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향긋한 북살롱’ 새해 첫 초청 작가는 지난 12월 수필집을 출간한 김훈 선생이었다. 여성이 거의 대부분이었던 기존의 북살롱에 비해 남성의 비율이 제법 많았던 행사였다. 아마도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여성보다는 남성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혼자 추측했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소개를 받고 나온 김훈 선생은 “추운 날, 집에 안 가고 이렇게 모이게 해서 죄송하다”며 유익한 시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자리에 앉아 낡은 서류 가방에서 강연할 원고를 꺼낸 선생은 “여러 사람 앞에 나와서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을 하고 여러분의 이야길 듣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선생은 오늘 너무 추워서 하루를 지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침 7시에 일어나 달리기와 걷기를 한 시간씩 했는데 추운 날 밖에서 뛴다는 것은 신바람 나는 일이라고 한다. 공기가 차고 달기 때문이다. 두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따뜻한 집으로 들어오면 노곤해진다. 그 노곤함은 행복한 느낌을 불러준다. 몸이란 정직해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하루 종일 선생은 책을 읽고 저녁이 되어 이 자리에 나왔다.
길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책을 읽은 인간 안에 있는 거다!
선생이 읽은 책은 두 권이었다. 주희 선생이 쓴 『근사록』과 이황이 쓴 『퇴계집』이었다. 이 두 권의 책은 놀라움을 선사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글을 쓰는 것은 또한 무엇인지 반성하게 했다. 『근사록』의 주희 선생이 가장 중요하게 읽은 책은 『논어』와 『맹자』였다. 책이란 모름지기 읽기 전과 읽은 후에 인간의 변화가 없다면 구태여 그 어려운 것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 글을 읽고 보니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데 선생은 책 속엔 길이 없다고 한다. 평생을 읽어보니 그렇다는 거다. 책엔 글자가 있을 뿐이다. 주희 선생의 말처럼 책을 읽고 인간으로서 변화가 있다면 길이 있는 것이고, 그 변화가 없다면 길이 없는 것이란다.
언젠가 김연수 작가도 책 속에 길이 없다는 말을 하더니 작가들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과연, 책 속엔 길이 없는 것인가? 독자로선 책 속에 반드시 길이 있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기도 하는데 좀 난감했다. 선생은 이어 말한다. “그 길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책을 읽는 인간 안에 있는 것이다. 인간을 개조시키고 개조된 인간으로 현실을 개조할 수 없는 한, 책 속의 길이 인간과 현실로 통하지 않는 한, 책 속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 그런 뜻이었구나! 선생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근사록』을 읽는 것이 무서워졌단다. 그래서 책을 덮고 오후엔 『퇴계집』을 읽었는데 그 역시 무서웠다고 한다.
이황의 글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단다. 이 세상에는 본래 그러한 것이 있고 마땅히 그러한 것이 있는데 그것들은 이 세상의 근원이 되는 것들이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 이건 본래 그러한 ?룀로 의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는 그 자식에게 자애를 베풀어야 한다. 이것은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일이다. 인간이 삶과 물질, 환경에 대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경건함을 퇴계는 말하는데 우리는 그 경건이라는 단어조차 잊은 것 같다. ‘우린 경건한 태도를 취할 줄 모르는 세상에 태어났고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 중에 가장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생각하며 김훈 선생은 책을 읽었단다. 그리고 ‘그럼, 나는 어떠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선생은 『논어』나 『맹자』를 읽을 때 행복하단다. 그 안에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과 인간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에도 선생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선생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무서웠단다.
글을 쓴다는 것도 그렇다. 인간과 세계가 가까워지는데 조금도 기여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존재를 현실로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책 속에 있다는 길이라는 것은 얼마나 공허하고 덧없는 것인가!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겁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 속에서 앞으로 조금씩 한 글자 한 글자 써나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고민을 하루 종일 하다가 이 자리에 나왔다고 한다.
김훈 선생은 짧은 강연 속에 많은 깨달음을 선물해주었다. 남들보다 많은 책을 읽는다고 자부(!)하고 있던 나는, 변화는커녕 깨달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바, 추후엔 꼭 변화를 꿈꾸며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길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책을 읽은 인간 안에 있는 거다.” 꼭 명심할 문장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던지는 한마디
김훈 선생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그 책은 밥벌이를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쓴 글이었다. 독자의 질문 중에 밥벌이가 지겹다며 어떻게 하면 그 지겨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묻자 대답하기 참 곤란하다고 했다.
‘밥’이란 쉴 새 없이 먹어야 한다. 두 끼만 굶어도 몸은 그걸 알아챈다. 살기 위해선 먹기 싫어도 꾸역꾸역 먹어야 살 수 있다. ‘밥벌이’ 역시 그렇다. 하루 이틀 일하고 평생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꾸역꾸역 일해야 한다. 내가 던진 낚시 바늘에 내가 걸린 꼴이지만 이걸 단념할 수는 없는 거다. 그러니 답변이 될지 모르겠으나 꾸역꾸역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아이는 아마 월급쟁이로서 평생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는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바다의 기별』에 나오는 월급쟁이가 된 딸을 보며 선생이 느끼는 감정이다. ‘밥벌이’에 대한 독자의 의문은 아마 이 글을 읽음으로써 그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지겨움’이 아니라 ‘경건함’과 ‘진지함’이라는 것을.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선생은 과학적으로 인식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젊은이들은 이 시대의 현실을 정신적, 심정적, 이론적으로만 이해하려 한다. ‘이 사태는 내 마음에 드는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사람을 볼 때는 저자는 내 편인가, 저자는 내 적의 편인가, 아톴가.’ ‘저자는 내 편인 것 같지는 않은데, 저자는 내 적의 적이기 때문에 저자는 아마도 나의 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난폭한 망상에 집착한다. 그러면 안 된다. 과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왜 이런 것인가?’와 같은 의문을 제기하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 변하면 여타의 다른 관계는 어떻게 변할 것이고 그런 관계 속에서 인간의 잣대는 또 어떻게 변할 것인가?’ 같은 훈련을 청소년은 물론이고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한다면 과학적 구조를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그런 쪽으로 젊은이들의 안목이 뜨이고 교육 활동도 바뀌어 간다면 우리 사회가 훨씬 합리적이고 선진 사회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선생은 말했다. 과학적인 이해, 즉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라는 뜻일 게다.
작가 김훈과 독자들이 나눈 문학적 담론
김훈 선생은 늘 연필로 글을 쓴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손으로 쓰는 글씨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편안해진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키보드를 이용하면 좀 더 편하게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아직도 연필을 깎아 글을 쓴다니……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선생이 연필로 글을 쓰는 이유는 “연필로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어느 글에서 말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선생의 글은 온몸으로 쓰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좋은 글이 안 나올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인터넷으로 신작을 발표하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이제는 작가들의 발표 무대가 되기도 한다. 황석영 선생이 그 시초가 되었고 그 뒤를 이어 공지영, 정이현 작가를 비롯하여 박민규와 백영옥 등등 많은 작가들이 현재 인터넷 상에서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그런 현상에 대해 김훈 선생은 ‘인터넷 문학’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선생은 ’인터넷 문학’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고 하셨다. 오로지 연필로만 쓰겠다고 하신다. 하지만 인터넷 문학이라고 무시하지는 않는다. 본격문학이 인터넷으로 등장 한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의 장르이기에 고유의 영역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한다.
선생은 작가가 한 사람의 시인일 뿐이라고 했다. 선배들이 문학으로 인간을 구원한다며 작가로서의 권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볼 때 눈물겹고 존경스럽단다. 그러나 선생은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거나 문학으로 인간이 구원 받았다는 것이 뭔지 모른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사실 궁금하다. 다만 문학은 인간을 혼란에 빠트리고 인간이 편하게 느낀 고정관념을 깨부수어 그것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고통 받게 하지만 구원할 수는 없는 거다. 선배들의 문학에 대한 거룩한 삶의 태도와 경건함을 존경하지만 그 뒤를 따를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선생을 두고 작가의 이상을 과소평가한다는 분들이 있지만 작가를 과대평가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글일 뿐이다. 글이라는 것은 세상의 꼭대기에 있으면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이란 처해야 할 적당한 위치가 있는데 그것이 최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과학적인 생각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바다의 기별』은 에세이다. 김훈 선생은 소설도 많이 썼지만 에세이도 많이 펴낸 셈이다. 그렇다면 선생은 어느 장르를 더 선호할까? 독자의 질문에 선생은 “에세이 쓸 때는 아주 편안하다.”며 말을 꺼냈다. 에세이는 1인칭으로 자아를 드러내면 된다. 하지만 소설은 3인칭이기에 내가 나올 수 없다. 등장인물이 나와서 모든 정서나 느낌을 드러내며 사유를 객관화 시키는 것이 소설이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에세이는 그런 객관화 작업이 없어 부담스럽지 않다고 한다. 선생의 작품에서 여자가 잘 등장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작가인 선생이 편해야 글을 쓸 ? 있는 것인데 여자를 잘 모르는 데다 3인칭으로 써야하기 때문이다.
선생의 문체는 독특하다. 그런 기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략은 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전술과 전략을 가지고 있는 거다. 선생은 소설마다 다른 문체를 구사했다. 각 소설을 쓸 때마다 적확한 문체를 고안한다. 소설은 오직 글자로만 보여주는 것이기에 문체가 성립되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칼의 노래』가 휘모리장단 같이 빠르고 긴박감 넘치는 문체인가 하면 『현의 노래』는 다르다. 중모리장단 같다. 문체가 늘어진다. 이렇듯 그때마다 주제를 확실히 드러낼 수 있는 문체를 만들어 내는 편이다. 이건 언어를 전략, 전술로 사용하는 작가의 태도이며 작가의 고유 문체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선생은 본래 사실만을 가지런히 챙기는 문장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 문장을 이순신 장군에게 배웠는데 『칼의 노래』를 쓸 때 사용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 장군이 군인이기 때문에 사실에 정확하게 입각한 군인의 언어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무인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문장이었다. 군소리가 없고, 무인들이 큰 칼을 한 번 휘둘러서 사태를 정리해버리듯이 한 번으로 끝내버리는 문장을 이순신 장군이 쓰고 있었다. 놀라운 문장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다. 암담한 패전 소식이 육지로부터 전해오던 날, 이순신은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라고 일기에 썼다. 슬프고 비통하여 땅을 치고 울고불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한 문장 안에 그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셈이다. 무미건조하다는 사람이 있지만 혼자 앉아 있었다는 그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것 일뿐이다. 그런 문체가 『칼의 노래』를 쓸 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김훈 선생은 기자 생활을 27년을 했다. 들락날락한 5년을 제외하면 25년이다. 기자라는 것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라는 육하원칙에 의해 글을 쓴다. 그것은 인간이 언어로서 사실을 진술하기 위해 고안한 언어적 장치이다. 그러나 육하원칙으로 글을 쓰고도 언어의 진실을 진술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소설을 쓴다고 해서 그런 번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육하원칙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듣기보다는 말을 내뱉는 세상이다. 혼자 떠든다. 그 말을 듣는 자가 없다. 즉 히어링은 안 되고 채팅만 가능한 시대인 거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언어적 비극인 셈이다. 기자를 하다가 소설을 쓰면 기자의 번민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이 허구라고 해도 그 허구의 틀 안에서 사실에 충실한 글을 쓰려고 선생은 노력한다고 한다.
선생이 역사소설을 많이 쓴 이유에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특별한 애착이나 집착 때문이 아니다. 다만 그려내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배경이 역사였고 그래서 그 장면을 끌어다 쓴 것뿐이다.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은 전쟁을 말하는 것으로 그 바탕에 전쟁이 깔려 있다. 세계의 야만성과 폭력과 악의 기본구조를 끌어내기 위해서 그 시대를 끌어다 쓴 것이다. 그것 또한 전술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역사소설은 그만 쓸 생각이란다. 한국의 현대사만큼 살아온 선생은 소설의 무대를 당대의 현실로 옮길 계획이다.
작가 김훈을 알기 위한 소소한 질문들
1. 슬럼프는 언제였으며 어떻게 극복했나요?
슬럼프, 요새 슬럼프에 빠져있다. 내가 써야 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지만 나아갈 수 없을 때가 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머릿속으론 알지만 ‘말’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럴 땐 나가 논다. 혼자 논다. 강가나 들판을 뛰어다니고 저녁놀을 구경하고 날아가는 새도 보다가 ???다. 슬럼프일 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아침에 일어나 책상에 앉으면 그날 내가 일을 할 수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과감히 연필을 던지고 나가서 논다. 신나게 놀다보면 날이 저물고 별이 뜬다. 깊고 푸른 하늘에 별이 떠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다.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것만 보면 좋아서 미친다. 그러면 술을 마시고 하루가 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또 일이 안되면 나가논다.(웃음) 슬럼프가 신날 때도 있는데 그건 저녁이다. 그래서 지금도 신난다.
2. 김훈 선생이 생각하는 어른이란? 또 선생의 인생에서 어른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어른이란, 애들이 늙어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어른은 어른다운 고유한 덕성이나 사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런 덕성을 사회가 공적으로 인정해야 어른 행세를 할 수 있는데 우리 시대에는 그런 어른이 거의 없어지고 있고. 어느 누구도 권위를 가질 수 없다. 권위 없는 세상이란 참 난감하다. 권위주의에 반대하지만 반대한다는 것이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어른의 권위라는 것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권위의 바탕은 어른이면서 연장자가 되었을 때 권위가 생기고 남을 승복시킬 수가 있다. 그런 어른이 우리 시대엔 많지 않다. 나는 환갑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어른이 아니다.
소설 『남한산성』을 보면 인조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복할 줄 알기 때문이다. 항복해서 치욕을 감당하고 백성과 언어와 문화, 종족을 보존해서 후세에 전할 수 있는 것이 어른이다. 끝까지 싸워서, 자존심을 세우고 백성의 씨가 마를 때까지 싸워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어른은 아니다. 김상헌 대감은 훌륭한 조선 선비이고 지식인이지만 그런 당면한 현실을 들여다보지 못했기에 장님인 셈이다. 그분은 자손만대 추앙받아 마땅하지만 임금인 인조가 그 뜻을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어른의 길은 따로 있다. 치욕 속으로 갈 수밖에 없지만 삶과 멸망의 기로에서 삶의 길을 택한 것이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어른이라고 생각되는 분을 내 생애에서 만난 적은 없다. 다만 책 속에서 만난 인물 중에 다산 정약용이 정말 어른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3. 『바다의 기별』에 보면 김지하 선생의 출감을 기다리는 박경리 선생을 목격하고도 기사 작성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은 기자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요?
그 일은 회사를 위한 길도 나를 위한 길도 아니었다.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그때 자신을 감추고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사회적 비리나 착취, 억압, 은폐와 같은 것을 감추는 거라면 기자로서의 악덕이지만 그게 아니라 개인적 성향과 고귀한 성품에 따라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데 기자라고 해서 그걸 기사로 쓴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폭력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행동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했다.
그날 밤 나는 신문사로 돌아가 마지막 기사를 작성했다. 나는 박경리에 관해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나는 다만 백기완의 출감 모습만을 추가로 썼다. 나는 박경리에 관하여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쩐지 그것이 말해서는 안 될 일인 것만 같았다.
한국의 현대사로 재출발할 김훈 선생에게 박수를 보내며
한 시간 삼십 분이 후딱 지나갔다. 짧은 강연에 비해 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고 선생은 심도 있는 답변을 해주셨다. 다른 질문들도 많았으나 모두 옮기지 못했다. 대체로 작가의 힘은 독자들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열렬한 독자, 작가를 알아훁는 ?자가 있다는 것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된다. 그런 점에서 김훈 선생 역시 행?한 작가인 셈이다.
선생은 이제 역사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한다. 선생의 역사소설에 관심이 많았던 독자들은 아쉬운 생각이 들겠지만 작가란 모름지기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생이 풀어낼 한국의 현대사는 우리에겐 이미 지나왔으므로 그 자체로 또 다른 역사가 될 수 있다. 결국 역사소설을 안 쓴다고 말하셨지만 우리에겐 역사소설이 되는 셈이다.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문체로 쓰일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과연 휘모리 문장일지 중모리 문장일지, 아니면 또 다른 장단의 문장이 될지.
덧) 이 글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이번 신작 『바다의 기별』에 거의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바다의 기별』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사진으로 보는 김훈의 향긋한 북살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