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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돌아온 건어물녀

부쵸우! 아메미야 호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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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돌아와 정말 행복한 1人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그녀를 만날 생각에 캔맥주를 사 들고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이번 여름, 니혼TV에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호타루의 빛 2>의 주인공, 우리의 ‘건어물녀’ 아메미야 호타루 말이다.

그녀가 돌아와 정말 행복한 1人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그녀를 만날 생각에 캔맥주를 사 들고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이번 여름, 니혼TV에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호타루의 빛 2>의 주인공, 우리의 ‘건어물녀’ 아메미야 호타루 말이다.

 

새삼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건어물녀(일본어로는 干物女, 히모노 온나)’라는 말은 히우라 사토루의 만화 『호타루의 빛』에 처음 등장, 이 작품을 각색한 2007년 니혼TV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드라마의 주인공 호타루처럼 직장에선 누구보다 일 잘하고 똑 부러지는 ‘알파걸’이지만 퇴근하면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에 떡 진 머리로 맥주에 오징어를 벗 삼는 싱글 여성을 뜻한다. “역시 집이 최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주말에도 피곤을 푸느라 늘어져 있다 보니 ‘연애 세포’가 말라 건어물처럼 됐다고 해서 ‘건어물녀’다.

이런 호타루가 까칠한 이혼남 다카노 부장과 우연히 같은 집에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작품이 『호타루의 빛』. 기본적으로는 남녀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다 사랑에 빠진다는 흔한 로맨틱 코미디지만, 수많은 20~30대 직장 여성들을 열광케 한 것은 ‘마치 나 자신을 보는 듯한’ 건어물녀의 리얼한 일상이었다. 이 드라마가 방송된 후 일본에서는 ‘건어물녀 자가테스트’가 유행했는데, 항목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제모는 여름에만 하면 된다고 생각’ ‘방에 널어놓은 빨래는 개기 전에 그냥 입어 버린다’ ‘라면은 냄비 채로 먹는다’ ‘최근 일주일간 가족과 회사 동료 이외의 이성과 10분 이상 말해 본 적이 없다’ 등등.

드라마 <호타루의 빛 2>는 1편으로부터 3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한다. 호타루는 그간 홍콩 창업빌딩 리뉴얼 프로젝트에 차출돼 3년간 홍콩에서 근무하다 일본으로 귀국했다. 1편의 마지막에 다카노 부장과 러브러브 모드에 돌입한 것으로 보였지만, 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관계는 지지부진하다. 홍콩으로 떠날 때만 해도 “매일 편지할게요”라며 장거리 연애를 다짐했던 호타루가 3년 동안 부장에게 보낸 것은 달랑 엽서 한 장뿐. 이유는? 건어물녀스럽게 ‘일도 너무 바쁘고 귀찮아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돌아온 그녀에게 부장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청혼을 하고, ‘결혼’이란 과제를 둘러싼 건어물녀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사실 2편의 전개는 만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순수 창작물이다(만화는 15권에서 두 사람이 연결되면서 이미 완결). 하지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와 재치 만점의 대사, 코믹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에피소드 등은 2편에서도 여전하다. 술에 취해 뻗어버리는 바람에 직장동료 세나와 모텔에 가게 된 호타루, 아침 일찍 침대에서 눈을 뜨니 옆 자리에 남자가 자고 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기는 커녕, “남자랑 같이 누워 있는 게 얼마 만인가? 조금만 더 이대로 있자”며 다시 눈을 꾹 감아버리는 건어물녀. “너무 굶었어”를 외치던 우리의 김삼순 언니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여튼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보다 만화 『호타루의 빛』을 조금 더 좋아하는 편인데, 톡톡 튀는 웃음을 강조한 드라마에 비해 만화 쪽은 심리묘사가 세심하고 탁월하다. 일도 중요하지만, 결혼도 하고 싶고, 하지만 일도 사랑도 뜻대로는 풀리지 않아 고민하는 호타루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대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 드라마에서는 단역에 그치고 마는 주변인물의 이야기가 만화에서는 보다 생동감 있게 그려지는 것도 장점이다.

드라마의 장점을 들자면 역시 호타루 역할의 배우 아야세 하루카다. 헐렁한 추리닝 바지에 목 늘어난 티셔츠, <미래소년 코난>의 포비 헤어스타일을 하고 마루를 데굴데굴 구르는 그녀는 여자가 보기에도 너무 귀엽다. 알다시피 이 드라마는 반드시 맥주 캔을 옆에 두고, 건어물녀의 늘어진 포즈를 재현하며 봐야 제맛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실수로라도 거울을 보면 안 된다는 것!! 엉덩이를 벅벅 긁으며 냉장고를 뒤지는 모습마저 깜찍한 건 그게 아야세 하루카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디 잊지 말자. 자칫 TV 화면에 어렴풋이 비친 ‘진짜 건어물녀 한 마리’를 목격하기라도 하는 날엔, 맥주 한 캔이 폭음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주의.

‘건어물녀’라는 표현도 그중 하나지만, 일본에는 유난히도 결혼을 안 한 여성들만 꼭 집어 부르는 용어들이 많다. 그중 대표주자가 ‘마케이누(負け犬)’다. ‘싸움에 진 개’라는 뜻으로 30대 이상에 미혼, 아이 없는 싱글 여성을 뜻한다. 반대말은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 승리한 개, ‘카치이누(勝ち犬)’. 몇 년 전에는 ‘아라포’라는 알쏭달쏭한 단어가 한참 유행이었는데, 이는 ‘어라운드 포티’(Around 40)의 준말로, 소비력이 왕성한 40세 전후의 미혼 직장여성을 뜻한다. 아라포를 목전에 둔 30대 인근의 미혼여성은 ‘아라사’(Around 30)로 불린다. 2008년 일본 T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어라운드 포티-주문 많은 여자들>을 통해 유행어가 됐다.

‘마케이누’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은 2003년 칼럼니스트 사카이 준코가 쓴 『마케이누의 절규』(한국판 제목 『결혼의 재발견』)라는 책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30대 후반의 싱글이었던 저자가 자신이 어쩌다 ‘싸움에서 진 개’가 되고 말았는지를 자조적으로, 그리고 가혹하게 분석한 책이다. 뻔한 이야기지 싶어 읽지 않았다가 일본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처음 접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날카로운 분석에 놀랐다. 저자는 일본 사회에 마케이누가 급증하는 이유를, 특정한 유형의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마음을 콕콕 찌르던 내용 중의 하나는 이것.

마케이누는 일종의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 죄라는 것은, 삶의 근본에 있어 너무 향락적이다, 라는 게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자건 취직자리건 여행지건 간에 무언가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 눈앞에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고 치자. 오른쪽은 정직하고 안전하지만 그다지 재미는 없는 느낌의 길, 이에 반해 왼쪽의 길은 위태롭지만 스릴 있고 즐거워 보인다. 그런 때 “이쪽이 확실하잖아? 망설일 이유가 있어?”라고 오른쪽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장래에 확실히 카치이누(결혼해 아이도 있는 여성)가 될 수 있는 타입의 사람이다. 이에 반해 오른쪽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오른쪽을 권하는데도 굳이 “인생이란 즐겁지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라며 어떻게든 왼쪽을 고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바로 마케이누가 되고 마는 유형의 인간이다. (중략) 카치이누적인 소양을 가진 사람도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럴수록 개와 같은 후각을 이용해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이 가진 위험의 냄새를 알아차린다. 그래서 위험한 향기가 풍기는 곳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마케이누의 절규』 중에서)

결혼이라는 안정보다는 싱글로서의 삶이라는 모험을 택하고야 마는 유형의 여성들이 늘어난 데는 물론 사회의 변화가 한몫했다. 일본에서는 흔히 여성의 고소득이 보장됐던 버블 경제의 산물이라거나, 열악한 보육 환경으로 인한 출산기피 경향 등이 자주 이유로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 30대를 싱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물어보면,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돼 버렸네”라는 답이 가장 흔하다. 딱히 일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이니 결혼 같은 건 안 해’라고 결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 날 문득 깨닫고 보니, 건어물녀가, 마케이누가, 아라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집 『걸』「띠동갑」이라는 단편에 등장하는 서른 네 살의 싱글녀 요코는 이렇게 말한다.

요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자면, 결혼으로 생활을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과 자유와 연애, 그중 하나라도 잃고 싶지 않았다. 서른넷이 된 지금은 이 나이가 되어서 타협하고 싶지 않다는 것과 슬슬 결혼하지 않으면 평생 독신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반반이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해서 그냥 일상생활에 묻혀 살고 있는 것이다. 진짜로 바라는 것은 시간이 멈춰주는 것이다.(「띠동갑」 중에서)

결혼을 안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기에 소개팅 꽤 열심히 한다. 「띠동갑」에는 이런 30대들의 미팅 의존증에 대해 ‘모라토리엄(지불불능상태,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자신은 분명 파트너를 찾고 있다는 구실과 지금 이 상태로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는 마음이 30대 미혼여성들을 소개팅 자리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설레는 만남을 기대하기보다는 자기랑 비슷한 동족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소개팅을 하게 된다는 것.

한동안 제대로 된 연애라고는 한 적이 없는 요코는 어느 날 회사에 새롭게 등장한 자신보다 열두 살이 어린 띠동갑 신입사원 신타로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나이가 많다는 자격지심과 자신보다 어린 여자 후배들을 향한 맹목적인 질투심으로 괴로워하던 요코는 결국 깨닫는다.

그렇구나. 신타로는 나의 현실도피처였구나……. 차분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현실을 마주보는 게 싫어서 나보다 훨씬 나이 어린 남자를 짝사랑하며 시간을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이게 모라토리엄이다.(「띠동갑」 중에서)

돌아온 건어물녀에 대한 반가움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마케이누를 지나 모라토리엄까지 흘러오고야 말았다. 말하자면 그렇다. ‘골드미스’라는 말이 유행했을 때도 내 이야기 같지는 않았고, 문득 깨닫고 보니 아라사인지 아라포인지가 되어 버렸으며, 어쨌거나 꾸준히 건어물녀였다. 현실에서의 남자보다 조카뻘인 아이돌에게 정신을 팔며 ‘모라토리엄’을 즐기기도 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고, 싸움에서 진 건지 이긴 건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나를 규정한들 그게 뭐 그리 중요하랴. 그저 지금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며, 상처는 스스로 치료해 가며, 그렇게 내 방식대로 걸어갈 밖에.

앞서 소개한 「띠동갑」과 같은 소설집에 실린 「걸」이라는 제목의 소설에는 ‘서른이 넘은 소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언제나 젊은 여자의 특권을 누리며 발랄하게 살고 싶었지만, 어느 날 문득 더 이상 자신이 귀엽게 보이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는 걸 깨닫는 서른네 살의 주인공 유키코. “이제 걸♥을 그만둘 때가 되었나”라고 생각하며 자중하려 하지만, 스트레스만 쌓인다. 결국 “내가 즐거워야지”라고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기로 한 그녀.

평생 여자애. 아마 자기도 그 길을 가게 되겠구나 하고 유키코는 생각했다. 앞으로 결혼을 해도, 그리고 아이를 낳아도. 그렇게 살건 말건 내 마음이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뭐.(『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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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영희

  • 걸 Girl <오쿠다 히데오> 저/<임희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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