혜가 유명해지는 것보다 우리 회사가 미국의 CAA 같은 회사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었구요. 나는 그런 의미에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였죠. 어렸을 때 매니저 일을 시작하면서 구박도 많이 받았고, 천시도 많이 받았는데요. 내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도 있고, 자존심도 있는데, 세상이 매니저라는 직업에 대해서 갖는 편견들, 모멸감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이제는 미국처럼 떳떳하게 이 직업이 하나의 전문직업인으로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려면 개인으로 하는 것보다 그 회사가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CAA나 아니면 브랜드 하나를 가지고 세계적인 기업이 된 디즈니 같은 회사,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원했던 것이 미국형 회사였기에 그런 회사에 가장 근접해 있는 싸이더스에 충성심이 너무나 강력했죠. 그 당시에는 싸이더스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

그래도 15년 동안 하셨을 때는 그만한 매력이 있었던 걸 텐데요. 매니저나 매니지먼트 일의 매력은 뭐였나요?

“다양한 대중문화를 접할 수 있는 최전선에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구요. 내가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오거나이즈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좋아하는 일이니까 그런 것들에서 오는 매력들이 있었구요. 상당히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중간에 힘들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조금씩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성장의 매력이 나를 잡아둔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성장, 그 안에서의 성장, 내가 같이 일하는 배우들의 성장, 그리고 어렸을 때 꿈에서나 그리던 실제 인물들을 같이 만나는 일도 좋았구요. 연예인 말구요. 나는 옛날부터 배우에 대한 판타지는 없었거든요. 가수면 몰라도. 신철 신씨네 대표, 황인뢰 감독, 은경표 PD를 만날 수 있었고, 그분들하고 같이 진지하게 작품 얘기를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 거기서 얻는 자부심과 기쁨들이 컸죠. ”

만약 아는 사람이 하겠다고 하면 권하실 겁니까?(웃음)

“하라 마라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구요. 언론에서 많이 언급하듯이 요즘 젊은이들을 ‘88만 원 세대’라고 표현하잖아요. 희망 없는 미래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라고 얘기하는데, 나는 학교 졸업한 지도 오래됐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잘 몰랐다가 그게 요즘의 추세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는데요. 국사가 선택과목이 되고. 내가 영문과인데요, 영문과, 국문과 이런 데 가는 사람들이 없다면서요. 대학도 그렇게 많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일류대 안 나오면 재수, 삼수해서 도전한다고 하더라구요. 오히려 옛날보다 전문직이 각광을 받잖아요. 쉐프, 소믈리에, 플로리스트 등등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전문성을 갖고 어려서부터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면 오히려 그 사람들이 더 인정받는 시대가 된 것 같은데요. 왜 다들 한 곳만 보는지 모르겠어요. 거긴 어차피 소수의 0.1%만 갈 수 있는 건데, 거기를 향해서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사람들이 좀 안타깝구요. 매니저가 됐든 뭐가 됐든 자기가 정말 관심이 있고,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분야가 있으면 일찌감치 거기에 몰두해서 더 파고 들어가 어떻게 하면 여기에 더 접근할 수 있느냐 노력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내 주변에도 소위 명문대학 출신들 많이 있지만, 그 사람들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요리 배워서 쉐프가 된 친구, 이런 사람들이거든요. 청담동에서 큰 레스토랑을 두 개나 하고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쉐프가 꿈이었어요. 또 영화 쪽에서 분장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유학을 갔어요. 목표를 일찌감치 결정한 편이죠. ”

매니저가 되거나, 매니지먼트업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교육기관 같은 것이 있습니까?

“전문대학 과정도 있고, MBC 아카데미도 있고. 실제로 MBC 아카데미 출신들이 저희 회사에 많았어요. 매니저가 되고 싶다면 수시로 알아보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있구요. 나도 메일을 많이 받았거든요.”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대학졸업한 경우는 모르겠지만, 중고생 청소년들이라면 미리 노력할 게 없잖아요. 그럴 때는 일찌감치 책을 많이 보세요. 특히 배우 매니저는 인문학적인 소양들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나중에 작품에 관해서 배우랑 대화하고, 감독이랑 대화할 때도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도가 좋으면 훨씬 도움이 많이 되는 직업인 것 같구요. 대중문화의 각 분야별로 깊이 있게 들어가지 않더라도 전반적인 관심을 갖고 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연예인이 그런 것처럼 매니저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 보여도 속으로는 곪아들어가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런 것만 보고 뛰어들면 힘들 수가 있잖아요.

“그런 분들은 어차피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어요. “연예인들이랑 같이 있으니 좋겠다, 화려해 보인다.” 이런 걸로만 오는 분들은 3개월 안에 떨어져 나갑니다. 그 얘긴 워낙 많이 나온 얘기들이라, 당연히 각오해야 되는 거구요. 길게 봐야 합니다. 뭐든지 어느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0년은 해야 된다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매니저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

범죄를 저지르는 매니저들도 있잖아요.

“어느 사회나 어느 직군이나 그런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그런 일들이 더 과장되는 면이 있죠. 80%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20%의 그런 행동들이 너무 많이 비춰진다는 거죠. 다른 어떤 직업군보다 돈의 유혹이라든가 이런 일들이 너무 많구요. 문턱이 낮게 들어온 사람들이 있고, 진입장벽이 낮은 매니저라는 일에서 이런 일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시작을 하는 거예요. ”

‘연예계 X-file’이 나왔을 때 배용준 씨 관련 기사가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 났을 때 일본의 욘사마 팬들이 벌떼같이 항의했다고 하던데요. 우리나라 팬들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방어해주지 않잖아요. 한국사람들이 연예인들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좋아하는 연예인의 경우에도 알아보지도 않고 “연예인이 그렇지 뭐” 이런 식으로 치부를 하고 말잖아요. 물론 아이돌 가수의 팬들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한국에서 연예인으로 산다는 게 참…… 마음 다치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구조가 달라서 그럴 수 있어요.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들의 이미지라든지 이런 것들이 일본은 아시다시피 한번 톱스타면 영원한 톱스타잖아요.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구요. 지속적으로 계속 보이고, 반짝스타 이런 것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연예인에 대한 대중들의 기본적인 태도가 있어요. 미국 연예인들의 경우 기부라든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낸다든지,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잖아요. 연예인=문화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구요. 우리나라는 반짝스타도 많고, 시스템이 이러니까 스타들도 그런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고, 사회 안에서의 구조 때문에 연예인에 대한 인식도 그렇게밖에 구축될 수 없는 것 같아요. ”

배우가 선택하는 것을 존중하시는 편이죠.

“최종선택은 무조건 배우가 해요. 물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얘기는 하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배우들은 제한적인 만남을 가질 수밖에 없잖아요. 가장 좋은 매니저란 요즘 트렌드, 그동안의 작품에 대한 것, 그 감독과 작품을 해본 배우들이 이렇게 얘기한다는 등의 정보를 수집해서 사례들을 많이 제시하고 보여주면서 이 배우가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배우들은 그 말을 일단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심을 섞어서 얘기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어려운 직업일 수 있어요. ”

일을 할 때 꼼꼼하게 철저하게 준비하고 들어가는 성격인가요? 어떤 경우는 순간순간 일을 결정해야 될 텐데요.

“그때 상황에 맞게 해야죠. 대부분 초심이 맞더라구요. 처음에 딱 느꼈던 인사이트가 있잖아요. 계속 생각하다보면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구요. 나는 작품에 대한 답을 안 해주고 질질질질 끌어서 제작자를 미치게 만드는 것을 제일 싫어해요. 그런 것에 관해서 매니저들도 엄청 혼냈어요.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 매니저의 본분인데, 이것을 안 해줘서 저쪽에서는 세월아 네월아 기다리고 이쪽에서? 힘 있는 배우라고 해서 여유 있게 하고 그런 거 되게 싫어했어요. 만일 답을 늦게 해줄 때는 “이러이러해서 기다려달라”고 한다든가 그래야지, 그렇게 잘못 일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요. 옛날에 누가 나더러 거절의 미학이라는 책을 쓰래요. 내 일의 90%는 거절하는 일이었거든요. 거절이 정말 어려운 거잖아요. “하자.” 이건 너무 좋은 거잖아요. 거절이 정말 힘든 거고. ”

거절 많이 하다보면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노하우가 생기던가요?(웃음)

“자꾸 하다보면 노하우가 생겼다는 자만에 빠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노하우 같은 것은 없고, 솔직한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사람들이 기다리다보면 짜증이 나기도 하고, 오히려 ‘희망이 있는 건가’ 하고 착각하기도 하잖아요. 적절하게 시간을 배치하는 것, 말할 때의 뉘앙스 등도 생각해야 하구요. 예전에 한맥영화사 김형준 대표와의 일이었어요. 내가 성의 있게 거절을 잘 했었나봐요. 그게 너무 인상이 깊었는지 조선일보인가의 칼럼에 김형준 대표가 그 얘기를 쓴 거예요. 거절을 당하고도 기분이 좋았던 적은 처음이라고. ”

지금 와서 그런 영향력 있는 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나온 것을 후회하신 적은 없으세요?

“후회, 정말 후회해본 적은 없구요. 후회 말고 적적함 이런 것을 느꼈던 적은 몇 번 있는데, 말 그대로 후회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예상 안 해봤던 느낌도 아니구요. 언제부턴가 우리 사장님이 나한테 뭔가를 지시하거나, 명령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러니까 항상 내 말이 맞다, 는 생각이 들어서 누가 나한테 뭘 시키거나 나랑 상반되는 얘기를 주장하면 속으로 성질이 나는 거예요. 그런 병에서도 벗어나고 싶었구요. 그래서 지금도 시사회를 안 가고, 영화인들이 모여서 술 마시는 자리는 잘 안 가려고 합니다. 뉴욕 가서 6개월 동안 인터넷으로라도 연예계 기사를 한 번도 안 봤어요. 보면 나도 모르게 전화기 들고 그랬어요.(웃음) 제가 싸이더스 전체를 관리했지만, 그 안에 1본부, 2본부가 있는데, 1본부가 내가 직접 대면하면서 관리하는 배우들이 있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그 1본부가 나와서 회사를 차린 거예요. 배우들이 40명 정도 되는데, 내 오른팔 격 되는 매니저가 나와서 회사를 차린 거죠. 자회사이긴 한데, 어쨌든 그 N.O.A(엔오에이) 매니지먼트 회사를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아직도 핸드폰으로 결재를 한다는 둥, 문자로 지시를 한다는 둥 그런 얘기를 하기도 하구요. “엔오에이로 언제 복귀하는 거예요?”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생각하는데, 이제 나는 안 끌려요. ”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씨네21, 2010)라는 책을 내고 가장 좋았던 점은 어떤 건가요?

“책을 내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내 만족이 너무 커요. 남들이 뭐라고 생각을 하든 간에 내가 내 인생을 한번 정리하고 나니까 뭔가 정리된 느낌이 들어요. 마흔 살에 정리를 했는데, 쓰면서 기억이 안 나잖아요. 기억하려고 애쓰면서 내가 잊어버렸던 기억들, 사람에 대한 추억, 에피소드,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이런 것들을 한번 상기하고 보니까 그것 자체가 좋았어요. 내가 한번 파일을 날렸었잖아요. 그리고 다시 썼는데, 그러면서 갖게 된 혼자만의 자기만족이 굉장히 커요. 책 내고 나서 인터뷰를 많이 했거든요. 그러면서 저에 대한 기억을 기자들이 해주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그랬었구나’ 하면서 배운 것도 있구요. 책을 내기 전의 두려움이 만족감으로 바뀐 거죠. ”

이쪽 계통 일이라는 게 변화도 심하기 때문에 트렌드를 계속 좇아가야 되잖아요. 계속 그런 공부를 해야 될 텐데요.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나는 신문을 봐도 연예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을 다 보려고 하구요. 주간지는 몇 개씩 읽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나는 패션잡지 이런 트렌드는 못 좇아가겠더라구요. 전반적인 대중들의 반응을 계속 봐야 하구요. 옛날에는 댓글까지 읽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야 되니까. 시청자소감 이런 것 있잖아요. 전반적으로 연예계의 이슈와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가십은 잘 몰라요. ”

배우들에 대한 케어나 이런 것도 필요하겠지만, 매니저들의 정서적인 관리도 지속적으로 해줘야겠네요.

“그렇죠. 내 업무 중 반은 매니저가 “저 배우랑은 못 하겠어요” 하는 부분을 조절해줘야 되는 거거든요. 번호표 뽑아서 나를 만나야 된다고 할 ?큼 바쁜 시절이었을 때 내 앞에 사람들이 줄 서 있었거든요. 그 일 중의 반은 “그 배우만큼은 바꿔주면 안 돼요?”라는 일이었어요.(웃음) 달래기도 했다가 바꿔주는 경우도 있구요. 배우들의 하소연 들어주기도 해야 되잖아요. 내가 매니저니까 매니저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내가 잘 알잖아요. 후배들이 느끼는 감정이 너무 안타까웠던 것들이 많구요. 매니저 관리도 정말 큰일 중의 하나였어요. 능력이 팍팍 올라가는 후배들도 있고, 안 올라오는 후배들도 있어요. 우리는 원래 도제 시스템이잖아요. 그런데 누가 봐도 얘보다는 얘가 일을 잘해요. 나는 그걸 못 보겠어요. 내가 인사를 처음으로 연공서열과는 반대로 했어요. 짬밥을 무시했죠. 난리가 난 거예요. 회사뿐만 아니라 매니지먼트 업계 전체에 문제가 됐는데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그것 처리하느라고 힘들었구요. 되게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것은 후배들의 생활고가 너무 심각한 거죠. 정말 박봉이거든요. 신입 이런 친구들 보면 생활이 안 돼서 관두겠다는 친구들이 많았죠. 그런 것을 보면서 이런 회사를 잘 만들어서 후배 매니저들한테도 기본적으로 혜택이 가는 회사를 만들고 싶단 생각이 너무 많았어요. 나 삼성 다닌다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싸이더스 다닌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회사를 만들기를 너무나 원했죠. ”

연봉이 꽤 되셨잖아요. 돈을 벌려고 마음먹었으면 많이 벌었을 것 같은데요. 한동안 영화 쪽 회사들이 주식 상장하고 하면서 엄청나게 큰 단위의 돈들이 오갔지 않습니까? 돈 욕심은 별로 없으셨나봐요.

“그런 분을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제시한 게 캐시로 30억을 주겠다는 거였어요.(웃음) 그분이 다른 의도로 만나자고 해서 만났는데요. 만약 그런 의도로 만나자고 했으면 안 갔겠죠. 그런 욕심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굳이 돈을 벌려고 노력은 하지 않았으나 번 돈이 좀 있죠.(웃음) 자식도 없고 그러니까 저 하나 먹고사는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일을 안 해도. 그러니까 이제는 재미나게 살고 싶어요. ”

특별한 계획이나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은?

“인디 얘기는 인터뷰에서 많이 해서 보는 사람마다 음악 얘기를 물어봐서 민망해 죽겠는데요. 기본적으로 공부를 잘하고 싶고, 이번에 캐스팅 디렉터를 하나 해요. 캐스팅 디렉터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가지고, 정당하게 보수를 받으면서 하는 것은 처음이거든요. 이 작품을 잘 끝내보고 싶어요. 기획 단계부터 같이 해서 하는데요. 그동안 그런 제의를 많이 받았는데, 누구누구 데리고 와서 투톱 영화를 만들자, 이런 식의 제의는 많았는데, 이번 작품은 그렇지가 않아서 재미있어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캐스팅 디렉터라고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기가 애매한 상황인데요. 앞으로도 캐스팅 디렉터가 메인으로 하는 일은 아니겠지만, 한 작품 하고 나면 방향이 생길 것 같고, ‘해볼까 말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몇 개 프로젝트가 있는데, 진행시키고 있는 정도예요. 나중에 가면 얘기할 수 있는……. 시간도 여유가 있고, 사람이 싫지 않고 그러니까 옛날 대학교 때의 ‘뭐든지 할 수 있어’ 이런 좋은 기운, 생산적인 기운이 살아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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