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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의 『타짜』

시대가 바뀌어도 야만은 야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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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는 목표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그 결과에 때로는 미소 짓고 때로는 버린 것들에 후회하는 것, 이것이 도박입니다.

인간의 경제활동 중에 가장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상당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 도박입니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일반적인 노동의 가치보다 놀라운 수준의 이익을 자랑하면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그 유혹의 끝에는 파멸이 도사리는 이 놀이는 문화권에 상관없이 꽤나 오랜 시간을 인간과 함께해 왔습니다. 카이사르는 쿠데타를 감행하면서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이야기했고, 『마하바라타』의 주인공 유디스티라는 주사위 놀음 몇 판에 가진 재산과 영지를 모두 날려 버립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욕망이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된 이 도박은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인간의 내면에 깔린 본연성을 읽을 수 있는 훌륭한 텍스트로 자리합니다. 그래서 도박을 다루는 컨텐츠들도 상당한데, 그중에서도 한국의 대표 만화가인 허영만의 『타짜』는 그 반향이 남달랐습니다. 만화를 넘어서 영화와 드라마로 영향력을 넓혀가면서 ‘타짜’는 이제 대중적 용어가 되었고, 21세기 초입을 읽는 하나의 코드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제목 ‘타짜’는 원래 도박계의 고수를 가리키는 그 바닥 은어입니다. 타짜는 도박의 장르를 불문하고 이른바 ‘기술’과 ‘담력’ 면에서 최강을 자랑하는 이를 가리킵니다. 타짜는 도박판에서 반드시 최후의 승자이며, 그 승리의 길은 정도와 사도를 불문합니다. 허영만의 장편 만화 『타짜』는 바로 그 도박판의 승리자, 타짜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인간의 삶 자체에 녹아 있는 승리와 패배, 배신과 속임수, 운명과 의지를 이야기합니다.

단순히 타짜라는 개념만이 아니라 만화 『타짜』는 한반도의 시대상 또한 그 안에 고스란히 쓸어 담기 때문에 한반도의 인간 구상에 대한 이야기로서 보다 진한 스킨십을 가질 수 있습니다. 총 4부로 구성된 『타짜』 시리즈는 본래 각 시리즈별로 도박의 장르를 다룹니다. 1부에서는 화투장 두 장으로 승부를 거는 ‘섯다’, 2부는 개발 시대를 풍미했던 ‘도리짓고땡’ 과 ‘고스톱’, 3부는 서양식 ‘포커’, 4부는 카지노입니다.

재미있게도 이 장르의 흐름은 역사적인 흐름과 일치합니다. 실제로 허영만은 이 순서를 일부러 배치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도박판에서 중심 화제가 되었던 이른바 ‘메인 스트림’ 도박의 종류를 순서대로 나열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이 도박의 종류를 순서대로 그려낸 『타짜』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름의 시대성을 갖습니다.

화투장 두 장으로 승부를 보는 단순함이 해방 후 한국에서의 주요 도박이었다면, 점점 사회가 고도화됨에 따라, 그리고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그 방식은 ‘고스톱’ 등과 같이 보다 복잡한 룰에 의한 승부로 변화합니다. 특히 도시화와 서구화가 비약적으로 진전한 90년대부터는 도박판에도 서구식 열풍이 불어 ‘포커’와 같은 서양식 형태가 보편화되었고, 카지노가 합법화된 이후에는 국가 공인 도박판이라 볼 수 있는 카지노가 대세라 불릴 만한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성은 단순히 나열의 의도만은 아닙니다. 허영만이라는 작가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인드에는 늘 시대성이 존재합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 한강!』과 같은 경우로, 허영만은 한반도의 시대상을 딱딱한 텍스트가 아닌 가장 대중화된 매체인 만화로 풀어내는 데 상당한 식견과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 한강!』은 일제시대 소작농의 아들이었던 주인공이 미술에 눈을 뜨고, 그 와중에 해방 사상으로서의 공산주의를 접하면서 혁명가가 되고, 해방과 분단, 전쟁 속에서 예술가로서 또 혁명가로서 바라보았던 시대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주인공의 아들로까지 이어지면서 80년대의 민주화 투쟁과 주체사상의 확산까지도 짚어내는 시사성으로 이어집니다.

『타짜』도 허영만 특유의 시대성이 빠지지 않습니다. 4부로 구성된 전체 시리즈는 1부의 주인공 ‘고니’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첫 시작은 지리산 빨치산과 국토방위대의 싸움으로부터입니다. 국가라는 틀거리도 불확실했고 그랬기에 각자의 생존조차도 담보해줄 수 있는 기구가 없었던 시절, 말 그대로 생존 자체도 모 아니면 도였던 시대상은 주인공 고니에게 도박이라는 세계를 안내합니다.

서울 가서 푼푼이 모은 돈으로 간신히 목돈을 마련했던 고니 누나의 돈까지 털어 도박판에 날린 고니는 도박에서 잃은 돈을 도박에서 찾겠다고 이를 갈고, 이른바 ‘타짜’를 만나 도박의 기술을 사사받습니다. 전문 도박사로 다시 태어나 전국을 돌며 ‘호구’들의 주머니를 털고, 한편으로는 예전에 자신을 털어 갔던 조직에게 복수까지도 보여주면서 고니는 점점 더 도박이라는 밑바닥 세계에 익숙한 인물이 되어갑니다.

만화 『타짜』는 그 속에서 시대상과 시대상 속 인물들의 본연에 대한 치밀한 스케치를 선보입니다. 도박으로 모은 돈을 은행에 넣을 수 없었던 주인공들은 화폐개혁으로 뒤통수를 맞으면서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날리는 궁지에 몰리기도 하고, 도박에서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서도 상대의 눈빛을 읽고 속이고 속는 풍경들을 연출합니다.

허영만 (1947~현재)
『타짜』 1부에서 보여준 이 큰 흐름은 전체 시리즈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타짜』는 시대적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도박이라는 거대한 놀음판이 가지는 본연의 속성을 낱낱이 파헤칩니다. 그 도박이 섯다든 고스톱이든 포커든 언제나 한결같이 도박 참가자들은 서로를 속이기 위해 함정을 파고, 함정에 걸린 이가 결정적 궁지에 몰렸을 때 최종적인 손털기를 위해 폭력을 동원합니다.

이는 『타짜』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도박은 앞서 언급한 바대로 사실 아무런 규칙도, 강제도 없는 판입니다. ‘족보가 높은 사람이 판돈을 모두 갖는다’는 게 섯다의 기본 룰이지만, 그 돈을 안 내겠다고 우긴다면 사실 이렇다 할 강제는 불가능합니다. 전문 타짜들은 그 점을 알고 있기에 늘 주먹을 쓸 줄 아는 ‘시다바리’를 데리고 다니며, 최종적으로 타짜들이 돈을 획득하는 수단은 결국 그 폭력이 되고 맙니다.

결국 도박이라는 건 일련의 형식일 뿐이라는 것이 작가가 시리즈 전체를 통해 암시하는 주제입니다. 실제로 어떤 승부에서 최종적인 승패를 가름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야만적인 방법이 최종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단지 그 승부의 앞단에는 그 최종 수단의 활용이 정당해 보일 수 있는 이른바 ‘말 되는’ 흐름을 만드는 조치가 필요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참가자 모두 룰에 동의하지만, 주최측은 그 룰 위에 다른 눈속임을 준비하는 사기도박판이야말로 그럴듯한 포장 수단이고, 이를 통해 타짜들은 호구들의 주머니를 부담 없이 털어 갑니다.

마지막 순간의 한 방이 결코 도박과 같은 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자가 그래서 승자입니다. 『타짜』 시리즈의 모든 주인공들과, 그 주인공과 대결하는 라이벌과, 그리고 주인공과 함께 모의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이기고, 나머지가 모두 패한다는 긴장감을 등 뒤에 두고 아군까지도 속일 수 있는 방법을 만들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던집니다. 1부의 주인공 고니는 당대 최강의 타짜라는 아귀를 잡기 위해 자기 손목까지 걸고, 2부의 주인공 대길이는 마지막 승부에서 승리하지만 아이는 유산되고 동료는 죽습니다. 돈이라는 목표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그 결과에 때로는 미소 짓고 때로는 버린 것들에 후회하는 것, 이것이 도박입니다.

만화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만화 전반이 뿜어내는 사회의 양상은 사실 도박판과 세상이 별다를 바 없는 동일한 논리에 의해 굴러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타짜』 2부의 배경은 대략 70년대부터 80년대를 가로지르는데 마치 삽화처럼 들어가는 중간 삽입 장면에서는 전두환이 쿠데타를 통해 새로운 통치자로 부임하는 장면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단에는 전두환이 연설과 간접선거기구를 통해 통치의 정당성을 확인받는 뉴스 내용이 보도되는데, 이는 앞서 설명한 도박의 논리와 동일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폭력으로 해결했지만 그 폭력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한 조치들은 결국 이미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룰이고, 그 참가자들은 ‘호구’가 되는 것임을 『타짜』는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해 왔습니다. 빨치산이 집 근처에 오르락내리락하던 시절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세대가 변하면서 근대화 시대를 지나 OECD 가입국으로서의 환경까지 숨차게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반세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의 인간들은 여전히 폭력적입니다. 남의 것을 가져오기 위해 인간들은 여전히 상대를 속이고, 협박합니다. 고도화된 사회 속에서 우리는 법과 제도라는 룰을 통해 그 야만성을 서로 완화하면서 살아오지만, 그 제도의 빛이 비춰 주지 못하는 어두운 곳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야만성이 거센 숨을 몰아쉬며 상대의 심장을 위협합니다. “도박판이 인간 세상의 축소판”이라는 쉽게 던지는 관용구 한마디에는, 장편 만화 4부로 풀어 써도 다 못 쓸 흉악한 인간의 내면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만화 『타짜』가 던지는 의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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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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