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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 끝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세계도 두 번 진행될 수 있다 -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정혜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꿈꾸는 동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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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관능적이었다. 첫째, 솔직 담백했고, 둘째, 세상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었고, 셋째, 많은 책을 통해 꽉 찬 두뇌를 소유했고, 못지않게 감성적이기도 했으며, 넷째, 달리기로 단련된 날씬한 팔다리를 가졌고(몸은 못 봤다), 하얗고 짧은 원피스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난밤에 고전 낭독 모임에서 하지 못한 말이 많았습니다. 저는 좀 아쉬웠고 애가 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고전을 다시 읽기 시작한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듯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그것은 고전을 다시 읽었다” 그 이상이었습니다. 고전을 통해서 저는 제 인생을 재구성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퍼즐 맞추기 게임 같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흔적, 그래 흔적이구나!’란 생각도 했습니다. 언젠가 저는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선을 바꾸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흔적이다!’ 이런 문장을 썼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 문장을 고전을 향해서도 쓸 수 있습니다. 고전은 흔적 찾기였습니다. 그 흔적은 강렬한 것이었을 때도 있고, 내가 잘 아는 흔적은 아닐 때도 있었습니다. 그냥 체취에 희미하게 배어 있는 것일 때도 있었습니다. 고전 속 주인공들, 혹은 저자들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나와 같은 거짓말을 하고, 나와 같은 배신을 하고, 나와 같은 사랑을 하고, 나와 같은 번민에 휩싸였습니다.

- 칼럼 <정혜윤의 어느 날 …을 알게 되었다> 중에서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발간 기념 작가 낭독회는 4월 20일에 있었고, 이 글은 채널예스의 칼럼(바로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으로 엮인 그 칼럼이다)에 4월 22일 업데이트됐다. 작가가 새 글을 이렇게 시작한 건 낭독회가 아쉽게 끝난 탓일 것이다. 사실 작가는 들려주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고, 소통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고, 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늘 시간이 문제다. 더구나 주제가 고전이라면 더 그렇다. 고전을 가지고라면 할 말이 무궁무진하다. 왜냐하면 고전이 지닌 의미가 바로 위와 같기 때문이다.

일전에 김연수 소설가의 낭독회에서 김 작가는 ‘나중에 지나고 나면 알아지는 의미 같은 게 스쳐 지나간다’는 식의 말을 한 적 있는데, 그런 것과 비슷할 거라 여겨졌다. 고전을 읽으며, ‘그때 그게 그거였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것. 나중에 어느 순간 갑자기 전등 켜지듯 공감되는 삶의 진실, 희로애락들. ‘내가 저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보편적 존재의 하나구나’ 하는 뭉클한 느낌.

붉은 머리, 붉은 입술의 여자가 눈을 감고 옆모습을 보이는 책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침대와 책』의 정혜윤 PD의 최근 저서다. 고전이란 말에 별 근거도 없이 매우 친근함을 느끼는 필자는 처음으로 작가를 근거리에서 보는 기회를 갖게 됐다. 관능적이라는 수식어가 책에도, 작가에게도 붙는 걸로 알고 있었기에 더 기대됐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관능적일 수 있으려면 내공이 워낙 엄청나야 하지 않는가!


작가는 관능적이었다. 첫째, 솔직 담백했고, 둘째, 세상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었고, 셋째, 많은 책을 통해 꽉 찬 두뇌를 소유했고, 못지않게 감성적이기도 했으며, 넷째, 달리기로 단련된 날씬한 팔다리를 가졌고(몸은 못 봤다), 하얗고 짧은 원피스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관능적이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

마담 보바리와 다르게, ‘마치 ~이 아닌 것처럼’

낭독회는 책을 낸 출판사에 입사한 지 일주일이라는 홍보담당자와 작가의 어색하고도 친근한 ‘만담’으로 시작했다. 책에 어울리는 음악을 작가가 골라왔는데, 기계가 말썽을 부렸다는 이야기 등. 그러고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섯 작품을 작가와 독자가 번갈아 낭독하고, 작가가 조금씩 덧붙이는 형식이었다.

첫 고전은 작가가 읽었다. 『마담 보바리』. 오페라를 보러 간 엠마가 다시 고향에 내려온 레옹을 만나고 다음 날 둘이서 ‘세계 문학사상 가장 뜨거운 상상을 하게 만든다’고 작가가 표현한 루앙 노트르담 성당 마차 장면. “이미 비탄에 젖어 과장스럽게 거짓말을 섞어 가며 지난날 이루지 못한 사랑의 고통을 서로에게 토로하는 이 애달픈,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커플을 실은 마차는 루앙의 거리를 달리고 달린다.”(p.122)

작가의 목소리는 가늘고 작고 빨랐다. 좁은 골목길을 마차 뒤를 따라 함께 달리는 듯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음악과 섞여 불분명해서 귀를 바싹 세우고 들어야 했다. 분위기, 분위기가 전달됐다. 마침내 다시 만난, 운명 같은 느낌의 두 남녀의 격정.

낭독 후 작가는 실제로 루앙 성당을 찾아갔던 이야기를 곁들였다. 책과 내용이 거의 일치하므로 본문을 인용하겠다.

(…) 이 글의 초반부에 밝힌 것처럼 나는 마담 보봐리 때문에 루앙을 찾아갔고 플로베르의 박물관에 들렀고 거기서 플로베르 가문의 거의 고문 기구 수준으로 생긴 외과 수술 기구들과 플로베르의 책들을 보았고 플로베르의 평범한 동상까지 모두 보았다. 그리고 그다음에 나는 루앙을 벗어나 노르망디의 유서 깊은 수도원 몽생미셸에 갔다. 몽생미셸은 밀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마치 성난 백마 수천 마리가 갈기를 흔들며 돌진해 오듯 달려와 수도원을 순식간에 섬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러나 내가 몽생미셀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지난 12시 13분이었다. 그 기세등등한 바닷물은 이미 다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장관을 볼 기회를 놓쳐 버렸다. (…) 그런데 내가 수도원이자 섬인 곳에서 외로운 산책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찰나 수도원의 야간 조명이 꺼졌고, 야간 조명이 꺼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하나씩 하나씩 순차적으로, 마치 하늘의 길을 내듯이, 별들의 활주로를 내듯이 두 줄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 광활한 우주의 낯선 피조물인 나는 그 순간 요정의 가루 같은 빛 속에 휩싸였다. 빛은 저 멀리 잠든 마을 지붕 위까지 쭉 이어졌다. (…) 잡을 수 없는 숭고함 가까이 간 것 같았다. 나는 그때 내 눈앞에서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의 모습이 사라지고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pp.127~128)

나중에 천문학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바로 은하수였더라고 작가는 덧붙였는데, 이 대목을 굳이 인용한 것은 작가가 이것과 거의 똑같이, 세세히 이야기해준 내용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가가 낸 책의 제목이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진행되는 순간의 목격! 고전을 매개로 하여 삶에서 이런 경험을 온전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운인 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행운이 완전히 우연처럼 오지는 않는다. 『마담 보바리』를 읽고 푹 빠지고, 루앙을 찾아가고, 자정 넘은 시간에 그곳을 산책하는 사람에게만 온다. 작가처럼.

작가처럼, 이라고 썼는데, 작가는 정작 보바리의 문제는 다른 무엇도 아닌 ‘~처럼’ 살고자 한 데 있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빠져드는 가장 흔한 함정이 ‘~처럼’이다. 아무리 경계하고 있어도, 마치 작가인 양, 마치 전문가인 양, 마치 원래는 아름다운 공주였던 양, 원래 집 안에 금송아지가 있었던 양하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쉬운지. 그런데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이것들은 그야말로 자기 경멸을 바닥에 깐 함정이 분명했다.

(…) 나는 자기기만에 가까운, 상상력이 부족한 ‘마치~처럼’보다 ‘마치 ~이 아닌 것처럼’ 쪽이 더 끌린다. (‘마치 ~처럼’의 세계는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마치 ~처럼’의 세계에서 우리는 롤모델로 생각한 사람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마치 ~처럼’의 세계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신을 불쌍히 여기게 된다. 자애심과 자기 연민의 저 밑바닥엔 자기 경멸이 있다는 말은 무척 예리하다.) 질문인지 대답인지 애매한 기도들이 그렇듯이 ‘마치 ~이 아닌 것처럼’을 통한 질문과 의심, 끝없는 문제 제기만이 우리 마음을 작동시키고 다른 세계를, 더 광활한 세계를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p.130)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꿈꾸는 동안에도

두 번째 『폭풍의 언덕』의 낭독은 어느 남성 독자가 나서서 했다. 캐서린의 사랑 고백을 위해 즉석에서 여성 독자 한 분이 작가에 의해 뽑혀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를 읽었다. 남성 독자는 종로학원 다니던 시절에 『폭풍의 언덕』 영문판의 테이프를 반복해 들은 추억을 이야기했고, 이 낭독이 운명적인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그도 ‘세계가 두 번 진행되는’ 특별한 경험을 한 것일까? 아무튼, 캐서린은 이렇게 말한다.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까지나,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어.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그도 그저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p.61)

캐서린이 죽은 다음 히스클리프는 이렇게 화답한다.

“난 유령이 지상을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어.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 줘. 어떤 형체로든지, 차라리 나를 미치게 해 줘! 제발 당신을 볼 수 없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 나를 버리지만 말아 줘. 아! 견딜 수가 없어! 내 생명인 당신 없이는 못 산단 말이야! 내 영혼인 당신 없이는 난 살 수 없단 말이야!”(p.62)

둘은 나와 너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합일된 나만이 존재하는 사랑의 끝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작품을 읽으며, 캐서린에 빙의되어 보지 않을 도리가 있는 걸까? ‘마치 캐서린처럼.’ 하기는 삶을 캐서린처럼 살면 보바리 짝 나기 십상이겠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다시 작가가 읽었다. 책의 153쪽에서 155쪽에 작가가 인용해 놓은 대목이었다. 카라마조프 가 삼 형제의 또 다른 형제일 수 있는 소년 일루샤가 죽은 뒤 셋째 아들인 알료샤가, 소년이 묻히고 싶어 했던 바윗돌 옆에서 소년의 친구들에게 한 연설이었다.

“이 대목에 관해서는 책 뒷날개에 보시면 제가 고전에 바치는 헌사라고 할까, 알료샤가 하고 싶었던 말이 적혀 있어요. 읽어보겠습니다. ‘헤르만 브로흐는 우리 일생을 닫힌 고리, 그리고 무한한 노정이라고 표현했다. 닫힌 고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을 향해 나서는 그 길 사이에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하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의 동경으로,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꿈꾸는 동안에도 여전히 똑같은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우리 맘속의 어느 부분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저마다의 가치를 향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마음의 근원을 이룰 것이다.’”

이렇게 읽어준 작가는 세 아들 중 둘째인 이반에게 끌린다고 했다. ‘혼자서는 어떻게든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을 지켜보고 싶다고 했던가. 나는 누구에게 끌릴까? 천성적으로 온유한 사람을 좋아하니 셋째 알료사일까, 아니면 근본적인 선함을 드러내 보여주는 첫째 드미트리일까?

개츠비가 읽혀야 하는 이유

네 번째 책은 독자 낭독으로 읽은 『주홍 글자』였다. “헤스터 프린과 딤스데일 목사가 개울물 흐르는 숲 속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주홍 글자』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명장면이고 그 장면 하나만 읽어도 우리는 헤스터와 연인인 목사 딤스데일, 그녀의 남편인 로저 칠링워스, 그녀의 딸이자 ‘살아 있는 상형문자’인 펄의 처지와 심리 상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p.232)로 시작하는 여성 독자의 낭독. 여기에 덧붙여 작가는 ‘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심보르스카의 시 「감사」를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시 언급해 주었다. 언뜻 들어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시였다.

『주홍 글자』의 배경으로 어울림직한 곳을 찾아간 일이 있어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황량한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그린데저트를 8시간 이상 달렸어요. 인디언보호구역이라는 곳에 가게 됐습니다. 집이 한 채씩 동떨어져 있는 곳이었는데, 오후 3시가 되자 노란 스쿨버스가 와서 10살 내외의 어린아이들을 그야말로 한 명씩 떨어뜨리고 가더군요. 혼자 내려서, 혼자 언덕을 넘어, 아무도 문 열어주지 않는 집을 향해 가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는, 아무도 생각해 주지 않는 존재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수많은 소수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우리가 헤스터 프린한테 그랬던 것처럼.”

작가는 이어 『주홍 글자』가 재미는 별로 없는 책이었다고 했다. 남녀 간의 긴장이 살아나지 않았다고.

마지막 작품 『위대한 개츠비』는 역시 작가가 낭독했다. 배경음악으로 영화 <리플리>에서 맷 데이먼이 부른 「마이 퍼니 발렌타인」이 흘렀던가……. 그리고 작가는 개츠비가 가장 서정적인 갱스터이자 시인이라고 평했고, 속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개츠비가 드디어 데이지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거대한 노르망디 시청풍의 집 안 구석구석을 구경시킨 다음 마침내 그의 침실로 들어가는 부분은 이 소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고 안타까운 장면이다. 오랜 헤어짐 뒤에 개츠비의 각본에 의해 재회한 그 숨막힐 듯 긴장된 장면에서 둘은 놀라움, 경탄 속에서 허겁지겁 벅찬 포옹을 하는 대신에 놀랍게도 그의 새 옷들을 구경한다”(p.23)라는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 속물의 속물성이 완연히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속물은 작가 말마따나 우리 모두가 지닌 매우 평범한 속성이다. 더구나 개츠비의 시대가 얼마나 우리 시대와 닮았으며, 속물의 양산 방식이나 속도도 얼마나 똑같은지 놀라울 정도다. “그게 바로 이 책이 읽혀야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작가는 말했다. 한마디로, ‘가치의 전도’라는 것이다.


낭독이 끝나고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쭈뼛거리던 독자들은 고전 문학 책을 상품으로 내건 몇 번의 채근 끝에야 질문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어떤 독자는 되지 않는 짝사랑으로 일관하다 죽어 버린 젊은 베르테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고, 어떤 독자는 사자성어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물었고, 또 어떤 독자는 고전을 영화화한, 권할 만한 작품에 대해 물었고, 또 어떤 독자는 고전과 친해지는 법 등 몇몇 가지를 물었다. 다음은 작가의 대답 중 일부.

“외가 쪽이 한학을 하는 집안이라 한자나 서예를 접하며 자랐어요. 생각나는 영화는 듀라스의 <연인>,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등이에요. 몸을 쓰는 직업을 가진, 세월과 ‘맞장’ 뜨는 작가를 좋아하는데 특히 까뮈의 생애를 좋아해요. 『나무 위의 남작』의 칼비노와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등을 읽어 보기 바랄게요. 특히 『숨그네』『나를 보내지 마』는 너무 아름다워요. 『나를 보내지 마』를 새벽 세 시에 읽으며 울었어요.”

이쯤에서 필자가 『숨그네』『나를 보내지 마』를 찜해 두었음을 밝힌다. 정말이지 작가의 설득력이란 대단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만 『나를 보내지 마』의 소개에서 흥분하셔, 스포일링을 좀 한 게 흠이라면 흠일까. 아마 출판사에서 돌린 맥주 한 캔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맥주까지 동원된 것을 생각하면 분위기가 좀 더 풀어졌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이 있었다. 왁자지껄하니, 아무 이야기나 막 주고받는 그런 분위기를 작가도 원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모두에 인용한 저런 글을 이틀 후에 올려놓지 않았을까?

다음엔 좀 더 풀어진 자리에서 작가를 한 번 더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친한 독자와 스스럼없이 포옹을 하고, 첫 책을 낼 때 함께한 편집자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이 이날 보였는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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