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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연회]이 시대에 다시 장인 정신이 필요한 이유 - 『우리 시대의 장인정신을 말하다』 유홍준

‘모든 사람이 장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장인 정신은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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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8일 리움 미술관에서 유홍준 前 문화재청장의 강연이 있었다. 21세기, 더 빠르고 신속한 것이 미덕인 우리 사회 속에서 그는 장인 정신을 말했다.

장인 정신과 작가 정신, 분리되는 것인가?

지난 4월 8일 리움 미술관에서 유홍준 前 문화재청장의 강연이 있었다. 21세기, 더 빠르고 신속한 것이 미덕인 우리 사회 속에서 그는 장인 정신을 말했다. 오랜 시간, 누구보다 자주, 그리고 가까이 예술품을 봐 온 그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장인 정신이 필요하다. 그러한 주제로 아름지기에서 시리즈 강연을 했고 강의 내용을 토대로, 『우리 시대의 장인 정신을 말하다』를 펴냈다.

저자는 문화재나 미술품을 보면서 생각해 왔던 장인 정신에 대한 고민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인 정신은 예술에 있어 언제나 귀한 가치로 여겨지는 덕목이었다. 하지만 아카데미즘에 얽매이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장인 정신이 아니라, 작가 정신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좀 더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작가주의가 성행하자, 창의라는 이름,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불성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과연 어디까지 인정해 줘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겼고, 그런 의식이 다시 장인 정신을 찾게 만든 것이다. 이는 문화사적인 흐름이다. 아마 장인 정신이 많이 이야기되고 나면, 다시 작가 정신을 찾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마치 하나의 흐름이나 사조처럼 예술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렇게 장인 정신과 작가주의로 갈라져 이 둘이 마치 다른 것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유홍준은 묻는다. “그런데 이 둘이 과연 다른 것인가? 이것을 분리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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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아름지기                                          백제금동대향로


“이전에는 장인 정신과 작가 정신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때에는 예술적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움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고, 작품을 만든 치밀함에서 장인 정신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백제금동대향로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 금동대향로는 구성이 기발하다. 쓰임새가 아름다움보다 우선한다. 각 구멍에 향을 피우게 되어 있는데, 봉황 가슴에 두 개, 산봉우리에 열 개로 총 향로 구멍이 열두 개다. 향을 붙이면 산에 안개가 피는 것 같은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이 작품을 두고 우리는 섬세하게 공들인 작가의 장인 정신을 칭송해야 할까, 실용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작가 정신을 꼽아야 할까?

명품, 명작이라는 호칭을 붙일 만한, 최고의 작품은 장인이 존중되는 시절에 나왔다. “명작의 탄생은 공예가에 대한 존경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라 시대 등 예술이 존중받던 시기의 작품을 살펴보면, 작가들에게 박사라는 호칭을 붙이고, 작품마다 참여한 사람들의 관직과 이름을 정확히 밝혀 두었다.” 장인을 예우하는 전통은 중세 시대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마스터, 저리맨, 어피렌스 등 엄격한 마스터 체제의 조직이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의 워크숍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자료들도 많은 작품을 통해 남겨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장인들이 어떠한 수련을 거쳤는지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장인 정신, 결국은 노력

그는 장인 정신을 보여 주는 예술가로 알브레이트 뒤러를 꼽았다. 그 역시 당시의 마스터 과정을 성실하고 철저하게 밟아 온 사람. “사람들은 뒤러가 천재라고만 하는데, 그도 역시 마스터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사람이었다. 특히 「멜랑꼴리아」 같은 작품을 보면, 장인 정신을 넘어 작가 정신을 찾아 나아가려는 모습까지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이런 작가로는 누가 있을까? 그는 단연 추사 김정희를 꼽았다. “완당이 글씨를 쓸 때 얼마나 피눈물 나는 장인적 수련과 연찬을 보였는가는 범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완당은 ‘70 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그런 연찬과 수련 속에서 추사체가 나온 것이다.”(p.44)

혹자는 완당의 즉흥적으로 써내려 간 듯한 손글씨를 보고, 혹은 아래와 같은 문장을 보고 스스로 천재성을 이야기했다고 오해하기도 한단다. ‘아무리 9,999분까지 이르렀다 해도 나머지 1분만은 원만하게 성취하기 어렵다. 이 마지막 일 분은 웬만한 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인력 밖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석파 난권에 쓴 이 글은, 결국 노력을 강조하는 말이다. 결국 장인 정신은 노력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더불어 중요한 것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경중을 따지지 말고 온 힘을 다하라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자기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명작은 디테일이 아름답다

ⓒ (재)아름지기

“장인 정신이 드러나는 외형적인 특징은 디테일이 아름답다는 점이다. 신은 디테일 속에 있다.” 불국사에 가면 사람들은 석가탑과 다보탑, 석굴암에서 대개 찬사를 쏟아 낸다. 하지만, 못지않게 위대한 장인 정신을 불국사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불국사 기단의 그랭이법에 주목할 만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흉내도 내지 못하는 건축법이라는 그랭이법은, 장대석을 자연석에 맞춰 깎는 석공의 정성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석공에 영웅적인 참을성에 찬사를 보내야 한다”고 유홍준은 말했다. “이 때문에 1,300년 동안 어떤 지진에도 축대가 빠지지 않았다.”

과연 이러한 장인 정신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대개 장인 정신은 종교적인 마음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신의 시대였던 중세가 그랬고, 부처님을 섬기듯 지었던 불국사 역시 그러했다. “중세 공예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에르메스가 있었고 성 누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더 잘 만들 수 있게 해 달라고 빌 수 있는 대상, 기원할 수 있는 대상이 있었다. 석굴암 역시 종교적인 마음에서 나올 수 있었던 작품이다.”

장인 정신은 디테일만이 아니라 유머로도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유머는 여유에서 생겨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상들의 익살이 넘치는 작품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고구려 벽화 수렵도를 보세요. 술 덜 깬 듯한 아들의 표정을 이렇게 생동감 있게 그려 놓았습니다. 김홍도가 그림을 그리면 보는 사람들이 웃느라고 애고 어른이고 턱이 벌어졌습니다. 서당도만 봐도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표정을 끝까지 그려냈죠.” 추사 역시 마찬가지다. 추사체의 특징은 ‘괴’怪)였다. 이러한 얘기를 들은, 추사의 대답이 더 걸작이다. “해명해서 조롱을 면할 수도 없거니와 괴하지 않으면 글씨가 되지 않는 걸 날더러 어떡하란 말인가요.”

그렇다면 이 시대의 장인 정신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유홍준은 무엇보다 “장인 정신을 받아 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품질인증제도를 들 수 있다. “와인의 주 산지는 이태리였어요. 그런데 프랑스 와인이 이태리와 어깨를 겨룰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품질 인증제도 덕분입니다. 이태리 사람들이 악의 없는 사기를 잘 치곤 했는데. 이와 달리 프랑스는 인증제도를 통해 신뢰를 주고 관리를 잘했어요.”

많은 예술가들이 한국 사회에서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해외 콩쿠르 등을 통해 그들의 가치를 역으로 보여 주고 있다. 골프처럼 규정된 룰이 있는 것은 객관적인 1등과 스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출판 역시 베스트셀러라는 대중적인 검증을 통해 전문가들의 비판을 초월해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장인 정신이 요구되는 예술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인정받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로서 장인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은 바둑이나 콩쿠르, 스포츠처럼 일정한 룰을 통해 최고를 뽑는 과정으로 한정되어 있다. 우리 모두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p.40)

고급문화는 소비자가 만들어 낸다

ⓒ (재)아름지기

이뿐 아니다. 고급문화는 소비가 창출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고급문화는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덴마크 로얄 코펜하겐 접시, 독일 도자기 마이센을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사람들이 사주지 않으면, 고급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2007년 덴마크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파티를 열었어요. 6백여 명 초대했는데, 모두에게 로얄 코펜하겐 접시를 마련했습니다. 덴마크 대사에게 이걸 다 언제 준비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러더군요. 여왕님이 올 때 함께 싣고 왔다고. 자기 나라 문화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고, 그걸 지켜야만 그 문화의 프라이드가 지켜지는 법입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차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봉지 차를 마신다. 15만 원짜리 잎 차를 마시지 않는다. “팔리는 대로 손해인데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그러니까 한정적으로, 상징적으로 만들게 되는 겁니다.” 유홍준은 오랜 기간 가난 속에서 살아온 생활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돈을 쓰는 법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합니다. 다들 벌기에만 급급해서 쓰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어떻게야 돈을 행복하게 쓰는지 연구도 없었어요. 열심히 번 소중한 돈으로 최고의 가치를 구현한 것을 사자는 겁니다.”

그는 장인 정신을 “프로 정신 혼”이라고 다시 정리했다. “이것을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예술, 기술, 학문, 저술, 그 어느 것이든 이제는 장인의 혼이 들어간 것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하는 장인 정신을 되살려야 하는 이유다.

모든 사람이 장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장인 정신은 가질 수 있다. 무엇이든 끝까지 하려는 자세와 노력은 누구든지 가질 수 있다. 모든 것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완당의 예술적 성취는 피나는 노력이었다. 완당은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장인정신은 결국 ‘노력’이라는 결론으로 도출된다.(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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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김영일>, <배병우>, <정구호>, <김봉렬>, <조희숙> 저13,050원(1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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