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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뉴라이트 비판』과 『밖에서 본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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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역사평론가 김기협(59)의 역사 에세이 『뉴라이트 비판』(돌베개, 2008)은 명쾌하고 엄정하며 신랄하다.

무소속 역사평론가 김기협(59)의 역사 에세이 『뉴라이트 비판』(돌베개, 2008)은 명쾌하고 엄정하며 신랄하다. 그가 보수주의자를 자임한다는 점에서, 얼핏 보수주의의 사촌쯤으로 보이는 뉴라이트에 대한 그의 냉엄한 비판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궁금증은 책의 후반부에서 풀린다.

김기협은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문제 삼는다. 사실관계를 다투는 것은 그 분야 전문 연구자들의 몫이어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뉴라이트 역사관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비평하는 것이다. 작업을 통해 내가 얻은 결론은 뉴라이트 역사관이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관이라 할 수 없는, 하나의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역사관은 “역사의 일부분을 보는 눈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보는 눈이다. 그런데 뉴라이트 역사관은 자본주의 발생 이전을 보지 못한다. 개인주의를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를 문명의 유일한 형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눈으로 ‘자본주의 이후’를 내다보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자본주의 자체도 극히 경직된 의미로밖에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덧붙인다.

그들의 시각은 어찌 이리 좁고 비뚤어졌는가? “인간을 보는 시각이 좁고 비뚤어졌기 때문이다. 역사관의 기초가 되는 것이 인간관이다. 인간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 탐구하는 마음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 역사가 의미를 갖고 파악되는 것이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규정하고 인간에게 그 이상 관심 없는 사람의 시선 앞에서 역사는 아무 의미도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뉴라이트의 모든 가치가 재물에 걸려 있어서다. “자본주의라는 안경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편협한 관점 때문이다.” 하여 그들의 역사관을 들여다볼수록, 합리적 보수주의자는 “몰상식한 역사관이 몰상식한 정책을 밀어주는 추세에 기가 턱턱 막힌다.”

합리적 보수주의와 뉴라이트의 관점은 판이하다. 예컨대 이승만을 보는 시각이 그렇다. 뉴라이트들은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문명’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들이 말하는 ‘문명’은 자본주의다. 반면, 합리적 보수주의자에게 이승만은 “해방 후 한국 땅에 세워질 국가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못한 짓이 없는 사람이다.”

김기협은 엄밀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뉴라이트를 강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비판한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주류 학계와 다른 이념으로 주도권을 넘겨받으려는 뉴라이트 논객(학자라기보다는)들의 쿠데타 시도다. 이 시도가 상당 범위의 진보적 학자들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주류 학계의 과도한 보수성에 대한 반작용에서 반사이익을 얻은 덕분이다.”

“뉴라이트가 남북 관계 긴장 상태의 유지 내지 격화를 바라는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펴는 미국이 세계의 군사적 긴장을 키우는 군사정책을 취한 것과 똑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일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빈부 격차를 늘려 제로섬게임의 한계를 최대한 확장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경제적 자유를 위해 정치?사회적 자유를 제한하는 경향을 가진 것이다.”

김기협은 뉴라이트의 승리지상주의에도 일침을 놓는다. “공산주의를 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북한을 실패할 운명의 나라로, 자본주의를 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남한을 성공할 운명의 나라로 규정한다는 것은 역사학의 문법에 맞지 않는, 쉽게 말해서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그래서 뉴라이트 역사관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원리주의 성향의 유사종교가 떠오르는 것이다.”

이제 궁금증을 풀 순서다. “뉴라이트의 목적은 진보 진영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합리적 보수의 봉쇄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말한 ‘문화 헤게모니’(cultural hegemony)를 보수 진영 내에서 장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한마디 덧붙인다. “이 땅의 합리적 보수는 죽었는가?” 참고로 보수주의자는 ‘질서 속의 발전’을 바란다.

또 한 권의 역사 에세이 『밖에서 본 한국사』(돌베개, 2008)는 새로운 패러다임일 수 있다. 안에서 보는 시각에 지나치게 얽매인 역사 서술을 뒤집는 것부터 그렇다. “이 책에서 취하고자 하는 ‘밖에서’ 보는 위치란 이를테면 조선족 입장에 접근하는 것이다. 국가 기준으로는 한반도 밖에 있고 민족 기준으로는 한민족 안에 있는 위치다.” 한편으론 국가 정체성과 민족 정체성을 구분해볼 줄 아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요긴한 과제라는 문제의식의 발로다.

이 책은 우리가 천하체제의 일원으로서, 혹은 그 주변적 존재로서 중원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생존한 비결을 살핀다. 중화제국의 지배자들은 온 세상을 ‘천하(天下)’라 칭하고, 그것을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눴다. 제국으로 조직되어 있는 문명이 확립된 영역과 제국 바깥의 문명이 덜 미친 영역이 그것이다.

천하체제는 천자를 중심으로 문명의 동심원을 그렸으며, “하나의 이념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중화제국의 안보에 요긴한 역할을 맡았다.” 춘추시대에 형성되어 진한(秦漢)제국에서 실현된 천하체제 이념은 청나라 때까지 중화제국의 밑바탕을 이뤘다. 그러면서 “한민족에게는 그 형성 단계부터 중요한 외적 조건으로 꾸준히 작용했다.”

김기협은 천하체제가 주변부를 다스리는 방식으로 ‘이이제이(以夷制夷)’나 ‘분할통치(divide & rule)’보다 기미정책에 주목한다. 기미(羈□)정책은 “중국의 역대 왕조가 다른 민족에게 취한 간접 통치 정책(이다). 기미는 마소를 묶어 둔다는 뜻으로, 이민족에 대하여 자치를 인정하여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이른다.”(국어사전)

명나라는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의 북쪽, 만주 동부 일대의 여진족에 대해 기미정책으로 간접적인 통제력을 행사했지만 여진족은 완전히 복속되지 않았다. 오히려 여진족은 청나라를 세워 명나라로부터 천하를 빼앗는다. 고려 또한 여진족 추장들에게 명목상의 관직을 주는 기미정책을 폈다.

김기협은 한민족 생존의 길을 ‘화이부동(和而不同)’에서 찾는다. 중국문명을 거부하지도 않으면서 또한 거기에 매몰되지도 않은 것이 생존의 비결이다. “중국의 문명과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중국과 다른 고유한 전통을 그에 조화시켜 복합적 문화전통을 창출한 것이 한민족 정체성의 바탕이었다.”

우리 민족은 군사력보다는 문화적 역량에 더 많이 의존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한국이 독립을 지켜온 것은 화이부동의 문화노선을 견지해온 덕분이며, 이 노선을 안정시킨 것이 세종의 업적이다.” 그리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정치적 조건은 신라의 통일을 통해 마련”되었다.

누구나 한번쯤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이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중원의 평정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이에 대해 김기협은 이렇게 반문한다. “그러나 중국을 정복했던 이민족이 한민족처럼 독립된 민족으로 고유한 문화를 지켜낸 예가 있었던가?”

여기에다 ‘사대(事大)’를 또 다른 생존 비결로 꼽는다. “명나라에 대한 사대관계를 통해 조선은 동아시아 천하체제 속에서 독립국의 위치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는 ‘사대’에 대한 긍정적 설명에 대해 혼란을 느낄지도 모를 독자에게 ‘권위’와 ‘권위주의’, ‘인종’과 ‘인종주의’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무슨 말이든 뒤에 ‘주의’를 붙이면 그 한 가지에만 매달려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하는 불건전한 태도라는 인상을 주는 말이 되기 쉽다.” 더구나 ‘사대주의’는 19세기말 일본인들이 만든 말인데다 조선에게 특허권까지 줬다. “조선의 독립성을 부정하고, 또한 조선 진출에 방해가 되는 청나라와의 관계까지 폄하하는 일석이조의 관념이었다.”

『밖에서 본 한국사』는 참신한 측면이 적잖다. 예컨대 신라는 단지 생존을 위해 당나라에 매달렸다. 쌍성총관부는 ‘수복’한 게 아니라 ‘탈취’했다. 이성계는 급진개혁파의 선택을 받았다. 측우기 발명의 뛰어남은 기술력보다 그런 관측기기를 필요하게 한 훌륭한 제도에 있다. “광해군(1608-1623)은 정치범이다.”

실학의 세 봉우리로 꼽히는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의 저술은 두 개의 측면이 엇갈려 있다고 지적한다. “그 하나는 현실의 정확한 이해를 목표로 하는 백과사전적 서술이고, 또 하나는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혁 방안을 제시하는 정치 논설이다.”

조선의 망국은 두 단계를 거쳤다는 지적 또한 주목된다. 일본의 지배 아래 들어간 것은 마무리 단계이고, 이에 앞서 중국 중심 천하체제에서 벗어난 것은 그 전 단계다. “이 무렵 조선에서 ‘독립’의 주장은 ‘친일’과 그리 멀지 않은 것이었다. 독립문 현판을 ‘매국노’ 이완용이 쓴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독립협회의 독립이란 이미 패퇴한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확인하는 것이지, 당시 늘어나고 있던 일본과 러시아의 힘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독립협회의 지도자 대부분은 두 나라 사이의 줄타기에 협회를 이용했을 뿐이었기 때문에 황제가 해산 명령을 내리자 바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나는, 다만, 우리가 폭력국가를 청산하던 시기에 나타난 “가장 뚜렷한 집단이기주의의 사례가 이른바 ‘지역감정’”이라고 한 것은 꽤 아쉽다. 이러한 견해는 칼럼집 『미국인의 짐』(아이필드, 2003)에서 이미 개진된 바 있지만 좀 안이한 생각이 아닌가 한다. ‘인종차별’과 ‘인종감정’이 구별되는 것처럼 ‘지역감정’과 ‘지역차별’은 다르다.

『미국인의 짐』은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신문과 잡지에 쓴 칼럼을 모았다.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넓히는 동안 얕고 얇게, 그러나 넓게 세상 보는 눈을 키우려 애”쓴 결과다. “몇 해 그러다 보니 관심이 저절로 모이는 방향이 떠올랐”는데, 그건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매도에 가깝게) 비판하는 글을 꽤 많이 쓰는 사람이지만 필자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다. 미국의 구조적 문제가 온 세계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을 걱정하고, 과거의 한미관계가 떳떳하지 못했던 것을 아쉽게 생각할 뿐이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있음으로 해서 이 세상에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러한 미국관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견해를 존중한다. “이런저런 불평을 하기는 해도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괜찮은 사회라는 생각”(『뉴라이트 비판』)에도 섣불리 동의하기 어렵지만 이것 역시 그의 견해를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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