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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는 일종의 인셉션” -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젊은 작가’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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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이지만, 독자들은 그 이름을 반갑게 불렀다. 현재(8월 31일)까지 2만 6000부가 판매되었고(문학동네 제공), 올해 발간된 단편소설집으로는 최고 부수를 기록했다.

언제나 젊은 오빠, 김영하가 돌아왔다

2004년 『오빠가 돌아왔다』 이후 소설집으로는 6년 만이다. 올해 초 이전의 작품들이 ‘김영하 컬렉션’으로 재출간되었고, 이에 맞춘 디자인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가 발간되었다. 열 세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렸다. 무엇보다 소설 길이가 제 각각인 점이 눈에 띈다. “청탁 없이 쓴 소설이라, 기존의 단편소설의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이야기가 필요로 하는 분량까지 썼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는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데뷔, 소설집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오빠가 돌아왔다』 장편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랑은 왜』 『검은 꽃』 『빛의 제국』을 출간했다.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등단한지 3년 만에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프랑스에 번역 출간된 이후 여러 작품이 미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중국에도 판권이 수출되어 세계의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6년 만이지만, 독자들은 그 이름을 반갑게 불렀다. 현재(8월 31일)까지 2만 6000부가 판매되었고(문학동네 제공), 올해 발간된 단편소설집으로는 최고 부수를 기록했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이미 소름이 돋았을 독자들이 널리고 널렸을 테니까. 말하자면 베레타는 참 좋은 총이에요, 당연한 소릴 지껄이고 그걸 말이라고 해요? 핀잔을 들어야 하는 그런 기분”이라고 박민규가 추천사에 쓴 푸념에 공감할 독자가 많을 터.

김영하, 그의 이름은 늘 새로운 이야기에 붙어 있었다. 호출기(같은 것)도 소설의 소재가 된 다는 것을 보여줬던 소설 「호출」은 90년대, 무거운 담론 혹은 감성과 서정이 물씬한 소설들 사이에서 ‘이야기’의 재미를 알려줬다. “한국 소설이 즐겨 다루지 않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요. 자다 일어나 벼락을 맞으러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겠어. (「피뢰침」), 흡혈귀가 나오는 소설을 쓰겠어.(「흡혈귀」) 했을 때 아내조차도, ‘그건 본격문학으로 쓸 수 없는 이야기’라고 웃었거든요. 형사, 탐정, 간첩들의 세계. 본격 문학의 바깥 세계에 관심이 많아요. 사실 좋은 반응이 있었던 소설은 다 남들이 말렸던 얘기들이에요. 사람들이 단체로 멕시코에 갔다가 사라진 얘기 어때? 끈 떨어진 간첩 얘기는 어떨까? ‘촌스럽다, 113 수사본부 같은 얘길 쓰냐’ 이런 반응이 나오면…… 꼭 써야겠다는 투지를 느껴요.(웃음)”

그의 이런 투지 덕분에, 그는 늙지 않는 작가가 되었다. 김영하에게는 언제나 ‘젊은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가 새롭고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얘기다. 독자들은 그의 이름에서, 이야기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기대한다. 그의 소설 첫 장을 넘기는 독자들은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왕의 심정을 안다.

“청탁 없이 내킬 때 쓴 소설들이 대부분이어서일까. 모아 읽는 호흡이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었다. 내 마음에 조용히 깃든 이 내밀한 유쾌가 문장이라는 매개를 통해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기를 희망해본다.”는 작가의 말. 맛있는 이야기를 위해 무엇보다 작가 스스로 소설을 쓸 때 느끼는 본질적인 즐거움을 회복해야 했다. 지난 몇 년의 시간 동안 청탁 없이 ‘쓰고 싶은 소설’을 쓰고, 떠돌던 날들이 그에게는 회복의 시간이었다.

마주앉은 김영하 작가. 젊음은 비단 외적인 스타일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통해서, 생각이나 행동을 선택하는 일을 통해서도 전해진다. 그의 삶을 채우고 있는 ‘본질적인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여전히 아저씨보다 ‘옵빠’라는 호칭이 잘 어울린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김영하, 이름 석자로 인지되는 그만의 감각이 궁금했다. 소설집에서 출발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소설 쓰기와 삶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사라졌던 자발성, 즉흥성이 생겨나더라고요.”

2008년 5월, 출사표를 내듯,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고 이탈리아로 훌쩍 떠나셨습니다.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어떤 변화의 시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것에 연연하지 않게 됐어요. 책에 들어가는 저자 사진도 예전에는 직접 고르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여성 편집자들에게 맡겨놨더니 지금 사진을 넣었어요. 책을 처음 봤을 땐 충격적이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웃음) 책 제목도 세 개 정도 골라두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결정했어요. 그렇게 비본질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게 됐어요.

연연하지 않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이탈리아에서 3달, 밴쿠버로 옮겨서 1년, 뉴욕에서 6개월 정도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짐을 자꾸 버리게 되요. 짐을 정리하면서, 작가로 살아가는 데는 필요한 게 많지 않구나, 알게 됐어요. 노트북과 책상, 카페나 도서관이라는 공간. 그리고 절실한 몇 권의 책만 있으면 되죠. 그러다보니까 다른 일에 연연하지 않게 됐어요.

평소 금욕적인 생활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이번 여행을 통해서 더 절제된 삶을 유지하시겠군요.

대학교 때 철학 개론을 보면서, 제 철학적 입장을 정리한 적이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한 학파가 에피쿠로스학파예요. 정신적 쾌락주의죠. 스토어 학파처럼 금욕적이진 않지만, 높은 형태의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고, 그 밖의 다른 것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아요.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느끼는 고통과 기쁨, 이런 것들에 점점 집중하게 돼요. 그에 비하면 책을 내는 일은 훨씬 지루한 일이에요. 큰 즐거움을 주지 않아요.

사실 저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밤에 술 마시는 일도 거의 없거든요. 취미도 없고, 다른 것에 탐닉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있어요. 이것이 나에게 깊은 수준의 만족감을 주느냐. 그걸 주지 못한다면 그만 두는 거죠. ‘KBS 문학포커스’를 진행했었는데, 좋은 프로그램이었지만, 그걸 하는 동안 깊은 만족을 얻진 못했어요. 저는 진행자일 뿐이고, 진짜 작업하는 사람들이 손님으로 오는 거죠. 부러운 거예요. 내가 저거 하고 있어야 하는데, 물어보고만 있으니까요. 그게 무의미한 일은 아니지만, 큰 만족이 되지는 않았죠. 소설가로 살면서 다른 직업이 꾸준히 있었어요. 방송을 진행하거나 교수 혹은 어학당 강사인 적도 있었지만, 오래는 못했어요. 깊은 만족감이 없는 일들은 오래 할 수 없었던 거죠.


이번 소설은 청탁 없이, 마음이 끌리는 때에, 끌리는 것에 대해 썼다고 하셨는데요. 청탁 없는 소설은 결국 마감 없는 소설이기도 한데, 그만큼 자기 관리가 되시는구나 싶었습니다.(웃음)

예전에는 저도 원고료 없는 글은 절대 안 썼어요. 원고료 없는 글은 안 쓰게 되요. 왜냐하면 원고료 있는 글도 못쓰고 있는데, 어떻게 원고료 없는 글을 쓰겠어요. 저는 단편소설 청탁을 안 받은 지 5~6년 됐어요. 그러다보니, 제 안에 사라졌던 자발성, 즉흥성이 생겨나더라고요. 등단 전엔 그렇게 했거든요. 모든 문청들이 그렇듯 원고료를 안받고 글을 쓰죠. 그땐 주는 사람도 없고요.(웃음) 이번에 소설을 쓰면서 그때 생각이 났어요. 자기 관리 철저하다기 보다는 그렇게 초심으로 돌아가다 보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긴거죠. 작가로 살아가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데, 이번 작업이 스스로에게 힘이 된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청탁을 받지 않고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도 소설을 계속 쓸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 자부심을 북돋아 준 면이 있어요.

한동안 작품이 나오지 않고, 더 이상 청탁도 받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작가님의 작품을 고대하는 지인들과 ‘받을 상을 이미 다 받아서 목표를 상실한 게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습니다.(웃음) 그런 것과도 관계가 있을까요?

문학을 하다보니 상도 받게 된 것인데, 목표를 상실했다기보다는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상 받는 일이 짐작만큼 에피쿠리안적인 큰 기쁨을 주진 않아요.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도 있고요. 보상에 관심을 갖게 되면, 순수한 즐거움을 잃어버려요. 어떤 사람이 종이접기를 잘하고 있어요. 취미로 열심히 하는데 옆집 사람이 와서, ‘당신 종이접기 너무 잘한다. 이거 내가 좀 떼어 가면 안 되겠냐. 하나 당 천 원씩 줄게’하고 팔기 시작했다고 쳐요. 그럼 그 순간 이 사람에게 종이접기가 일이 되는 거죠. 안 팔리면 서운하고, 팔리면 기분이 좀 좋았다가 흥미를 잃어버리죠.

문학상은 좋은 보상시스템이죠. 하지만 그것도 본질적인 흥미를 앗아가는 면이 있어요. 명예라던가 돈을 통해 인정을 받으면 그 뒤에 작품을 하기 편하긴 한데요.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반드시 있기 마련이죠. 단편을 그만 쓰자 생각한 것에는, 문학 제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런 것을 정리하고, 쓰고 싶을 때 글 쓰는 사람이 되니까 예전에 처음 소설을 썼을 때 느꼈던 즐거움, 기쁨을 되찾는 것 같아요. 제가 출판사에서 선 인세를 받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분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써야 하는 소설을 쓰게 되면, 그게 저나 출판사에게 좋은 것 같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작품 발표하는 속도가 느려지는 감이 있고요. 게을러지긴 하는데 마음은 좀 편안하죠.


지금은 즐거움을 회복한 상태신가요?

100%는 아니지만, 많이 회복 됐고요. 요즘엔 다시 또 떨어지고 있어요.(웃음) 농담 삼아, 책 나오고 한달 정도를 ‘공생활’(公生活)한다고 하는데, 세상 밖에 나와서 사람들도 만나고, 독자도 만나는 거죠. 하지만 곧 끝납니다. 끝나면 다시 아무도 절 찾지 않는 제 책상 앞으로 돌아가겠죠.


“당신이 미뤄둔 질문들, 언젠가 돌아와 시험을 치를 겁니다.”


이전에 장편소설이야말로 진검승부, 그에 비해 단편소설은 실험적인 장르라고 하셨는데요. 이번에 모처럼 단편 작업을 하시면서, 단편 소설에 대해 생각이 변하거나 정리된 것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단편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갖게 됐어요. 장편은 두바이에서 정유공장 건설하듯이 써진다고 생각해요. 계약을 하고, 사막에 토대를 쌓고, 도로를 건설하고, 인프라를 건설하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장편이에요. 그렇게 장편만 몇 년 동안 쓰다 보니까, 이번에 단편 쓸 때는 더욱 ‘단편스러운’ 소설을 쓴 것 같아요. 단편인데도 장편 같은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있어요. 단편인데도 빡빡하고, 여러 이야기가 들어있는 소설들이 있거든요.

차를 몰고 가다가 신호대기를 받아서 정지한 상태에서 옆을 봤을 때, 두 남녀가 드잡이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키스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울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걸 잠깐 보다가, 뒤에서 차가 빵빵거리면 출발해야죠. 그게 단편의 세계에요. 지나가다가 장막을 발견하면, 살짝 들추고 가는 거죠. 오래 머물거나, 그 안으로 들어가면 장편이 되요. 옛날에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보이려고 많은 장치를 붙였는데, 요새는 과연 그런 것들이 단편에 필요한가 싶어요. 장식들을 점점 줄이는 거죠. 그게 요새 제가 생각하는 단편의 모습이에요.


한국 사회는 당장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들썩이고 혼란스러운 곳이라고 얘기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한국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라는 책을 내셨고요. 이것이 한 맥락에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상황을 함축한 제목이란 느낌이 들었어요.

제목을 세 가지 뽑아 두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어요. 많은 분들이 이 제목을 지지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거기에는 어떤 집단 무의식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왜 이 제목을 마음에 들어 했을까? 생각해보니, 요즘 많은 일이 발생하는데, 도대체 그 일이 무슨 의미인지, 실제 전후는 어떻게 된 건지 정확히 알기도 전에 그 사건이 지나가고 있더라고요.

해외에 있을 때 시차가 있잖아요. 뉴욕 같은 경우 12시간 시차가 있는데, 한국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면, 한참 뒤에 알게 되요. 그래서 검색을 해보면, 이미 그 사건이 뭔지 알 수가 없어요. 관련기사 3600개!(웃음) 남대문 화재 사건이 났어요. 제가 사건을 찾아 볼 때가 되면, 핵심은 흘러갔고, 잡힌 범인이 어떤 사람인지, 문화재 보호의 문제점 등으로 넘어가 있어요. 사건들이 빠른 속도로 기사 더미 속에 묻혀 버려요.

우리 모두가 진실을 합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건이 지나가잖아요. 이런 게 계속 쌓이면, 마음에 불안감이 계속 쌓이죠. 우리 사회의 진짜 불안은 내가 뭘 모르고 있다는 불안이 아니라, 나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거죠. 그래서 그것을 그대로 덮어둔 채, 다음 사건으로 끝없이 정보만 탐색하면서 지나가는 거죠. 정보는 탐색한다고 저절로 그 의미가 찾아지진 않아요.

단편 소설 「여행」을 예로 들면, 내 남자친구가 갑자기 왜 나보고 여행을 가자고 하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리고 나는 왜 남자친구한테 결혼한다고 밝혔는지? 알 수 없다고요. 이런 문제의 해답을 계속 회피하다보면 언젠가 결정적인 장면들을 인생에서 꼭 만나게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중요한 질문들을 피해가도, 어느 순간 그것들이 돌아와 밀린 빚을 받아가거든요. 사람들이 그런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미뤄둔 질문들이 언젠가 돌아와 시험을 치룰 거예요. 쪽지 시험을 아무리 미뤄도, 기말 시험은 제때 온다.(웃음)


그렇다면,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떤 순간에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꾸 어떤 문제들을 미루고 이월하잖아요. 희망이든 걱정이든. 한번쯤 멈춰 서서 자기를 대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지난 2년이 그런 시간이었거든요. 지난 2년 동안, 별로 가진 것 없이 떠돌면서 여행 가방만 들고 2년을 살았는데, 그렇게 떠돌다보면 본질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조」는 오래전에 쓴 소설인데, 다시 보니 괜찮아서 이번 소설집에 넣었다고 하셨어요. 작가님께 좋은 소설, 별로인 소설은 어떻게 인식이 되나요?

「조」는 발표한 직후에 이상한 것 같아서 처박아 두었어요. 이번에 단편집을 묶으면서 십년 만에 꺼내 봤는데, 세상이 별로 크게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백화점에 이런 도둑놈은 많다고 해서, 다시 수록해본 거죠. 작품의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비상구」라는 소설도 그랬어요. 갑자기 영감을 받아서 오밤중에 일어나 새벽까지 미친 듯이 써서 완성을 했어요. 술집 삐끼들의 이야긴데. 쓰고 보니까 너무 야하고, 폭력적인 거예요. 프린트해서, 책상 서랍 속에 넣어놓고 반년 가까이 발표도 안했어요. 발표하면 사람들이 날 미워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어떤 계절에 단편 세 작품을 발표해야만 했는데, 2편까지밖에 못쓴 거죠. 할 수 없이 「비상구」를 꺼내야만 했어요.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재밌다. 이정도면 문학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계절에 발표한 소설 중에 「비상구」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어요.

「비상구」를 자다가 일어나 써낸 이야기라고 하셨는데요. 그 깊은 밤에 불쑥 튀어난 이야기가 그렇다면(!) 혹시 작가님에게 그런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는 건 아닐까요?(웃음)

저는 상당히 폭력적인 젊은이였어요. 20대에는 사람도 많이 때리고, 맞기도 하고. 분노나 울화를 참지 못했어요. 길에서, 취중에, 혹은 차를 운전하다가 옆 차 운전자와 싸워서 경찰서까지 가는 일도 많았고,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었죠. 어떤 점쟁이가 저에게 그랬어요. 저는 성질이 나무인데, 바위가 저를 짓누르고 있대요. 나무는 자라기 마련이고, 바위는 부서지기 마련이니 세월이 지나면 온순해질 거래요. 정말 그렇게 됐어요.

아무래도 소설을 쓰는 일이 폭력성을 다독이는 역할을 했겠네요.

20대만큼 그렇진 않지만, 마음속에 반항심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지금도 세상의 아버지들을 만나면 여전히 화가 나요. 예를 들면, 교사들이 아이들을 체벌하는 문제라거나 난데없이 제 소설을 교과서에 싣겠다고 할 때는, 참을 수 없는 반항심이 생겨요. 저는 세상의 아버지나 교과서의 저자라든가 상을 심사하는 사람이라든가 남에게 훈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 나에게 그런 걸 강요하면 지금도 화가 나지만, 꾹 참고 있어요. 소설을 쓰다 보면 비교적 폭력성이 많이 사라집니다. 많이 이해하게 되요. 다 사정이 있겠지. 그러려니. 그러다보면 많이 유해져요.

소설을 쓰는 일은 남성으로 말하자면, 거세되는 거예요. 남성성을 많이 잃어버려요. 「마코토」라는 소설에도 썼지만, 남자의 일이라는 것은 테스토스테론이 분출되는 영화감독이나 해군 제독 같은 거죠. 모두가 그 사람 결정에 따라 생과 사를 오가는 상황들을 연출하는 게 남성적인 일이라면, 소설은 그렇지 않죠. 누가 지휘하는 사람도 없고요. 지휘한다고 말을 듣지도 않아요. 혼자 자기 방에서 마치 침모가 이불을 꿰매듯 혼자 조용히 일하는 거예요. 잘못 꿰맸네, 싶으면 풀고 다시 꿰매고, 매우 여성적인 일이에요. 보험 가입하겠다면 즉각 받아줘요. ‘작가세요? 오토바이 안타시죠?’ 보험료도 싸죠. 바로 가입시켜 줍니다.(웃음) 어떤 의미에서는 여성화되는 거예요.


작가님은 이불을 꿰매시면서 열반의 경지를 느끼시잖아요.(웃음)

그쵸. 재미있긴 해요. 이런 이불, 저런 이불, 다양한 이불을 꿰매니까.


“같은 소설을 보겠지만, 우린 모두 다른 꿈을 꾸게 될 겁니다.”

2008년 <에스콰이어>에 실린 김영하의 단편소설 「명예살인」, 전세계 200여명 작가가 매달 넵킨 한 장에 소설을 쓰는 ‘넵킨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품이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각색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도 좀 의외였는데, 작가님의 많은 작품 속 기본 정서는 대부분 멜로입니다. ‘멜로물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고백도 하셨는데, 멜로물에 대한 어떤 순정을 갖고 있나요?(웃음)

멜로를 되게 쓰고 싶어 했죠. 제가 워낙 사랑얘기를 좋아하고요. 사랑얘기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 중 하나잖아요. 그 속에서 작가가 할 수 있는 게 참 많아요. 멜로가 왜 멋지냐면요. 한 시대의 도덕과 윤리에 관한 것을 민감하게 건드릴 수 있어요. 『마담 보바리』도 그랬고, 문학사의 획을 그은 작품엔 멜로, 사랑 소설이 많아요. 남녀간의 연애를 소재로 하면 뭐든지 날카롭고 민감해져요. 욕망에 눈이 멀잖아요. 평상시엔 하지 않을 일들을 하거든요. 그게 작가들을 흥미롭게 만들죠. 사람들이 쿨하게 사는 얘기는 소설에선 크게 재미없어요. 격렬하게 부딪치고 끝까지 가는 일이 사랑 얘기에는 있죠. 앞으로 시간이 허락한다면, 장편으로 써보고 싶어요.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내시는 편인가요? 처음부터 정해두고 쓰는 편인가요? 가끔 작가님 소설을 보면, 작가님조차 끝을 모른 채 이야기를 끝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거든요.

대체로 인물에 맡겨두는 편이니까요. 인물들끼리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예상치 못하게 전개되는 경우가 많아요. 소설이라는 것은, 가려고 했던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도착하는 게 정상이에요. 강이 있고, 이 나루터에서 저쪽으로 건너가야지 하고 건너가지만, 예기치 않은 일로, 가려고 하지 않았던 곳에 도착해야 정상이에요. 어떤 천재적인 작가도 자기 소설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고, 완벽하게 예측했다면 그 소설은 굉장히 단순한 소설입니다.

엉뚱한 곳에 도착한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독자에게 무엇을 주나요?

주는 건 없죠. 마치 우리가 인생을 겪듯이 소설이라는 것은 ‘겪는 것’입니다. 겪으면서 그것이 무슨 의미였는지 우리는 나중에 생각하게 되죠. 한 여자가 한 남자와 연애를 한다면, 연애하는 동안 이 연애의 의미는 뭘까. 저 오빠는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지만 사실은 별 의미가 없어요.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나 많은 조건에 좌우되죠. 저는 연애라는 것은 두 남녀가 같이 겪는 하나의 현실, 환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인물들에게 시달리면서, 어떤 작품을 완성해놓으면, 독자는 각자의 가상현실인 소설을 겪는 거죠. 그것이 무슨 의미였는지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될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어요. 메시지는 없어요. 일종의 인셉션이죠.(웃음)

쓰는 사람에게는 어떤가요?

소설을 쓰는 동안 어떤 환상을 겪어요. 또 다른 인물들이 나타나고요. 인물들이 걸어 들어오죠. 그러나 그것과 독자들이 겪는 것과는 관계가 없어요. 저는 이렇게 표현하는데 극장지기 같은 거예요. 제가 극장의 열쇠를 가지고 있어요. 그 열쇠를 열면, 배우들이 들어가죠. 연기를 하는 거예요. 전 지시를 내리고, 배우들이 제 말을 듣지 않기도 해요. 극이 완전히 완성되면 저는 떠나요. 제가 가면 그 다음에 관객들이 표를 끊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니 제가 겪는 환상하고, 독자들이 겪는 환상은 좀 달라요. 이것은 우리 모두가 밤마다 잠을 자면서, 똑 같은 현실을 겪고도 모든 악몽이 다르듯이, 소설도 그렇게 존재해요. 여러분들은 똑같은 소설을 보겠지만, 각기 다양한 꿈들을 꾸게 될 거고, 다양한 기억으로 그 소설을 갖게 되는 거예요.

독자와 작가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네요. 작가들이 소설을 두고 무언가 의도했다고 하잖아요. 뭔가 주고 싶다거나,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하는데, 작가님에게는 그런 게 환상인 것이네요. 환상 그 자체.

세상에 없었던 뭔가를 내놓는 거죠. 소설의 의미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어떤 이야기를 내놓으면, 두 자아가 대화가 가능해져요. 우리 보통 사람들의 자아는 너무 연약해서요. 어떤 매개물 없이 맞부딪치면 살이 쓸려요. 오래 접촉하면 안돼요. 그럼 뭐가 필요하냐. 그 사이에는 두 연약한 자아를 중계해줄 서사물, 매개가 필요해요. 그래서 친구에게 책을 선물한다고 생각해요. 대화가 가능해지는 거죠. “「여행」 봤냐? 그런 남자 만나면 안 되겠다, 야.” 만약 이런 것 없이 남자와의 아픈 경험, 끔찍했던 경험을 얘기하려고 하면, 다 울어요. 집단 심리상담 같은 걸 보면, 날것으로 이야기하면서 울게 되잖아요. 연약한 자아들이 이야기라는 매개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데, 이때는 작품을 매개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오히려 독자들과의 소통은 직접적으로 하시잖아요. 작가님에게 트위터와 홈페이지는 어떤 기능을 하나요?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내거든요. 술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단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서 일을 하니까요. 그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아요. 트위터나 블로깅은 저에게 산책 같은 것이죠. 임마누엘 칸트가 그랬듯이, 일정한 시간동안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얘기도 나누는 일. 그것 자체가 정신건강을 유지시켜 줘요. 제가 생각하는 트위터는, 밤이나 낮이나 산책할 수 있는 쇼핑 아케이드 같은 거예요. 일정한 시간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자기 아젠다를 쇼케이스에 내 놓는 거죠. 지나가다 관심 있는 쇼케이스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이거 재미있네요’라든가. ‘이 음악 어때요’라든가. 그 아케이드를 쭉 통과하면 내가 사는 집으로 돌아오게 되겠죠. 어떻게 보자면 실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겠죠.(웃음)

최첨단의 시대에도 이러한 소통들이 진실과는 거리가 있고, 사람을 더 외롭게 하는 것이라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늘 항상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진짜 깊은 수준의 소통은요. 대화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인간과 인간이 깊은 소통을 위해서는 소설이 필요해요. 소설을 통해서만 정말 깊은 수준의 교감과 공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책의 저자와. 그 책과 소통하는 거죠. 그 책에 만들어진 인물들과 소통하는 거예요. 제가 경험한 가장 깊은 소통은 작가와의 만남에서 경험한 적도 없고(웃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경험한 적도 없고요. 고요히 혼자 집에서 읽은 책에 내용과 거기의 인물들, 책과 소통했던 것이 가장 깊은 소통이었어요. 영화는 두 시간이라 너무 짧고요. 뭘 깊이 소통했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가장 깊은 수준의 소통은 책을 통해서 얻는 거죠.


“다문화 가정 아이들 중 세계적인 작가 나올 것”


처음 작가님 작품이 등장했을 때, 당대 소설들과 다르다는 평을 받으며 주목받았습니다. 이후 개성 있는 문체, 다른 감각의 여러 젊은 작가들이 등장했는데요. 지금의 한국 소설은 어떻게 보시나요?

미술사에서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하는 것은, 기술과 기예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의미에서 쓰였어요. 매너리즘의 문제는 ‘잘하지만, 큰 매력은 없다’는 거예요. 어쩌면 한국 소설들은 그 단계에 와있을지도 몰라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소재들도 다양해지고 있지만, 어떤 혁명적인 변화의 단계로 넘어가지 않은 단계죠. 90년대 배수아, 은희경, 백민석 이런 작가들이 등장했을 때 충격을 줬던 것은, 이전 소설과 완전히 달랐거든요. 거칠었고, 세련됨 같은 것도 많이 떨어졌어요. 저는 그 시대에 작가가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요.

90년대가 참 멋진 시대였어요. 96년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냈는데, 96년에 첫 작품을 낸 영화감독이, 김기덕과 홍상수예요. 그 두 감독이 그 해에 <악어>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찍었어요. 그때 그런 기운이 있었어요. 이제 또 한 번 그런 기운이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아마 이번에 오지 않는다면, 또 10년~15년 후에나 올 거예요. 그 주체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일 겁니다. 이 아이들이 10년, 15년 후에 서서히 등장하고, 이 중에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도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전 세계 문학사를 봐도, 이민자 출신의 식민지 출신의 중요한 작가들 참 많았거든요. 언어적 감수성이 민감하고, 예민하고, 자의식도 날카롭고 아웃사이더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잖아요. 그에 반해서 한국사회에서 자라나고 있는, 중산층 가정의 학생들은 지나치게 평준화 되어 있어요. 평균적으로 아파트 단지에 살고 4인 가족 혹은 3인 가족의 삶에서 학원에 다니고, 아주 평균적이고 보편적인 삶을 살거든요.


9월에는 미국에서 『빛의 제국』이 번역되어 나옵니다. 작가님 작품이 활발히 번역되고 있는데, 반응이 어떤가요? 같은 단어라도 나라마다 단어의 감수성이 다를 텐데, 통한다고 보시나요?

번역의 역사는 오역의 역사에요. 그리고 오역이 좋은 결과를 빚은 적도 많아요.(웃음) 전 오역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단지 운이 좋기를 바라고 있어요. 제가 쓴 것보다 나아질 수도 있잖아요.(웃음) 오역이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세계문학을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작품들 다시 읽어보면 정말 한심한 번역들 많거든요. 그러나 그래도 저는 그 작품들을 즐겼어요. 오역이라고 해도, 제가 도스토예프스키, 빅토르위고 작품에 실망하지 않았거든요. 그런 말이 있어요. ‘번역된 작품의 작가는 자기 작품 앞을 지키는 눈먼 파수꾼이다.’ 내 것이라고 지키고는 있는데 좋은지 나쁜지 잘 모르는 거예요. 표지에 제 얼굴도 있고 하니까, 내 소설이라니까, 내 것인 줄 알자.(웃음) 그러고 있는 거죠. 번역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어요. 그다지 연연하지도 않아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두고, 프랑스에서는 제목이 강하다고 바뀌기도 했잖아요. 그렇게 나라마다 다른 반응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다르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자살에 관한 문제라서요. 가톨릭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거부감이 커요. 이탈리아에서 아직까지 번역이 안됐는데요. 그 이유가 교황청 때문이에요. 아직도 로마 교황청이 이탈리아 안에서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요. 출판업자들이 꺼려하죠. 터키는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도인데도 그 책이 나왔어요. 이슬람 반대하는, 터키의 좌파들이 그 책을 냈어요.

이슬람 원리주의에 반대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이런 권리가 있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낸 거예요. 엉뚱한 논쟁에 휘말려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친 유럽계의 터키 좌파들이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요. 책이 흘러가면요. 상상하기 어려운 맥락을 만들어냅니다. 한국에서 책을 내도, 독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데, 번역을 거쳐서 해외로 나가게 되면 거의 통제 불가능해요.


작가님 책이 유독 해외로 자주 건너가는 까닭은 뭔가요. 작가님이 애초부터 염두에 두신 건가요?

해외 번역되는 일은 운에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첫 번째 책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프랑스에서 비교적 일찍 나왔어요. 등단한지 3년 만이죠. 우리가 프랑스 문학 자장 안에서 자라지 않았습니까?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기분 좋았고, 덕분에 어떤 희망을 갖게 됐어요. ‘아, 소설을 쓰면 프랑스에도 팔릴 수가 있구나.’ 싶어서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했고요.(웃음) 계속해서 그쪽을 염두에 두게 된 거예요. 영어공부를 한다거나,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식으로 노력을 하기도 했고요.

첫 번째 책이 나가고 나서, 한동안 번역이 이어지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프랑스에서 책이 출간된 지 8년 후에 그 책이 미국의 편집자에게 흘러갔어요. 다행히 그 사람이 불어를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미국의 좋은 문예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면서, 유럽 국가들이 다시 관심을 갖게 됐고요. 그때부터 폭발적으로 해외 판권들이 나가기 시작한 겁니다. 초기의 운이라고 할 수 있죠.


처음엔 운이지만, 계속 이어져나가는 건, 작품이 그 나라에서도 반응이 있다는 뜻이잖아요.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글로벌 감각’은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처음에 등단한 후에 직업이 없어서, 연세대학교 한국어 학당에서 외국어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어요. 제가 한국말을 좀 잘하잖아요.(웃음) 네이티브고, 발음도 좋은 편이고. 한국말을 3년 정도 가르쳤는데, 그때 다양한 나라의 외국 학생들을 겪었어요.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외국인들을 다르게 생각할 수 있구나.’ 김영하 혼자 경험한 ‘미수다’(미녀들의 수다)죠. “한국 사람들은 왜 남의 집에 와서 냉장고 문을 막 열어요?” 이번에 「마코토」에도 나오는 얘기지만, 마코토 같은 캐릭터가 그냥 나온 건 아녜요. 그때 경험이 저에게 어떤 국제, 세계에 대한 감각을 키워줬고, 한국사회를 타자의 시선에서 볼 수 있게 해줬어요.


“지금 당장 예술가로 살아가길 권하고 싶어요.”

오래 전부터 작가를 꿈꾸셨다고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이야기꾼의 자질을 내비쳤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도 제가 얘기하면, 애들이 사탕을 내고 들었어요.(웃음) 다 지어낸 얘기였죠. 지금 들으면 유치한데. 시골 애들이 순진하니 잘 들어요. 잘 듣고 ‘또 해줘, 또 해줘’해요. 내일 한다고 하면, 먹을 것도 갖고 오고요. 남자애들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나가서 농구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제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는 애들이 있었어요.(웃음) 별거 아녜요. 제가 성당 주일학교에서 겪은 이야기. 성당 주일학교 청소년들의 연애 얘기. 연재를 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직업 작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죠. 시골의 어린이였기 때문에, 그런 일을 아무나 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서울에 가면 똑똑한 애들이 참 많을 줄 알았어요. 와보니까 꼭 그렇지도 않더라고요.(웃음) 애들이 너무 얌전해요.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선생님한테 혼날까봐 조심하고. 시골 애들은 상당히 거칠어요. 아지트도 많고요. 담배도 일찍 배우고, 야한 것도 일찍 깨우치고. 시골에서는 동물들을 많이 보잖아요. 일찍이 자연의 섭리를 다 깨달아요.(웃음) 서울 애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학교 앞에 병아리 살까 말까 이런 고민이나 하지. 시골 애들은 그거 닭 안 된다. 금방 알아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 분들이 토로하시는. 서울 상경의 충격과 공포, 이런 건 없었겠네요.(웃음)

있었죠. 일단 여자애들 얼굴이 너무 하얗다는 거. 진짜 무서웠어요. 하얀 여자랑 말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시골에서 하얀 애 보면 「소나기」예요. 비와야 할 것 같고. 원두막 가야할 것 같고. 초등학교 6학년 말쯤에 서울에 올라왔는데. 그땐 별 존재감 없을 만큼 조용한 학생이었어요. 다시 이야기꾼이 되기까지는 2~3년 걸렸죠.(웃음)

이전에 ‘내 안에 어린 예술가를 보호하라’는 말씀으로 많은 예술가 지망생들을 위로해주셨는데요. 수많은 매체들, 끼 있는 영혼들 때문에 불안해하는 어린 예술가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지금 당장 미루지 말고 예술가로 살아갈 것을 권하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삶이 괴롭죠. 제가 뉴욕에 갔다가 어떤 택시 기사를 만났는데, 조수석 뒤에 자기 프로필을 걸어놨어요. 알고 보니 연극 배우였던 거예요. 무슨 역할을 많이 하냐고 물었더니, <리어왕>이래요. 이 사람은 밤에는 리어왕이고 낮에는 택시기사인 거예요. 유명한 대사가 있어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 사람이 딱 그런 사람이에요. 이중 정체성을 갖고 있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미래상은 사람들이 여러 개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그 중 하나는 예술가인 거예요. 옛날보다 예술 하기가 정말 쉬워졌어요. 예술에 뜻이 있다면, 당장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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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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