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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살아갈 날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1973년의 핀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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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의 핀볼』. 그건, 최초의 인간들에게나 우리들에게나 살아갈 날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글이다. 그건 어쩌면 끈 이론과도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 나에게 끈 이론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그날은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그날 들은 끈 이론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초고성능 현미경으로 소립자들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점이 아니라 진동하는 끈이다. 만일 누군가가 이 끈을 잡고 흔들거나 튕기면 진동 패턴이 달라지고 입자의 종류도 달라진다. 바이올린 줄이 내는 a음과 b음은 근본적인 음이 아니다. 왼손가락의 운지에 따라 바이올린 줄은 모든 음을 만들 수 있다. 우주는 수많은 끈들이 동시에 진동하면서 만들어내는 거대한 교향곡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런데 끈은 아주 우아한 대칭성을 갖고 있는데 초대칭 이론에 따르면 모든 입자들은 파트너를 갖고 있다(나는 ‘모든 입자들은 파트너를 갖고 있다.’란 말을 따라 했다). 이 끈 이론이 바로 맷 데이먼이 나왔던 <굿 윌 헌팅>의 내용이야. 나는 그때쯤 일어나서 눈을 바라보았다. ‘눈’, 6각형 눈, 자연계의 초결정 대칭.

나는 어떤 문장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당신이 첼로를 연주한다고 생각해봐요. 당신이 연주하는 음악은 청중 속으로 흘러가지만 또한 당신의 핵 속으로도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어찌 되었던 당신은 그 순간 첼로와 조율되어 있기 때문이죠. 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우리가 하나의 현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의 현입니다. 우리의 육체적 특징은 수십억 개의 DNA가 작은 음표들처럼 모여서 이루어진 겁니다. 여기에 지리, 배경, 기타 등등의 요소들이 더해져 저마다 고유한 음역을 형성해 나갑니다. 그 다음에는 또 우리가 행동하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심리적 차이를 일으키는데 이 차이들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음역을 변경시킵니다. 인생은 여러 현들이 겹겹이 쌓인 층이 맞습니다만 그렇더라도 가장 기저에 있는 현만은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이 점이 끈 이론과 사랑과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의 개별적 현은 타인의 개별적 현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인생은 가끔 우리에게 우리와 완전하게 조화되는 타인을 만나게 해줍니다. 이럴 때 우리는 DNA 단계보다 상위에 있는 지배적이며 압도적인 매력에 직면합니다. 사랑에 빠진 당신이 그 감정을 표현하거나 애정을 전시하지 않을 때에도 당신은 멜로디 속으로 녹아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심포니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니까요.”(『눈에 대한 백과사전』 중에서)



 

하루키의 『1973년의 핀볼』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토성과 금성과 가슴이 볼록하고 성조기가 그려진 수영복을 입은 원더우먼들과 공동묘지의 일렬로 선 나무들과 조그만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아파트의 불빛과 기타나 피아노, 혹은 검은 오디오가 있는, 윤희나 지혜 같은 여자의 이름을 달고 있는 모퉁이의 작은 맥주바들, 피곤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는 남자 친구들과 오락실이나 당구장 앞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여자 친구들, 그들의 사랑과 결별과 기억과 상실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 1973년은 1972년에 시작되었고 1972년은 1971년에 시작되었고 1971년은 1970년에 시작되었다. 그렇게 해서 최초의 인간들이 가장 먼 미래에 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1973년의 핀볼』. 그건, 최초의 인간들에게나 우리들에게나 살아갈 날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글이다. 그건 어쩌면 끈 이론과도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언제나 내 가슴에서 휘파람처럼 흘러나오는 멜로디. “끈 이론 아래서 이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은 숨겨진 차원의 특성에 의해서 좌우된다.”.“끈 이론이 맞으려면 이 우주는 1차원의 시간과 9차원의 공간으로 이뤄져 있어야 한다.” 나는 이 말들을 당분간 가슴에 넣어 두기로 했다. 1차원의 시간, 아직은 누구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음. 아직은 누구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 하루키의 『1973년의 핀볼』은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살아가야 할 시간이 함께 연주하는 협주곡 같은 글이다. 『1973년의 핀볼』의 주인공은 이렇게 소개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사소한 것들, 거창하지 않은 것들을 좋아한다.
- 재즈를 좋아한다.
- 맥주를 좋아한다.
- 아무것도 상실하지 않은 것처럼 휘파람을 부는 것을 좋아한다.
- 깔끔한 요리를 좋아한다.
- 세계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말보다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더 좋아한다. 아니,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더 좋아한다.
-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 시끄러운 곳보다는 고독한 곳을 더 좋아한다.
-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을 좋아한다.
-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성공했나요?” 만인이 다 궁금해 하는 공개된 질문 앞에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걸 좋아한다.
-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는 게 있다고 믿는 걸 좋아한다.
- “나의 모든 것을 다 들려줄게. 너에게.” 이것이 사랑인 것을 알고 있다.
- 한곳에 존재하기 위해 많은 공허를 감당해 내는 사람의 가치를 알고 있다.
-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만약 없다면 글을 쓰는 의미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두 가지 이유로 『1973년의 핀볼』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첫째는 첫 문장 때문이다. “나는 낯선 고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걸 병적일 만큼 좋아했다.” 나도 그랬었다. 주인공은 토성에서 온 사람과 금성에서 온 사람을 만났다. 나도 그랬다. 토성에서 온 사람과 명왕성에서 온 사람을 만났었다. 보이는 것이 다인 블랙홀에서 온 것 같은 사람도 만났었다. 소설에서 주인공의 여자 친구 나오코도 주인공에게 몇 번 그런 얘기를 들려줬었다. 이를테면, 고향 이야기. 그 고향 역에 선 개가 플랫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어슬렁거린다는 이야기, 그 고장엔 눈은 거의 내리지 않고 겨울에도 굉장히 차가운 비만 온다는 이야기, 어느 해 우물 파는 사람이 전차에 치여 죽었단 이야기. 그리고 주인공은 수년 뒤 홀로 나오코의 고향을 찾는다. 그리고 역 근처에서 한 시간쯤 개를 기다린다. 그리고 마침내 개가 나타났을 때 개에게 이렇게 말한다. “안으로 들어와. 기다리다 지쳤단 말이야.” 주인공은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나서 만족해하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돌아오는 전차 안에서 몇 번이고 자기 자신을 타이른다.

모든 건 끝났어. 이제 잊어버려. 그 때문에 여기까지 왔잖아. 하지만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나오코를 사랑했던 것도. 그리고 그녀가 이미 죽어버렸다는 사실도. 결국은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낯선 고장에 대한 이야기를 병적으로 원하는 건지도 모른다.

두 번째 이유는 핀볼에 관한 연구서 『보너스 라이트』의 서문을 옮겨 적은 부분 때문이다.

당신이 핀볼 가게에서 얻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다. 수치로 대치된 자존심뿐이다. 하지만 잃는 건 정말 많다. 역대 대통령의 동상을 전부 세울 수 있을 만큼의 동전과 되찾을 길 없는 귀중한 시간이 그렇다. 당신이 핀볼 기계 앞에서 계속 고독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은 프루스트를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자동차 전용 극장에서 여자 친구와 <진정한 용기>를 보면서 진한 애무에 열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시대를 통찰하는 작가가 되고 혹은 행복한 부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핀볼 기계는 당신을 아무 곳에도 데려가지 않는다. 재시합 불을 켤 뿐이다. 재시합, 재시합, 재시합. 마치 핀볼 게임 자체가 어떤 영겁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도 생각된다. 핀볼의 목적은 자기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변혁에 있다. 에고의 확대가 아니라 축소에 있다. 분석이 아니라 포괄에 있다. 만일 당신이 자기표현이나 에고의 확대, 분석을 지향한다면, 당신은 반칙 램프에 의해서 가차 없는 보복을 받게 될 것이다. 즐거운 게임이 되길 빈다.

이 서문을 처음 읽었을 무척 묘하지만 아름답고 쓸쓸하단 느낌을 받았었다. 핀볼 기계는 당신을 아무 곳에도 데려가지 않는다지만, 귀중한 시간과 돈을 잃게 만들 뿐이라지만, 이 서문을 읽다 보면 어쩐지 잃어버리는 시간이란 단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잃어버리는 시간 대신 텅 빈 시간이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핀볼’이란 말을 손으로 살짝 가리고 보면 이 서문은 생의 어떤 체험, 어떤 순간에 대한 글만 같은데, 거기에 만약 이유란 게 있다면 절망 혹은 상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서문은 간절하고 순진하고 절박하다. 즐거운 게임은 할 수가 없다. 대신 게임기 옆을 배회하는 작은 영혼이 보인다. 한곳에서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텅 빈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걸까? 우리는 깊은 밤을 단번에 날아서 출구로 갈 수 없다. 입구와 출구 사이에 확실한 건 내가 입구에서 출발했다는 것 하나뿐이다. 출구로 향하는 누구나 무수히 많은 과거와 이야깃거리를 갖게 된다.

주인공은 번역 일을 하고 있고 어디서 온지 모르는 쌍둥이 자매와 함께 셋이서 침대를 나눠 쓰고 있다. 밤이면 쌍둥이가 끓여준 커피를 마시고 담배와 『순수 이성 비판』을 들고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주인공이 사는 세상은 이렇다.

내 마음과 누군가의 마음이 스쳐 지나간다. 안녕, 하고 나는 말한다. 안녕, 하고 저쪽에서도 대답한다. 그것뿐이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아무도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만일 내가 양쪽 귓구멍에 치자꽃을 꽂고 양손의 손가락에 물갈퀴를 끼고 있었다면 몇 사람은 뒤돌아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뿐이다. 세 걸음 정도 걸어가면 모두 잊어버린다. 이제 누군가에게 무엇을 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은 이상한 별자리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반드시 손에 넣었어. 하지만 뭔가를 손에 넣었을 때마다 다른 뭔가를 짓밟아왔지. 아무도 믿지 않지만 사실이야. 3년 전쯤에 그걸 깨달았어. 그래서 이제는 아무것도 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

내가 원하면 얻을 순 있지만 반드시 뭔가가 짓밟힌다. 그래서 원하지 않는다. 이건 세계를 응시하는 시선 중에서도 가장 슬픈 시선에 속한다. 다시 그가 무엇을 원할 수 있을까? 설사 원한다고 해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무엇엔가 사로잡혔다. 이를테면 우리가 오래된 레코드, 잃어버린 머리핀, 비둘기 깃털, 낡은 장화 같은 것들에 사로잡히듯이. 그 가을에 그가 사로잡힌 건 핀볼이었다. 우물 위로 한 마리 새가 날고 있었을 때였을까? 눈을 감으면 범퍼가 볼을 튕기는 소리와 점수판에서 점수가 바뀌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렸다. 3년 전인 1970년 가을 그는 핀볼의 주술에 빠졌었다. 어쩌면 그 얼마쯤 전 나오코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저녁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나 코트를 걸치고 오락실 한쪽 구석에서 시간을 보냈다. 기계는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 십. 그가 아르바이트 비용 거의 대부분을 핀볼에 쏟아 부었을 때 점수는 15만을 넘었고 겨울이 시작되었다. 3년 전 주인공은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녀는 멋있었다.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 십. 나만이 그녀를 이해했고 그녀만이 나를 이해했다. 내가 플레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그녀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면서 점수판에 제로를 여섯 개 표시하고는 내게 미소를 지었다. 볼이 필드를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질 좋은 대마초를 피울 때처럼 끝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당신 탓이 아니야.”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어. 열심히 노력했잖아.”
“아니야,” 하고 나는 말했다. 왼쪽의 플리퍼,탭 트랜스퍼, 9번 타깃, “아니라니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지. 하지만 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할 수 있었을 거야.”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어.”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엇 하나 끝나지 않았어. 아마 언제까지나 똑같을 거야.” 하고 내가 말했다. 리턴 레인, 트랩,킥 아웃 홀, 리바운드, 행잉, 6번 타깃. 보너스 라이트.
“121150. 끝났어요, 모든 것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이제 그녀,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 십이 나오코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오락실이 사라진 3년 뒤 주인공은 무엇에 사로잡힌 듯, 도쿄 시내의 모든 오락실을 돌아다니며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 십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그 기계에 대해 알고 있는 카탈로그 마니아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 십은 시카고의 길버트 앤드 선스 사의 1968년형 모델. 단 세 대만이 수입되었고 곧 사라진 비운의 기계였다는 걸 알게 된다. 고철 덩어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마니아의 도움으로 함께 택시를 타고 그녀를 찾아가게 된다.

“여기가 도쿄인가요?”
“물론이죠, 아닌 것 같습니까?”
“세계의 끝 같군요.”
“저곳에 철조망이 있어요. 철조망을 따라서 곧장 3백 미터 걸어가면 막다른 창고가 있습니다.”
“?고요?”
“네, 넓은 창고니까 금방알 수 있을 겁니다. 전에는 양계장의 냉동 창고였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양계장이 망했으니까요.”
“그래도 닭 냄새는 나는데요.”
“문을 열면 바로 오른쪽에 전등 스위치가 있습니다. 계단을 조심하세요.”
그리고 문은 소리 없이 열렸고 스위치를 켜자 창고의 모습은 코끼리 무덤 같았다. 코끼리 백골 대신 핀볼 기계가 시야의 끝까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정확하게 78대였다. 기계는 8열 종대로 일 센티미터의 오차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무엇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78대의 죽음과 78대의 침묵.
나는 그런 식으로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인공은 스탄 게츠의 재즈 음악 첫 네 소절을 휘파람으로 불고 다시 네 소절을 부른 다음 핀볼의 스위치를 켰다. 그러자 한 대 한 대의 필드에 다양한 원색의 빛이 들어왔다. 각자의 꿈을 그려내듯이.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 십은 뒷줄에 있었고 무척 얌전해 보였다. 안녕, 하고 주인공은 말했다. 그리고 필드의 유리판에 손을 얹었다.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차가웠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은 순백의 영혼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척 슬프고 아름답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많았더랬어”’ 그런데 깊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이상의 소원이 있을 수 있을까?

그녀는 가까스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에게 미소 지었다. 정겨운 미소였다. 나도 미소 지었다. 무척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생각하는 척하며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3년쯤 된 것 같아. 눈 깜짝할 사이지.
“네 생각을 자주 해.”
“잠 못 이루는 밤에?”
“그래. 잠 못 이루는 밤에.” 그녀는 줄곧 미소 짓고 있었다.
“춥지 않아?”
“춥지. 굉장히 추워.”
“너무 오래 있지 않는 게 좋아. 당신이 견디기에는 너무 추운 곳이야.”
“…….”
“게임은 안 해?” 그녀가 물었다.
“안 할 거야.”
“왜? 16만 5천이 내 최고 기록이었지. 기억해?”
“기억하지. 내 최고 기록이기도 했으니까. 그 기록을 깨고 싶지 않아.”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왜 왔어?”
“네가 불렀기 때문이지.”
“불러?”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수줍은 듯이 살짝 웃었다. “그래. 그럴지도 몰라. 불렀는지도 모르겠어.”
“많이 찾았어.”
“고마워.” 하고 그녀는 말했다. “뭐든 얘기 좀 해.”
(…)
그녀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해?”
“번역 일을 하고 있지.”
“소설?”
“아니.”
“여자 친구는?”
(…)
“괴로워?”
“아니.” 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이제는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잘 지내.” 하고 그녀는 말했다.
“고마워, 안녕, 잘 있어.”


그리고 주인공은 걸어 나온다. 주인공은 출구를 찾은 걸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 찾은 것은 엄밀히 말해서 찾았다고 할 수가 없다. 우리의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꽉 잡고 어떤 빛을 따라 계속 계속 찾아 나갈 수밖에 없다. 일상적인 날들의 우리 존재의 비밀, 우리 의지의 비밀은 1973년의 핀볼인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 십 앞에선 이렇게 이야기된다.

무에서 생겨난 것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인데 뭐. 우리는 다시 한번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공유한건 아주 오래전에 죽어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 안 되는 그 따스한 추억은 낡은 빛처럼 내 마음 속을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이 나를 사로잡아서 다시금 무의 도가니에 던져 넣을 때까지의 짧은 한 때를 나는 그 빛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어떤 대상, 어떤 사물, 어떠한 사소한 것의 빛과 아름다움을 부여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그날, 끈 이론을 듣던 날, 나는 1973년의 핀볼을 앞에 둔 것처럼 2010년의 눈 앞에서 이런 대화를 해봤다.

“안녕.”
“안녕.”
“다차원 세상이란 뭐지?”
“아주 작고 사소한 영역 속에 숨겨져 있는 여분이 얼마든지 있다는 거지.”
“다른 차원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어떤 거지?”
“또 다른 차원에 대해 통일된 관점을 갖는 거지.”
“입구와 출구는 뭐지?”
“부분과 전체의 통합이지.”
“눈은 왜 날리는 거지?”
“모든 존재와 세계가 밖으로 퍼져 나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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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혜윤 (CBS PD)

『런던을 속삭여줄게』,『고전읽기-세계가 두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이후 쭉 고전 읽기에 푹 빠져 있다.

1973년의 핀볼

<무라카미 하루키> 저/<윤성원> 역12,15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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