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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눈먼 현실에서 소설가 공지영이 새롭게 밝히는 희망의 이야기 『도가니』

우리의 현실이 ‘도가니’가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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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은 한때 상실과 아픔의 작가였다. 그런 그가 공감과 치유의 작가가 되었다. 공지영의 펜이 언제부터 이렇게 따스해졌을까? 개인적인 아픔들을 극복하면서, 신앙을 긍정하면서, 사람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면서 그의 인생이 따스하고 밝아졌고……

소도시 무진은 야만이 정의보다 앞서는 곳이다. 무진의 안개는 비리와 폭력과 같은 세상의 모든 악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고 방관자가 있고 소수의 정의로운 자가 있으며, 끝내 도망치고 마는 이도 있다. 무진의 안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불러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지은 죄와 침묵의 카르텔을 숨기기 위해서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불러온 안개 속에서 사람들의 눈을 가린 채 안심하고 죄를 저지른다.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려와도 사람들은 귀를 막는다. 자신이 당한 일이 아니니까.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개인적인 차원의 이야기라면 공지영의 『도가니』는 좀더 넓은 시야로 집단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을 읽고 난 후에 느끼는 부끄러움과 양심의 아픔은 같다. 무서운 것은 『도가니』의 무진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무진은 소름 끼칠 만큼 현실을 닮았다.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처럼, 무진의 정의는 눈이 멀었다.

인호는 청각 장애인이 다니는 학교의 교사가 되어 무진으로 내려간다. 별다른 사명감 없이 그저 밥벌이를 위해 교사가 된 인호는 학교에 도착한 첫날부터 알 수 없는 불안을 감지한다. 학교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이 밝혀지면서 인호는 그 진실을 감당하고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는지 회의한다. 정의의 저울 한쪽에는 떳떳한 가장이 되고픈 욕망이, 다른 한쪽에는 이런 일이 세상에서 벌어지면 안 된다고 믿는 양심이 올라가 있다. 저울은 계속해서 위태롭게 아래 위로 흔들거린다.

『도가니』는 공지영의 이전 장편 소설들과 비교할 때 이질적이다. 문체는 건조하고, 차마 말로 옮기기도 힘든 사건을 서술하는 작가의 시각은 냉정하다. 과장도 없고 분노도 없다. 사건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을 인터뷰했던 공지영에게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분노가 없었을 리 없다. 그러나 글에서 그는 얄미울 만큼 감정을 억누른다. 그런 억누름, 계산된 건조함이 없었다면 『도가니』는 강렬한 소재에 파묻혀 허우적거리고 말았을 것이다.

『도가니』는 일단 문체나 분위기부터 이전 작품과 굉장히 다른데요.

일부러 건조하게 갔어요. 소재 자체가 너무 끈적끈적해서 문체까지 그렇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독자도 작가도.


성폭행 사건이라 다들 민감했을 텐데요. 취재하시는 데는 어려움이 없으셨나요?

아니요. 오히려 다들 너무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어요. 제가 내려갔을 때는 판결이 난 후였어요. 사람들이 사건 자체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을 때여서 저를 무슨 하늘에서 내려온 구세주처럼 보더군요. 오히려 그런 점이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내가 그래도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라는 게 참 좋았습니다. 유명세가 부담스러웠지만 제 유명세 덕에 취재도 쉽게 할 수 있었고, 연재할 때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처음 그 사연을 직접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연재하던 소설을 읽고 분노하신 독자들보다 더 분기탱천했습니다. 제가 사형제 폐지론자인데도 그 사람들을 다 사형시켜버리고 싶었어요. 정말 미웠어요. 피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무 말도 없이 울 수 밖에 없었어요. 자기와 상관없는 여자가 막 우니까 그분들은 오히려 위로를 받으신 듯 했어요. ‘세상에 우리들을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요. 그렇게 아이들도 관계자들도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줬습니다.

연재할 때 반응이 대단했지요. 그런 반응이 작가로서 부담되지 않으시던가요.

아니요. 그런 반응들이 저에게도 힘이 됐고, 아이들에게도 힘이 되었습니다. 소설이 인터넷에 연재되면서 사람들의 격려가 쏟아지자 아이들이 ‘아, 사회에는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구나. 좋은 사람도 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소설을 매개로 아이들이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어요. 소설가로서 굉장한 보람이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의 상태는 처음과 비교해서 몰라볼 만큼 좋아졌습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요.

『도가니』는 인터넷으로 연재가 됐는데요. 일반 소설 작업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일단 독자들 의견이 바로 오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신기했어요. 격려를 받으면서 소설을 쓸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혼자서 장편을 쓰면 너무 힘이 들어서 완성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글이 안 써질 때마다 댓글들을 보면 힘이 나더군요. 그런데 제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잘 몰라서 신문 연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어요. 저도 잘 모르니까 요구를 못했고요. 앞으로 하게 된다면 즐기면서 더 재미있게 연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유롭고 무한하고 탄력적인 공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이 짓밟히는 것을 볼 때 심장 한구석이 아파온다. 그 아픔의 진원지는 바로 ‘양심’이다. 공지영은 『도가니』를 연재하면서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분노에 찬 반응에 큰 힘을 얻었고, 소설을 계속 쓸 힘을 얻었다. 이번 소설을 쓰면서 작가는 많이 아팠다. 독자들의 성원이 없었다면 공지영은 더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 사건을 소재로 쓰시면서 『무진기행』을 끌어온 것은 어떤 이유이신지 궁금합니다.

『도가니』『무진기행』의 오마주입니다. 『무진기행』은 끈적끈적한 현실을 보고도 자기 안위를 위해 모른 척하는, 침묵하는 자의 죄책감을 다룬 단편입니다. 『무진기행』이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읽히는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모순ㅡ불의를 보고 시정하고 싶은 양심이 누구나 있지만 현실적인 것에 발목 잡히고, 결국 불의한 현실에 안주하는ㅡ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도가니』 역시 이 모순을 다루고 있지만 그런 모순에 절망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소설의 결말은 다른 것 같습니다. 『무진기행』은 부끄러움으로 끝나지만 『도가니』는 무진을 떠난 인호를 이해하는 유진의 편지로 끝이 나니까요.

『무진기행』에 나오는 인숙과 달리 서유진과 무진에 남은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인호를 기다립니다. 비록 인호가 끝까지 싸우지 못하고 떠났지만 우리에게 손짓하는 정의와 평화는 결코 외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여운을 주고 싶었어요. 사건의 가해자들이 처벌당하고, 인호가 아이들을 위한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희망일 수도 있지만, 지금 현실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은 이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서유진의 편지로 소설을 끝맺으면서 언젠가 인호가 답장을 쓰고, 무진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내려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인호가 아이들과 다시 만나는 것도 정의와 평화의 실현이라고 봅니다.

『도가니』는 묘하게 2009년 한국의 현실과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무진이 곧 한국이다”라고 지적하신 것처럼요.

처음에는 그렇게 읽히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창조한 무진은 ‘세상에 이런 곳이 아직도 있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소설을 연재하면서 점점 한국이 무진이 되고 있었습니다. 소름이 끼쳤습니다.

『도가니』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여하지 않고 계속 침묵한다면 『도가니』의 현실은 모두의 현실이 됩니다. 21세기의 참여는 예전처럼 화염병을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뉴스를 들어주는 것, 사건의 진실을 알고자 노력하는 것이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힘이 되고,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우리 사회가 좀더 민주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뭔가가 더 필요한데, 그것이 뭔지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것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 표현의 자유에 억압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시나요?

쓰는 사람으로서 압박감을 느낍니다. 제가 쓴 글 때문에 주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탄압을 받는다면 교묘한 방식으로ㅡ소설의 강인호처럼ㅡ당하겠지요. 문제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사생활이나 세금 문제 같은 걸로 말이죠. 움츠리거나 겁을 먹진 않습니다. 자기 표현을 하다가 탄압을 당하면 영광입니다. 저는 80년대를 거쳐온 사람입니다. 그때보다 훨씬 성숙해진 시민들의 힘을 믿습니다.

80년대를 거쳐온 분으로, 지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으시나요?

아니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역사는 일직선으로 발전하진 않지만 퇴보하지도 않습니다. 프랑스혁명을 일으키고 왕을 죽여 공화정을 이룬 사람들이 나폴레옹을 황제로 추대해 왕정복고를 하지만 다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잖아요? 민주화를 이룬 나라가 하나밖에 없는 고립된 상태에서도 그들의 민주주의는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같은 경찰국가에서 얼마나 살지 그건 알 수 없어요. 꽤 오랜 기간 지속될 수도 있겠지만 거시적으로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지영은 한때 상실과 아픔의 작가였다. 그런 그가 공감과 치유의 작가가 되었다. 공지영의 펜이 언제부터 이렇게 따스해졌을까? 개인적인 아픔들을 극복하면서, 신앙을 긍정하면서, 사람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면서 그의 인생이 따스하고 밝아졌고 그의 작품도 좀더 많은 것을 품어냈다.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지적할 때 그의 펜은 칼이요 창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그것을 끌어안는 포용력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인호만큼 흥미로운 인물은 장경사다. 그는 비리의 카르텔에 한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그 카르텔의 구성원을 비웃는다. 흑도 백도 아닌 회색론자, 주변 색에 자신을 맞추는 카멜레온 같은 이다. 어쩌면 무진을 가장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보고, 그 시스템에 잘 적응한 사람은 장경사가 아닐까? 장경사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후각을 타고난 사람이며,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상이나 철학 같은 것이 아니라 돈이나 쾌락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경사를 보는 시선이 차갑지만은 않다. 그를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증오하지도 않는다. 작가는 좀더 많은 이에게 연민과 공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젊을 때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명확하게 그을 수 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 선은 희미해진다. 연륜은 많은 것을 이해하고, 표면이 아닌 이면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저는 남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타고난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요즘에는 그것이 나의 ‘달란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로서 나의 가장 큰 능력이 그런 것 아닐까요? 남의 고통을 내 것처럼 아파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신념을 가톨릭이 내게 줍니다. 신앙은 내가 나의 고통, 남의 고통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알려줬어요.

언제부턴가 선생님은 굉장히 강해진 것 같습니다.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신앙 때문인가요?

사람에 대한 희망을 가지면서 강해질 수 있었어요. 사형수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맑은 인간성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면서 사람을 믿게 되었어요. 우리 안에 신성함과 숭고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악마도 함께 있지만. (웃음) 신앙만으로는 이렇게 강해질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나이가 주는 연륜이 있어요. 나이가 먹을수록 너그러워지고 많은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어떤 일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할 수 있어요. 불완전하고 부족한 사람에게도 애정을 가질 수 있고요.


무진을 떠나가는 인호에 대해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난하고 비판하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처음부터 이럴 수는 없어요. 젊은 사람은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을 테고 많이 부딪치고 깨지면서 나이를 먹어야겠지요. 지금의 편안함은 젊었을 때 그만큼 많은 것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용서해야 강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 행복하세요?

네. 고통을 많이 겪었지만 그래서 더 행복할 수 있었어요. 요 몇 년처럼 행복했던 때가 없었던 것 같아요. 행복하고 자유로워요.

행복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된다고 보시나요?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솔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10년 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본다면 인생이 크게 바뀔 겁니다.

선생님은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본 적이 있으신가요?

10년 후의 모습은 아니었고, 30대 때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의사가 50대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해서 해본 적이 있었는데 꽤 어려웠어요.

어떤 모습이었나요?

강이 보이는 전원주택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출판사 사람이 찾아와서 작품 이야기를 하고 차를 마시고 있었어요. 서재가 굉장히 멋있는 집이었어요. (웃음)

인류학자 마가렛 미첼은 이렇게 말했다. “사려 깊고 의지가 굳건한 소수의 시민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말라. 실로 세상을 바꾼 이는 그런 소수의 사람들이다.” 사려가 깊고 의지가 굳건한 소수의 시민들이 투사일 필요는 없다. 공지영이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들은 투표도 잘하고, 상식선에서 생각하며,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거대한 권력 앞에 그런 힘이 무슨 도움이 될까’ 생각하는 순간, 가지고 있는 작은 힘을 행사할 권리를 포기한 순간, 진실을 추구할 의욕을 잃은 순간, 불의로부터 눈을 감는 순간, 우리의 현실은 ‘도가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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