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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shaped-box가 아닌 Heart box로 느.껴.봐.” - 『이방인』
이해하려는 관점보단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자세로 받아들이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취향의 차이에서 오는 갭은 존재하겠지만 너무 군중심리에 이끌려 두리번거리며 방황하기보단 자신의 심장이 이끄는 대로 말이죠.
얼마 전 우연찮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The Mamas &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을 듣고 있자니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향수에 사로잡혀 흥얼흥얼 열심히 따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문득, 서랍 속 깊숙이 숨겨두었던 연애편지를 발견한 기분으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이 떠올랐는데요. 숨 가쁘게 흘러가는 빛과 카메라의 움직임, 감각적인 대사들 그리고 작은 스테레오 기기에서 줄기차게 나오던 〈California Dreamin'〉이 말이죠. 13년 전 처음 영화를 접했을 땐 대사 하나하나, 배우들 몸짓 하나하나에 보이지 않는 화살이 가슴 속 깊숙이 박힌 것처럼 격렬히 반응했고 양조위와 금성무의 표정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보고 또 보고를 수없이 반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94, 95년도엔 저의 어설픈 인격이 성장하는 데 영향을 주었던 양질의 컨텐츠를 많이 접한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나우누리의 존재와 그곳에서 알게 된 여러 사람들, 명동과 압구정의 수입서점,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겨버린 커트 코베인, 왕가위의 <중경삼림>과 타란티노의 <펄프픽션>, 장 피에르 주네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그리고 하루키와 알베르 카뮈까지 말이죠. 사실 카뮈의 『이방인』은 <중경삼림>과 <펄프픽션>의 비디오테이프를 구입코자 나섰던 종로의 중고책방에서 구입한 책이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원고의 분량은 150페이지 정도로 중편이라 보기에도 좀 짧은 편인데 책을 다 읽고 덮을 때의 그 비현실적인 허무는 몇 번이나 책을 다시 펴게끔 만드는 마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롤랑 바르트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두고 ‘건전지의 발명’과 같다고 비유하며, 이상적인 글쓰기 전범이라 했다는 말에 ‘아아, 정말 근사한 표현이다.’라고 감동했었고 말이죠. 주위의 많은 사람에게 『이방인』을 추천했었지만 죄다 읽지 않으려 해서 슬퍼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가끔 어떤 특정적인 소설이나 영화 또는 음악을 ‘어렵다’는 표현을 빌려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분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독자나 관객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보이고 들리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을 찾기 위해 너무 깊숙이 파고드는 건 자칫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하려는 관점보단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자세로 받아들이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취향의 차이에서 오는 갭은 존재하겠지만 너무 군중심리에 이끌려 두리번거리며 방황하기보단 자신의 심장이 이끄는 대로 말이죠. 사춘기 시절, 음악이나 책 그리고 영화에서 본질적인 무언가를 찾기 위해 고민했을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거나 복잡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Heart shaped-box가 아닌 Heart box로 느.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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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까뮈> 저/<김화영> 역8,100원(10% + 5%)
실존주의 문학의 정수, 이방인. 살인동기를 '태양이 뜨거워서'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은 그의 삶과 현실에서 소외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죽음이라는 한계상황 앞에서 인간의 노력이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한편으로는 그 죽음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는 인간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