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걸즈’ 막이 열리기 전부터 입소문이 났던 연극이다. 스토리가 참신하다는 얘기부터, 추상미 남자 친구인 뮤지컬 배우 이석준이 나온다는 정보까지.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까르르까르르 웃어댔다. 중반에는 어째 좀 슬퍼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
‘썸걸즈’ 막이 열리기 전부터 입소문이 났던 연극이다. 스토리가 참신하다는 얘기부터, 추상미 남자 친구인 뮤지컬 배우 이석준이 나온다는 정보까지. 그러나 웬만한 연극은 다 보고 다니는 후배 말로는 더블 캐스팅된 최덕문의 연기가 일품이라며 꼭 봐야 한단다. 여기 한 남자와, 그를 사랑한 네 여자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그 남자, 강진우
결혼을 앞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강진우. 이제 그는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호텔에서 콧노래를 부르던 그 남자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상대는 다름 아닌 그의 여자들. 과거 그가 사랑했고, 그가 떠난 여자들 가운데 ‘엄선한’ 여인들이다. 왜?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기도 하고, 결혼 전에 한 번 만나서 잘못된 부분을 정리하고 싶을 뿐이다.
대상은 대여섯 명. 그 가운데 연락이 닿은 네 명의 여자가 그 방을 찾는다. 설레는 또는 즐거운 또는 아직 화가 덜 풀린 또는 담담한 표정의 그녀들이 하나 둘 그 방에 들어서면서 무대는 그 남자와 그 여자들의 마음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객석은 그들을 바라보다 어느덧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 남자의 첫 번째 걸(girl)
고등학교 때 만난 그의 첫사랑. 이런… 괜히 만났나? 살림만 하는 그녀는 그야말로 촌스러운 아줌마다. 호들갑스럽고, 유명해진 그 남자를 만나는 것에 한껏 부풀어 있고, 혹시나 ‘도망가자고 하면 어쩌나’ 짜디짠 김칫국까지 마셨다. 오래전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마냥 웃어대던 그녀가 갑자기 휴지통을 부여잡고 울어댄다. “그때 크리스마스 때 나 말고 누구랑 같이 있었니? 왜 나를 떠났어?” 10여 년이 지났건만, 이 여자 집요하게 물어댄다.
“그냥 네가 어떻게 늙을지 그려지더라. 너 이렇게 살고 있을 줄 알았어. 덜컥 겁이 나더라고.” 그 남자의 재수 없는 말에도 그저 웃기만 하는 이 착해 빠진 여자, 저도 모르게 뺨을 한 대 올려붙인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렇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불행히도 그녀는 여전히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엔 그 남자에게 가장 예쁜 모습으로 남았길 바라고 있다.
그 남자의 첫 번째 걸 - 그때 왜 떠난 거야!
그 남자의 두 번째 걸(girl)
순서상으로는 그 남자의 세 번째 여자지만 두 번째로 방을 찾은 그녀는 한마디로 ‘그냥 즐겼던’ 여자다.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한 그들. 까닥 방심하면 그대로 19세 이상 버전으로 넘어갈 태세다. 그래, 그 시절에도 속궁합은 환상이었던 것이다. “결혼할 여자, 나보다 예뻐?” 항상 그 남자의 마음을 갖지 못했던 그녀는 이번에도 돌려서 그의 사랑을 확인한다.
“오빠 너 만날 때, 마음에 다른 사람 있었어.” “난 오빠랑 헤어질 줄 알았어. 잘 때 보면 오빠 항상 다른 사람한테 전화 걸더라. 한마디도 못하고 그냥 끊는 전화.” 그의 마음 따위 상관없다는 그녀, 어느덧 눈시울을 붉힌다. “그래도 들키지는 마. 그거 되게 마음 아프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을 지키려고 몸으로 하는 사랑에만 전념했는지 모른다. 이미 마음이 움직였다는 걸 외면한 채.
그 남자의 두 번째 걸 - 우리 헤어질 거 알았어!
그 남자의 세 번째 걸(girl)
한껏 턱을 쳐든 그녀는 왕년에 잘나가던 영화배우. 당시 한낱 연출부 쫄따구(졸개)에 불과했던 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여차하면 영화감독인 남편까지 버리고 함께 도망칠 생각이었다. “너는 그때 단물 다 빠지니까 내뺐어.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지? 결혼할 여자 몇 살이니? 어리니까 좋아?” 악에 받친 그녀는 훌러덩 옷까지 벗어 던진다. “너도 똑같이 당해봐야 해. 옷 벗어. 안 그러면 네 약혼녀한테 다 말할 거야.”
그리고 침대맡에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머릿속에 그려진 장면을 말해달라고 한다. 궁지에 몰려 물에 빠진 생쥐 같던 그 남자는 어느덧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 모습에… 그녀는 입을 틀어막고 운다. “남편에겐 이런 모습이 없어.” 한없이 도도한 이 여자, 별 볼 일 없는 그 남자의 꿈까지 사랑했던 것이다. 돌로 내리쳐도 원이 안 풀리지만, 꿈꾸는 그 남자가 몹시도 그리웠던 것이다.
그 남자의 세 번째 걸 - 야, 벗어!
그 남자의 네 번째 걸(girl)
순서상으로는 그 남자의 두 번째 여자지만 마지막으로 방을 찾은 그녀는 그 남자가 정말 사랑했던 여자(그렇게 말하는데 이제 믿을 수도 없다). “넌 나한테 정말 특별해. 정말 사랑했어.” “그런데 왜 떠났니? 학교도 옮기고 집도 이사 가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는 졸업하면 의사가 되는 거였지만, 난 미래가 불확실했잖아. 그래서 답답했어.” “그렇게 연락 끊는 거, 사람 죽이는 일이야. 그리고 잊을 만하니까 이렇게 다시 나타나는 거, 겨우 살아난 사람 또 죽이는 일이야!”
정말 특별한지 앞선 여인들과는 달리 몸을 내던지며 그녀를 잡는 그 남자, 결국 그녀에게 물벼락까지 맞는다. 그녀가 건넨 축의금은 상품권. “그걸로 구두나 사 신어.” 그렇게 제발 내 마음에서 떠나달라는 것 아닐까?
그 남자의 네 번째 걸 - 잊을 만하니까 다시 나타나!
나쁜 남자, 그리고 몹쓸 사랑
끝내 그 남자의 파렴치한 모습까지 밝혀지면서 객석은 술렁인다. ‘나쁜 놈’을 기본으로 갖은 욕이 튀어나온다. 잘 들어보면 말도 안 되는, 그렇지만 딱 자를 수도 없이 어느덧 귀를 잡아끄는 언변이며, 한껏 자세를 잡았다 어느 순간 굴욕적일 만큼 작아지는 행동까지. 그러고 보니 그 남자, 최덕문. 대대로 대세라는 ‘나쁜 남자’ 연기를 제대로 해 보였다(깔끔한 외모의 이석준이 이 배역을 어떻게 연기할지도 자못 궁금하다). 마지막에 그는 운다. 왜 울까?
그 남자의 그녀들은 왜 그 방에 들어선 것일까? 어쩌면 자신이 했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함께 사랑을 나눌 때는 나눠 먹은 팥빙수 한 그릇도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사랑의 증거다. 그러나 그 사랑의 장에서 퇴장당하면 설령 목숨을 걸었던 사랑이라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긴 한 걸까?’ 아름다운 추억, 어쩔 수 없는 이별… 다 사랑의 상처에서 살아남고자 덮어씌운 자기 합리화이지 않은가? 그녀들은 ‘그 시절엔 그가 나를 사랑했다’는 확신을 얻고 싶은 것이다. 헤어지고 나서 줄곧 따라다녔던 자기 부정에서, 그 몹쓸 사랑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고자. 아니, 사실은 ‘그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여전히 빠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련하게도….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나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천선란의 이 소설집처럼. SF의 경계를 뛰어넘어 천선란의 다정한 세계관이 무한하게 확장되었음을 확인하게 하는 신작.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다 보면, 끝내 누군가의 구원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넘실거린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유홍준의 산문집. 대한민국 대표 작가로서의 글쓰기 비법과 함께, 복잡한 세상사 속 재치와 지성을 잃지 않고 살아간 그가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전한다. 이 시대와 호흡한 지식인이 말하는, 예술과 시대와 인간에 대한 글들을 빼곡히 담은 아름다운 ‘잡문’에 빠져들 시간이다.
우리 시대 젊은 그림책 거장 두 사람이 함께 만든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모두에게 선물을 주느라 정작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산타 할아버지를 위해 북극 친구들은 특별한 크리스마스 계획을 세운다. 산타 할아버지가 맞이할 마법 같은 첫 크리스마스를 함께 만나보자.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의 신작. 거짓 정보와 잘못된 믿음이 지닌 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왜 가짜 뉴스에 빠져드는지 분석한다. 또한,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되는 사회의 양극화를 극복하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넘쳐나는 정보 속 우리가 믿는 것들은 과연 진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