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을 지키며 살 수 있을까 - 『도가니』
20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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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 용산 참사, 쌍용차 파업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일들이 이 단순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결과도 늘 비슷하다. 소설에서 장애아를 성폭행한 교장과 행정 실장, 선생이 아주 가벼운 처벌을 받은 반면, 그 죄를 물으려 했던 이들은 힘없는 자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고통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빼앗기는 일이다.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자애 학원의 기간제 선생으로 부임하게 된 강인호는 처음부터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다. 학교 발전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5천만 원을 내고 자애 학원의 선생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권력자들에게 저항할 수 없는 약점이 된다. 그랬던 그가 교장과 행정 실장의 성추행 사실을 고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저항할 수 있는 아무런 힘도 수단도 없는 가여운 농아들에 대한 사랑과 의리였다. 그리고 그것이 돈 때문에 빼앗겼던 자기의 자존심을 되찾아 올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족이라는 현실이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 수애. 농아들에게도 강인호가 필요했지만 아내와 딸에게도 강인호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아내는 소설 속에서 강인호가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순간마다 궂은일을 자처한다. 친구에게 기간제 교사 자리를 청탁한 것도 아내고, 학교 발전 기금을 마련해 준 것도 아내다. 그리고 농성장이 철거되는 새벽 강인호가 현장으로 갈 수 없었던 이유도 아내가 마침 그날 서울에서 강인호를 데리러 왔기 때문이다. 그는 선택해야 했다. 결국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고 강인호는 아내와 함께 서울로 올라간다.
강인호는 농아들과 끝까지 함께 하면서 돈의 노예가 되는 길을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가족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가 투사가 되어 농아들의 인권을 지키고, 사회의 부조리를 끝까지 용서하지 않았다면 소설을 통해 또 다른 대리 만족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빌딩이라는 나무가 가득한 서울이라는 숲으로 몸을 숨긴 강인호를 욕할 수는 없다. 그게 현실이고 세상의 이치다. 세상은 그렇게 우리를 길들인다. 세상을 바꾸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강인호와 달리 농아들과 끝까지 남아 싸우는 서유진은 말한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내가 바뀌지 않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일을 아주 조금은 늦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다. 자존심을 지키며 산다는 거,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거 말처럼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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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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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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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1.12.21
misterzero
2010.04.12
이를 실행하는 용기도 필요한데
하지만 아직도 사회는 그 틀을 깨는 용기를 허용하기에는
너무도 견고한 것은 아닌지~~~.. 참 가슴아프게 읽은 책이네요
미소&당기소
2010.04.11
사회병리현상을 우리 어른들이 제대로 치유할 수 있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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