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강을 현명하게 건너는 52가지의 방법’을 알려준다는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은 아닐 테고, 서른을 넘고 한참을 지난 나이에도 공감하는 걸 보면, 이 책은 분명 서른 살뿐만 아니라 연령을 넘나들며 공감을 불러낼 게 틀림없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뻔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시기를 지나면서 ‘너네도 나이 들어봐라.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도 없다.’라는 고리타분한 말들을 어린 친구들에게 내뱉으며, 세상 다 안다는 듯이 지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데 책을 읽고 나니, 내 나이 서른엔 왜 이런 책이 없어서 서른 살의 강을 아무 생각 없이 보내게 했는지 속상하기만 했다. 또, 뻔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공감하는 나를 보며, ‘만약에 좀더 일찍 서른 살의 심리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내 인생은 달라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오늘의 주인공 김혜남 교수는 말한다.
“인생에 ‘만약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달래기 위해서 부르는 슬픈 노랫가락에 불과하다.”
그는
“서른이었을 때는 공부하느라, 아이 키우느라 어떻게 그 나이를 지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슈퍼맘’을 원하는 이 사회는, 그 바쁨으로 인해 그에게 정체성이나 역할의 혼란에 대하여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다만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의사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으므로 궁금한 호기심은 모두 풀어보자며 덤볐다. 그게 재미있었다. 아마도 그 재미가 서른의 그를 이끈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의 서른은 어땠을까? 그들은 어떤 혼란에 쌓여 있을까?
아직 서른밖에 안된 당신은 뭐든지 할 수 있다
소개를 받고 등장한 김혜남 교수는
“이렇게 좋은 날, 날 만나러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에 이어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에 보여준 독자들의 반응을 보며,
“‘요즘 서른 살들은 정말 지치고 힘들고 삶이 각박하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주로 이야기를 듣는 직업이다 보니, 그는 간접적인 경험을 많이 한다. 영화나 소설보다 더한 이야기들도 많다. 그런 이야기를 경청하고 나면 사색에 잠긴다. 사색을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경청한 내용들을 온전히 내것으로 소화하며 통합적인 결론을 유출하기 위해서다. 그는
“경청이야말로 가장 좋은 대화법”이라고 말하며,
“진실로 궁금해 하고 진실로 걱정하는 마음은, 듣는 행위를 통해 말하는 사람에게 전달되기 마련”이고,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을 통해 배우고,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을 통해 치유된다.”고 했다. 김혜남 교수의 다양한 기준들은 아마도 그런 경청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아직 이십 대라는 독자는, 서른 살이 되면 그 시행착오를 줄일 요량으로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를 읽었는데, 오히려 이십 대이면서도 감동했다고 말하며 서른을 바라보는 이십 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김혜남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자기 확신’이라고 말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쉽게 기대했다가, 잘 되지 않으면 그 기대만큼 쉽게 포기하고 절망한다. 또, 스스로 선택을 하지 못한다. 틀리든 맞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게 부족하다.”“세상엔 틀린 선택도, 옳은 선택도 없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그게 최선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버린 채 후회를 하는 것보다는, 선택해서 경험해보고,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실패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나아가라.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서라.”내 짧은 소견으로도 ‘맞아! 옳은 말이야!’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적성에 맞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만만해도, 세월이 지나니 그것들은 빛이 바랬다. 자꾸만 다른 곳으로 눈길이 간다. 그럴 때 눈길이 가는 곳으로 걸어갈 수 있는 용기는,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내가 젊다는 걸 그땐 모르고 있을지언정.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의 소제목은, 내용의 중요한 문장만 따온 것처럼 그 글을 대표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은 친구들은 소제목의 선정에 대해 칭찬했다. “어쩜 이렇게 잘 뽑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책의 제목들은 편집자와 회의를 하면서 정한 것이라고 한다.
표지의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향수」라는 작품으로,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바로 이 그림이다!’라고 생각했단다. 다리 위에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까만 천사. 자기 안에 사자의 용맹도 있고, 밝은 빛을 띠는 긍정의 가로등도 있는데, 그건 바라보지 못하고 딴 곳만 보는 까만 천사. 이것이 바로 서른 살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림을 그린 르네 마그리트는 다른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해석은 그림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까만 천사가 내면의 자아는 보지 못하고 딴 곳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서른 살의 마음을, 그 주변의 그림들에서 서른 살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한다.
전작인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도 그렇고, 이번에 그 물음에 답한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역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두의 고민은, 알면서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리라. 아무리 책에서
“서른밖에 안된 당신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해주어도, 서른인 ‘당신’은 말처럼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김혜남 교수는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사람의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2~3번씩, 4~5년 동안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다 해도 겨우 하나 바뀔까? 어렵다. 하지만 인간은 노력하는 동물이다. 몇 년을 보낸 후에 겨우 한 가지 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책을 읽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변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나중에라도 문득 떠오를 경우에 책을 다시 읽고 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면, 그것으로 성공한 것이다.” 하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행동으로 옮겨 변할 수 있다면, 김혜남 교수의 우스갯말처럼 정신분석학자들은 다 굶어죽을지도 모른다.
남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마라
김혜남 교수가 정신분석을 하게 된 데는 요절한 언니의 영향이 컸다. 그에게 그 일은 너무도 엄청난 것이었고, 그는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랜 방황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모르겠다’였다. 그렇다면 결국, 정신분석 공부를 하는 그 기간은 언니에 대한 그만의 애도의 기간이었던 셈이다.
시간이 지나고 인생을 경험하다보니, 그보다 더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을 보았다. 세상은 이런 일들이 그냥 일어나는 곳이고, 그들이 나쁘거나 잘못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연히 일어나는 것임을 그는 알게 되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십 년이 걸린 셈인데, 그는 ‘인간의 문제는 죽을 때까지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가끔은 스스로 ‘나’를 들여다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게 가능할까? 김혜남 교수는
“그러지 말라.”고 한다. 정신분석가인 그도 분석을 받을 때가 있다. ‘내가 내 문제를 바꿔보고 싶다’는 이유로 인한 것인데, 그것은
“시작함과 동시에 자신에게 끊임없는 상처를 내는 자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여건이 된다면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함으로써 자기 문제를 들여다보고, 다음 단계에서 고쳐나갈 방법을 알아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한다.
하지만
“제3자가 아닌 가족이나 친구를 분석하려들지는 말라.”고 한다.
“다들 내가 정신분석자라 집에 가면 아이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마음을 잘 알 것이라고 하는데, 누구라도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서운 생각이 든다. 나는 일을 떠나서는 보통의 엄마나 아내와 다를 바 없다. 가족이나 친구는 분석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으로 대할 상대이다.”
‘외로울 때 그것을 이기려고 애쓰지 말라’는 글을 읽고 한 독자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물었다. 혼자라서 외롭다? 그건 아니다. 가정이 있고 자식이 둘이나 있는 김혜남 교수도 순간순간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대부분의 미혼들이 결혼을 하면 외롭지 않을 거라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차라리 혼자 외로운 것이 낫다. 요즘 젊은이들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끊임없이 자극이 있어야 하고, 그 자극이 사라지면 끝없이 외로워한다.”“외로움이란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을 이겨보겠다며 발버둥치는 것은 자기 존재의 고유함을 포기하는 일일뿐더러, 타인과의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라고 책에서 그는 말했다.
“외로움의 반대는 ‘신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혼자라서 외롭지만 저 문을 박차고 나가면 반가운 친구들이 맞아 주리라는 신뢰. 연락할 친구가 있고, 기댈 사람이 있다는 신뢰가 있으면 외로움은 극복할 수 있다. 그러니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고독하다고 생각하라. 혼자 다녀도 보고, 혼자서 사색에 잠겨보기도 하고, 그러다 가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어울리기. 외로워하는 것보다는 고독을 선택하여 즐기는 편이 훨씬 좋다.”“고독을 즐기다 문을 열고 나갔는데 반겨줄 친구가 한 사람도 없다면? 그건 외로울 수밖에 없다. 적어도 자신에게 슬픈 일이나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옆에 있어 줄 친구가 두 명이라도 있다면, 외로워하기보다 고독을 즐길 만한 처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친구의 유무는, 평소 자신이 친구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투영되는 것이다. 자신이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면, 그들 역시 진심으로 나를 대할 것이다. 인생에 있어 그런 친구가 두 명만 있다면 멋진 인생을 사는 셈이다.”
독자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살인자를 교화할 수 있는 방법이나 학교에서 친구를 따돌리는 아이를 정신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 질문에 김혜남 교수는,
“살인자들 대부분은 죄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정신과는 만능이 아니며, 살인자자 대부분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무조건 치료를 해서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스스로 찾아와 치료를 받고 싶어 한다면 치료를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치료를 하는 과정은, 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던 사람이 치료를 통해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해봐라. 그런 고통을 받는다면 그는 죽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람을 죽이고 하루도 살지 못할 것이다.”“따돌림으로 인해 대인 관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다. 그건 어린 시절의 상처로 남아 평생을 괴롭힌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른들의 태도다. 따돌림을 당한 아이도 피해자이지만, 따돌림을 시키는 아이들 역시 또 다른 피해자이다. 어른들이 그런 아이들을 방치함으로써 그들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셈이다. 따돌림을 당한다면, 무조건 피하라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대항하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 나와서도 대항할 생각보다 피할 생각만 하게 된다. 그건 올바른 대응법이 아니다.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는 자기의 주장을 확실히 말하고, 두 번 다시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짧은 시간 동안 쉴새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김혜남 교수는 속이 확 풀리는 듯한 답변을 해주었다. 마치 내가 정신분석을 받는 듯 했다. 책은 서른 살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마음이 불안하고 자기 확신이 없으며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또, 누군가에게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그 해답을 듣고 싶다면, 연령을 초월하고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불안한 마음에 안정제가 되고, 당신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