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유일한 내 미움이 유일한 내 사랑을 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의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을 꿈꾸는가? 이 피지 못한 꽃들이 지는 봄밤에. 사랑의 이름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시대에, 사랑의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그 답답한 절대성이 우리에게 또 흔적을 남긴다.
지난밤에 고전 낭독 모임에서 하지 못한 말이 많았습니다. 저는 좀 아쉬웠고 애가 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고전을 다시 읽기 시작한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듯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그것은 고전을 다시 읽었다” 그 이상이었습니다. 고전을 통해서 저는 제 인생을 재구성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퍼줄 맞추기 게임 같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흔적, 그래 흔적이구나!’란 생각도 했습니다. 언젠가 저는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선을 바꾸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흔적이다!’ 이런 문장을 썼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 문장을 고전을 향해서도 쓸 수 있습니다. 고전은 흔적 찾기였습니다. 그 흔적은 강렬한 것이었을 때도 있고, 내가 잘 아는 흔적은 아닐 때도 있었습니다. 그냥 체취에 희미하게 배어 있는 것일 때도 있었습니다. 고전 속 주인공들, 혹은 저자들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나와 같은 거짓말을 하고, 나와 같은 배신을 하고, 나와 같은 사랑을 하고, 나와 같은 번민에 휩싸였습니다. 심지어 카프카조차도 회사에 다니기 싫어했고, 부장한테 불려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심지어 피츠제럴드조차 청춘이 가버리는 것에 안달복달했고, 도스트예프스키조차 ‘너희들은 행복하구나! 흥!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하구나!’ 하고 외쳤습니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부부를 믿지 않았고. 섹스는 하면서도 사랑은 하지 않았습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썼지만 『사랑과 전쟁』은 왜 쓰지 않았나 궁금할 정도입니다. 그러고 보니 『크로이체르 소나타』라는 복잡한 사랑 이야기를 쓰긴 했네요. 셰익스피어는 죽어버린 아들을 위해서, 절대 어른이 되지 못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로미오를 만들어 냈습니다. 마치 모든 비극은 어른이 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데서 생기는 것처럼요. 찰스 디킨스는 어린 시절 가난의 기억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고, 부자가 되고 유명해진 다음에도 남성미 넘치는 근사한 성인 남자를 창조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제 생각에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쓴 로렌스는 아마 성 기능에 콤플렉스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남근중심주의에 빠져 있었든지요. 어쩌면 성적으로 불끈, 여자를 제압하고 싶어 했을지도 모릅니다. 만나면 물어보고 싶습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고전 읽기는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어느 미지의 근원에서 나왔다는 모호한 느낌 때문이다”란 표현을 썼습니다. 그것은 갑자기 옛 조상의 고향을 찾아가보는 것과도 같은 것이라고도 표현했더군요. 저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고전을 다시 한번 본다는 것, 자기 눈으로 본다는 것, 그건 각별히 애틋하고 내밀한 일입니다. 수세기 전, 내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요.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재미있습니다. 뭔가 내 인생이 좀 더 흥미진진해집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깊고 푸르고 오목한 곳이 하나 생겨났으니까요.
그래서 제인 오스틴의 팬들이 제인 오스틴 북클럽을 만들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여러분과 가까운 누군가와 고전 읽는 클럽들을 만들어보면 참 좋겠단 말을 하고 싶었는데. 왜 하지 못했을까요? 어쨌든 고전 읽는 작은 모임을 만들게 된다면 저에게도 소식 전해주세요. 제주도 올레길도 산티아고를 걸어본 누군가의 꿈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저도 고전을 다시 읽어보고 나서야 고전이 그저 논술용, 수험용 책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한번 여러분과 고전 읽는 밤을 보내고 싶습니다. 서로 지금보다 조금씩 더 읽은 뒤, 귀뚜라미가 우는 밤이나 매미가 우는 날에. 김홍도의 그림 속에서 기녀들이 고기를 구워 먹었던 눈 내리는 어느 밤이나. 그럼 기다릴게요.
몇 년 전에 영국 이튼스쿨 강물 앞에서 결혼식을 하러 달려가는 신랑과 신부, 그들의 들러리를 본 일이 있었다. 백조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부는 부케를 ?고 웨딩드레스 자락을 품위 있게 들어 올리고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 뒤를 하얀 원피스를 입은 신부 들러리들이 머리에 화관을 쓰고 즐거운 수다를 떨며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뒤를 턱시도를 입은 금발의 신랑이, 또 그 뒤를 신랑의 들러리들이 따르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내게는 그들 모두가 정점을 향해 내달리는, 솟구쳐 오르는 한 무리로 보였다. 그들은 비너스, 비너스를 실어온 파도, 비너스를 받쳐줄 물방울들이었다. 한낮이었고 세계는 그들 앞에 우호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산들바람은 백조의 깃털, 신부의 드레스 밑 속살, 신랑의 금발머리를 다 같이 어루만졌다. 한 마리의 개가 트렁크 옆에서 졸고 있는 거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까뮈가 봤던 어느 날의 결혼식 풍경을 떠올렸다.
이비사에서는 나는 매일같이 항구에 늘어선 카페들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곤 했다. 5시경이 되면 그곳의 젊은 사람들이 방파제를 따라서 두 줄로 열을 지어 산보를 한다. 거기에서 결혼이며 온갖 인생이 이루어진다. 그처럼 세계를 앞에다 두고 인생을 시작하는 것에는 일종의 위대함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를 앞에 두고 인생을 시작하는 것의 위대함, 아마도 그 순간이 위대한 이유는 그 순간이 지나면 이제 그들은 현실의 삶을 살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슬픔과 고통과 지리멸렬함과 권태의 순례자로 살아가게 되겠지만 충분히 강한 순례자가 될 수도 있다. 불안과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세계의 비극과 세계의 위대함과 세계의 기적이 같은 근육을 쓴다는 것을 아는 순례자.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한순간, 어딘지 음모적인 웃음소리가 공기를 뒤흔들었다. 금발의 신랑은 신부 들러리들을 지나 신부에게 뛰어갔고, 신부의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신부는 경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나서 다음 순간 그녀는 조각 같은 흰 팔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마치 큐피드가 화살통을 집어던지듯 부케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 아름다운 팔 동작이었다. 부케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떨어지는 메두사의 목 같았다. 메두사의 목이 떨어졌으니 이제 지상에 남은 결혼하지 않은 연인들은 돌이 되는 비극적 운명을 피하게 된 것일까? 신랑 신부는 앞으로 어떤 연인도 결혼하지 말기를 바랐던 것 아니었을까? 혹시 이 신랑 신부 행렬은 결혼 반대 퍼포먼스를 하는 예술가 그룹이었을까? 나는 이 모든 것을 길 건너편에서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신랑 신부는 태연하게 오후의 햇살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부케는 백조의 몫이 되었다. 백조는 만사태평한 처녀 여왕처럼 보였다. 또다시 평범한 말들만이 간간히 오후의 정적을 깼다.
비합법적 결혼식이 하나 있었다. 그 결혼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베로나 거리는 몬태규 가문과 캐플렛 가문의 반목 때문에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로미오는 캐플릿 가문의 한 아가씨 로잘린에게 푹 빠져 있었다. 짝사랑이었다. 로미오는 사랑이란 한숨으로 만들어진 연기 같은 것, 잘되면 연인의 눈에 반짝이는 불길이고, 잘 풀리지 않으면 눈물 마시고 늘어나는 바다와 같다고 여윈 얼굴로 친구들에게 말한다. 그런데 어느 날 로미오와 친구들은 캐플릿 가문에서 가장 무도회를 열린다는 걸 알게 된다. 로미오는 혹시 로잘린을 볼까 하여 그 파티에 갈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잠시 망설인다. 간밤에 개꿈을 꿨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다. 그러자 친구 머큐쇼가 말한다.
“그렇다면, 맵 여왕이 나타났던 모양이군.
그녀는 산파의 역할 하는 요정인데
시 의원의 집게손가락 위의 마노보다
크지 않은 정도의 몸집을 하고서
눈곱만 한 짐승들이 이끄는 마차 타고
잠자는 사람들의 코 위를 지나가지.
그녀의 마차는 속이 텅 빈 개암인데
잊어버린 옛적부터 요정차 제작자인
가구장이 다람쥐나 땅벌레가 만들었어.
그 차의 바퀴살은 긴 거미다리이고
덮개는 잠자리 날개로 돼있으며
그녀의 봇줄은 가장 작은 거미줄.
채찍은 귀뚜라미 뼈이며 그 끈은 가는 실.”
맵 여왕은 이런 행색으로 밤마다 거리를 질주하는데, 그녀가 닿는 곳이 연인들 뇌 속이면 바로 그때 연인들은 사랑을 꿈꾸게 되고, 맵 여왕이 닿는 곳이 변호사 뇌 속이면 그 변호사는 돈을 꿈꾸게 되고, 군인들 머릿속이면 군인들은 폭탄주나 스페인제 검을 꿈꾸게 된다. 그러니까 머큐쇼(틀림없이 ‘머큐리’에서 이름을 따왔음직한)에게 사랑은 상인이 돈을 꿈꾸는 거나 권력자가 권력을 꿈꾸는 거나 다름없는 일일 뿐이다. 귀뚜라미 뼈를 들고 다니는 불길한 요정이 때마침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의 뇌 속에 들어가 벌이는 심심풀이 장난질이 사랑이라니. 이제 연인들은 신들과 요정이 빚어낸 변덕에 시달리게 될 운명이었다. 거룩함이 들어설 ?꺸는 없다. 사랑의 지위는 까마득히 추락한다. 그런데 그때 로미오는 무슨 예감처럼 불길한 말을 한다.
“난 너무 일찍 겁이 나. 내 마음은
아직은 별들에 달려 있는 그 어떤 결말의
두려운 기일이 오늘밤 축연에서
비참하게 시작되고 내 가슴에 갇혀 있는
멸시 받은 생명이 때 이른 죽음으로
천하게 만료되지나 않을까 불안해하니까.”
그렇지만 캐플릿 가문의 축제에 가자마자 로미오는 줄리엣을 발견한다. 그리고 로잘린을 깨끗이 잊어버린다. 그야말로 하얗게 잊어버린다. 둘은 소네트풍의 대화를 두 번 주고받는데 로미오는 이내 줄리엣에게 키스한다. 그리고 줄리엣은 파티가 끝나자마자 자신이 한눈에 반한 남자가 몬태규 가문의 아들인 걸 알게 된다. 그녀는 이렇게 탄식한다.
“유일한 내 미움이 유일한 내 사랑을 낳다니…….”
‘유일한 내 미움이 유일한 내 사랑을 낳는다’는 말은 가문의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비극적 숙명 앞의 탄식이기만 한 것일까? 이를테면 낙랑공주와 호동왕자가 한번쯤은 주고받았음직한. 그러나 줄리엣의 이 말엔 다른 의미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 강한 연인 앞에서 가문의 반대는 오히려 불길 앞의 기름처럼 사랑의 자극제로 변해서 사랑을 더욱 더 활활활 불타오르게 할 수도 있다. 가문의 반대 따위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더 무시무시한 사랑의 방해물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사랑의 충동, 저 아래에 똬리를 틀고 있는 불길한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유일한 미움과 유일한 사랑은 같은 뿌리에서 물을 빨아 먹고 있다. 출발은 큐피드는 결코 두 개의 화살을 동시에 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사랑의 화살은 사선으로 기울어져서 날아간다.
- 극단의 사랑에서 원한이 생길 때 사람들은 그가 증오한다고 말하지만 그가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 사랑은 사랑하는 이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눈 멀게 한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초라하게 한다. 매번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리고 해석하고 곱씹어보고 쉴 틈이 없게 한다. 일 분에도 몇 날이 들어 있다. 우리가 아는 시간의 개념도 산산조각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역사도 내 사랑의 역사 안에선 힘을 잃는다. (영화 <감각의 제국>에서처럼. <감각의 제국>에서 군인들이 행진을 해도 남녀는 군화 소리 울려 퍼지는 가운데서 끝없는 섹스를 나눈다. 소설 『슬픈 짐승』에서 백 살 먹은 여주인공은 그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유는 그의 마지막 애인과 자신이 만나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즉 그들이 사랑하게 하기 위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단 것이다.) 희망과 절망, 상승과 하강, 해석과 재해석이 사랑하는 이를 조울증 환자로 만들어 버린다.
- 사랑은 정체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이는 수시로 자기 자신을 포기한다. 기꺼이 양보한다. 한용운의 시에서처럼 복종한다. 사랑하는 이는 자신을 봉헌한다. 몰입한다. 아양을 떤다. 비겁해진다. 눈치를 본다.
- 사랑은 자기 소외와 관련이 있다.
- 사랑이 내 의사결정권을 방해하고, 내 사생활을 교란시키고, 내 영혼에 침투하고, 내가 나를 낯설게 하고, 나를 좌지우지하고, 자유를 빼앗아가고…….
- 사랑은 손익계산이 불가능하다. 어느 쪽이 이득인지 따지는 순간 떳떳치 못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따져보려 해도 따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 순수한 사랑과 과한 사랑, 넘치는 사랑을 구분하기가 힘들다. 사랑은 아무리 표현해도 덜 표현한 것이다.
- 사랑 안에서는 누가 더 이기적인지, 누가 더 이타적인지, 누가 더 배려하는지, 누가 덜 배려하는지, 누가 더 선한지, 누가 더 악한지, 누가 요조숙녀인지, 누가 탕녀인지, 누가 악녀인지 모든 게 혼란스럽다. 명확함,명쾌함은 사라진다. 사랑의 제국 안에서 절대군주인 사랑하는 이는 폭력적이지만 아무런 명령을 내릴 수 없다. 설사 명령을 내린다 해도 강제할 수가 없다.
- 사랑이 아니라면 훌륭했을 가치들-절제, 침착, 사려 깊음, 중용, 온순함, 세계에 대한 배려, 타인에 대한 무한한 관심, 공공의 일을 위해 시간을 씀-은 사랑과 관련될 때는 단점, 결정적인 증거(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이에게 몹시 상심하여 초췌한 얼굴로 이렇게 고함칠 수도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만큼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 순간 우리는 사랑하면서 미워하게 된다. ‘나는 몰입해 있는데 너는 나를 구경만 하고 있다니!’ ‘나는 광기에 휩싸여 있는데 너는 평온하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면 유일한 내 사랑은 미움을 낳고 그 미움은 오로지 더 큰 사랑만을 요구하게 한다(사랑과 미움의 관계에 관한 세계 문학사상 최고의 명장면은 로렌스의 『무지개』에 나온다). 미움은 사랑보다 해묵은 감정이다. 미움은 늙은 감정이고 과거를 잊지 않는 감정이다. 사랑은 젊은 감정이다. 늘 새롭기만을, 신선하기만을, 처음 같기만을 요구한다. 오래된 감정이 새로운 감정을 요구한다. 사랑이 변하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은 변하지 않으면서 사람은 새로워져야 한다. 그렇다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필요로 했던 것은 사랑하는 누군가, 꼭 지금 모습 그대로의 누군가가 아니라 누군가의 ‘사랑’ 그 자체였던 것 아닐까? 그래서 줄리엣이 ‘내 유일무이한 미움이 내 유일무이한 사랑을 낳는다’고 말할 때, 그녀는 이미 사랑이 미스터리인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우리의 똑똑한 열네 살 줄리엣은, 2막에선 베란다에 서 있게 된다. 베로나 거리를 질주해온 로미오는 줄리엣을 저 아래 캐플렛 가문의 정원에서 훔쳐본다. 그리고 “줄리엣은 해님이다!”라고 외친다. 그때 줄리엣은 로미오가 숨어있다는 걸 모른 채 이렇게 혼잣말한다.
“오! 로미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인가요?
아버지를 부인하고 그대 이름 거부해요.
그렇게 못한다면 애인이란 맹세만 하세요.
그럼 난 더 이상 캐플렛이 아니에요.
(…)
그대의 이름만이 나의 적일 뿐이에요.
몬태규가 아니라도 그대는 그대이죠.
몬태규가 뭔데요? 손도 발도 아니고
팔이나 얼굴이나 사람 몸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에요. 오! 다른 이름 가지세요
이름이 별건가요?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건
다른 어떤 말로도 같은 향기 날 겁니다.
로미오도 마찬가지, 로미오라 안 불러도
호칭 없이 소유했던 그 귀중한 완벽성을
유지할 거예요. 로미오. 그 이름을 벗어요.
그대와 상관없는 그 이름 대신에
나를 다 가지세요.”
“로미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인가요?” 역시 ‘왜 당신은 몬태규 가문 출신인가요?’란 의미를 넘어서는 다른 뜻도 있다. “당신은 왜 당신인가요? 당신은 왜 내가 아니고 당신인가요?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나요?” 이 질문은 물어보는 순간 이미 상처를 낸다. 아무리 수천 번을 묻고 대답을 들어도 성에 차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 그 이름은 하나의 경이로운 의미로 등장한다.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의 모든 것을 합한 것이 당신인가요? 아니면 내가 볼 수도 없는 것까지 다 합한 것이 당신인가요? 로미오보다 더한 것, 로미오 이상의 것, 그것이 당신이지요? 내 심장에 박힌 정체불명의 이물질인 당신은 누구인가요?’ 한 사람의 이름이 절대적으로 떠오른다면 그 이름은 다른 모든 것을 배척한다. 절대주의와 배타주의는 사랑과 미움의 관계와도 같다. 우리는 한 이름을 사랑하는 동안 다른 이름을 세상 밖으로 쫓아내 버린다. 혹은 반대로 세상에서 쫓겨나는 건지도 모른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제 사랑의 맹세를 나누어 갖는다.
로미오: 과일나무 가지 끝을 은빛으로 물들이는 저기 저 축복받은 달님에게 서약컨대-
줄리엣: 오. 둥근 궤도 안에서 한 달 내내 변하는 지조 없는 달에게 맹세하진 마세요.
그대의 사랑도 그처럼 바뀌지 않도록.
로미오: 어디에다 맹세하죠?
줄리엣: 아무 맹세 마세요.
하겠다면 품위 있는 자신에게 맹세해요.
이 몸이 우상으로 숭배하는 신이니까.
그럼 믿을 거예요.
로미오: 내 가슴의 사랑이-
(…)
줄리엣: 오늘 밤에 원하시는 만족이 뭔데요?
로미오: 성실한 사랑 서약 교환하는 거랍니다.
줄리엣: 요청도 하기 전에 내 것을 드렸어요.
(…) 아낌없는 내 마음은 바다처럼 끝이 없고
사랑 또한 같이 깊어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이 생겨나요. 둘 다 무한하니까.
로미오: 이 모든 게 실제라고 하기엔 너무나
기분 좋게 달콤한 꿈일까봐 두렵구나.
우리는 왜 맹세해야 할까? 사람의 눈과 정신을 영원히 한곳에 고정시키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아마 우리는 휴식을 원하는 건지도 모른다. 사랑의 불안정한 열정은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평온해지고 싶다. 좀 긴장을 풀고 싶다. 사랑 말고 딴 일도 좀 신경 써보고도 싶다. 변치 않는 사랑을 항구로 어딘가 떠나보고도 싶다. 그러나 불안정을 원하면서 동시에 안정되고 싶다니. 이 모순을 어찌해야 할까? 그러나 사실은 사랑은 사랑하는 ‘순간’의 일이란 것을, 맹세를 주고받는 당사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로미오의 말처럼 깰까 두려운 꿈처럼. 그래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낯선 여인의 편지』 속에서 여주인공은 최후의 순간까지 고백을 미룬다. 맹세도 혼자서만 한다. 사랑의 절대성을 위해서.) 시간은 순간으로 조각조각 난다. 그러나 그 순간들은 요람에서 무덤 사이에서 천연히 빛나는 시적 순간들이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겨울 여왕의 유리 조각처럼 가슴에 깊이 박힌다. 맹세는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맹세는 궁지에 몰린 마법사나 애용하는 주문에 불과하다. ‘말, 그것은 한 방울의 눈물보다도 못하다’고 한 슈베르트 노래에서처럼. 사랑과 의무는 어딘지 서로 점점 닮아간다. 요구할수록 사랑의 수명은 점점 더 짧아진다. 이제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무도 몰래 (두 집안의 원한이 순수한 사랑으로 바뀌길 바라는) 로렌스 수사의 주선으로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사랑을 공고화하기 위해서. 사랑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영원히 행복해지기 위해서. 로렌스 수사의 꿈은 두 젊은이가 피를 흘린 다음에야 이뤄진다. 그렇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꿈은? 결혼과 사랑과의 관계는 적어도 이 커플에게는 또 다른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이 오직 사랑만을 품고 아주 일찍 죽어 버린 것이 이 이야기의 비극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비극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들이 백년해로한 후에 백 살쯤 된 줄리엣이 팔십오 년간의 사랑에 대해 회고한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소설 『키메라』에서 안드로메다와 결혼한 당대 최고의 영웅 페르세우스는 마흔 살이 되자 자기 몸이 뻣뻣하게 돌이 되어간다고 느낀다. 허리도 아프고. ‘혹시 메두사를 베기 전에 실수로 얼굴을 봐버린 것 아닐까?’ 페르세우스는 고민한다. 세월과 결혼 생활의 평온과 안정감과 권태와 무기력이 영웅을 평범한 인간으로, 평범한 인간을 돌로 만들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페르세우스에게 귀가 번쩍 트이는 소문이 들려온다. 이제 메두사의 저주는 풀려서 메두사는 아테네의 은전을 입어 다시 살아났고 이제 메두사는 인간을 돌로 만드는 게 아니라 돌이 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페르세우스는 다시 메두사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마침내 메두사를 만난 페르세우스는 인생과 아름다움과 사랑에 관한 위대한 비밀과 만난다.)
그런데 캐플릿 가의 무덤 안에 쓰러져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상상해 보면, 마치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 옆에서 죽기 전에 품었을 수도 있는 꿈 같은 게 떠오른다. ‘내 유일한 연인이 한 번만 눈을 떠 나를 바라본다면’ 혹은 ‘유일한 내 연인이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면?’ 같은 상상을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앞에서 해볼 수도 있다. 이처럼 사랑했던 두 사람이 혹시라도 깨어난다면, 그들은 눈을 뜬 다음에 무엇을 하게 될까? 우리는 잠에서 깨어난 두 사람이 다시 열기에 빠져 수천 번의 키스를 나누면서, 폭발적인 에로스에 휩싸이게 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축제 있기 전날 밤에 새 옷을 받았으나 입지는 못하는 아이처럼/죽음이여 로미오 대신에 나의 처녀성을 가져라.” 줄리엣은 신혼 첫 합방을 기다리면서, 로미오가 베로나에서 추방당했음을 알자 이렇게 외친다.)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결코 다다르지 못할 오르가즘을 향해 치닿는 소설이다.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 찬 언어들, 에로틱한 욕망에 가득 차 있는, 전혀 금욕적이지 않은 미숙한 젊은이들. 태양과 밤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오르가즘으로 끌고 가는데 그때 그 에로틱한 무덤가에 밤 꾀꼬리 한 마리의 노래가 들려올지도 모른다.
(…)
어쩌면 그 소리는 향수에 젖어 외로운 들판에서
눈물짓고 있던 소녀의 슬픈 가슴속을 스쳐 지나갔던 것과
동일한 노래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버림받은 동화 같은 땅에서
위험한 바다의 포말에 내맡겨진 마법의 배 창가를
매료시키던 바로 그 노래일 수도 있다
버림받은 땅! 바로 이 말은 마치 한줄기 종소리처럼
나를 너로부터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도록 울려 퍼지고 있다
아서라! 환상은 세상에 소문이 난 것처럼 요정을 속일 정도로
그렇게 우리를 잘 속일 수는 없는 것이거늘…
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 세월호 유족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 1, 재난참사 가족들과 함께 만든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 등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자살률의 비밀]로 한국피디대상을 받았고, 다큐멘터리 [불안],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 [남겨진 이들의 선물], [조선인 전범 75년 동안의 고독] 등의 작품들이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쌍용차 노동자의 삶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 『인생의 일요일들』, 『뜻밖의 좋은 일』, 『아무튼, 메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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