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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연회] 『특강』 한홍구 교수

“슬픔을 딛고 용의 추락을 부엉이의 비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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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닥친 슬픔에, 믿기지 않을 법한 큰 사건 앞에 현대사 특강이 펼쳐졌다. 지난달 25일 신촌에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지금 이 순간의 역사’라는 테마로 독자들과 만났다.

지난 5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차마 믿기 어려운 뉴스가 전달됐다. 질곡 많고 얼룩 많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또 하나 아로새겨진 깊은 슬픔. 그렇게 지난 한 주, 대한민국에는 슬픔이 물결쳤다. 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된다는 말, 많은 이들이 새삼 깨달았다.



 

그는 멀게는 신라 이후, 가깝게는 건국 이후 강고하게 유지돼 온 기득권에 의미 있는 흠집을 냈던 비주류 정치인이었다. 그 무모함에 ‘바보’라는 타이틀이 붙었고, 그는 세대 아닌 세력 교체를 추구했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많은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아이콘이었다. 권위로 포장된 불합리한 권력에 얼룩을 남겼던 정치인이 떠난 자리.

느닷없이 닥친 슬픔에, 믿기지 않을 법한 큰 사건 앞에 현대사 특강이 펼쳐졌다. 지난달 25일 신촌에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지금 이 순간의 역사’라는 테마로 독자들과 만났다. 앞서 한 교수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에서 이뤄진 강의를 엮어 『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한홍구 지음/한겨레출판 펴냄)를 지었다. 각자 가슴에 한 움큼의 슬픔을 품고 만난 대한민국의 어떤 현대사.

역사를 보는 관점


한 교수는 말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의 주류가 돼야 한다. 우리 현대사는 큰일이 많이 일어났다. 깜짝깜짝 놀랄 일이 많았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 그런 소식을 듣게 될 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그 소식에 대해서도, 조선?중앙?동아일보와 한겨레?경향,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똑같은 세상사, 사람에 대해서도 평가가 극과 극이듯, 누구의 눈으로 역사를 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 예를 한번 들어보자. 2009년. 사망 100주기를 맞은, 우리 역사에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 있다. 20세기 후반 큰 영향을 미친 한 인물과 제삿날이 10월26일로 같은 사람이다. 100년 전 그 사람.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 두 사람의 제삿날이 같은 것은 물론 우연이지만, 한 교수 왈. “이런 우연만 쫓아가도 역사에는 재미난 일이 많다.”

그 이등박문을 쏜 의사 안중근. 깔끔하게 성공한 거사였다. 그러나 한 교수는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보자고 한다. “비무장 정치인에게 숨어서 총을 쐈다. 테러인가, 아닌가.” 그러니까, 테러리스트 안중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이건 관점의 문제다. 누가 하면 테러고, 누가 하면 전쟁인가. 이라크를 맹폭한 미국의 공격. 그것도 이라크인들이 보기엔 분명, 테러가 아닌가.

“안중근 의사가 한 것은 테러라고 생각한다. 나는 테러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억압이 없어져야 한다. 총을 맞고, 이등박문이 했다고 전설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다. ‘누구냐, 조선 놈이냐, 빠가야로.’ 그의 관점에서 보면 안중근 의사는 바보천치고, 멍청한 테러리스트다. 조선을 근대문명으로 이끌려고 온 몸을 다해 조선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몰라주고 총을 겨눴으니.”

그렇게 관점에 따라 세상사를 바라보는 게 달라진다. 한 교수는 영화 <라쇼몽>의 예를 든다. 중세 일본 사무라이 부부가 도적을 만나 아내는 겁탈당하고 남편은 죽은 사건을 놓고 네 개의 시선에서 바라본 영화. “역사학자 사이에서는 역사에는 최소 네 개의 판본이 존재한다. 나, 너, 진실, 실제 일어난 일. 정리된 역사가 진짜 역사냐. 우리는 합리적으로 의심해야 한다. 그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역사는 진보할까


그렇다면 역사는 진보하는 것일까. 역사를 공부한 누구든 물음직한 이 질문. 100년 전과 비교한다면, 대부분 다 우리는 발전했다고, 진보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권영길 의원이 물었던 식으로 물어보자. 10년 전과 비교해,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대답은? “다들 이 질문에는 아니라고 한다. MB 식으로 말하자면, ‘잃어버린 10년’이다. 살림살이가 나빠진 10년. 가슴 아프다. 그러나 한 세대 전과 비교하면, 어디가 더 살 만할까. 물질적으로야 비교가 안 되게 좋아졌다. 그런데 우리네 삶도 같이 풍요로워졌나. 우리는 역사 속에서 우리의 삶이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다른 기준으로 보자. 100년 전에 비해 평등해졌는가. 평등해졌다. 그때는 신분제가 살아있을 때니까. 그렇다면 60~70년 전과 지금은. 한 교수는 다시 신분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간단다. 그래서 결론은, 평등해지다가 삐끗해지면서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단다.

“여길 오기 전, 한 기사를 봤는데, 한국 주류가 갖고 있는 뿌리 깊은 배타성을 다뤘다. 우리 역사는 그런 면이 있다. 보수층은 말도 못하게 뿌리가 깊다. 문자로 기록된 2000년 동안의 역사를 보면 단 한 번도 엘리트가 바뀐 적이 없다. 그 배타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인 한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중국과 비교해보면, 중국은 한마디로 알록달록하다. 200~300년 마다 확 바뀌었다. 엘리트들 판갈이가 자주 이뤄졌고 불판을 싹 바꿨는데,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2000년 동안 왕조가 3번 바뀐 나라다. 이런 경우가 흔치 않다. 왕조가 오래 지속됐고 보수층의 뿌리가 깊다.”

한 교수에 따르면, 제국주의에 협력했던 세력이 살아남은 경우가 딱 두 나라다. 우리나라와 남베트남. 그것도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에 흡수 통일됐으니, 딱 하나 남은 것은 바로 한국이다. 그것도, 친일파 숙청을 못한 정도가 아니라 민족적 양심세력이 친일파에게 역으로 청산을 당한, 어이없는 경우다. “일본놈 앞잡이가, 즉 떡고물을 받아먹던 놈들이 떡판을 차지”한 경우다.

우리 역사는 그런 절호의 찬스를 놓쳤다. “민주화는 친일청산의 다른 말이다. 우리가 진짜 민주화가 됐나? 내 생각에 이건 민주화도 아니고, 안 된 것도 아니다. 전직 대통령 2명을 감옥에 보낸 것은 대한민국 밖에 없다. 그런 대통령들이 이렇게 떵떵거리며 사는 것도 대한민국 밖에 없다. 이 나라 엘리트들은, 신라부터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 특징은 오만방자가 하늘을 찌른다는 거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런 의미에서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 재직 시에 나도 욕을 많이 한 사람이지만, 저 비극적인 죽음을 보니 굉장히 슬프다. 특히 우리 역사가 갖는 벽이나 실체 같은 것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과거 우리가 얘기했던 민주화는 완성이 아닌,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과거 청산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나라에서 민주화는 아직 멀었다. “저는 이를 바로잡는 과정이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민주화 운동이 철저하지 못하고 한 번도 깨끗하고 완전하게 정리하지 못한 수십 년에 걸친 과거를 바로잡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p.70)

그런데, 진보에 대한 의문은 있다. 일본 무리들도 고종 장례식에 조선인들의 애도와 슬픔을 총칼로 막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시민들이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어놓은 분향소를 경찰들이 막고 부수는 행패라니. 우리는 대체 지금 어느 시대에 사는 걸까.

아직 진행 중인 민주화


그러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찍은 사람들은 바로 변화를 바랐던 사람들이다. 무언가 다른, 민주화를 바랐던 그런 사람들. 노 전 대통령은 그런 87년의 거대한 물결, 민주화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 중의 하나다. “하루하루가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한 시대의 좌절이라면 좌절이다. 그런데 그게 좌절로만 끝날까. 그렇지 않다. 그 슬픔을 딛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다.”

박정희 신드롬은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민주화와 살림살이의 나아짐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국민소득이 60년대 초반에 비해 급격하게 늘었지만, 살림살이는 진짜 나아졌나. 국민소득은 200배 이상 늘었지만, 그 200배 만큼 우리의 살림살이가 과연 풍족해졌나. 불과 30년 새 우리는 출산장려국으로 바뀌었는데, 왜 애를 낳지 않느냐면 키우기 힘드니까 그렇다. 옛날에는 아버지 혼자 벌면서도 애들이 많아도 키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명이 맞벌이를 해도 애 하나 학원 보낸다고 벌벌 떤다. 불과 한 세대 사이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돌아가, 민주화와 살림살이의 관계. “월급봉투는 사실 두꺼워졌다. 87년 민주화된 직후. 1953~1987년까지 파업은 1년에 백여 건이 있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항쟁 시절, 석 달 열흘 동안 파업이 3000건을 넘었다. 사흘이 1년이었던 시절이다. 그 시간 노조는 1200~1300개가 만들어졌고. 노조를 만들면서 임금인상이 된 거다. 그 전에는 경제발전만 했지, 분배한 적이 없다. 기업들은 파이를 키워야하는데 어찌 분배하느냐고 변명만 하고 국가도 억누르고. 그러나 민주화되면서 군사정권은 자기 살기에 바쁘니까, 진짜 신나게 월급이 인상됐다. 그렇게 3년 동안 평균 300~400% 올랐다. 민주화가 되니까 가능했던 거다. 노동자 문화도 달라졌다. 잔업이나 철야가 없어지고 시간이 생기니 영화를 보러 갈 수 있게 된 거고.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되니까, 경제적 민주화도 이뤄졌다.”

그러니까, 정치와 경제를, 그러니까 민주화와 살림살이를 분리하는 것은 기득권의 공작(!)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민주화 항쟁 이후 3년이었다고 한 교수는 말한다. “딱 3년 월급을 그렇게 주다 보니까, 자본가들은 아깝다는 생각이 든 거다. 노조 관리에 들어갔다. 정치권도 3당 합당을 통해 보수 대 연합에 나섰다. 국가권력이 정신을 차린 거다. 그렇게 다시 기득권이 뭉치고, 그나마 지금까지 87년 6월 이후 버텨간 거다.”

우리는 이미 그 현장을 경험하고 있다. 많은 자본가들이 어떻게 우리네 삶을 갉아먹었는지. “도급?용역 등 온갖 종류의 비정규직을 만들었다. 20년 전만 해도, 말 자체가 없었다. 특히 IMF 등을 거치며 본격화돼 지금은 우리 사회 일자리의 기본모델이 된 거다. 우리 삶을 지배하고, 특히 20대들을 옥죄고 있다. 재벌들도 민주화돼서 무지하게 좋아졌다. 우리가 좋아진 것이 10이라면 그들은 억 조다. 공중분해 된 국제그룹이나 고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나온 것도 다 (민주화되지 않은) 국가권력 때문이었다. 국가권력 앞에 재벌들은 깨갱거렸다. 민주화되니 달라진 거다. 지금 최고 권력은 누군가? 삼성이다. 센 이유가 뭐냐. 지금 정권도 2013년 2월이면 끝나지만, 그 재벌은 끝을 모르지 않나. 박정희나 전두환이 왜 힘이 셌나.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그게 힘이다. 진짜 권력은 죽을 때까지 누리다가 새끼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국가 권력도 물론 차이가 있다. “박정희?전두환 때는 전 국민을 보호한다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하지 않는다. 그것도 당당하게. 용산 참사의 본질이 뭔가. 그런 분쟁이 있으면 싸움이 극한에 가지 않도록 타협시키는 것이 국가 권력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조정자 역할을 벗어던지고 한쪽 편을 든다. 20년 전에는 안 그랬다. 또 지금 정책을 봐라.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에 만들어 놓은 것을 깨고 있다. 평준화나 의료보험 같은 거. 약자나 소수자를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를 마음 놓고 거둬들이고 있다. 옛날에는 달래기라도 했지, 요즘은 밟는다.”

‘개천에서 용 나는’ 교육은 없고, 허황된 꿈을 심은 부동산 정책

교육 문제를 보자. 노 전 대통령은 그러니까 개천에서 용 난 경우다. 시골 출신에 상고를 나왔다. 그나마 고시를 패스했지만. 한 교수의 표현을 들자면,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개뼈다귀”였다. 그런 그가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였다. 주류는 그것을 못 견뎌했다.

“한국 사회는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여야 한다. 그래야 꿈과 희망을 갖는다. 그나마 옛날의 입시 제도가, 가끔 입시부정이 있긴 해도, 공평하게 기회를 줬다. 그러나 이젠 주류에서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을 더 이상 못 보겠다고 한다. 집값 높은 동네가 서울대를 가장 많이 보낸다. 돈 갖고 고액 족집게 과외로 입시 제도를 왜곡시키고 있다. 이젠 서울대에 가난한 집 자식은 별로 없다. 개천에 용은커녕 이제 미꾸라지도 살 수 없을 지경이다.”

오죽하면, 한 교수는 전두환의 지적을 꼽는다. 과외금지. 피 칠갑을 하고 태어난 태생적 한계로 대중영합정책을 펴야했던 까닭에 만든 정책. “아는 기자가 당시를 말하더라. 과외를 폐지하고 나니, 진짜 아이들 성적이 바뀌었다고.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부의 세습을 위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도 그랬다. 과거급제자 반이 주요 본관을 차지했고 후기 가면 더 심해졌다.”

부동산은 또 어떤가. 말죽거리의 신화(?)로 치장된 졸부의 양산.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죄가 많다. ‘왜 우리 아버지는 말죽거리에 땅을 안 사놨지’하며 허황된 꿈을 꾸게 한 죄. 말죽거리는 30~40년 새 10~20원 하던 땅이 지금은 3000만원씩 100만 배 넘게 뛰었다. 그때 땅 산 사람들에게는 말죽거리 신화, 나머지는 말죽거리 잔혹사가 됐다. 그게 불과 한 세대 전이다. 그러니까 현대사가 중요하다. 우리 삶을 옥죄는 문제들은 불과 한 세대 전 만들어진 일이다.”

대한민국이 정체성을 회복하려면

우리의 현대사는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놀라운 성취와 성과에도 불구, 너무도 뚜렷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그것이 극소수 엘리트들에 집중되고 고착화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진짜 정체성이 회복돼야 하는 이유다. 우리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명확한 지점을 한 교수는 헌법과 임시정부라고 단언한다.

“정말로 임시정부가 어떤 나라를 세우려고 했는지 알고 가르쳐야 한다. 임시정부의 수장이었던 백범 김구는 우익으로 진짜 민족주의자였다. 그런 임시정부의 강령이 지금의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보다 훨씬 세다고 하면 믿겠나. 뉴라이트 등이 내세우는 제헌헌법도 임정 강령보다 약해도 국유화를 강조했다. 실제 개혁은 우익이 잘했다. 선거나 사회복지 등 모두 우익이 이뤘다. 그래야 혁명을 막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내용 없는 보수가 날 뛰는 세상이다. 보수도 공부를 해야 한다. 누군가 중국을 다녀와서 촛불을 보곤 누가 돈 줘서 샀는지 알아보라고 한 적이 있다. 자기 머리로 이해가 안 될 때, 꼭 찾는 것이 배후다. (웃음)”

그렇다. 우리는 하루하루 중요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역사의 중심에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야 할 때다. 누군가의 죽음이 우리에게 안겨준 것이 슬픔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현대사는 어떤 교훈을 알려줬고, 어떤 행동을 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3?1운동, 고종황제. 6.10만세운동, 순종. 4.19혁명, 김주열 열사. 그리고 6.10항쟁,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가 있었다.

슬픔을 승화하기 위한 우리들의 자세


“지금은 정말 슬퍼해야 할 때다. 다른 거 따지지 말고. 지금의 슬픔과 분노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우리 역사의 큰 흐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모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용이었다. 끝내 승천을 못하고 추락했지만. 부엉이 바위에서 추락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일지도 모른다. 새벽을 알리는 부엉이들이 많이 솟아올라야 한다. 슬픔을 딛고 용의 추락을 부엉이의 비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부엉이의 비상. 남은 자들에게 주어진 과제. 우리는 함께 울었고, 함께 슬퍼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이 마냥 다른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어떤 안도. 그것을 확인한 만큼 그것을 그냥 둬선 안 된다. 우리는 더디더라도 그것을 모으고 연대해야 한다. 역습을 가해야 할 때다. 더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희망을 가지면서 우리는 버티고 견뎌야 하지 않을까. 내 옆 사람을 경쟁 상대가 아닌 우리의 문제를 헤쳐 나가기 위해 힘을 합칠 사람으로 보는 것. 우리는 그렇게 만나야 하지 않을까.

노 전 대통령 분향소에 있었다는 어느 아주머니의 글. “앞으로 자식교육 똑바로 시키겠습니다.” 그의 서거로 인해 새삼 일깨운 어떤 가치를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말하고 있었다. 그동안 자식에게 ‘잘 살 것’을 요구해온 것이 최근의 우리였다. 행여 험한 일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과 화폐가 지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우리가 한참 뒤로 밀어 넣고 골방에 처넣었던 그 가치 말이다.

한 교수의 말에 중첩된 박 교수의 이 말. “우리나라의 한 학부모가 이런 글을 스스로 남기도록 한 것은 엄청난 일이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그 이름도 후세에 전하지 못하고 일제의 탄압에 스러져가는 동안 일제와 결탁하여 치부한 자들이 반민특위의 위기를 돌파하고 다시 군사독재시대의 고도성장을 거쳐 우리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리 잡았다. 그 뒤틀린 역사 속에서 우리는 ‘옳은 것’을 자신 있게 주장할 용기를 잃어갔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용기의 부재를 성숙함으로, 조직성으로 추앙하게 되었다. (…) 운동권과 노동계의 수많은 열사들이 죽음으로 ‘저항’하였지만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도리어 ‘제발 너는 저렇게 되지 마라’라며 자식들이 불의에 눈감고 살기를 바랐다. 노 대통령은 죽음으로 학부모들에게 각인시켰다. ‘올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임을. 지금부터라도 당장 자식들에게 ‘잘 살기’를 가르치던 것을 중단하고 ‘올바르게 살기’를 가르치기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괴물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한 교수의 특강은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밥 짓는 문제, 일상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 안의 부엉이를 비상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슬픔을 감내하는 길이라고. 기득권이 아닌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책의 서문에 한 교수가 언급한 이광웅 선생의 「목숨을 걸고」라는 시가 절절하게 와 닿는 시절이요, 시대다. 목숨을 걸었던 진짜 정치인, 그를 애도한다.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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