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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연회]지금 다시 노무현 대통령을 이야기하는 까닭 - 『운명이다』 유시민

‘운명이다’. 그의 운명이기도 하고, 우리의 운명이기도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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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보는 시각, 그의 삶의 태도는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진지한 물음을 건넨다. 이성을, 그리고 이상을 강하게 두드린다. 이것이 노사모 혹은 노빠인 적이 없었던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은 까닭이다.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이에요. 제가 대신 써드리는 거예요. 남기신 기록으로 리라이팅하는 거죠. 그래서 제 맘대로 못 써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고달파요. 지금까지 써본 책 중에 최고로 고달파요. 1주기 전에는 발간해야 하니까, 죽기 살기로 하고 있어요. 지금 한창 원고 검토 작업에 들어갔는데, ‘자서전은 도저히 안 되겠다, 평전으로 바꿔’ 하면 ‘나는’에서 ‘그는’으로 확 바꿔야 해요.(웃음) 이런 책은 생전 처음 써봤고, 앞으로도 쓸 일이 없을 거예요. 한국 출판사(史)에서 전무후무한 이상한 책이 되지 않을까.”

- 유시민 인터뷰 중에서(☞ 보러 가기)

『청춘의 독서』로 유시민 저자를 만났을 때,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평전이 아닌, ‘나는’으로 시작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이라니. 전무후무한 이상한 책을, 그때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보다도, 아직 애도조차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이야기를 쓰는 일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의 ‘고달프다’라는 한마디는 마음 깊숙한 곳까지 서늘하게 했다. 그리고 늦지 않게 그 책이 나왔다. 『운명이다』. 내가 알고 있는 말 중에 가장 무거운 말. 많은 사람이 아파했던 말. 마치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손을 흔들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사진 위로 적힌 ‘운명이다’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쿵. 또 한 번 마음에 묵직한 파장이 일었다. 아무런 손을 쓸 수도 없다는, 나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말. 평생을 살아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 말. 화가 나다가, 체념하다가 그래도 무언가…… 다시 노력하게끔 한 말, ‘운명이다’. 그의 운명이기도 하고, 우리의 운명이기도 한 말.

“책을 정리하게 된 경위와 집필하면서 들었던 생각들.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분이었는지, 애도의 기간이 저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들려 드릴까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좋은 추억을 꺼낼 때는 웃음이 툭툭 돋기도 했고, 안타까운 심정을 전할 때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마른침을 넘기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의 말에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결국 나 역시 그의 이야기를 대신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으로 시작되는, 노무현과 유시민의 이야기로 말이다.

저런 분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고 한다.
이 책에 관한 자리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다.”

“내가 노무현을 처음 만난 건, 1986년도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이었다. 스물일곱 살. 막 출옥했을 때, 노무현 변호사가 나를 전법회의 세미나 발제자로 불렀다. 물 타지 말고 지금 학생들의 생각과 사상을 있는 그대로 말해달라고 했다. 가서 약간만 물을 탄 이야기로 발제를 하고(웃음) 토론을 했다. 어떤 분은 개탄하고, 어떤 분은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에 분반해서 심층토론을 했는데, 거기서 그를 만났다. 당시 세련된 변호사가 많았는데, 부산에서 오셨다는 그분은 눈에 띄게 촌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이후에 그분이 허삼수를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국회노동위원회에서 다시 만났고, 이후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분을 아주 좋아했다. 모시고 있던 이해찬 의원보다 좋았다.(웃음)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저 분이 대통령이 되고, 이해찬이 국무총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됐다.

당시 노동 탄압이 심해서 전국 각지에서 분규가 일어났고, 이상수, 이해찬, 노무현 노동위 삼총사에게 노동자들이 예고도 없이 찾아오곤 했다. 그때 노무현 의원이 사건을 다루는 걸 보면서, 마음속에 연민이 참 많은 사람이구나 느꼈다. 우리는 사회적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일 같았는데, 그분은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일하고 있었다. 보장받지 못하는 권리를 두고 분노와 울분이 뚝뚝 묻어나는 분이었다. 그때 느낀 정의감 때문에, 저런 분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고록 쓰겠다는 약속, 이렇게 빨리 지키게 될 줄이야

“2002년 2월이었다. 노무현 후보의 국민 지지율은 2퍼센트였고, 당 안에는 이인제 후보가 줄을 서고 있었다. 밖에는 부산상고 동창회와 노사모밖에 없었다. 어떤 객관적 근거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당신이 대통령이 된다고 계속 주장했다. 물론 국회의원 6년, 그리고 8개월짜리 장관 경력으로는 어려운 게임이었지만, 나는 틀림없이 된다고 생각했다. 염려하실 때마다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경선은 이렇게 이기게 되고, 본선은 이렇게 하면 되니까, 대통령 될 준비만 잘하고 계십시오, 했더니 하루는 나를 불러서 ‘대통령 되는 건 알겠는데, 내가 대통령이 되면 유시민 씨한테 뭘 해줄까?’ 하시더라.

그때 두 가지를 말씀드렸다. 하나는 청남대를 개방해서 국민들에게 돌려주실 것. 그전에 내가 낚시 한번 하게 해 달라고 했다. 대통령이 분명히 될 것이니, 이후에 회고록을 쓸 때, 그 정리를 내가 하겠다고 말했다. ‘그럽시다’라고 대답하셨다. 첫 번째 약속은 당선되고 나서 두 달도 되지 않아 바로 지키셨다. 두 번째 약속은 오랜 시간 후에 지켜주실 줄 알았다. 퇴임 후,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 판단이 조정된 후에, 회고록을 쓸 때 언급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현역에서 물러날 즈음…… 노무현 대통령이 느긋하게 회고록을 쓰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도 빨리, 갑작스럽게 일이 넘어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나서, 국민장을 지내는 내내 계속 생각했다. 작업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7월 안장식이 봉하마을에서 치러진 후, 이해찬 전 총리가 ‘노 대통령 1주기가 되면, 대통령 일대기를 정리할 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얘기를 꺼냈다. 작업을 맡을 사람을 찾아봤지만, 겁이 나서 못하겠다고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두 달 정도 찾다가 대안이 없어 내가 맡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대통령 일대기를 작성할 생각이었다.

원고지 5,000매 분량의 자료를 수집했다. 언제 태어나서, 어떻게 자랐고…… 쓰다 보니 이게 아니다 싶었다. 여러 기록을 계속 인용하다 보니, 집필자 목소리와 대통령의 육성이 섞였다. 쓰기도 지루했고, 읽는 사람도 당혹스러울 것 같았다. 이 많은 기록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봉하마을에 찾아가 권양숙 여사님과 문재인 실장님, 아들 건호 씨에게 자서전으로 써야겠다고 말했다. 처음엔 당황해하셨다. 그분께서 안 계시는데 어떻게 자서전을 쓰냐는 말이었다. 이런 전례가 없었다. 전례가 없으면 어떤가. 새로운 길을 가는 분이 노무현인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화해서 여쭤보면 그렇게 하라고 하실 것만 같았다. 국민들과 대화를 하기에도 자서전의 형식이 좋을 것 같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전화해서 여쭤보면 얘기해 주실 것 같은데

”집필 작업이 나에게는 애도의 시간이었다.”

“기계적으로 압축, 정리, 삭제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자서전에 기록돼야 할 만큼 의미 있는 사실을 골라내야 했다. 고인이 어느 정도 가치를 부여하고 기록한 것인지를 감안해 재편집했다. 원고지 5,000매 분량의 자전적 기록을 책 한 권으로 압축하는 작업이었다. 스토리는 완성이 되었는데 중간마다 공백이 많았다. 기억이 불확실하거나, 구술 기록 자체가 불확실한 부분들이었다. 대통령은 잘 아는 얘기라 한두 마디로 넘어갔지만, 독자들은 잘 모를 법한 부분이 있었고, 정확한 사실 관계가 필요한 기록도 있었다. 이를테면 대북송금 특검법 같은 경우가 그랬다. 기록은 있지만 반 토막만 남아 있었다. 특검법 시행 전에 김대중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 여쭤보면 뒷얘기를 해주실 것 같은데 기록은 없었다. 이런 부분을 체크해서 취재와 인터뷰를 했다. 그 기록은 전부 녹음하여 음성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산 넘어 산이었다. 그 이후의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 자전적 기록을 짜깁기했기 때문에 문체가 다 달랐다. 문체를 통일해야 했다. 88년도 변호사 노무현의 기록은 엄청나게 씩씩한 청년의 목소리였다. 시국현안의 입장이 잘 나타나 있는 그 기록은 프랑스 혁명가 프루동의 연설을 연상시킬 정도로 강력한 어조로 실려 있었다. 도무지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여보, 나 좀 도와줘』에 실린 기록도 나름 씩씩한 기록이다. 2001년도의 음성 기록은 약간 좌절감이 배어 있었고, 퇴임 직전 인터뷰는 아주 담담한 목소리였다.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남긴 메모나 말씀은 굉장히 초연했다.

소설가 김훈의 문장처럼 단문으로 딱딱 끊어 구성했더니, 도무지 숨이 막혀 읽지 못할 지경이었다. 대통령의 말씀을 가까이 접한 분들에게 먼저 보여 드렸더니 공통으로 그런 지적을 하셨다. 그래서 문장을 다듬는 작업을 해야 했다. 두 달간 네 차례에 걸쳐 작업했다. 글 쓰는 일이 직업이면서도, 어디 외진 곳에 칩거하며 글을 쓴 적이 없었다. 작년 1월에는, 닷새, 엿새씩 산골짜기로 들어가 원고 작업을 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2박 3일간 햇반을 먹으면서 작업을 했다. 여러 차례 손을 거치면서 내 문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분간하기 어렵게 되었을 때,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다.”


최선을 다한 사람, 스스로 당당하고자 했던 사람

책 속에 실려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저자의 모습

남들은 성공한 인생이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다. 인생에서 성공은 무엇이고 실패는 또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기준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굳이 성공과 실패를 따지고 싶지 않다. 돌아보면 나는 한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때로 제어하기 어려운 분노와 열정에 사로잡혀 피할 수도 있었던 상처를 받거나 입힌 일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양심과 직관이 명하는 바에 따라, 스스로 당당한 사람으로 살고자 몸부림쳤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작은 흙집에서 났고, 거기에 새로 지은 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집에서 살다가 죽을 것이다. 이것이 내 운명이다.(p.35)

“어떤 책이든 책을 아우르는 컨셉이 필요하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통해 노무현이 어떤 사람이었노라고 드러낼 수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최선을 다한 사람’이라는 열쇳말을 가지고 시작했다. 1부, 2부는 문제가 없었는데, 3부에서는 그 키워드만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최선을 다한 것은 물론, 스스로 당당하고자 했던 사람’이라고 고쳐 잡았다. 자신의 윤리적 규범, 도덕 기준, 삶의 진실, 이런 것들에 비추어 자신의 선택이 비굴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분이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놓고 봐야 그분이 내린 여러 가지 선택들이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정리를 시작했다.

서거하기 전, 이제 회고록을 써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대통령의 정서를 생각하며 재집필하려고 했다. 그분의 삶의 태도를 최대한 반영하는 쪽으로 문장을 정리하고 해석하려고 했다. 2009년 4월의 노무현…… 그때의 눈으로 태어나서 철들 때, 그리고 2009년의 시점까지 돌이켜보는 일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매 순간의 기록을 재해석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겨, 고민에 시달렸다. 내가 대통령이었더라면, 이 문제를 지금 시점에서 어떻게 정리할까?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 살아계셔서 직접 쓰셨다면 어떤 어휘를 써서 어떤 방식으로 썼을까? 나로서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처음 작업을 할 때 느꼈던 감정은 자책감과 후회였다. 괜히 대통령 되도록 도왔다는 자책감. 서거 일주일 후에 봉하에서 뵙기로 약속했는데 왜 한 주 먼저 가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감. 잘 견디실 거라고 생각했던 미안함…… 모든 것이 후회스러워 괴로웠다. 국민장 기간 내내 후회에 사로잡혔다.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에는 격렬한 분노와 원망이 찾아왔다. 세상 그 자체에 대한 원망이었다. 후회와 자책감 속에서 지난 몇 달의 시간을 돌아보며, 그때 있었던 많은 일, 그런 일을 만들어냈던 어떤 사람들…….

이런 것들이 자꾸 떠오르면서 평소 우리 편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분노가 생겨났고,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당시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원망이 생겼다. 누구라고 말하긴 어려운, 총체적인 것에 대한 분노이자 원망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원고 작업을 시작했고, 탈고하는 시간까지 내가 겪은 감정은 우울함이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괴롭다고 하기보다는, 어떤 말을 들어도 더는 가슴이 설레거나 열정이 들끓지 않는다는 느낌. 그런 것들이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의 열정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렇게 그 시간을 보냈다.”


집필 작업,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을 이해하는 시간

302쪽에 노무현 대통령이 자전거를 타고 논길을 달리는 사진이 있다.
저자는 이 사진이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진 같다고 말했다.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나에게는 긴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내심 이 작업을 내가 맡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책을 쓰지 않았더라도 그 시간은 크게 달랐을 것 같지 않았다. 책을 쓰는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그분이 그 시점에서 우리와 작별한 것에 대해 어떤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노무현은 퇴임한 대통령으로, 평범한 시민으로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셨다.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했고, 이런 작별을 결코 상상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서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결코 이와 같은 마지막을 상상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석에서 종종 쓰는 비유 중에 ‘정치 지도자는 배우가 돼야 한다’고 하셨다. 아침마다 카메라가 항상 따라다니니까 옷이며 분장은 기본이고 화가 나지 않았는데도 화난 것처럼, 화가 나더라도 평온한 얼굴로 주어진 배역을 수행해야 할 때가 있다는 뜻이었다. 군소리 없이 시대가 맡겨준 배역을 소화해내야 한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나름 괴로웠던 순간에 대한 말씀이 아니었나 싶다. 더 머물러서는 시대가 나에게 부여했던 역할을 할 수 없겠다고 판단하셨을 것 같다. 그런 게 아니라면 갑작스러운 작별을 이해하기 어렵다. 떠나간 시점마저 역사가 자신에게 부여한 배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마지막 열네 줄의 말씀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나로서는 이 책을 정리하는 과정이 애도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이제 1주기 지나고 나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애도의 감정을 가졌던 많은 분들 각자에게 걸맞은 작별인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충분한 애도를 마치고, 제대로 작별할 수 있게 하는 선물이 되었으면,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이분만큼 국민에 대한 연민, 국민들이 자신의 행복을 찾으며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공적 사명감을 철저히 가졌던 대통령은 아직 없었다. 그럼에도 이분만큼 오해받고 외면받은 대통령도 없었다. 노무현을 잘 몰랐던 분들에게는 새롭게 알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말 야멸치게 비방하고 비난했던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하지만 비판이라고 야멸친 말을 던졌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다시 한번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 책 속에는 노무현이 누구를 가르치려고 한 내용은 전혀 없다. 그저 왜 그 일을 그렇게 처리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따름이다. 선입견 없이 한 인간의 삶의 이력, 삶을 살아가며 했던 선택들을 지켜본다면, 비판했던 분들에게도 성찰과 발전의 기회를 주지 않을까 하는 지나친 욕심도 있다. 이 정도가 이 책이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드릴 수 있는 말씀이다.”


내가 한 걸음 나아간 만큼 세상도 그만큼 나아간다

6월 2일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15년간 최고치의 투표 참여율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사람들은 다시 노무현의 이름을 꺼냈다. 노무현의 사람들이 선전했다고 말했다. 노무현의 측근이었던 안희정, 이광재 후보가 나란히 최연소 도지사로 당선된 것은 의미심장한 결과였다. 그가 여기 있을 때는 하나로 존재했지만, 가고 난 지금은 여러 개로 존재하는 듯 보인다. <한겨레 21>의 말마따나, 그는 이제 ‘n개의 노무현’으로 존재한다. 상고 출신이라든지 막말 대통령이라든지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언론이 씌운 부정적인 키워드만 떠올리던 사람들도 더 이상 그것을 두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노무현 정신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행여 정치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더라도 그의 인간적인 품성과 매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그가 종종, 많이 그립다.

2010년에 그의 정신은 어떻게 빛을 발할 수 있는지. 그의 신념과 소신이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우리는 앞으로도 더 노무현 이야기를 해야 않을까. 마냥 그리움 속에만 머물지 않기 위해 그를 더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이 자서전이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겠다. 많은 선택 앞에서의 노무현이 내린 결정, 그의 생각을 따라가 보는 일은 비단 감상적 측면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사회를 보는 시각, 그의 삶의 태도는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진지한 물음을 건넨다. 이성을, 그리고 이상을 강하게 두드린다. 이것이 노사모 혹은 노빠인 적이 없었던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은 까닭이다.

강연이 끝나고 몇몇 독자들이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 물었다.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추상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지만,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는 심정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의 대답으로 이날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깨어 있는 시민이 해야 할 일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 한 명의 지도자가 일관되고 집합된 것을 요구하는 시대는 끝났다. 사회는 개개인이 진보하는 꼭 그만큼만 진보한다. 대통령의 『성공과 좌절』을 보면 이와 비슷한 말이 나온다. 모든 것이 국민이 생각한 만큼만 나아간다.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선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하는 거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회적 활동 속에서 스스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거다. 그게 남의 눈에 띄든 그렇지 않든, 당장 변화를 가져오든 그렇지 않든 그렇게 하는 거다.

세상의 변화는 각자의 마음속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다. 국민참여당이 부모님께 받은 성은 다 다르지만, 정치적으로 받은 성은 노 씨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그분을 추종하고 숭배하는 분은 없다. 우리 마음속에 그분이 있는 거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것이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 말고, 내 마음속에 있는 이분은 이런 모습, 제 친구 속 있는 모습은 다른 모습 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게 사람 사는 세상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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