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미친 나무선비가 네 번째 나무책을 펴내다
나무에 미친 나무선비 강판권 교수가 네 번째 나무책을 펴냈다. 이 책은 기존의 책과는 사뭇 다르게 나무를 통해 한자와 역사를 들여다보는 독특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한자 이름은 나무의 개성적인 특징을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그 이름은 역사의 구체적인 장면을 연상시킨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 속에서의 나무의 쓰임새와 옛 사람들이 나무와 관련해 만들어낸 문화의 이런저런 모습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목을 나무열전이라 한 것은 여러 사람의 전기(傳記)를 차례로 벌여서 기록한 책이 열전이듯이, 나무 마흔 그루를 그런 식으로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1, 2, 3부에 걸쳐 글 흘러가는 모양이 꼭 나무의 일생 같아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무에 대한 교양서가 대부분 자연과학적 식생을 다루거나 개인적인 에세이인 데 비해, 이 책은 역사와 문자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창으로서의 나무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전이 개인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려고 하듯….
풍부한 고전 사례 인용
이 책에 나오는 나무의 한자 이름은 대부분 고전(古典)에서 끌어온 것이다. 이 책의 묘미는 바로 고전 속의 흥미로운 일화를 만나는 것에 있다. 그중 재미있는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한다. -중국 파공(巴?)에 사는 사람이 뜰의 귤열매를 쪼개니 그 안에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이후 바둑의 즐거움을 일컬어 귤중지락(橘中之樂)이라 했다. (귤) -신라 말 도선(道詵)은 『도선비기(道詵秘記)』에서 “5백년 뒤 오얏, 즉 이(李)씨 성을 가진 왕조가 들어설 것”이라 예언했다. 그래서 고려 중엽 이후에는 한양에 자두나무(李)를 심었다가 베곤 했다. 예언이 적중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복사나무) -뽕나무 가지는 창문을 만드는 원료였다.
가난한 사람은 집 근처에 심은 뽕나무 가지로 창문을 만들었다. 그래서 뽕나무로 만든 창문, 즉 상호(桑戶)는 가난한 집을 뜻한다. 가난한 집의 뽕나무 창문은 양쪽에서 여는 게 아니라 한쪽에서만 열 수 있었다. 갑골문에 나오는 호는 한쪽에서만 열 수 있는 글자다. (뽕나무) -날다람쥐는 날고, 나무를 타고, 헤엄치고, 달리고, 흙을 파는 다섯 가지 재주를 갖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전문성이 없기에 궁지에 빠지는 일이 많다. 이런 경우를 오서기궁(梧鼠技窮)이라 한다. 날다람쥐처럼 여러 일을 수박 겉핥기로 하지 말고 한 가지라도 잘 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오동나무)
추천사 - “이 책을 끼고 숲을 거닐고 싶다”
모든 것을 나무로 생각한다는 저자는 나무를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곧 나무가 한 곳에 머무는 것은 땅에 뿌리를 박고 있어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무는 한곳에 바로 서 있는(直) 식(植)물이지만 치열한 삶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행복하게 삽니다. 저도 저자의 이 말씀에 동의하며 한 말씀 보태렵니다. 우리 인간은 동물이다 보니 모든 걸 동물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그래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우리가 꺾으면 힘없이 꺾여나가는 나무를 우습게봅니다. 하지만 사실은 나무들이 오히려 우리를 가소롭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나무가 덮고 있는 곳입니다. 인간을 포함하여 고래, 코끼리 등 온갖 동물들을 한데 모아 거대한 저울에 올려놓아도 이 세상 나무의 무게 전체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입니다. 나무가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그들의 경쟁상대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이 지구에 가장 막둥이로 태어났으면서도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우리의 경거망동을 그저 표표히 지켜볼 따름입니다. 우리가 멸종하고 난 다음에도 자신들은 남아 있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나무에 대해 보다 많이 알게 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자의 심오함과 톡톡 튀는 재치를 발견하는 재미 또한 큽니다. 저는 개미를 오랫동안 연구했습니다. 개미의 한자 표기인 의(蟻)는 ‘옳을 의(義)’에 ‘벌레 충(?)’부를 붙인 글자입니다. 저는 미국에 유학하여 개미들의 이타주의와 사회성에 대해 연구하고 돌아왔지만 중국 사람들은 수천 년 전에 이미 개미가 의로운 곤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시가 많은 대추나무를 의미하는 한자 조(棗)는 가시 극(棘)자를 아래위로 붙인 글자랍니다. 풀 초(草)에 '자라다'라는 뜻의 여(余)를 합한 형성문자인 차(茶)는 글자의 구성만 보더라도 차는 잎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산에서 바라보면 해가 나무 밑으로 사라져 어둠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어둠을 의미하는 묘(杳)자는 나무 밑으로 지는 해를 나타내고 거꾸로 나무에서 해가 뜨면 단(旦)이랍니다. 눈으로는 글자를 읽고 있는데 머리 속에는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를 숲 해설가로 모시고 광릉이나 오대산을 찾고 싶어졌습니다. 학명으로 만나는 나무와는 느낌이 사뭇 다를 것 같습니다. 요사이 우리 사회에는 한자 공부가 한창인데 한자를 그냥 무작정 외우는 게 아니라 배우는 줄 모르는 가운데 저절로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한자만 배우는 게 아니라 논어와 장자 등 중국 고전도 섭렵하며 역사, 문화는 물론 식물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의 지식도 습득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모두 살찌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숲도 저절로 푸르러질 테니 그 또한 반가운 일이지요.
저자 소개 - ‘나무 병’에 걸린 나무선비 강판권
1961년 경남 창녕의 명산 화왕산 북쪽 기슭에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농사일을 거들며 살았다. 1981년 계명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여 역사학도의 길로 들어선 뒤 대학원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99년 여름, 농사일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전공분야를 접목시킨 중국의 농업경제사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은 자신만의 학문세계를 만들기 위해 나무 공부에 미쳐 있으며, 나무로 역사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건축, 조경, 미술, 사진 분야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무 관련 책으로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지성사, 2002),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민음사, 2003), 『차 한잔에 담은 중국의 역사』(지호, 2006) 등이 있으며, 전공서적으로 『청대 강남의 농업경제』(혜안)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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