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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연회] 고차원적 사고력, ‘직관’으로 감상하라 - 『지식의 미술관』 이주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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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주헌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 그는 미술 전문가이면서 대중에게 미술에 대해 조근조근 들려주고, 미술의 매혹적인 세계로 이끄는 사람이다. 강연도 책만큼 재미있을까? 그랬다.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주헌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 그는 미술 전문가이면서 대중에게 미술에 대해 조근조근 들려주고, 미술의 매혹적인 세계로 이끄는 사람이다. 강연도 책만큼 재미있을까? 그랬다. 『지식의 미술관』이라는 책을 새로이 내놓고 독자 강연회를 연 이주헌 저자를 10월 18일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만났다. 강연의 주제는 ‘직관, 이미지 그리고 지식의 미술관’이었다.

정말로, 무엇이 명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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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T를 보면서, 조명을 약하게 낮춘 상태로 강연이 진행되었다. ‘다짜고짜’ 저자는 인터넷에서 한 번쯤 보았음 직한 착시를 일으키는 이미지 몇 개를 보여주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약간 휜 체크무늬 바탕 위를 휘돌아나가는 나선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나선인 곡선은 실제로는 원이었다. 빙글빙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원들, 그러나 실제로는 고정된 이미지였다. 바둑판 위에 선 원기둥의 그림자 속 흰 칸은, 실제로는 그림자 밖의 어두운 칸과 같은 색이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여인의 그림자는 어느 방향으로 도는지 보는 이마다 제각각의 의견을 내놓아 결국 정답을 알지 못했다. 이런 일련의 그림들을 저자는 ‘눈 풀기’로 소개했는데, 눈보다는 마음 풀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소 장난스러운 그림 몇 개를 보고 나니 청중 모두가 저자의 말에 몰입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그는 ‘무엇이 명화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건 마치 ‘행복이 뭐지?’라고 묻는 것처럼 당황스러웠다. 명화,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그림들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다음 화면에는 필자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모나리자」가 떠올랐다. 마치 속을 들킨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그는 유명하다거나(하기는 「모나리자」 이상으로 유명한 그림은 몇 없다.), 비싸다거나(이때 그가 보여준 그림은 잭슨 폴록의 「넘버 5」였다.), 특이한 작품(화면에는 만조니의 「Merda d'artista」가 보였는데, 30g의 정확한 중량을 자랑하는 통조림 90개에는 작가의 배설물이 들어 있었다는 저자의 설명이 잇따랐다. 와우!)을 명화라고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럼? 저 「모나리자」가 명화가 아니라면 「천지창조」도, 「해바라기」도 명화가 아니라고?

마스, 「기도하는 할머니」

의외로 혹은 매우 당연하게, 저자는 명화를 이렇게 정의했다. ‘나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 어찌 보면 시시하기까지 한 교과서적인 답변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명화를 소개함으로써 말에 설득력을 얹었다. 이주헌 저자의 명화 중 하나는 플랑드르 지역에서 활동한 마스라는 화가가 그린 「기도하는 할머니」라고 했다. 웬만한 그림 관련 책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 화가이고, 그림이라 했다. 그러나 저자에게 이 그림은 부모님을 일찍 여읜 자신을 길러준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했고, 간소하기 이를 데 없는 소찬 앞에서 영원히 기도할 것 같은 그림 속 인물에 깊은 애정을 느낀다고 했다. 말쿇자면 ‘그림은 인문학의 대상이기 이전에 감상의 대상이며, 감상자의 개인적 삶의 경험과 감정이 어울려야 의미 있는 그림’이 된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렇겠다 싶었다.

벼락처럼 온몸을 훑는 직관의 힘

그러므로 그림 감상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림은 다름 아닌 ‘나(곧 나의 origin)와 만나는 통로’인 것이다. 이때 저자는 “origin과의 잦은 만남은 통해 사람은 original해진다.”라고 ?붙였는데, 절묘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삶은 결국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필자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림 감상은 인생이라는 여행의 한 방법으로서 매우 훌륭하지 않은가!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제대로 감상해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방법은 엉뚱하게도 ‘벼락을 맞는 일’이었다. 달리 말하면 ‘직관’에 의한 그림 감상이다. 직관이란 그야말로 벼락처럼 온몸을 훑는 것이며, 미리 계획하거나 마련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는 지성이나 지식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소위 말하는 육감이란 것과 유사한데, 정말 반가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EQ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우리 사회는 오로지 지식과 논리의 틀 속에서 성공을 논한다. 철저한 계획과 부지런함이 자칫 몰고 올 수 있는 경직성에 너무 경도돼 있다. 그런데 저자는 ‘직관’의 가치를 목이 아프도록 부르짖었다. 그것이야말로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며, 인간이 가장 주체적인 존재일 수 있게 뒷받침해 주는 힘이라 했다. 툭하면 직관에 의존한다며 지청구를 먹었던 이들 모두에게 희소식!

왜냐하면, 직관은 추론이나 이성의 작용 없이 대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 능력을 말하며, 상상력과 영감 다음에 오는 고차원적 지식의 최종 단계(루돌프 슈타이너)이기 때문이다. 직관이야말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탁월한 결정을 내리게 하는 힘이며, 실행 가능한 행위의 흐름을 순식간에 제시하는 ‘패턴 매칭 프로세스’인 것이다. 한마디로 지성이나 논리를 넘어서는 매우, 매우 고차원적인 인간의 사고력이라는 이야기다. 왜?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머리를 압도한다는 건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그런데 저자의 강연을 들으면서는 매우 새롭게 느껴졌다. 그림 감상을 넘어서서 삶에 대한 시각이 좀 더 명쾌해지는 듯도 했다.


직관은 순간적인 상황 판단을 하거나 회상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나 영감을 얻을 때, 언어나 논리가 아니라 시각, 청각, 개념적 이미지의 연상에 의한 사유를 하는 ‘이미지 사유’와도 닮았고, 그것은 또한 논리적 정합성이 없는 꿈과도 닮은 일종의 ‘패턴 매칭 프로세스’라는 것. 1793년 나폴레옹이 영국과 싸울 때, 목표 지점인 툴롱을 치지 않고 바다 건너의 레귀예트 요새를 점령해 영국군을 물리친 것은, 때마침 등장한 등고선 지도와 경량포, 고립을 두려워하는 영국군에 대한 군사적 지식, 잔 다르크가 메인 요새를 놓고 싸우는 대신 도시 주위의 작은 요새를 차지하는 방법으로 오를레앙 요새를 구한 역사적 사실을 결합해 나온 결과인데, 이것이야말로 직관을 이루는 기저의 힘이다. 직관이 아무 것도 없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나 계획이나 목표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식과 경험과 성격이 어느 순간 퍼즐을 짜 맞추듯이 드르륵 떠올려주는 것. 마치 무의식의 빙산의 일각인 의식을 지배하는 것처럼. 나폴레옹은 철저히 직관을 좇은 대표적인 인물이란다.

저자는 직관을 좇은 인물 여럿을 예로 들어 보이면서 직관이 단순히 예술 영역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영이나 정치에서도 매우 강력한 무기임을 설명해 주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집안 곳곳에 가족에게 보내는 그림과 메시지를 150개나 남겨놓은 ‘피카소를 좋아하는 엘레나’ 이야기다. 6세 아이의, 죽음을 예견한 직관력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마음이 아파서.

감상이 즐거워지는 미술 키워드 6가지

직관에 관한 한바탕 강의가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이어진 이야기는 ‘감상이 즐거워지는 미술 키워드’ 6가지였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그림 감상 팁인 셈이다. 스탕달 신드롬, 누드의 역사, 인상파와 미디어, 바니타스, 게슈탈트 시프트, 데페이즈망. 미술 애호가들은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모르는 사람이 아직은 훨씬 더 많을 이 개념들을 저자는 쉽게, 콕콕 스며들게 이야기해주었다.

스탕달 신드롬

렘브란트, 「유대인 신부」

걸작 미술품을 보고 갑자기 흥분 상태에 빠지거나 호흡 곤란, 우울증, 현기증, 전신마비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는 현상으로, 지금도 피렌체에서는 매년 12명가량의 환자가 발생한단다. 대개는 금세 회복된다니, 한 번쯤 걸려 보고 싶은 증후군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죽 감동을 받으면 그럴까. 감정적인 화가로 여겨지는 (귀를 자른) 고흐도 예외는 아니어서 렘브란트가 그린 「유대인 신부」 앞에서 돌이 된 것처럼 오래오래 서 있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했다. 이 그림을 2주일만 보고 있게 해주면 생명을 10년 감해도 좋겠다고 했단다! 우피치미술관의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앞에서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앞에서도 스탕달 신드롬이 자주 나타난다니 이 증후군을 경험해 보고 싶은 이들은 가보면 좋겠다.

누드 이야기

<여자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들어가려면 벌거벗어야 하는가?>, 1989

‘게릴라걸스’라는, 여자들로 이루어진 작가 그룹은 1989년, ‘여자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는가?’라는 글이 쓰인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박물관에 걸린 작품의 3%가 여성 작가의 작품이지만 누드는 83%가 여성이다.’라는 바디 카피가 적혀 있었다. 저자는 실제로 근대 이후 여성의 누드는 명백히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의 대상화이며, 여성을 수동적 존재로 인식하는 남성적 시선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그럼 남성 누드가 판치던 고대 희랍에서는? 그때도 남성은 주체였다. 당시에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였는데, 인간이라 함은 성인 남성만을 가리키는 것이었단다. 성인 남성이야말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우주의 상징이며,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능동적,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남성 누드라는 것. 어딘가 씁쓸한 기분.

인상파와 미디어


드가, 「목욕 뒤」, 1896

인상파의 혁명은 사진기의 발명, 기차의 등장, 튜브 물감의 탄생에 힘입었다는 것. 말하자면 사진이 등장함으로써,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는 그림들이 등장했고, 실제로 드가는 사진을 찍어 그것을 그대로 그림 속에 담는 일을 즐겼다. 또 기차와 튜브 물감은 화가들이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리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이로써 그림은 대도시화에 발맞추고, 세계 감정을 담기 시작했다.

바니타스

베리시 차긴, 「전쟁 예찬」, 1871

근대 이후 종교화가 쇠퇴하고, 종교적 신념을 담는 또 다른 매체로 등장한 바니타스는 현세의 온갖 가치들이 헛됨을 표현한다. 금전, 예술 작품, 투구나 해골(전쟁, 죽음), 모래시계 등을 등장시키는 바니타스는 얀 트렉의 바니타스 정물화나 블라세의 「우는 천사」, 베리시 차긴의 「전쟁 예찬」 등이 대표적인 사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정복자에게’ 바친다고 한 「전쟁 예찬」의 해골 더미는 문장에서 반어법처럼 울림이 크다.

게슈탈트 시프트

김재홍, 「모자상」

형태 교환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엄밀히는 게슈탈트를 형태라고 하지 않고 그냥 게슈탈트라고 한단다. 말하자면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며, 총합된 형태 그 자체로서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창발(emergence)이란 개념과도 닮았는데, 하위 구성 요소에는 없던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 구조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라고. 토끼 그림인가 하고 보면 오리 같기도 한 그림을 보면서, 한동안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이는 그림들을 찾아 인터넷 서핑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조금은 장난스럽기도 하고, 예술 작품이라 여기지 않았던 그림들이 소개됐다. 동강의 풍경을 표현한 김재홍의 작품은 방향을 틀면 새색시나 모자상으로 치환됐다. 1590년대에도 이미 아르침볼도는 「베르툼누스」 같은 작품에서 온갖 과일이 남성의 모습으로 변화된 그림을 그렸다. 게슈탈트 시프트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었다.

데페이즈망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

어떤 물건을 일상적인 환경에서 이질적인 환경으로 옮겨 그 물건으로부터 실용적인 성격을 배제하여 물체끼리의 기이한 만남을 현출시키는 기법. 원래는 ‘환경의 변화’를 뜻하는 말이라고 저자는 설명했다. 필자는 서로 연관 없거나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을 병치시켜 낯섦과 새로움을 유도해내는 기법으로 이해했다. 로트레아몽이 “재봉틀과 양산(洋傘)이 해부대에서 만나듯이 아름다운”이라고 쓴 것이 데페이즈망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 했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보면 하늘은 낮인데, 집은 밤에 싸여 있다. 메레 오펜하임은 모피 찻잔을 만들었다. 달리의 그림에서 시계는 치즈처럼 흐물거리며 낯선 공간에 흐드러져 있다.

저자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고, 청자들은 더 듣고 싶어 했으나 시간이 모자랐다. 결국 마지막은 좀 빠르게 마무리됐다. 데페이즈망에 대해서는 더 찬찬히 듣고 싶었지만, 질문 시간으로 넘어갔다. 많은 이들이 직관의 힘에 대해 놀란 듯, 세상이 직관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음에 대해 통탄해하기도 하고, 더러는 저자의 강의 내용이 현실과는 좀 다르지 않으냐는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또 빠질 수 없는, 미술 감상이 전적으로 감상자의 감동에 달렸다면 전문적 견해는 불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도 나왔다. 저자의 대답은 한마디로 정답 없음. 두루뭉술이었다. 결론은 마음껏, 자기 방식대로 미술을 즐기고, 내키면 공부하라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그 이상의 대답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즐거웠다. ‘미술에 관한 한 공부도 즐거운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지식의 미술관』 책을 보면 더 많은 즐거운 공부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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