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정혜윤 PD의 그들은?
은희경의 독서 이력
읽었던 것들의 지혜가 끝나는 순간의 새로운 깨달음
어쨌든 확실한 건, 독서는 우리를 자극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장 그르니에가 말했듯이 “저자의 지혜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깨달음이 시작되는 것이 독서”인 셈이다. 은희경은 그걸 보여준다. 읽었던 것들의 지혜가 끝나는 순간의 새로운 깨달음이 그녀식의 독서다.
은희경은 자신의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 수록된 「고독의 발견」에 doors의 노래 ‘people are strange’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한 편을 끼워 넣었다. 그 문장들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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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조숙한 독서란 게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중학교 때의 은희경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중학교 때 그녀의 아버지 건축업은 세게 부도를 맞게 된다. 아버지 입장에선 너무나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은희경 자신은 사실은 잘 느낌이 오지 않았다 한다. 이미 소설 속에서 사업가의 부도와 가족들의 방황에 대해서 꾸준히 읽어왔고 또 그런 스토리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이미 머릿속으로 자기만의 숱한 타락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적어도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라며 호들갑을 떨지는 않게 된 것이다. 오히려 그때도 어느 정도는 이야기를 즐겼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선 뭔가 방황해 줘야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때 그렇게까지 충격적이지 않았는데 불행한 척 했어요. 너무 많은 드라마가 머릿속에 있어서 그 드라마의 패턴대로 소위 노는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학교도 좀 빠졌는데 순전히 진심으로 그랬다기보다는 책에 나온 일이 나에게도 벌어지니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해 본 거죠.”
리허설 없는 이 세상에선 어느 경우엔 머릿속에서 연습된 고통도 도움이 된다. 어느 경우엔 많은 이야기를 읽었다는 것이 자기를 엉뚱하게 객관화시키기도 한다. 파푸아뉴기니의 어린아이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의 핍을 생각하며 자신을 달랠 수도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 은희경은 찰스 디킨스를 무척 좋아했다.
눈에 띄는 족족 선생님에게도 동네 아저씨들에게도 이야기를 해달라 졸라대고 학교에 내던 장래 희망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는 아이”였던 은희경은 일찍부터 국문과로 진로를 정해 문예반과 백일장과 레몬북스(하이틴 로맨스들이다. 그땐 『쌍둥이 여대생』이나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인기 있었다 한다.)의 시대를 거쳐 77년에 대학생이 되었다. 그때의 독서는 시대가 규정하는 바가 강했으므로 논장서적 같은 곳에 드나들면서 당시 금서였던 루카치의 책들이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등을 읽는 것이었다. 밑줄 그어가며 학습하며 읽었던 이 책들은 ‘이사 가도 버릴 수 없는 책의 목록’에 들어 있다. 그 시절의 책들은, 그녀가 최초로 이야기가 아니라 논리와 구조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또한 소설가로서의 데뷔가 늦어지게 된 이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즉, 자신의 가슴속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사소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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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 세월호 유족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 1, 재난참사 가족들과 함께 만든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 등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자살률의 비밀]로 한국피디대상을 받았고, 다큐멘터리 [불안],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 [남겨진 이들의 선물], [조선인 전범 75년 동안의 고독] 등의 작품들이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쌍용차 노동자의 삶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 『인생의 일요일들』, 『뜻밖의 좋은 일』, 『아무튼, 메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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