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고를 했다고 해서 작가의 할 일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닙니다. 초고가 거의 그대로 출판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원본을 못 알아볼 정도로 고치거나, 심지어 다시 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애써 쓴 원고를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은 정말 앞이 캄캄합니다. 탈고한 원고는 퇴고 때문에 다시 보는 것도 싫은데, 그 힘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니요!!
저는 첫 번째 창작 동화, 그리고 비소설류의 첫 작품을 썼을 때 초고를 완전히 버리고 다시 쓴 적이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항상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때 문제가 생겼던 셈이지요.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완고를 쓰고 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지난 번 반쯤 쓴 원고를 버렸을 때처럼 보다 일찍 문제를 발견하니까요.
|
완고를 넘기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던 동화. 그러나 이 책이 그 해 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 도서로 뽑혔고,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국 초등학생들에게 읽히고 있으니 다시 쓴 건 백 번 잘 한 일이었던 셈이다. | |
저는 원고를 쓰면서 계속 퇴고를 하는 것이 습관이어서 탈고 후 원고를 다시 만지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그 기간이 몇 일에서 몇 주는 됩니다. 한 권의 책은 원고지 600매에서 1000매 정도의 분량으로 이루어집니다. 많게는 20만 자로 이루어지는 원고이기에 실수가 있을 수 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여러 사람이 몇 번에 거쳐서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책이 되어 나오게 됩니다.
신기한 것은 원고를 아무리 많이 들여다 봐도 그 때마다 고쳐야 할 것이 눈에 띈다는 겁니다. 심지어 어제 고친 부분이 맘에 안 들어 다시 고치고, 그것을 다시 고치는 일도 허다합니다.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을 때까지 원고를 고치려 들다가는 영원히 책이 나오지 못 할 것 같아 어느 정도 되었다 싶을 때 원고를 보냅니다.
탈고를 하고 원고를 이메일로 보내고 나면, 그 때만큼 홀가분할 때가 없습니다. 그 날 하루는 마음껏 늘어져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아예 뇌를 비우고 미드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마감에 쫓길 때에는 탈고만 하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 것 같은데 그 행복은 삼 일이 채 가지 않습니다.
일단 원고를 보내고 나면 컴퓨터를 포맷하듯 그 동안 온통 제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책의 내용을 비우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머릿속이 하얘질 즈음, 출판사에서 최종 원고를 책 모양 그대로 출력해서 우편으로 보내 줍니다. 교열 전문가와 편집자들이 몇 번이고 확인해서 비문과 오자를 수정한 결과물입니다. 때로 수정된 부분이 작가의 의도와 맞지 않거나 더 고칠 부분이 있으면 마지막으로 확인하라고 보내 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다 잊어버리고 놀기에만 한창 익숙해져 있는 중이라 그 최종 인쇄본이 참 눈에 들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열심히 본다고 보아도 나중에 책이 되어 나왔을 때 ‘이건 고치면 좋았을걸’ 싶은 부분들이 꼭 발견되곤 합니다. 그럴 때면 책에 표시를 해서 다음에 인쇄할 때에는 이렇게 고쳐 주십사 부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알기는 쉽지 않겠지만 책을 새로 찍어낼 때마다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종본까지 넘기고 나면 책이 나올 때까지 당분간 작가가 할 일은 없습니다. 책날개의 프로필이나 표지에 들어갈 사진을 찍는 것 정도가 일이라면 일이겠지요. 가끔 책이 새로 나올 때마다 새로 사진을 찍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통 전문 사진 작가들이 사진을 찍게 되고, 그 저작권이 사진 작가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사용했던 사진을 다시 쓰려면 저작권료를 내고 원본 파일을 받아야 하는데 출판사 입장에서는 기왕 비용이 들 바에야 새 책 이미지에 맞는 새로운 사진을 얻고 싶은 것이 당연하지요.
물론 저작권 문제가 없는 사진을 찍어 두고 책마다 다시 쓰도록 하는 작가들도 있기는 합니다. 사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성향이 사진 찍는 것과 같은 일을 좋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사진 찍히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아 프로필 사진 외에는 혼자 찍?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홍보 때문에 사진을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애를 먹을 때가 많습니다. 저처럼 사진 찍기가 귀찮아서인지 책의 이미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외국 작가 중에는 더러 젊은 시절의 좋은 이미지를 담은 사진을 수십 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사용하며 대중 앞에 직접 나서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드디어 책이 완성되어 나오면 그 때부터 작가는 조금 바빠집니다. 출판사 마케팅팀에서 준비한 각종 홍보 행사에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언론 인터뷰와 강연회, 독자미팅, 싸인회, 방송 출연 등이 약 한 달간의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이어집니다. 이 기간 동안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늘 혼자 일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버겁기도 하지만, 작가로서 가장 즐거운 추억들이 이 기간에 만들어 지기도 합니다.
|
지난번 책 강남 교보문고에서의 독자 강연회 | |
요즘에는 해외에서도 우리 책에 관심이 많아 저작권 수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더군요. 중국에 고정 독자가 있는 저는, 한국에서 책이 출판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중국판 출판 제의가 들어 옵니다. 원하는 출판사들이 경쟁을 해서 가장 많은 계약금을 제시한 출판사에 5년간의 출판권을 넘깁니다. 이런 과정은 출판 전문 에이전시들이 주가 되어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몇 달간의 번역 기간을 거쳐 책이 출판되면 현지 출판사에서 홍보를 위해 초청을 하기도 합니다.
『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의 중국판은 북경 국제 도서전에서 소개 되었습니다. 기자 회견, 인터뷰, 독자 미팅 등 여기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했던 모든 일들을 그곳에서는 단 나흘 만에 해야 했기에 아주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지요.
|
북경국제도서전, <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 출간 기념 행사 | |
지금 저는 또 다른 원고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까지 소개한 과정 중 ‘집필’ 과정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카페에서 무선 인터넷으로 이 칼럼을 보고 계시다면 주변 어딘가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모니터를 노려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이 외로운 노동의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트위터를 통해서 좋은 말씀 주신 분들의 격려는 제가 원고를 던져 버리고 가을 여행을 떠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써 온 책의 색깔과는 다르게 실제 성격은 소심한 제가 용기를 내 공개한 저의 작업 과정이 책을 쓰고 펴내는 꿈을 가진 분들에게 참고가 되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