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비쳐드는 널따란 부엌.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장갑으로 오븐에서 알맞게 구워진 과자나 빵을 꺼내는 여인의 모습이나, 온 집안에 풍기는 고소한 냄새는 ‘행복’ 그 자체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홈베이킹이 꾸준히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사랑받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웰빙’ 즉, 잘 먹고 잘 살기에 대한 바람은 홈메이드 쿠키나 브레드의 가치를 나날이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한때는 오븐을 가지는 것이 서민을 조금 뛰어넘는 가정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아서 누구나 마음먹으면 홈베이킹의 세계에 퐁당 뛰어들 수 있기도 하다. ‘직접 만든’ 먹을거리는 기본적으로 ‘유익함’과 ‘정성’을 담보하고 있으므로 사랑하는 가족을 먹이기는 물론 금전으로 정성을 희석시키기 싫은 상대에게 선물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홈베이킹의 여왕, 슬픈하품
이지혜 씨가 ‘슬픈하품’이라는 닉네임으로 운영하는 블로그나 카페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그녀의 블로그는 총 방문객 수가 600만 명을 넘어섰고, 카페는 회원 수가 5만 명에 달한다. 지금 이지혜 씨는 홈베이킹의 여왕이나 마찬가지다. 이번에 나온 『똑똑한 여우들의 영양만점 홈베이킹』은 그녀의 세 번째 책이다. 그녀는 요즘 기업이나 단체의 초청을 받아 요리교실의 선생님으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YES24와 경향미디어 출판사에서 새 책 출간 기념을 겸해 이지혜 씨를 초청하여 자사가 운영하는 카페의 회원과 이벤트를 통해 초청한 예스24 회원들을 대상으로 사워크림 초콜릿 케이크 만들기를 한 것도 그중 하나다.
조금 이르게 도착한 시간, 동교동 린나이 본사 3층에 자리한 정갈한 실습실에는 이지혜 씨가 혼자 서 있었다. 홈베이킹은커녕 끼니도 겨우겨우 해결하는 농땡이 주부에게는 척 보기에도 프로페셔널한 이지혜 씨가 조금은 낯설었다. 그처럼 홈베이킹을 했으면 살이 좀 더 쪄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서른일곱, 아이가 아직 없으며, 그나마 살이 많이 찐 상태라고 했다. 책의 앞날개에 쓰인 지은이 소개를 보면 이지혜 씨는 디자인 석사 학위 취득자다. 요리가 예술이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디자인과 아트는 다르지만 요리를 생활 예술이라 부르는 데는 큰 걸림돌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그녀가 구워내는 온갖 과자와 빵들은 입에 앞서 눈부터 사로잡는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를 먹이는 일=고된 행복참가자들이 어느덧 다 모이자 강습이 시작됐다. 주로 좋은 재료의 선정, 계량을 엄격하게 지킬 것, 순서를 지켜 꼼꼼하게 만들 것에 대한 당부가 있고서, 이지혜 씨의 시연이 잇따랐으며 바로 실습이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내내 이지혜 씨의 조리대 위에는 집에서 만들어온 사워크림 초콜릿 케이크가 출간된 책 위에 놓여 있었다. 예쁜 그릇에 담아 그대로 구워낸 케이크는 그야말로 그림 같은 자태를 뽐냈다.
참가자들 중에는 초보자도 물론 있었지만 요리를 매개로 하는 카페 회원들답게 손놀림들이 대체로 익숙했다. 물론 거품기로 버터를 휘젓고, 설탕이며, 달걀이며, 초콜릿이며, 사워크림을 차례대로 넣고 그때마다 다시 저어주는 일, 그리고 박력분 밀가루와 코코아가루, 베이킹소다와 베이킹파우더, 소금 등이 섞인 가루를 넣고 또다시 저어 반죽을 만드는 일은 주로 팔의 노동이었고, 한 사람이 계속하기에는 무리가 될 정도로, 보였다. 다행히 네 명이서 한 팀을 이루었으므로 교대가 가능했기는 하다. 구경하는 이의 눈으로는, 좋아하지 않으면 못할 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원래, 누군가를 먹이는 일은 그런 것이리라.
재료 계량 레시피 ?본격적인 실습이 시작되자 이지혜 씨는 조리대마다 돌아다니며, 질문에 답해주고 과정을 체크하고, 혹은 웃음 섞인 담소를 나누었다. 계량 잘하고, 레시피대로만 하면 될 것 같은데도 나름대로 실패한 경험들이 꽤 있어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조금만 오래 저어도, 혹은 조금만 덜 저어도, 재료를 냉장고에서 꺼낸 뒤 바로 써서, 혹은 적당한 재료가 없어 대용품을 써서도 빵은 최상의 상태로 나와 주지 않는 듯했다. 하긴 어디 빵뿐이겠는가. 넘쳐도, 모자라도 잘 안 풀리는 게 우리 인생이니, 어쩌면 홈베이킹은 자신의 내면을 가다듬는 작업일 수도 있으리라 싶다.
반죽을 담아 은박지 용기에 담아 오븐에 넣고 나면 기다리는 일이 남았다. 17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30~35분 정도 구워내라고 했는데, 거기에도 세심함이 또 필요했다. 용기에 담을 때 부푸는 걸 감안해 70% 정도를 채우는 것이나, 오븐의 성질에 따라 온도를 조금 높게 혹은 낮게 예열하는 것, 30분이냐 33분이냐 35분이냐를 결정하기 위해 구워진 상태를 미리 체크해 보는 일 등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아 보였다. 생크림에 초콜릿을 넣어 녹여서 가나슈를 만들어 구워낸 케이크에 끼얹는 일에도 적당한 시간이라는 것이 있고, 가나슈가 굳기 전에 견과류를 올려서 장식하는 일에도 세심함은 필요했다. 모두들 꽤 잘(물론 반죽에 넣을 초콜릿과 가나슈를 만들 초콜릿을 나누어 써야 하는데 한번에 중탕해 녹여 버린 팀도 있었지만) 사워크림 초콜릿 케이크를 완성해 싸들고 돌아갈 수 있었다. 남자친구에게 줄 거라던 처자는 그날 달콤 쌉싸래한 케이크 덕분에 유독 멋진 데이트를 했을까?
홈베이킹은, 다름 아닌 사람에 대한 정성강습 끝 무렵에, 이지혜 씨가 집에서 구워 와 예쁘게 포장해 나눠 준 쿠키를 받아들고서, 먹기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음식이 먹기 아까운 건 좋은 일일까, 아닐까를 생각했다. 이지혜 씨가 홈베이킹을 하는 정성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자신이 출간한 책도 모두에게 선물로 주었고(사서 보라고 하고 싶었을 만한데), 쿠키도 구워 와 선물로 주었는데 그건 쉽게 생각하자면 쉬운 일이지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홈베이킹이란 것도 그렇다. 제과점에 가면 손쉽게 살 수 있는 것들이고, 안 해도 주부로서 할 일을 안 하는 것과는 별개이지만 그게 가족이나 지인과의 인연을 가꾸는 조그만 정성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았다. 무엇보다, 옆에서 지켜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특히, 사워크림 초콜릿 케이크는(
『똑똑한 여우들의 영양만점 홈베이킹』 114~117쪽에 잘 소개되어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