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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 넘겨봐도 이해되는 한국미술사 -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국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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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이전과 다르게 한국 미술을 이해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형식적인 새로움으로도 주목받았다. 이제는 ‘대중화’라는 표현조차 대중화되었지만, 당시로서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인문서적이라는 매력으로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소파에 기대 편안하게 독서할 수 있는 한국미술사 쓰고 싶었죠”

『한국미술사 강의 1』는 곰브리치가 쓴 『서양 미술사』의 한국판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만큼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미술사 책을 쓰고자 했다. 유홍준 교수는 “책상에 앉아 밑줄을 치면서 공부하는 한국미술사가 아니라 소파에 기대어 편안히 독서할 수 있는 한국미술사”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한국 미술사와 유물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유홍준 교수가 한국미술사 개론서 『한국미술사 강의 1』을 출간했다. 본격적인 한국미술사 개론서라고 여겨지는 김원용의 『한국미술사』(1969) 이후 40년 만에 ‘한국미술사’라는 제목이 붙은 입문, 개론서가 나온 셈. 주로 분야사 연구에 치우쳤던 저술서의 경향을 살펴보자면, 이례적인 일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이전과 다르게 한국 미술을 이해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형식적인 새로움으로도 주목받았다. 이제는 ‘대중화’라는 표현조차 대중화되었지만, 당시로서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인문서적이라는 매력으로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미술평론가로 활동한 유홍준은 당시에도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 강연을 여는 등, 일찌감치 이야기꾼으로 활동했다. 그를 따라다니는 ‘구라’라는 별명도 “자유롭게 말 못하던 시대에 재미와 시사를 아우르는 이야기꾼을 부르는 호칭이자 추억의 단어”라며 호탕하게 웃어넘긴다.

타고난 이야기꾼 기질에, 열 번 이상 고쳐 쓰지 않은 글이 없다고 할 만큼의 ‘노력형’ 필력을 더해 이번엔 한국 미술사의 궤적을 엮어냈다.

『한국미술사 강의 1』의 집필을 각오하게 된 데에는 학생들의 원성(!)이 한몫했다. “선생님, 우리에게 길잡이 책만 있다면 이렇게까지 헤매지 않을 겁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같은 책은 나중에 쓰시고 ‘나의 한국미술사 강의’를 쓰시면 안 됩니까?(p.9)” “‘미술사학과라고 왔는데, 교재도 없는 과가 어디 있냐’는 학생들 말에 충격을 받았죠.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요. 그런 요구가 있어 지체 없이 쓸 수 있었죠.”

1권은 선사, 삼국, 발해시대를 다룬다. 이 책의 집필 과정은 이러하다. “이번 학기에 이 책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대학원 세미나 주제를 ‘한국미술사의 통사적 개관’으로 정했어요. 일주일마다 내가 100매의 원고를 써서 학생들에게 발표하고, 토론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죠. 학기가 끝날 때까지 종강을 못해서, 12월까지 수업이 이어졌어요. 고생스럽지만, 아주 즐겁게 했어요. 통일 신라 시대까지 한권에 묶어서 두 권으로 내려고 했는데, 도저히 책이 커져서, 소파에서 읽을 수가 없겠더라고요.(웃음)” 이후 통일신라, 고려 편, 조선 편으로 두 권을 더 출간할 계획이다.


“서양의 플라타너스, 우리의 소나무를 같은 범주로 다루면 안 되죠”


제목이 미술사 개론이 아니라, 미술사 강의라는 것도 주목해볼 만하다. 강의는 강연자에 의해 사실들이 재배치된다. 이 책에 담긴 미술사의 궤적을 단순하게 나열하거나, 이제껏 연구된 분야사를 통합하는 데에 그치지 않겠다는 의도다.

“통사다 보니, 집필자의 미술사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사람들이 흔히 한국미술사라고 하면 1장에서 자연미라는 둥, 한국미의 특성에 대해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평소에 지루하고 식상하게 봐서 그런지, 나는 한국미의 특성은 한국미 자체에서 보기보다, 동아시아 미술사 전체를 통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중국, 일본 미술과 비교하고, 거기서 드러나는 특징으로 살펴볼 수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빠진 동아시아 문화사 역시 불완전한 것이고요.”

이는 각 챕터의 서두마다, 당대의 한국 미술이 중국, 일본 문화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기술한 것으로 반영되었다. “흔히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걸 콤플렉스로 생각하는데, 세계사적으로 봤을 때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말갈, 흉노, 장구 등의 문화는 다 사라졌어요. 영향을 받는 일은,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입니다. 수용자의 적극적인 선택에 의한 일인데 왜 부끄러워하는지 모르겠어요.”

건축, 조각, 회화, 공예 순으로 기술되는 미술사 서적의 고정적 챕터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그건 서양 미술사에 해당하는 챕터죠. 서양 미술사에는 고분미술이라는 장르가 없어요. 다 공예로 취급하지. 그런데 고분에서 나온 공예품과 석탑에서 나온 공예품은 성격이 또 다르거든요. 그래서 삼국시대는 고분미술과 불교미술로 나누어 설명했고, 사리함과 향로는 따로 챕터를 만들었어요. 기존 미술사에서 얘기하지 않은 산성, 비석과 금석문도 다뤘고요.”

어떻게 하면 유물들의 성격이 잘 드러날까 고심했다. 미술사라는 줄거리에 유물을 꿰맞추는 게 아니라, 흩어져있는 유물들로 어떻게 체계를 지을까 고민했다는 의미다. “학문이라는 것은, 그 분야의 가치체계를 만드는 거예요. 흩어져 있는 유물들을, 미술사로 엮었을 때야 거기에서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가 드러나니까요. 한국미술은 우리의 기준으로 쓰여야지, 서양에서 만들어 놓은 줄거리에 짜 맞추자면, 내용은 빈약해지고, 빠지는 유물도 많아요. 그들은 플라타너스고, 우리는 소나무인데 같은 범주에 넣으면 되겠어요?”

각 분야사의 전문가들에게 검증도 받았다. “원고를 보내고, 빨간 펜으로 많이 고친 만큼 술을 사겠다고 했죠.(웃음) 고공비행하는 사람은, 무령왕릉에서 팔찌가 다섯 세트 나왔다는 것만 알아요. 저공비행하는 사람은, 그 팔찌가 팔뚝에서 두개, 발치에서 세 개 나왔다는 걸 알죠. 이런 걸 교정 받았어요.” 『한국미술사 강의 1』은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현재 지금 내가 뭘 해야 하는지만 알아요.”

당시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가 그렇게 잘 될 줄 알았느냐고 묻자, 유홍준 교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나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화인열전』 『완당평전』 모두 잡지에 연재한 글이에요. 다 원고료 한 푼 못 받고 쓴 글이고요.”

자신의 글이 시대에 명민한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시대적 분위기를 감지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분위기로 전환되는 시점이었잖아요. 검열제도가 없어지면서, 처음으로 내가 갖고 있는 감상을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때였어요. 그런 시절에 독자들이 공감하면서 좋아해 준거?. 물론 그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부터 『한국미술사 강의 1』까지. 그의 집필활동은 어떤 대단한 소명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단다. 그는 그저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대답했다. 미술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그에겐 그만의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미술사에 관련된 교재도 스승도 많지 않은 환경에서의 독학. “그때의 독학이란 정말 끔찍했어요. 도판 하나 없이 글로만 미술사를 공부했으니까. 얼마나 지루하고 이해가 안됐겠어요. 현장엔 가보지도 못하고. 사실 그게 답답해서 한국미술사로 오게 된 까닭도 있어요. 우리 미술도 멋있더라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현장 답사를 시작했다. 직접 발로 밟고 눈으로 확인한 한국 미술사 공부는, 서양 미술을 공부할 때는 모르던, 또 다른 희열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멋진 것들이 많은데, 이런 문화재들을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책이 없나, 하는 질문이 이어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완성된 것이다.

당시 떠들썩했던 공개강의 역시 그에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을 따름이란다. “내가 미술평론가로 있을 때, 당시 미술 대학에서 한국미술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희한하지. 대한민국 미술대학에서 서양미술은 가르치면서, 한국미술은 특강 형식으로 한두 번 가르치는 게 다였으니까요. 거기에 화가 나서 한국미술사를 가르치겠다고 나선 게, 공개강의가 된 거죠. 뭐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에요. 그 시대 평론가로서, 그 작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했을 따름이에요.” 이번 『한국미술사 강의 1』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미술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지금 이 시대에 미술사를 아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유홍준 교수는, 미술사를 아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일이라고 답했다. “서양에는, ‘아트 오브 히스토리’가 교양 필수예요. 미술 작품을 통해서 역사와 당대 분위기를 알 수 있죠. 이 시대의 문화적 과제들을 생각하게 해주고, 민족적 자부심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도 미술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봐요.”

그가 지금의 미술 사관을 세우는 데에는,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이라는 책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보링거 이전의 이집트 미술은 묘사력이 떨어지는 그림이라고 생각했어요. 보링거의 등장으로, 미술을 볼 때 문화권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문화권적 가치에서 다시 판단해야 한다. 이건 아주 대단한 발견이에요. 이런 생각을 보링거한테 배웠죠.” 이러한 보링거의 발견은, 미술사를 이해하는 일이 단순히 하나의 유물을 해석하는 일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미술사를 알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인 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나도 한국 미술사는 한번 알고 싶다는 욕구는 있어요. 그걸 충족시켜줄 책이 YES24를 암만 뒤져도 없잖아요. 이 책을 통해, 교양과 상식으로 한국 미술사의 분위기를 안다면 성공인 셈이죠. 사실 이 책은 소파에서 읽을 수 없어요. 이 내용을 다 익히려면, 몇 번을 읽어야 하고, 이 책 말고 다른 책도 읽어야 해요.” 이후에 또 다른 필자들이 또 다른 색깔과 시각으로 재구성한 한국미술사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엑스퍼트(Expert)의 자부심

“궁극적으로는 한국 미술사의 실체를 밝히고자 하는 학문적인 꿈이 있죠. 이걸 바탕으로 이 시대 문화를 만드는 것이니, 한국미술사는 자기 뿌리를 갖는 일인 거고요. 그 다음에 예술적인 작업이 이뤄질 수 있겠죠. 난 거창한 것은 몰라요. 지금 현재 내가 뭘 해야 하는가만 알지.” 그는 여전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남은 책들을 집필하는 일. 미술사를 더 잘하는 일이란다.

끊임없이 평론가로서, 교수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전문가의 자부심’이었다. “내가 예전에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에게 문화부 장관과 박물관장 둘 중에 하나 택하라면 나는 박물관장을 하겠다고. 여느 대통령이나 총리보다 박물관장은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요. 이게 한 분야 전문인이 가질 수 있는 엑스퍼트의 자부심이에요.”

“이런 자부심이 많은 엑스퍼트가 전문가가 많은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돈 버는 일, 다른 일은 다른 사람들이 더 잘하겠지만, 한국 미술사는 내가 그네들보다 훨씬 더 잘 쓸 거라는 거죠.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하는 게 제 사회관이고 사회 철학입니다.” 유홍준 교수가 오래 전부터 꿈꿔왔다는 한국미술책. 풍부하게 도록이 삽입되어, 넘겨보기만 해도 맥락이 이해되는 한국미술책이 이것이란다. 이런 전문가 덕분에, 우리는 그저 책을 넘겨보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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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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