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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 김영하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은..…” - 나보다 더 살아있는 것들에 대하여

“소설을 쓰는 동안에 저는 소설과 소통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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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데뷔 십육년차에 들어서는 김영하 작가는 문단과 문화계를 아울러, 돌연 ‘오빠’가 되었다. 이 고적한, 도심의 유적 같은 정독도서관 3층으로 수많은 여성을 불러 앉혔다.

오빠가 돌아왔다. 데뷔 십육년차에 들어서는 김영하 작가는 문단과 문화계를 아울러, 돌연 ‘오빠’가 되었다. 이 고적한, 도심의 유적 같은 정독도서관 3층으로 수많은 여성을 불러 앉혔다. 이 틈에 끼어있던 한 남성 독자는 ‘도대체 여성을 사로잡는 힘’이 무엇이냐며, 물으며 원하고 원망했다. 그 순간 「악어」의 한 대목이 낭독회장 어딘가에 ‘앉아’있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문은 빨리 퍼졌다.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들도 그에게 노래를 시켰다. 몇몇 여자애들이 앓아누웠다. 별로 슬픈 노래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의 노래는 듣는 사람들 모두에게 자기 생애 가장 슬픈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체온도 올라가 그의 노래를 들을 때면 돌연 저릿, 한기를 느낀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평생 경험한 가장 달콤한 추위였어요. 당시 그의 노래를 들었던 한 여자는 훗날 이렇게 회고 했다. 한 여선생은 그를 상담실로 불러냈다. 한참을 안절부절못하던 그녀가 손을 뻗어 그의 뺨에 갖다 댔다. “미안해. 한 번만, 그냥 한 번만, 너를 만져보고 싶었어. 네가 정말 사람일까, 생각했단다. 어떻게, 어떻게 너는 그런 목소리를 가졌니. 그러고도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니? 넌, 넌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악어」, p.69) 그가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받게 될 질문세례의 시작이었다.


기적 같은 여름 밤

낭독회가 열린 정독도서관 3층 시청각실은 김영하 작가의 표현대로, ‘우리 마을에 다리를 놓아야할 지 토의하기 위해 모인 마을회관 강당’을 떠올리게 하는 화려하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빼곡히 독자들이 들어차고 김영하 작가가 일어서 말을 하자, 일순 소규모 극장이나 늦은 저녁, 대학 강당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열의로 가득 채워졌다. 낭독회의 시작은 북트레일러 상영이었다. MOT의 이언 씨가 제작한 이 영상을 김영하 작가는 이렇게 소개했다. “북트레일러는 대개 이런 형식으로 만들지는 않죠. 소설가란 직업은 책을 낼 때가 아닌 이상 협업을 할 기회가 사실상 없습니다. 그래서 방구석 문학이라 불리는 것이고요. 북트레일러 작업은 이언 씨와 트위터로 대화하고, 음성파일을 보내는 방식을 통했습니다.”

그는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으로 명명한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이날 김영하 작가는 평소 팟캐스트를 녹음할 때 사용하는 마이크를 가지고 왔다. “녹음이 원활히 된다면 팟캐스트로 내보내려 한다”고 설명하며 랩탑에 마이크를 설치했다. “그런데 팟캐스트를 수면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더군요”(웃음)

“도서관을 오르는 길에 조그만 교회의 간판을 봤습니다. 이렇게 써 있었어요. ‘지금 여기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청중 웃음) 집에서 혼자 어떤 작가가 이상한 얘기를 쓰면, 저와 아무 관계도 아닌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그 책을 전국 각지에서 읽고 이렇게 모여서 여름 밤을 함께 보내게 되었네요. 어디선가 동원된 게 아니라면(웃음), 여기에도 기적, 이 있군요.”


낭독의 여행


「여행」의 첫 부분을 낭독하는 것으로 이 날의 낭독회는 시작됐다. 독자들은 작가의 목소리에 따라 웃기도 하고 침을 꼴깍 삼키기도 하면서, 이야기에 집중했다. 대화체도 능숙하게 읽어내려 갔다. 익살스러운 부분에 이르러서는 독자의 웃음에 작가도 슬며시 미소 짓기도 했다.

그러나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밤, 고속도로는 뻥뻥 뚫렸다. 하이패스 단말기를 단 그의 차는 톨게이트도 시속 오십 킬로미터의 속도로 통과해버렸다. 그녀는 설득하기도 하고(“오빠, 제발, 내 마지막 소원이야. 어서 차 돌려”), 애원하기도 하고(“우리 엄마, 심장이 약해서 쓰러질지도 몰라. 엄마 벌써 문자 열 통도 넘게 날리는데 도대체 뭐라고 해?”), 위협하기도 했다(“오빠, 나 경찰에 신고할 거야… 이건 납치야, 납치!”). 그러나 한선을 멈출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화장실에 가고 싶으니 제발 휴게소에라도 들렀다 가자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여행」, p.47)

두 번째로 「마코토」 읽으며,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언제나 어색”하다며, “독일에서는 배우가 리얼하게 연기를 곁들이며 낭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지만, 나는 작가의 육성이 좋다(웃음)”고 말했다.

마코토는 나보다 나이가 세 살이 많았지만 우리는 그냥 마코토 혹은 마코토 씨라고 불렀다. 마코토는 대학의 한국어과정을 6급까지 마쳐 우리말을 아주 잘했다. 발음이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혀가 짧은 한국인의 발음과 비슷한 정도였다. 특히 한국 속담이나 사자성어를 아주 좋아해서 말끝마다 사자성어를 넣어 말하곤 했다.
“하하하, 메로나요? 저야 뭐, 언강생심이죠.”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너무 나선 것 같아요. 은인자중해야죠. 만시지탄의 감이 있습니다만.”
“이걸 저 주신다고요? 와, 꿩 먹고 알 먹고네요.”
이런 식이었다. (「마코토」, p.112~113)


이 소설집에서 「조」는 가장 먼저 쓴 소설이라고 밝혔다. 이전 작품집인 『오빠가 돌아왔다』 때 완성 되었지만. 어쩐지 빠지게 되었다는 이 소설은, “다시 보니 괜찮았다.” 는 이유로 이번 소설집에 묶이게 되었다. 이런 소설은 또 있었다. 문단에서 놀랐고, 대중에게 환영받았던 작품 「비상구」가 바로 그 소설이다. “어느 날 밤, 청탁을 받지 않은 채, 한달음에 쓴 작품이었어요. 「조」와 마찬가지로 쓴 당시에는 별로였죠. 발표를 하면, 사람들이 나를 미워할 거 같았어요(청중 웃음). 육 개월 후 써놓은 게 없던 상황에서 할 수 없이 발표하게 되었는데, 반응이 좋았죠.”

타락에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별다른 이유가 없다. 첫눈에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가능하듯 멀쩡히 자기 삶을 영위하던 사람이 돌연 타락해버리는 일도 가능하다. 두 가지가 한 가족 안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녀가 다니던 대학의 교수였던 어머니가 성적처리가 한창이던 6월의 어느 날, 수영 강사와 함께 달아나버렸다.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고 소문은 눈덩이처럼 커지는 동안 그녀는 백화점에서 머리핀을 훔치고 있었다. (「조」, p.184)


작가 보다 더 살아있는 것들과의 대화

낭독회를 마치고 사십분의 여유를 두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고, 김영하 작가는 ‘노래를 불러 달라’는 질문을 제외하고는 막힘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오늘 낭독 작품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요?

“읽을 때 덜 쑥스러운 것(웃음). 읽을 때 쑥스러우면 읽다가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청중 웃음). 사실 이런 걸 고르는 게 힘들어요. 통으로 읽는 게 가장 좋죠. 팟캐스트에서 악어를 읽었던 것처럼 말이죠. 그래도 단편집 출간 기념이란 의미에서, 세 편을 골라봤습니다.”

책을 읽을 때, 별로 막힘이 없으시던데, 연습을 하시나요.

“소설을 하나 써서 책으로 묶기까지는 작가는 수백 번, 자신의 작품을 읽게 됩니다. 남의 글을 읽으라고 한다면, 말이 굉장히 많이 씹히겠죠. 저 보다도 소설을 많이 읽을 지도 모르는 분이 편집자고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글보다는 저의 글을 읽는 것이, 잘 읽힙니다.”

단편과 장편 중 어떤 것이 더 흥미로운지 궁금합니다.


“최근에 주로 장편을 쓰게 되면서, 단편을 쓸 때는 더 ‘단편스러운’ 걸 추구하게 되었어요. 단편을 쓸 때는 더 자발적으로 단숨에 쓰려고 노력해요. 이를테면, 길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보다 스쳐 지나며 상상하는 것이 단편이라면, 가던 길을 멈춰서고 ‘왜 싸우느냐’ 물어보는 게 장편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잠깐 보는 강렬한 인상이 단편이 되는 거 같아요. 이번의 단편 중 ‘오늘의 커피’의 경우는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썼고요. 또 어떤 단편은 시차 적응이 안 되던 호텔방에서 쓴 소설도 있습니다.”

엽편소설을 소설집에 묶는 건 생소한데요.

“한국의 단편집은 형식이 있죠. 80매에서 100매까지의 여덟 편 정도가 들어있는 게 보통인데요. 이번 단편집은 청탁을 받지 않고 쓴 글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점이 있었어요. 그 이야기가 허용하는 길이만큼만 쓰면 되니까요. 독자들은 인식을 못할 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동업자들, 동료 작가들이 놀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트위터나 팟캐스트 등으로 독자와의 소통이 활발하신데, 소설로서 소통하는 측면은 어떠신가요.

“독자와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소통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소설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소설을 쓰는 동안에 저는 소설과 소통을 합니다. 자는 도중 소설 속 인물들과 활발히 소통을 하는 거죠. ‘인셉션’하는 거죠(청중 웃음). 예를 들면 작가는 어떤 극장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문을 열어주어야 배우들이 들어가서 리허설을 하게 되는 거죠. 인물이 대화하고 연기하는 것을 지켜보다 무대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면, 제가 나오게 되는 거죠. 이제 그 극장에는 제가 아니라 여러분들과 같은 독자들이 관객석을 채우게 됩니다. 이처럼 소통이란 게 상당히 간접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 교과서에는 그런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청중 웃음) 묻는 것 말이죠. 저는 제 인물들과 소통을 하면, 퇴장을 하는 사람이에요. 여러분은 그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죠.”

여성에 대한 심리묘사가 탁월하신데요.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사실, 제 처는 이번 소설집을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성을 잘 모른다고 핀잔을 줬어요. 「마코토」 「로봇」을 쓰고 나서는 (처에게) 인정을 받았죠(웃음). 제 처가 심리학을 공부해서 많은 조언을 해줍니다. 또 하나는 여성들을 열심히 봐요. 저희 어머니부터.

남성은 오래 보기 힘들어요(청중 웃음). 여성의 경우에는 행동과 말의 여러 겹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사숙하고 좋아하는 작가가 톨스토이예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읽을 수 있는 인물의 내면 묘사는 정말 탁월하죠. 톨스토이만이 가지고 있는, 인물의 내면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들을 읽어요. 톨스토이를 읽게 되면 여성만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인물을 묘사해내려는 의지를 배우게 됩니다.”


강연을 마치고, 김영하 작가는 트위터에 이런 맨션을 남겼다. “오늘 정독도서관에서 ‘기적의 순간’을 함께 하셨던 분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단편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작가의 말에는 이런 글귀가 남겨있다.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라는 존재는 어지러이 둔갑을 거듭하는 허깨비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살아 있’는 것은 지금껏 내가 쓴 것들일 것이다.” 기적의 순간은 이렇게 여러 층위에서 겹겹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때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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