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요리는 그래요. 창조의 시간. 최초의 것과 다른, 새로운 무엇이 나오는 것. 재료 선택에서부터 요리하는 과정을 거쳐 접시에 완성품으로 나오기까지, 그것은 하나의 종합예술. 한번 생각해보세요.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절로 나오는 이 한마디. “예술이네~” 누군가를 감탄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속성 중 하나라면, 요리 또한 예술, 맞습니다. 요리를 놓고 감탄하는 우리, 참 자연스럽고 익숙한 그림이잖아요.
아니, 그런데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고요? 어허, 저런. 그건 불행이네요. 요리하는 창조적 시간을 경험하지 못한 까닭에서요. 날것들이 불로 달궈지면서 변신하거나 다른 날것과 만나 새로운 맛과 형태로 바뀌는 즐거움이 요리에는 있습니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있을까요. “요리술은 불멸의 식욕을 만들어 내는 일상의 연금술이다.” 잘 만들어진 요리를 향한 기대감이란, 때론 이 팍팍한 사람살이를 버티고 견디게 하는 힘, 아니겠습니까! 지루한 반복의 노동에서 해방시켜주는 통로이기도 하고.
요리는 그만큼 멋지고 흥미 있는 일입니다. 물론, 노동으로 요리를 한다는 건, 또 다른 문제이지만요. 요리가 부단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잉태됨을 감안한다면, 이는 창작의 특성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어느 요리사가 했다는, “요리는 창조적 예술작업”이라는 말은, 그래서 참인 명제입니다. 음식을 맛있고 예술적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럽습니다. 요리사는 예술가이기 때문이죠. 애초 만들어진 형태가 무너지는 입 안에서도 그 예술은 위력을 발휘합니다. 입 안을 넘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뒤에도 말이죠.
이는 좋은 요리사, 좋은 예술가가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놓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겠죠. 좋은 예술품은 오감을 만족시키고 감탄을 자아냄과 동시에, 몸에도 좋아야 합니다. 요리는 그것이 더욱 절실합니다. 먹는 것이 곧 사람이니까요. 고로, 요리사가 몸에 좋은 재료를 써서, 좋은 품성으로 요리를 할 때, 우리는 진짜 예술품과 만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먹고 마실 것 갖고 장난치는 놈들. 예술을 할 자격은커녕 요리를 해선 안 되는 양아치일 뿐입니다.
커피를 만들고, 짓는 일을 하는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다루는 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성이라고. 저라고 아직 완벽한 건 아닙니다만, 늘 그것에 염두를 두고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사람을 감탄시키고, 몸에도 좋은 커피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요리라고 다르겠어요. 음식은 몸에 밀어 넣는 먹을거리, 이상입니다. 살기 위해 먹는다지만, 사는 게 먹는 것으로만 해결되진 않는다는 것, 잘 아시잖아요. 몸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음식이라면, 마음과 감성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그 무엇. 문화와 예술. 요리는 또한 문화이자 예술입니다. 음식은 한 나라의 외교사절이자, 가장 쉽게 다른 세계를 접하게 해줍니다. 제가 믿는 이 말. “음식은 1분 만에, 음악은 3분 만에, 영화는 2시간 만에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
저는 요리사들에게 감탄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준 창조주에겐 당연한 것이죠. 더구나 품성 갖추고 좋은 요리를 만드는 셰프(chef)라면, 더더욱 감탄 또 감탄. 여기, 그런 셰프를 소개합니다. 최현석 셰프. 요리를,
“노동자로 시작해서, 기술직으로 점점 익어가다가, 예술직으로 전환하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오늘도 이 일을 계속한다”는 셰프.
참, 어느덧 우리의 귀에도 익숙해지고 있는 셰프. 프랑스어 ‘셰프 드 퀴진(chef de cuisine)’에서 나온 이 호칭은, 주방의 지휘자에게 붙여집니다. 프랑스의 왕정 시대, 왕의 왕관 높이에 버금가는 모자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셰프였다는 것. 아무나 셰프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란 거죠. 예술 창작물이 배출되는 주방을 책임지고, 요리의 퀄리티를 보장해야 하는 무겁고도 강력한 자리랍니다.
요리에 미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일에 미쳐서 ‘크레이지 셰프’라고 불리는 그를, 지난 12일, 신사동의 떠오르는 핫플레이스 엘본 더 테이블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이곳의 메인 셰프이며, 셰프 간지 좔좔 흐릅니다. 역시, 셰프는 아무나 하는 것 아니라는 것. 물론 간지만 갖고 그런 것 아니고요. 왜 그리 말했는지, 셰프의 한마디 한마디를 들어보시면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자, 간지 최 셰프의 요리 세계로 들어가 보시죠. 최 셰프의 책도 보고, 그의 요리를 맛보는 건 어떨까요.
작가 최현석,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요리책의 저자
첫 번째 요리책을 세상에 내놓으니, 어떤가요. 요리를 내놓을 때의 기분과 많이 다른가요.
“요리하고 또 달라요. 책은 처음 내는 거라, 일단 애착이 가고. 요리는 여운이 남으나 소멸되는데, 책은 두고두고 남아서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연필처럼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라서.(웃음) 반응에 대한 신경도 많이 쓰이고요. 어쨌든 요리사들은 자기 요리책을 내고 싶어 하는데, 첫 책은 누구나 쉽게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기획의도를 갖고 만들었어요. 이 다음에는 예술 요리를 후속으로 만들 계획도 하고 있습니다.”
우문인데, 현답을 기대합니다.(웃음) 책 내는 것과 요리하는 것, 뭐가 더 어렵나요.
“음, 둘 중 어떤 게 어렵다기보다 선후가 있어요. 요리를 만들어야 책을 낼 수 있잖아요. 굳이 하나가 더 어렵다고 얘기하라면 요리가 어려워요. 요리책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을 몇 년 축적해야만 책을 낼 수 있으니까요. 요리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고민도 많이 해야 하고, 또 추리기까지 해야 해요.”
왜 ‘미친 요리’죠?
“일단 ‘크레이지’라는 단어 자체가 저와 많이 매칭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미친놈’ 소릴 많이 들었어요.(웃음) 정신질환의 개념은 아니고요. 뭐에 미친다는 게, 패션(passion)보다 강한 열정의 느낌이잖아요. 열정을 넘어선 집중이랄까. 좋아하고 빠지고 몰입하고…… 등을 담고 있어서 ‘크레이지’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창의적인 생각을 요리에 담다 보니, 요리에 미친놈들이 만든 요리다. 이런 뜻이죠. 우리 요리사끼리는 정신질환 요리라고도 얘기해요.(웃음) 제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고선, 우린 미친놈들이야, 막 이러면서…….”
어릴 땐, 왜 미친놈 소릴 들었던 건가요.
“어릴 때는 어디에 집착하고 빠지기보다 남들이 안 하는 짓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말썽꾸러기 짓도 많이 하고. 가령, 모형항공기 날리기 대회를 하면 조립하는 방법을 다른 애들과 달리 했어요. 똑같은 비행기를 만들기 싫었거든요. 그래서 댓살을 물에 삶아서 날개를 동그랗게 해서 모양을 바꾸기도 했죠. 똑같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게 참 많았어요. 개그 욕심도 많고.(웃음) ‘쟨 특이한 짓을 많이 한다’는 얘길 종종 들었어요.”
결국 그런 크레이지가 책을 낸 동기나 계기로 작동했나요.
“매달 요리를 개발하고 레시피를 갖고 있으니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는 주변 의견이 있었어요. 표지에 있는 사진도 나만의 요리인데, 그런 것을 담아 책으로 내고픈 욕심이 생겼어요. 물론 책을 내고자 출판사를 찾아가거나 했던 것은 아니고…….”
아 혹시, 책의 기획?진행이 ‘박재은’이라고 적혀 있던데, 글 쓰는 요리사 박재은 씨(『어느날, 파리에서 편지가 왔다』)가 맞나요?
“아, 맞습니다. 작년에 중앙일보에 진행한 셰프 배틀이 있었어요. 그분이 심사위원이었어요. 그 대회에서 1회전에서 이겼는데, 2회전에서 주최 쪽의 의도와 방향이 달랐다고 해서 패자가 됐어요. 그렇게 끝나고 짐을 싸는데, 박재은 씨가 와서 책을 만들자고 하더라고요. 일단 생각이 있으니까, 미팅을 했는데, 서로 마인드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제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을 끄집어내서 소름이 끼쳤어요. 이런 사람과는 판을 벌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요리 책을 시작으로,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시는 외식 문화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어요.”
그땐 저도 좀 끼워주세요.(웃음) 책 만들면서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음, 에피소드라.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고, 지금 레스토랑의 런칭을 준비하면서 책을 만드느라, 무식하게 바빴어요.(웃음) 매일 밤늦게까지 촬영하고 오래 걸렸어요. 아, 제가 건망증이 좀 심해서 필요한 재료를 들고 오질 않아서, 몇 번을 재료 공급처에 오고 가는 그런 일도 있었어요.”
아까 다음 책을 낼 계획도 있다고 했는데, 어떤 테마인가요?
“외국에는 ‘요리책 대회’도 따로 있다고 하더라구요. 두 번째 책은 하드커버로 좀 더 전문적인 내용을 담은, 유명 셰프들이 내는 그런 책을 내고자 해요. 처음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레시피를 선보였다면, 두 번째는 보일 수 있는 재주를 다 담을 계획이에요. 무술을 예로 들자면, 첫 번째가 무술 사범을 하면서 무난히 따라할 수 있는 기술이라면, 두 번째는 점프 뒤돌려차기, 삼단차기 등 무술 사범이 보일 수 있는 기술은 다 선보이는 거죠.”
셰프 최현석, 요리는 내 운명!
말하자면, ‘요리는 내 운명’입니다. 요리사 집안이고, 요리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어머니 바람을 저버리고 결국 요리를 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최현석에게 요리란?
“음, 요리는 사람입니다. 시작한 동기도 그랬고,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사람이며, 요리를 하면서 남는 것도 사람입니다. 물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듯이, 지우고 싶은 요리도 있지만요. 거창하게 운명이라고 표현하지만, 점점 요리가 저를 옭아매고 있어요.(웃음) 어떻게 보면, 늘 저의 요리를 맞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 덕분에 요리가 운명이 된 것일 수도 있어요. 요즘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면서 찾아와요. 그분들에 대한 기대가 또 저를 옭아매고 있기도 하고.”
☞ 셰프의 한마디:
온가족이 요리사인 집안에서 내가 가야 했던 길은 당연히 ‘요리’였다. 그렇게 ‘생활인 요리사’로서의 인생이 시작되었다.(p.4)
천생 요리사란 생각이 든 게, 아버지 49재 때 절에 가서 밥을 먹으면서 꽈리고추의 향과 식감이 마음에 들어서 어떤 것과 어울릴까 고민했다는 것에서였습니다. 늘 요리를 품고 사는 것 같습니다. 우리 요리 문화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요리에 대한 인식도 높아져야 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요리를 문화로 생각하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을 돈으로만 환산해서 나쁜 재료를 쓰는 사람도 많아요. 먹는 것 가지고, 식자재를 코스트에만 대입해선 안 된다고 봐요. 요리를 문화로 인식하고 글로벌하게 나갈 수 있는 그런 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요리사들이 목말라하는 게, 음식 자체가 문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거거든요. 음식은 시간을 사는 거고, 그래서 즐겨야 하는데……. 진짜 미식가는 문화 자체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 셰프의 한마디:
아버지 49재 때 절에 가서 밥을 먹게 되었다. 그냥 덩그러니 고추만 담아 나온 반찬이 있어서 하나 먹어 봤는데… 그 때 먹은 꽈리고추의 향과 식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어떤 것과 어울릴까 하고 고민하다가 닭 가슴살과 조합을 맞춰 보니 아주 좋은 매치가 되었다.(p.23)
처음엔 요리가 생계 수단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만의 요리가 됐나요?
“먹고사는 수단이었죠. 정말 단순하게. 처음엔 내 요리에 대한 반응을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됐겠어요. 고객과 소통이 된다면 반응을 볼 수 있었겠지만, 어렵죠. 그러다 알아주는 분들이 생기고, 이 바닥에서 발을 못 떼게 만드는 요소가 됐습니다.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 놀래고 감탄하게 해 드리고 싶었어요.
가령, 예술가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걸 발견해줘야, 관람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예술이 되잖아요. 산속에만 있다면 누가 알겠어요. 음식에 대한 피드백이나 반응을 볼 수 있어서, 그것이 제겐 동기가 됐습니다. 그냥 직장 생활에서 요리사로서의 책임감과 해야 될 일을 찾고, 재미도 들인 거죠. 12년 정도를 하고 나서야 자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색깔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직접 개발한 요리의 세 원칙을 들었습니다. 요리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 입에 들어가니까, 몸에 아닌 짓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거죠. 이걸 먹는 사람이 맛 좋고 그렇더라도 몸을 상하게 하는 건 안 된다. 제일 나쁜 놈들이 몸에 들어가는 것 갖고 장난치는 놈들이잖아요. 그래서 몸에 해가 되지 않는 재료를 써야죠. 전문 영양사가 아니라서, 모르고 누를 범할지 몰라도, 욕심이 나도 누릅니다. 한참 요리 개발할 때, 토마토소스 색깔이 안 나는 거예요. 선정적인 색감이! 이것저것 해봤는데, 탈출구가 안 보여서 색깔을 내는 식용색소를 타 볼까 하는 고민도 했는데, 자존심이 상하는 거예요. 선정적인 색감에 흐뭇할 순 있지만, 고객들이 먹는 접시에 담으면 개망신이지. 결국 색소를 타지 않고 답을 찾았죠. 찾으면 찾아집니다.”
☞ 셰프의 한마디:
첫째, 맛있어야 한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고 예쁘고 멋진 요리라도 맛이 없으면 용서가 되지 않는다.
둘째, 예뻐야 한다! 정말 맛이 있어도 보기에 예쁘지 않으면 최현석의 요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셋째, 사람을 향한다! 요리를 계속하게 만드는 동기를 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고,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수많은 동료들 또한 사람이다. 결국 내가 만드는 요리는 사람에게 이로워야 하기에 식재료는 물론 사소해 보이는 소금 하나까지 각별하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p.7)
중요한 지적이네요. 요리사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만 들어주세요.
“제일 중요한 것은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물론 제가 전적으로 맞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없는 것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기본(전통)에 충실한 사람도 있잖아요. 하지만 전통을 중시하고 깊은 맛을 살리는 분들도 창의력을 배제할 순 없습니다. 끝없이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리사는.
또 하나, 요리사의 목적은 주방장입니다. (주방의) 리더로서, 주방장은 원칙주의자여야 합니다. 이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요. 스스로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리더이기 때문에, 다른 요리사를 끌고 나가기 때문에 바르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흔들리면 주방이 다 깨지게 되는 거죠. 경영자가 다른 것보다 경영적 판단에 우선 치우칠 순 있어도 주방장은 사람 몸에 들어가는 요리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드라마 <파스타>는 보셨나요? 혹 보셨다면, <파스타>의 셰프 최현욱은 어떠셨어요?
“초기 부분에만 봤는데, 주방에서 접시를 깨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전 바닥에 접시를 던지진 않아요. 회사의 재산이라서.(웃음) 그냥 잘못된 요리는 싱크대에 과감히 엎어버리죠. 물론 그 사람은 창의적일 거고, 리더로서 자기 원칙이 있다고 생각은 들어요. 그런데, 주방에서 입을 맞추는 건 제 원칙에 어긋납니다. 그런 오그라드는 짓을 안 해요. 내 공간에선 불순한 행동을 해선 안 됩니다.(웃음)”
천하의 셰프라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다고 봅니다. 어떤 이의 입맛에 초점을 맞추나요?
“일단은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요. 물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싶습니다. 블로그를 보면 악플도 있고, 어떤 분은 제가 쓰는 소금에 대해 허세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찾아내서 보여드릴 수도 없고.(웃음) 그래서 요리를 만들 때 공감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저는 천연 소금 대여섯 가지를 써요. 고기, 해산물, 푸아그라 등에 쓰는 소금이 각각 다른데, 공감할 수 있는 맛이 있어요. MSG(조미료)는 몸에 들어가면 안 좋고 창피해서 당연히 안 쓰죠. 감칠맛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 천연 재료를 써서 그 맛을 내고, 플러스로 트렌디한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좋아하는 그런 재료를 배합하는 편이에요.”
☞ 셰프의 한마디:
한참 이런저런 요리연구를 하다가 갑자기 소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한 가지 요리에 여러 가지 향의 소금을 곁들이면 한 요리에서 다른 향과 맛을 낼 수 있었다. 특히 녹차 소금 같은 경우는 정말 쉽게 만들 수 있는 소금이다. 이 요리 뒤에 트러플 소금이나 장미 소금 등 다양한 소금들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p.97)
궁금했습니다. 3년 동안 600여 개의 창작 메뉴를 개발할 수 있게 승부욕을 북돋아준 손님이 누군지.
“파워블로그로 어지간히 알려진 분인데, 검색창에 ‘코스모스 세븐’이라고 치면 나와요. 제가 지금의 요리를 하게 되고, 창의적인 생각을 갖게끔 동기가 되어 준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한때 요리 외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요리를 관두려고도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당시 일하던 레스토랑이 문을 닫기 전날, 그분이 오셔서 내가 준비한 요리의 의도를 알아내셨어요. 아, 이게 내 갈 길이구나,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레스토랑이 열리면,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분이 유명한 블로거였는데, 그게 터진 거죠. 차가운 파스타를 냈는데, 그게 퍼지면서 인터넷에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됐고요. 그분이 되게 자주 찾아오셨습니다. 그분께 새로운 것을 하나둘 만들다가 승부욕이 됐고. 아예 그분 생일에는 코스를 따로 짜주기도 했어요. 그것을 토대로 업장에서 ‘셰프 스페셜’이라고 만들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식자재와 요리를 저에게 코멘트해주면, 스페셜을 만들어주는 거죠. 그분에게 한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어요.”
☞ 셰프의 한마디:
매일 방문해주시는 손님이기에 처음에는 그냥 서비스 개념으로 한 가지씩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드렸다. 하지만 그 손님의 방문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오실 때마다 새로운 요리를 내겠다는 마음이 승부욕이 되어 버렸다. 요리사와 손님의 재미있는 대결 구도로 자연스레 연결되었던 그 때의 기억을 뒤돌아보니 나의 첫 요리책을 낼 수 있을 만한 독자 메뉴로 많이 남게 된 것이다.(p.4)
그 손님만을 위한 요리를 별도로 내놓았던 건가요. 돈을 안 받고?
“절대 공짜 밥은 안 드시는 분이세요. (요리의 취지가) 퇴색되는 걸 싫어하시고. 코스 하나를 주문했을 때 서비스가 나가면 좋아하셨지만, 돈을 안 받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이전 식당에선 그분 생일에 한 번 안 받았는데, 제 생일에도 선물을 해 주셨어요. 그분은 제가 잘되기를, 좋은 요리사 되기를 굉장히 바라는 분이세요. 아마 3년 동안 3~4일에 한 번씩 한 끼 들러 오신 것 같아요. 큰 복이죠. 저로선.”
저는 요리가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젠 최 셰프도 예술직으로 전환한 것 같은데, 요리가 왜 예술인지 강조해 주세요.
“요리사가 예술직인 것은 요리가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시도한 창작물이거든요. 예술의 역할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거잖아요. 요리도 행복하고 기분 좋아지는 쪽에 맞춰지는 결과물입니다. 요리 완성품은 그래서 예술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거죠. 이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실제로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겠어요.”
☞ 셰프의 한마디:
셰프로 산다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다. 후배들에게도 이렇게 이야기해주곤 한다. 노동자로 시작해서, 기술직으로 점점 익어가다가, 예술직으로 전환하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오늘도 이 일을 계속한다.(p.201)
“접시에 담아내는 것이 너의 얼굴이다.” 주방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이 말, 재밌고 의미가 확 와 닿는데요.
“텍스트로 되니까, 좀 있어 보이는데…… 저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접시에 더러운 것이 묻어 있고 그러면, 진짜로 뒤통수를 때려요.(웃음) ‘네 얼굴인데, 이러고 아가씨를 만나고 다닐래.’ 소스가 덜 배이고 그런 걸 보면, ‘너 머리에 세팅도 안 하고 나갈래. 네 얼굴이야’ 그러면서 강조를 많이 하죠.”
☞ 셰프의 한마디:
요리사의 이력은 자존심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부풀려 요리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요리사는 접시에 자신의 얼굴을 담아야 한다. 사용하는 식재료에 대해서도 늘 떳떳해야 되며, 스스로가 예술가라고 생각하며 항상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p.73)
요리를 할 때 영감을 주는 것은 뭔가요?
“영감을 주는 것들이 많아요. 600여 개 결과물을 내기 전에는 모든 것이 요리에 영감을 줬다고 봐야죠. 색깔만 봐도 영감을 받아요. 서태지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겠습니다.(웃음) 요리 자체가 영감을 주기도 하고요.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늘 생각하고 고민하는 거죠.
천재는 끝없이 (결과물을) 내는 게 천재인데, 한때는 저도 스스로에게 놀랐습니다. 이런 걸 내가 만들었단 말인가. 지금은, 600가지 내고도 꼬박꼬박 나오는 거 보면 신기하죠. 가끔씩 대박 아이템이 터져 나오고. 이번 달에는 간장게장 카펠리니가 그런 아이템이었어요. 차가운 파스타인데, 반응이 되게 좋습니다.”
1995년부터 요리를 시작, 15년이 됐습니다. 요리 인생 15년을 정리한다면요?
“뒤돌아봤는데, 아무 생각 없이 달려왔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멀리 왔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구나. 스트레스는 직업 자체에서 오는 회의보다, 요리 외부적인 요인에서 와요. 요리는 스트레스 안 주거든요. 이제는 딴 생각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닌 것 같아요. 앞만 보고 가는 게 지금이 됐습니다. 뒤돌아보면 다져지는 기간이었고, 할 일은 더 많아질 거고. 일의 양을 떠나 해야 하는 가짓수가 많아질 것 같아요. 처음에는 홍합만 삶고 접시만 닦으면 됐는데, 메뉴도 짜고 어느 순간 요리사들 관리도 하고, 기획도 하고, 숟가락 보러 다니고, 점점 더 외연이 넓어지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한 기대도 있습니다.”
‘최현석 요리’를 스스로 정의한다면?
“크레이지. 미친 요리인데, 천박하게 느낄지 몰라도, 아까 말했듯이, 미쳤다는 게 패션(passion)을 능가하는 열정의 결과물이라고 봐주셨으면 해요. 크레이지 레시피. 요리에 미친 사람들의 결과물이죠. 무술을 보면 정파와 사파가 있는데, 절대 사파가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요. 비주류와 주류를 따지는 것도 아니고, 온전한 전통은 주변에 다양한 세력이 있어야 정통이라고 붙일 수 있거든요. 전체 문화의 한 축으로.”
☞ 셰프의 한마디:
하지만, 난 스스로 내 요리를 ‘날로 먹는 요리’라고도 부른다. 익혀서 먹지 않는 ‘날’이 아닌, 정말 누가 따라 해도 정말 쉬운 ‘날로 먹는 요리’!(p.7)
내가 생각해도 나의 요리 장르는 매우 모호하다. 물론 이탈리아 요리를 가장 오래 배워왔고 많이 해왔지만, 요리를 깊이 있게 공부한 것도 아니고 또한 장르에 맞추어 요리개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냥 ‘최현석 스타일’의 요리일 뿐이다.(p.127)
인간 최현석, 키덜트 성향의 조기야구 에이스 투수
발차기 요즘도 잘하십니까?
“높이가 많이 줄었어요. 인대가 뻣뻣해져서. 지금도 잘 찰 자신은 있는데.(웃음) 무술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우슈를 했는데, 단증을 따려면 최소 12개월이 코스인데, 저는 6개월밖에 안 걸렸어요. 무술의 천재구나 싶었다니까요.(웃음) 어쨌든 먹고사는데, 도움이 안 돼서 그만뒀어요. 야구는 10년 해서 연골이 상하고, 격투기도 지금은 끊었는데, 이종격투기 선수와 한 번 겨뤄보곤 생각했어요. ‘이 바닥으로 안 오길 잘 했다.’(웃음)”
쉬는 날 야구 하는 것이 한때 낙이셨는데, 여전히 야구를 즐기세요?
“여기서 만들었어요. 어제 새벽에도 했는데, 평일에 못 쉬니까, 조기야구를 합니다. 예전에는 동대문 상인들, 우체국, 나이트클럽 조기야구팀이 있어서 미사리에서 만나서 게임도 했어요. 지금은 다른 팀과 붙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천하무적야구단보다 더하달까.(웃음) 제 공을 치는 친구가 없어요. (응원하는 프로야구 팀은?) 두산.”
요즘 심취해 있는 취미 활동은 뭐죠?
“야구 말고도 취미로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오래된 취미 중에 로봇 수집이 있어요. 프라모델. 20년 전의 스티커도 그대로 있고. 철인28호, 사자왕 고라이언…… 얼마 전 큰 걸로 하나 지르고 나서 살짝 소강상태예요. 아내 눈치를 살짝 보고 있어요. 어느 이상의 레어 아이템을 질렀거든요. 예전에 대한 향수나 키덜트 성향이 있어서. 당시엔 많이 사거나 그러지 못해서, 지금 10~20배로 구매하는데, 그 시대가 그대로 정지된 것 같아요.”
명란크림 무채 카펠리니를 돌아가신 아버지께 만들어 드렸으면 좋아하셨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생전 아버지는 최 셰프의 요리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제 요리는 한 번도 못 드셔보셨어요. 연세가 많으셨는데, 아버지께 요리를 해 드린 적이 없어요. 어머니나 형에겐 있었는데, 참 그래요. 지금은 많이 아파요.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39개 레시피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것은 뭔가요?
“명란젓도 좋아했는데…… (대파크림을 곁들인) 삼계탕 수프가 좋습니다. 입맛이 워낙 토속적이라. 전복죽 같은 것도.”
☞ 셰프의 한마디:
양식 레스토랑의 셰프이니 보통 사람들은 나의 입맛이 대단할 거라는 생각들을 한다. 하지만, 나의 입맛은 지나칠 만큼 토속적이고 ‘조선’스럽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먹을거리는 한국의 ‘탕’이다. 먹고 나면 왠지 모르게 건강해지는 것 같고, 아랫배가 지긋이 불러오는 느낌에 난 ‘탕’이 좋다. 내가 사랑하는 삼계탕을 ‘최현석’스럽게 표현한 것이 바로 이 요리다.(p.143)
3,000명이 넘는 팬을 보유한 ‘스타 셰프’입니다. 팬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셰프들이 뒤에 숨어만 있는 건 아니에요. 홀에 나가 인사도 하고, 그러고 싶죠. 여기에 오시는 분들에게 하나라도 더 드리는 건, 이득을 보장하는 건 없지만, 절 찾아오신 분들께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거라고 봐요. 나눠먹고 그러면, 제 팬이 돼 주시는 거고.(웃음) 인간적인 진심을 이기는 마케팅은 없다고 봅니다.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가까워지는 요소로, 소통의 거리로 요리를 선택한 거죠. 제가 아는 얼굴이 오시면, 홀에 인사를 나가려고 해요. 바쁘면 계산할 때라도.”
『최 셰프의 크레이지 레시피 39』는, 뭣보다 홀로 골방 혹은 주방에 박혀 만든, 요리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빛납니다. 최 셰프와 고객이 함께 호흡하고 합을 겨루면서 만든, 시간의 체적이자 앙상블이 아닐까 싶은 거죠. 3년여 동안 축적된 600여 개 이상의 레시피. 왜 실패가 없었겠습니까마는, 그런 실패도 많지 않았다네요. 재료 고유의 맛과 질감, 온도, 색깔, 재료 간 어우러짐 등 모든 요소를 계산하면서 만든 레시피는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오랜 숙련과 고민 없이는 불가능했을 미친 요리들. 그것은 최 셰프였기에 가능했을 거라고 감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봅니다.
인터뷰 직후 그가 직접 조리한, 명란크림 무채 카펠리니를 먹으면서, 저는 그 요리가 담은 세계를, 돌아가신 아버지가 드셨음 좋아했을 거라는 그 요리가 품고 있는 최 셰프의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요리는, 그렇게 온전하게 하나의 우주이자 세계일 수 있다는 사실, 새삼 확인한 자리,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최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