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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맛]뉴요커의 김치찌개

Momofuku Noodle and Ssam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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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에게 모모후쿠에 대해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한 번쯤 맛볼 만한 재미있는 음식’이라고 말할 것이다.새로운 한식을 맛보고 싶다면, 아니 모모후쿠식을 맛보고 싶다면 서슴지 말고 이스트 빌리지로 가보자.


그날 버터 크림을 하도 많이 만들어서일까. 아니면 점심으로 나온 돼지고기 스테이크가 느끼하니 문득 목살을 떠오르게 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조금은 ‘꿀꿀한’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떡볶이, 라면, 순대, 튀김, 목살과 항정살,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 꽃등심, 육개장, 갈비찜……, 아무튼 맵고 짠 한국 음식이 눈앞에서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입안이 얼얼해지는 매운 떡볶이나 매운탕, 칼칼하게 잘 익은 김치, 시원한 냉면의 알싸한 국물과 함께 노릇노릇 잘 구워진 고기 한 점을 상추와 깻잎에 푸짐히 싸서 고소한 쌈장, 마늘과 함께 입안 가득히 우물거리고 싶어졌다.

학교 단골 메뉴 돼지고기 스테이크. 뻑뻑하니 좀 더 불에 노릇하게 구워 쌈 싸먹고 싶었다.

여행 막바지, 처음에는 맛있기만 했던 담백한 프랑스 요리가 물릴 대로 물려서 짜고 매운 음식이 간절해지고 말았다.



 

삽화가 사랑스러운 파리 여행 책 『April in Paris』의 센Sen의 한마디는 내 마음에 불을 질렀다. 한국인의 피 때문인지 파리에서도 뉴욕에서도 역시 한국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뉴욕에서 한국 음식을 먹는 일은 어렵지 않다. 32가 한인 타운으로만 가면 골목 가득히 한국 식당이 24시간 따끈한 뚝배기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작은 두 블록을 제외한 나머지 맨해튼은 한국 식당이 서울 하늘의 별처럼 띄엄띄엄 희미하게 숨어 있다.

왠지 쉬운 한인 타운에 가지 않고, 희미하게 숨어 있는 한식당에 찾아가고 싶었다. 얼마 전, 기사에서 읽은 데이비드 챙David Chang이 떠올라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뉴욕에서 떠오르는 젊은 셰프 중 한 사람으로 뉴요커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하였다. 한인 타운이 아닌, 펑키하고 자유분방한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에 자리한 그의 레스토랑 모모후쿠 바Momofuku bar는 누들Noodle로 시작해서, 쌈Ssam, 코Ko에 이어 베이커리까지 생겼다. 뉴요커의 마음에 든 한국 음식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한식이 먹고픈 나의 위장을 달래주고 싶었다.

모모후쿠 바Momofuku Bar 홈페이지. 안타까운 건 모모후쿠는 일본어로 행운의 복숭아라는 뜻이라는 사실이다. 동양적이면서 친근한 발음을 유도하고자 한 것일까?

주말, 햇살이 유난히 좋았던 이른 점심에 한국인 네 명이 모모후쿠 누들 바Momofuku Noodle Bar에 모였다. 뉴욕에서 30년 가까이 살았지만 정통 한식을 누구보다 잘 만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부부, 그리고 한국말보다는 영어가 더 편한 한국인 2세 토박이 뉴요커, 그리고 한국에서 자라고 뉴욕에서 프랑스 요리를 배우고 있는 20대 여자라는 각기 다른 네 사람은 다소 부푼 기대를 안고 음식을 맛보았다.

한 시간 후, 네 명 중 세 명은 실망을 했고, 한 명은 웃었다. 한국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달고, 맹맹하고 느끼했다. 특히 한국 음식이 그리웠던 20대 여자는 갈증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마치 ‘요리를 아주 잘하는 외국인이 한국 음식을 맛보고 자기 나름대로 다시 만들어 본 요리’처럼 맛은 있지만 맛이 없었다. 교포인 데이비드 챙은 한국 음식을 미국인의 미각에서 재해석하고 다양한 아시아 재료를 이용하여 새로운 요리를 창작한 것이다. 그래서 ‘당연한 한식’을 생각했던 한국인 입맛 세 명은 실망하고, 토박이 뉴요커만이 실망보다는 재미있어 했다.

<New York Magazine>에 실린 데이비드 챙David Chang. 그의 유머러스한 성격이 엿보이는 사진이다.

‘당연하지 않은 한식’이 바로 많은 신문과 잡지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Korean Food를 세계에 알렸다. 한국 사람이 맛있다고 느끼는 정통 한식은 아직까지 외국 사람에게는 자극적이고 특이한 음식이다. 우리에게 노란색의 오뚜기 카레로 친근히 다가온 인도의 강렬한 향신료 커리는 이제 두 가지 맛 모두 사랑받고 있다. 그렇듯 우리나라 음식도 그 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게 변형될 필요가 있다.

뉴욕을 대표하는 레스토랑 가이드 자갓Zagat 2009년판에 실린 2,073개의 레스토랑 중 한국 레스토랑은 16곳뿐이다. 일본 레스토랑은 108곳이 실린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한인 타운에 몰려 있는 한국 음식점은 대부분 한국인을 대상으로, 외국인들에게는 어색하고 어려운 메뉴에 색다른 음식이 나온다. 자연히 자갓이나 미슐랭에 소개되는 기회도 적은 것이다. 뉴요커에게 한국 음식은 인도나 이디오피아 음식과 별반 다를 게 없다. 2006년에 들어서야 데이비드 챙이 기사에 오르내리고,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한국 음식점들이 하나 둘 생겨나며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매운 떡볶이

올해 초, 정부 차원에서 한식 세계화라는 프로젝트를 선포하고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한국 음식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그 대표 음식으로 뽑힌 떡볶이, 아니 토포키Toppoki는 어릴 적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최고의 간식이었다.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은 애들도 물에 헹궈가며 포크를 내려놓지 못했었다, 하지만 외국 사람도 떡볶이를 좋아할지는 조심스러운 걱정이 앞선다. 우리에게 친근한 쫄깃쫄깃한 떡은 외국인에게는 치아에 달라붙는 듯한 끈적거림이다. 떡을 먹는 일본 사람도 우리나라 떡은 질감이 어색하다며 잘 먹지 않는다. 매운 소스 또한 익숙하지 않을 텐데 어린이들이 먹듯이 물에 씻어 먹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데이비드 챙의 떡볶이. 떡은 먹기 편하게 짧은 가래떡을 쓰고, 맛은 고추장을 약간 푼 갈비찜 같은 달달한 맛이다.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을 위해 개발한 메뉴로 보인다.

한식의 세계화라는 것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리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이 어떤 음식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지에 대해 찾는 것이 시작이다. 그들의 입맛에 맞게 약간 변형이 되더라도 뿌리는 한국 음식이다. 비록 한국 사람에게는 덜 자극적이고 느끼하더라도 외국 사람들이 즐겨 먹을 수 있는 데이비드 챙의 음식처럼 한국인보다는 외국인에게 친근한 맛으로 다가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칼칼한 순두부찌개

사실 나의 홈시크homesick는 결국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식당이 아닌, 한인 타운에 위치한 한국 사람이 90% 이상인 곳에서 채워졌다. 지글지글 끓는 뚝배기 찌개 한술에 얼얼해지는 혀끝에서 나는 뉴요커이기 전에 한국 사람임을 느끼며 먹고 또 먹었다. 펄펄 끓는 국물을 한술 떠먹으면 나도 모르게 ‘시원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언젠가는 뉴요커들도 점점 한국 음식이 친숙해져서 옆자리에 앉아 뜨거운 국물을 떠먹으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진짜배기 ‘손맛’을 느끼게 되길 꿈꿔 본다.

Momofuku Noodle Bar

실내 풍경. 모두 한쪽 벽에는 바 자리로 꾸며져 있다.

맨 처음 모모후쿠Momofuku 시리즈의 시작은 누들 바였다. 누들 바의 인테리어는 다른 지점들과도 공통점을 보인다. 원목으로 깔끔한 외관에 등받이 없는 딱딱한 의자, 그리고 길게 늘어서 바 자리는 바는 작은 공간을 이용해서 많은 사람을 받을 수 있으며 서버들과 소통이 자유롭다. 또한 등받이가 없기 때문에 오래도록 앉아 있기에는 불편해서 회전율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Steamed Buns with Pork

호빵의 빵 부분 같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피에 호이신 소스와 오이절임, 삼겹살 수육이 같이 나온다. 포동포동하며 촉촉한 피와 달콤한 고기는 홍콩의 교자와도 비슷하면서 우리나라의 야채 호빵의 응용인 것만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뉴요커들의 넘치는 사랑으로 이 번을 흉내 내서 만들어 파는 레스토랑도 생겨났다.

Momofuku Ramen - pork combo, poached egg

한국식 라면이 아니라 딱 일본식 라멘인 모모후쿠 라멘은 진한 국물에 두 가지 요리법의 돼지고기가 올라간다. 한 가지는 수육찜 같은 두툼한 삼겹살 차슈와 잘게 찢은 다릿살이다. 독특하지만 곁들여진 미역은 다소 비린 맛을 내며 고기와 맛이 조화롭지 못했다.

Kimchi Stew - braised Kimchi, rice cakes, shredded pork

기대해 마지않았고 그만큼 실망도 컸던 김치찌개.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잘 익은 김치로 만든 맵고 담백하고 고소한 김치찌개와는 큰 차이가 있다. 김치는 덜 익고, 기름지고, 국물이 많이 달다. 고추기름이 둥둥 떠있는 달짝지근한 맛은 고명으로 얹은 당근 채와 어우러져 어딘가 태국 음식과 한국 음식의 중간 즈음에 있는 듯하다. 칼칼하니 매운맛을 기대했던 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지만,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대표 메뉴 중 하나라는 귀여운 서버의 말에 미묘한 감정이 뒤섞였다.

Momofuku Ssam Bar

누들 바의 인기를 이어 오픈한 쌈 바 역시 저녁 시간에는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 쌈은 우리가 먹는 쌈을 발음 그대로 표기한 것으로 대표 메뉴 역시 쌈이다. 특히 보쌈Bo Ssam이라는 메뉴는 200불이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신문 기사에 오르내렸다. 메뉴 설명에서 엉덩잇살을 통째로 조리해서 석화와 함께 내는 요리로 상상되었지만,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보쌈을 25만 원에 먹는 사치는 할 수 없었다.)

Marinated Hanger Steak Ssam - ginger scallion, kimchi, bibb lettuce

합리적인 가격에 나오는 소고기 쌈을 주문해보았다. 우리가 먹는 쌈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적은 야채에다가 쌈장이 아닌 새콤달콤한 소스가 곁들여져 나온다. 하지만 착한 가격의 스테이크는 싸고 질긴 부위를 고소하게 잘 조리하였고 소스의 조화가 재미있었다. 애초에 ‘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먹었다면 부족함보다는 괜찮은 맛과 가격의 재미있는 음식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Fried Brussels Sprouts - chilies, mint, and fish sauce

곁들여 먹는 반찬의 개념인 이 요리는 서버의 강력 추천으로 주문해보았다. 접시를 내려놓는 순간, 강렬한 비주얼에 놀라고, 그 맛에 놀랐다. 초록색 어린 양배추에 곁들여진 빨간 것은 다름 아닌 ‘쌀 튀김’이었다. 바삭바삭한 쌀 튀김이 매콤한 고추기름과 어우러지고 거기에 잘 구워진 어린 양배추에서는 단맛과 고소함이 배어 나왔다. 소꿉장난 같은 이 음식은 자꾸만 손이 가서 어느새 바닥의 주황색 고추기름만 남았다.

Chicken Leg Clay Pot - miso, gobo, shiitake

모양새는 영락없는 된장찌개인데, 맛은 달짝지근하면서 고소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맛이었다. 뚝배기는 모양만이고 펄펄 끓지 않는 스튜 그릇으로 쓰였다. 적당한 온도의 수프에는 닭고기, 표고버섯, 우엉이 들어 있다. 어떻게 보면 일본의 돼지고기 미소찜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된장찌개의 외국인 조리사 버전인 것만 같다. 일본 된장을 썼지만 된장의 향이 거의 나지 않고 달콤하면서 고소한 맛이 묘하게 자꾸 손이 갔었다.

한국 음식이 아닌 한국 음식 모모후쿠에 대해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한번쯤 맛볼 만한 재미있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데이비드 챙은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무한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한식을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한식에 굶주린 한국 여행객에게는 그냥 한인타운에 들러 한국인이 북적거리는 식당을 찾기를 추천하고 싶다. 세계의 한식과 한국인의 한식은 아직은 아무래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조금 더 한국인의 입맛에 익숙해져서 맵싸한 떡볶이도 즐겨먹는 외국인이 많아지는 흐뭇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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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원

대학 시절 4년간 심리학을 공부하며 내 자신에 대해, 인생의 맛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 끝에 결정한 요리 유학은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홀로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며 뉴욕과 함께 농밀한 데이트를 보냈던 1년이었다. 객관적인 시간으로는 1년이라는 것은 결코 길지 않지만 주관적인 시간으로는 10년과도 같이 지냈던 그 해를, 함께 가지 못했던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욕심을 모자란 글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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