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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서는 낫지 않지만, 절대로 죽지도 않을 병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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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피고름으로’ 글을 쓴다

이제 그 동안 모으고 분류하고 정리한 글의 내용들을 이제 원고라는 최종 형태로 만들어 내는 집필 과정만이 남았습니다. 저를 만나는 사람들은 집필을 할 때 주로 어디서 하냐는 질문을 많이 하고, 저는 카페에서 할 때가 많다고 대답합니다. 그럴 때마다 곧바로 ‘참 부럽습니다.’라는 감탄이 돌아옵니다. 카페에서 향기로운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노트북 컴퓨터의 자판을 ‘폼 나게’ 두드리다가 간혹 고개를 들어 길 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는 신선놀음의 광경이 그려지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일을 하기 시작하면 카페는 더 이상 한가로운 쉼터가 아닙니다.

<창가에서> 빈센조 이롤리
『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

제가 집에 있는 서재나 작업실을 택하지 않는 이유는 지독한 외로움 때문입니다. 집필을 하는 동안에는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고 원고에만 집중하는데 이게 보통 외로운 일이 아닙니다. 오후 늦게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많습니다. 그런데 카페에는 저를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있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카페가 시끄러워서 집중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제가 일하는 시간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누군가가 직접 말을 건네지 않는 이상 방해 되는 일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대화가 귀에 들려오기 시작하면 이미 집중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것이고 그 상태라면 어떤 환경에서도 글이 안 쓰이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다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옆자리에 앉으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면 그만이지요.

초등학생 딸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저는 다른 전업 작가들처럼 하루 종일 글을 쓸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학교와 학원에 가 있는 동안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오전과 이른 오후 시간까지 다섯 시간 정도 시간이 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어찌나 집중을 하는지 일을 하는 너덧 시간이 그야 말로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갑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지요.

저는 글쓰기를 좋아해서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사람입니다. 일하는 과정 자체도 다른 작가들에 비해 즐기는 편입니다. 따라서 글을 쓰는 것을 스스로 스트레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집필 과정에 있는 동안에는 항상 몸이 아픕니다. 최근에는 걸음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무릎이 아팠었고, 피부에 발진이 생기거나 이유 없이 열이 나면서 종일 머리가 아팠던 적도 있습니다. 저를 진찰했던 종합병원의 의사 분은 이것을 ‘웬만해서는 낫지 못 할 병이지만, 절대로 죽지도 않을 병’ 이라며 혹시 글을 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닌지 묻더군요.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꼭 집필 기간에만 아픈 걸 보면 아주 틀린 해석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이라는 것이 아무리 좋은 기분으로 쓴다고 해도 역시 수명을 줄이는 작업이기는 한 것 같습니다. 독자들이 휴식하며 읽는 한 권 한 권의 책은 대개가 어느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처럼 ‘피고름으로’ 쓰인 것일 테지요.

<독서> 프레고나르
『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

저는 처음 집필에 들어가는 몇 주간은 글쓰기에 속도가 붙지 않아 아주 애를 먹습니다. 구상과 취재 기간에 해당되는 몇 개월 동안 직접 글 쓸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문장이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요. 더구나 집필을 할 때에는 책의 앞부분을 쓰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앞으로 쓸 내용에 대한 소개와 설명을 곁들여야 하기에 자칫 지루해 지기 쉬운데 그러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첫 장부터가 재미없는 책을 선택하고 보아 줄 독 독자들이 흔하지는 않으니까요. 이것이 집필 과정에서 만나는 첫 고비입니다. 『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의 첫 부분을 쓸 때에도 분량에 비해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간 준비 작업을 통해 책의 색깔을 정해 놓기는 했지만 어떤 톤으로 문장을 풀어 나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지요. 독자를 친구와 같은 눈높이로 설정하고 편안한 대화체로 풀어나가자는 설정은 있었지만 실제로 글로 옮길 때의 느낌은 또 달랐습니다.

처음 책을 쓸 때에는 글의 첫머리에서부터 헤매고 있는 저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오랫동안 멈춰 있던 차의 시동을 거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조금 더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릴 줄 알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면서 꾸준히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서서히 굳었던 것이 풀리는 느낌이 들며 글쓰기가 좀 더 수월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따지고 보면 책을 쓰는 단계 하나하나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시험하는 과정입니다. 작품을 쓸 때마다 요구되는 것은 노련함보다는 새로움이지만, 더 많은 책을 쓴 작가가 가지게 되는 가장 큰 자산은 아마 자신에 대한 믿음일 것입니다.

첫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그 때부터 글쓰기가 궤도에 올랐다는 느낌이 옵니다. 중간 중간 풀리지 않는 부분에 부딪쳐 며칠씩 작업이 제자리걸음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 순탄하게 진행이 됩니다. 때로 느낌이 좋은 부분을 쓰게 될 때면 하루에 몇 십 매 씩 쓰는 날도 있습니다. 이렇게 원고가 잘 쓰이는 날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분이 좋고, 뭔가에 막혀 종일 죽을 쑨 날은 지구 종말을 맞은 것 같은 심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스스로가 조울증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원고의 절반을 넘기고 얼마가 지나면 그 동안 원고를 쭉 끌어 오던 에너지가 바닥나게 됩니다. 앞서도 이야기한 바가 있지만 책을 쓴다는 것은 글재주가 있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뚝심이 필요한 일이지요. 힘이 마르게 되면 글을 더 이상 쓰기 싫어지고 빨리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만 듭니다. 이럴 때 밀리지 않고 끝까지 앉아 원고를 완성할 수 있는 고집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이제 초고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일이 이것으로 모두 끝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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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남인숙

소설가, 에세이스트. 1974년 서울 출생. 숙명여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부터 방송작가, 자유기고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출간 이후 80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여성 에세이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한 베스트셀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2004)를 비롯하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 실천편』(2006), 『여자, 거침없이 떠나라』(2008),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완성된다』(2009), 『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2010) 등 2030 여성을 위한 에세이를 펴내어 독자들의 뜨거운 지지와 공감을 얻었다. 또한 그녀의 여성 에세이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몽골에 번역 출간되었고 특히 중국에서는 1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보이며 자국 위주의 중국 출판계에서는 드물게 비소설 분야의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을 세우는 등 여자에게 솔직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전해주는 멘토의 지침서로서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시대 아시아 여성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

<남인숙> 저10,800원(10% + 5%)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의 작가 남인숙이 전하는 여자를 행복하게 하는 명화 에세이 소설가가 소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담아낸다면, 화가는 그림에 자신의 모든 존재를 담아낸다. 소설 속에 작가가 살아있듯이 그림 속에는 그 그림을 그린 예술가가 오롯이 살아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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