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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적 아름다움

할 포스터의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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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푼크툼으로서의 그림 읽기를 담은 『교수대 위의 까치』에 이어, 진중권의 가장 개별적이고 독특한 책 읽기를 엿볼 수 있는 칼럼입니다. 틀에 박힌 목록과 표준적인 해석을 넘어 이 시대에 맞는 진중권의 ‘고전 읽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진중권의 푼크툼으로서의 그림 읽기를 담은 『교수대 위의 까치』에 이어, 진중권의 가장 개별적이고 독특한 책 읽기를 엿볼 수 있는 칼럼입니다. 틀에 박힌 목록과 표준적인 해석을 넘어 이 시대에 맞는 진중권의 ‘고전 읽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고전은 근대적인 시각으로 재편된 읽을거리가 되었습니다. 서양식 이성의 개념어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 한정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고전을 고리타분하다고 여깁니다. 누구보다도 지금을 살고 있는 진중권이 책 읽기를 시도합니다. 다양한 미디어와 함께 다층적인 시선으로 그가 읽어 내는 미학적 고전 읽기, 지금 시작합니다.

***

Hans Bellmer, 「La poupee」


모더니즘 예술 운동의 여러 흐름 중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은 초현실주의다. 아방가르드 미술사는 초현실주의를 그저 모더니즘의 주류에서 벗어난 일탈로 간주해 왔다. 모더니즘의 주류를 이루는 추상 미술이 형과 색에 대한 탐구에 몰두했다면, 초현실주의는 형식이 아니라 주제(subject matter)를 탐구했기 때문이다. 형식주의자들이 보기에 매체에 대한 반성에서 벗어난 초현실주의는 일종의 시대착오, 즉 모던 이전(pre-modern)의 미술로 되돌아가는 퇴행 현상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초현실주의가 또한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미술사가들은 초현실주의를 꿈의 해석이나 자동기술법과 같은 술어로 기술해 왔다. 거기에 따르면 초현실주의란 그저 꿈과 같은 형상을 의식의 통제 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기술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1960년대 이후 모더니즘이 퇴조하면서 등장한 포스트모던의 맥락 속에서 초현실주의의 때늦은 복권이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미술사는 초현실주의의 공간을 여전히 구태의연한 옛이야기들로 채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초현실주의에 대한 연구에서 유일하게 본질적 기여를 한 것이 할 포스터의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이다. 이 미국의 평론가에 따르면 초현실주의를 이해하게 해 주는 개념은 ‘언캐니’라고 한다. 언캐니는 “억압되었던 것이 통합된 정체성, 미적 규범, 사회 질서 등을 파열시키면서 회귀하는 것을 보여 주는 사건들에 대한 관심과 관련이 있다.” 할 포스터는 초현실주의자를 “억압된 것에 끌렸을 뿐 아니라, 억압된 것의 회귀를 비판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고 했던 사람들”로 그려 낸다.

친숙한 낯섦

‘언캐니’(uncanny)는 독일어 ‘운하임리히’(unheimlich)의 역어로, 원래 심리학자 에른스트 옌취가 E.T.A. 호프만의 소설을 분석하는 가운데에 도입한 개념이다. 그는 언캐니의 감정을 “살아있는 듯한 존재가 정말로 살아있는지, 혹은 그 반대로 생명 없는 대상이 실은 살아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상태로 정의한다. 가령 호프만의 소설 『모래 사나이』에서 주인공 나다니엘은 올림피어와 입을 맞추다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녀의 입술에 섬뜩함을 느낀다. 나중에 그 여인은 자동인형으로 밝혀진다.

옌취와 달리 프로이트는 호프만 소설의 언캐니 효과를 설명하는 가운데 자동인형보다는 ‘아이의 눈알이 빠진다’는 모티프에 주목한다. 우리가 떼쓰는 아이에게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고 말하는 것처럼 독일에서는 떼쓰는 아이들에게 ‘모래 사나이가 온다’고 말하곤 한다. 호프만의 소설의 배경이 된 이 민간전승에 따르면, 모래 사나이가 와서 아이들의 눈에 모래를 뿌리면 아이들의 머리에서 눈알이 빠져나오고, 사내는 그 눈알들을 자루에 담아 구름 위에 사는 자기 자식들에게 먹이로 갖다 준다.

프로이트는 ‘눈알이 빠진다’는 모티프를 거세 환상과 연관시킨다. 호프만 소설의 언캐니 효과는 이 유아기 근본 환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언캐니는 억압되어 있던 유아기 콤플렉스가 어떤 다른 경험 때문에 되살아나거나, 그동안 우리가 극복해 온 미신이 다시 한번 힘을 발휘할 때 경험된다.” 섬뜩한 것은 억압되었던 것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친숙한 낯섦’이라는 언캐니의 프로이트식 정의가 성립한다.

“프로이트의 언캐니는 억압에 의해 낯선 것이 되어 버렸으나 원래는 익숙했던 현상이 되살아나는 것과 관련된다. 억압된 것이 되살아나면 주체는 불안해진다. 주체가 이해하기 힘든 모호한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언캐니는 이 불안한 모호함 때문에 생기는 직접적 결과다.”

경이로운 것

할 포스터는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의 기본 원리로 채택한 ‘경이’가 결국 프로이트가 말한 언캐니라고 말한다. 그 유명한 선언문에서 브르통은 초현실주의가 추구하는 ‘경이’(the marvelous)의 본질을 ‘발작적 아름다움’과 ‘객관적 우연’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한다. 할 포스터에 따르면, “초현실주의의 아름다움은 육체에는 발작적(convulsive) 효과로 나타나고, 심리적 역동에는 강박적(compulsive) 효과를 자아낸다.” 한마디로 초현실주의의 경이는 신체의 발작 및 정신의 강박과 관련이 있다.

‘발작적 아름다움’(compulsive beauty)은 “베일에 가린 에로틱한 것, 폭발하는 상태가 멈춰버린 것”으로 표현된다. 그 예로 브르통은 현대의 마네킹과 낭만주의의 폐허를 들었다. 사물이면서 생명처럼 보이는 마네킹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이 하나가 되고, 무너져 내려 대지로 합류하는 폐허에서는 자연과 역사가 하나가 된다. 마네킹은 ‘베일에 가린 에로틱한 것’, 폐허는 ‘정지된 폭발’의 예라 할 수 있는데, 어느 경우든 발작적 아름다움은 삶과 죽음의 언캐니한 뒤섞임으로 나타난다.

한편, ‘객관적 우연’(objective chance)은 ‘우연한 만남’과 ‘발견된 오브제’라는 두 개념으로 설명된다. 여기서 ‘우연한 만남’이란 우연히 일어난 일이지만 마치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사건을, ‘발견된 오브제’란 결코 되찾아지는 것이 아닌데도 계속 찾아 헤매게 하는 대상을 가리킨다. 초현실주의에는 이처럼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이면서 동시에 결정되어 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것, 전에 본 적이 없는 것(imprevu)인데도 본 적이 있는 것(deja vu)처럼 느껴지는” 역설적 경험이 깔려 있다.

삶의 충동과 죽음의 충동

경이의 바탕에는 죽음의 충동이 깔려 있다. 가령 발작적 아름다움의 한 예인 ‘베일에 가린 에로틱’을 보자. ‘달걀 모양의 석회암 퇴적물’ ‘사람 모양의 고무 오브제’ ‘수중 정원을 닮은 산호초’ 등은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모호한 혼합 속에서 개체 발생의 최초 상태(자궁 속) 혹은 진화 단계의 최초 상태(바다 속)를 연상시킨다. ‘정지된 폭발’도 마찬가지다. 폐허가 된 원시림에 방치된 고속 열차, 회전하는 탱고 댄서의 정지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운동과 정지, 삶과 죽음의 언캐니한 혼합이다.

발작적 아름다움의 또 다른 예인 ‘객관적 우연’의 바탕에서도 어렵지 않게 죽음의 충동을 읽어 낼 수 있다. 객관적 우연에서 주체는 강박의 메커니즘에 따라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이 반복의 강박은 트라우마의 경험을 기억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경험을 억압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이 억압과 반복의 강박증을 ‘객관적 우연’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이 힘에 대항하려 했지만, 그 힘의 매력에는 저항하지 못했다.

‘친숙한 낯섦’이라는 언캐니 효과는 결국 죽음의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어나기 전에는 무생물이었기에 우리의 무의식에는 다시 그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충동이 존재한다. 자기 파괴를 위협하는 사건은 피해야 하나 죽음의 충동은 주체로 하여금 고통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그 트라우마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낯설게 여겨지는 죽음은 원래 우리에게 친숙했던 것이다. 단지 억압되어 있었을 뿐이다. 여기에 ‘억압된 것의 회귀’라는 언캐니의 정의가 성립한다. 이 언캐니야말로 초현실주의의 본질이다.

쾌락 원리를 넘어서

이로써 초현실주의에 대한 기존의 관념은 전복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관념은 초현실주의가 억압된 성욕의 승화라고 말하나, 할 포스터의 분석은 그것을 이끈 힘이 ‘쾌락 원리’가 아니라 ‘죽음 충동’이라고 말한다. 이는 분석의 패러다임이 초기 프로이트에서 후기 프로이트로 바뀐 것의 결과다. 『쾌락 원칙을 넘어서』에서 프로이트는 쾌락 원리를 압도하는 다른 원리, 즉 죽음의 충동을 발견한다. 그 이후 ‘자기 보존 본능 대(對) 성 충동의 대립’은 효력을 잃고, ‘삶 충동 대(對) 죽음 충동의 대립’이라는 새로운 모델이 등장한다.

초현실주의를 추동한 것이 죽음 충동이라는 것은 매우 당혹스러운 결론이 아닐 수 없다. 그 당혹감은 물론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초현실주의의 대표자에게도 이 사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초현실주의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과 해방과 혁명을 위한 운동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죽음 충동과 결부된 초현실주의는 당연히 “이단”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할 포스터의 말대로 초현실주의가 “언캐니를 가지고 죽음을 선포”했다면, 결국 그것은 자신의 야망을 스스로 공격한 셈이 아닌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아마도 ‘저자를 거슬러 읽는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가령 브르통은 자신이 쾌락 원리를 따르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할 포스터가 보기에, 브르통이 뭐라고 생각하든 그의 초현실주의는 이미 “쾌락 원칙이 죽음 충동의 보조 역할을 하는 지점”까지 나아갔다. 다만, 브르통은 이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브르통이 가다가 멈춘 그 길로 나아간 것은 바타유였다. 바타유는 “죽음 충동에 저항하지 않고 죽음 충동을 체계 안에 받아들여 발전시켰다.”

디지털과 언캐니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은 표지에 적힌 대로 “포스트모던의 시각에서 본 초현실주의”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포스트모던의 관점에서 초현실주의를 고쳐 읽으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의의가 그저 흘러간 역사를 다시 읽는 데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최근 초현실주의가 이미지 문화의 중심으로 복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에 초현실주의적 ‘경이’의 예로 소개된 모든 요소가 오늘날 디지털 사진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는 점이다.

가령 인형과 아이를 합쳐 놓은 듯한 로레타 룩스의 사진, 인간과 로봇을 합쳐 놓은 듯한 알렉 두의 모델 사진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베일에 가린 에로틱’을 본다. 또 폭격의 현장을 낭만주의 시대의 폐허로 연출하는 사이먼 노포크의 작품, 고즈넉한 풍경 속에 누운 학살 희생자를 담은 수전 메이젤라스의 사진, 채석장의 발파 순간을 포착한 어느 일본 작가의 작품 등은 ‘정지된 폭발’의 예라 할 수 있다. 한편, 디지털 기술로 연출한 웬디 맥머도의 도플갱어 사진은 ‘객관적 우연’의 반복 강박을 연상시킨다.

Hans Bellmer, 「La poupee」

할 포스터는 ‘죽음 충동’의 관점에서 초현실주의를 읽는 새로운 이론적 프레임에 맞추어 초현실주의 작가들 중에서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던 한스 벨머의 작업을 부각시킨다. 한스 벨머의 사디스틱한 인형 작업이야말로 “성적 욕망을 상징물로 대체하는 승화 작업”에 머물렀던 브르통을 넘어, 탈승화를 통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에 동의”했던 바타유의 철학에 근접했다는 것이다. “인형은 시체이며, 조각난 신체고, 주체성이 사라지고 난 이후의 신체이자 동시에 주체성이 생기기 이전의 신체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최근 인형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카트린 프라이자거, 키르스텐 가이슬러, 린 허쉬먼, 이네스 반 람스베르데, 빅토리네 뮐러, 이브스 네츠하머, 도니 우르슬러, 신디 셔먼, 쥬디 폭스, 로버트 고버, 마이크 켈리, 키키 스미스 등. 대충 떠오르는 이름만 적어도 이미 기다란 리스트가 만들어질 정도다. 이 모든 현상들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언캐니’가 우리의 시각 문화를 결정하는 주요한 미적 범주로 복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때문에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은 그저 과거에 대한 회고에 머물지 않고, 동시에 지금 회귀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석이기도 하다. 물론 산업화와 기계화로 신체가 트라우마를 겪었던 20세기 초반과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정보화의 단계로 접어든 오늘날에는 ‘인간의 기계화’가 아니라 거꾸로 ‘기계의 인간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 언캐니는 더 이상 억압된 것이 아니라 권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언캐니에서 더 이상 해방적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어졌음을 의미할 것이다.

포스트모던을 배경으로 한 초현실주의 읽기는 디지털 문화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독해로 나아가야 한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진중권의 독창적인 책 읽기>는 매주 화요일, 총 22회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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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진중권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 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독일 유학을 떠나기 전 국내에 있을 때에는 진보적 문화운동 단체였던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의 간부로 활동했다.

1998년 4월부터 『인물과 사상』 시리즈에 '극우 멘탈리티 연구'를 연재했다. 귀국한 뒤 그는 지식인의 세계에서나마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과 논쟁의 문화가 싹트기를 기대하며, 그에 대한 비판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변화된 상황 속에서 좌파의 새로운 실천적 지향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9년 중앙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 교수로 재직 하였다.

그를 대중적 논객으로 만든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박정희를 미화한 책을 패러디한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글은 ‘박정희 숭배’를 열성적으로 유포하고 있는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과 작가 이인화씨, 근거 없는 ‘주사파’ 발언으로 숱한 송사와 말썽을 빚어온 박홍 전 서강대 총장,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옹호한 작품 〈선택〉으로 논란을 낳은 작가 이문열씨 등에 대한 직격탄이다. 탄탄한 논리, 정확한 근거, 조롱과 비아냥, 풍자를 뒤섞은 경쾌하면서도 신랄한 그의 문장은 '진중권식 글쓰기'의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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