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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시리즈는 내가 사랑한 전 세계의 도시들에 바치는 송가" - 작가 김영하

도시에 어울리는 카메라… ‘원 카메라 포 원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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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거리 깊숙한 곳, 김영하를 기다린다. 쿨한 소설을 쓸 줄 아는, 그러면서도 묵직한 소설도 쓸 줄 아는 젊은 소설가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홍대 거리 깊숙한 곳, 김영하를 기다린다. 쿨한 소설을 쓸 줄 아는, 그러면서도 묵직한 소설도 쓸 줄 아는 젊은 소설가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어색하기도 하다. 지금 만나는 그는 소설가로서의 김영하가 아니다. 여행자였다. 책 제목처럼 지금 만나는 남자는 여행자로서 만나는 것이다.


“소설을 기다렸는데 여행에 관한 책을 쓰셔서 많이 놀랐습니다. 어떻게 된 거죠? 더군다나 컨셉이 ‘원 카메라 포 원 시티’입니다.”

“몇 년 전부터 카메라를 사서 모았어요. 그것들을 활용할 방법을 찾다가 책을 만들게 됐습니다.”

약간은 수줍은 듯 웃는 김영하, 그는 말을 하면서 콘탁스 G1을 만지작거린다.

“카메라마다 특징이 있다고 생각해요. 못생기고 오래된 카메라도 그만의 특징이 있어요. 그런데 도시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카메라로 도시를 찍어보기로 했어요. 도시마다 어울리는 카메라를 갖고 찾아가는, 말 그대로 ‘원 카메라 포 원 시티’인 셈이죠.”

도시에 어울리는 카메라… 멋진 생각이다. 그런데 왜 하이델베르크가 처음이었을까? 그리고 그곳을 콘탁스 G1으로 찍은 이유는 뭐지?

“콘탁스라는 브랜드와 하이델베르크라는 도시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차대전이 끝나고 전후처리가 진행될 무렵, 콘탁스를 생산하던 자이츠 이콘 사는 소련이 관할하던 동독 지역에 본사가 있었습니다. 소련은 전쟁 배상금 삼아 기계와 기술자들을 우크라이나의 키예프로 옮겨가는 데 그들을 실어가는 기차가 몇 킬로미터씩 늘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콘탁스는 라이카 같은 경쟁사에 밀리고 회사도 동?서독으로 나뉘면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죠. 그런 애수 어린 역사도 있지만, 애초의 콘탁스는 독일인이 만든 브랜드고 그런 면에서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를 찍는 데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과연 김영하’라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의 역사와 도시의 역사를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그럼으로써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바라보게 해주는 시도. 김영하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었을까?

그보다 놀라운 사실은 『여행자』의 구성이다. 『여행자』에는 에세이도 있고, 그의 사진도 있지만, 미발표 단편소설도 있다. 김영하만이 낼 수 있는 그런 책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소설집 기다리던 사람들이 많이 놀랄 것 같은데요. 『여행자』에 실린 단편소설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 도시를 느낄 수 있는, 도시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소설을 담아보려고 했어요. 독자를 위한 것이죠. 『여행자』 시리즈에 매번 새로운 소설 한 편씩을 실을 생각입니다.”

말을 아끼는 기색이 역력하다. 소설가가 아닌 여행자 김영하로 보이기 위함일까? 어쨌거나 『여행자』는 여느 여행 책과 많이 달라 보인다. 솔직히 여행 책이라는 단어보다 작가 에세이라는 말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정말 많이 다르다, 어디에 들러 어디에 가면 무엇을 볼 수 있다고 알려주는 그런 책과는.

『여행자』는 여행 책 같지 않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뭐랄까요. 읽고 나면 묵직한 것을 가슴 한가득 받은 느낌입니다. 여행 책이라고 하면 여행지에 대해 로망을 만들어주기에 바쁜데 『여행자』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김영하만이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고민하다 보니 독자를 대신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독자가 원하는 것을 대신 보고, 느낀 뒤에 그것을 김영하가 표현해주는 거잖아요. 여행 정보 같은 건 뺐어요. 이미 인터넷에 있잖아요. 저는 그 도시의 깊은 것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관광객으로 갔을 때는 볼 수 없는 그런 것, 낮과 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그런 것까지 말이에요.”


김영하의 말을 듣다가 문득 상상해본다. 이 책을 들고 하이델베르크에 가면 어떨까? 좀 더 각별해지지 않을까? 맥주를 옆에 끼고서 홀로 그 거리에 앉아 있다면 제대로 된 여행을 하고 있다는 그런 기분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하이델베르크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까지 듣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음반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도시를 느끼는 방법은 여러 가지잖아요. 음악을 듣거나 사진을 찍고 책을 보거나 하는 그런 것처럼요. 음반을 같이 기획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예요. 시리즈를 생각할 때만 해도 음반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독자 분들이 그 도시를 느끼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책의 분위기에 맞춰서 음악을 골랐습니다. 광장 카페에 앉아서 글을 읽으며 들으면 좋은 그런 음악을요.”

책을 보며 음악을 듣는다는 건 어떤 것일까? 기.분.이.좋.을.것.같.다!

“책을 펴자마자 ‘죽음을 생각하기에 좋은 곳은 바로 이런 곳입니다’라는 문장이 보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소설의 표현이기는 한데, 어떤 의미인가요?”

“하이델베르크를 낮에 보면 정말 활발해요. 그런데 밤에는 느낌이 아주 달라지더라고요. 그런 곳에 성과 성당, 그리고 교회가 많은데… 보고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뭔가는 계속 흘러가고, 누군가는 살고 또 죽는다는 것. 그래서 그런 표현을 썼어요. 그걸 또 카메라에도 담아보려고 했고요.”

『여행자』에 실린 에세이 중에 ‘G28밀리미터 렌즈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군중 속의 고독일 것이다’이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상당히 인상적인 문장입니다.”

“45밀리미터 렌즈와 달리 28밀리미터 렌즈로 찍으면 넓게 나와요. 상당히 정직하죠. 그런데 그 모습이 뭐랄까… 쓸쓸해요. 시장바닥을 찍어도 쓸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일명 ‘똑딱이’로 통하는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된 시대라 그런가? ‘군중 속의 고독’을 떠올린 그가 특별해 보인다. 사진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지녔다는 걸 느끼기도…. “흔히 여행이라고 하면 어디 놀러 가는 그런 걸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여행자』를 보면 선생님에게 여행이라는 의미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런 여행도 있지만, 저는 한 도시나 마을에 오랫동안 머무는 것도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본 곳을 또 가보는 것도 그렇죠. 이곳 서울이 아닌 도시, 제2의 고향처럼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곳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언제든지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드는 것, 그것도 재밌지 않을까요?”

젊은 시절, 흔히들 유럽을 갈 때 유레일패스 같은 걸 준비해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려고 한다. 10박 11일에 8개국을 돌아다닌다는 뭐 그런 코스다. 그런데 김영하의 말을 듣다 보니 그런 생각이 좀 부끄러워진다.

상상해 본다. 밤낮으로 며칠 동안 한곳에서 지낸다는 것을. 여행의 로망, 그리고 낭만. 어쩌면 김영하의 말이 맞을 것 같다. 제2의 고향 같은 곳, 그런 곳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여행, 그것이야말로 진짜 여행이 아닐는지.


이야기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 문득 궁금해졌다.

“혹시 YES24에 등록된 독자리뷰 같은 거 보세요?”

“네, 물론이죠.”

“그럼 『여행자』의 독자리뷰도 보시겠네요?”

“그럼요.”

김영하가 웃는다. 어떤 상상을 하며 웃는 것일까?

“만약에 말입니다. 『여행자』가 시리즈인데, 독자들이 어디를 대신해서 가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나요?”

“당연하죠. 아까도 말했지만 『여행자』는 김영하가 독자들을 대신해서 도시를 방문하는 것입니다. 계획된 곳이 있지만, 독자들이 원한다면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렇구나, 정말 김영하답다!

에세이에서 김영하는 “『여행자』 시리즈는 내가 사랑한 전 세계의 도시들에 바치는 송가라고 할 수 있다”라고 썼다. 그 송가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기쁘고 또한 자랑스럽다. 이런 송가라면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도 남을 테니까.

『여행자』의 마지막 문장, “내가 도시를 사랑하는 만큼 도시도 나를 사랑해주기를, 너그럽게 이 철없는 여행자를 품어주기를 기원한다”이다. 그 기원은 충분한 보답을 얻을 것 같다. 그 도시는 물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여행자 김영하의 사진 그리고 그의 글

이 높은 곳에서 나는 오래된 도시를 내려다봅니다. 양갱처럼 검은 네카어 강에는 오렌지빛 석양이 깔리고 있습니다. 삶을 생각하기에 좋은 도시는 바로 이런 곳입니다. 나는 어쩐지 다음 생에도 이 도시에 오게 될 것만 같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안녕.

안경 없이도 세상은 선명하고 깨끗하게 잘 보입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으하하하하하. 큐브 속의 남녀, 큐브 속의 가족, 큐브 속의 친구들은 오직 웃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밝게 웃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그 큐브들은 불길합니다.

어쩌면 인간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새의 울음소리를 완벽하게 흉내내는 폴리네시아의 원주민처럼, 재칼의 가면을 쓰고 행진하는 아마존의 어느 샤먼처럼, 인간은 어떤 순간 완벽하게 다른 존재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가 되고 싶고 나무의 생을 마친 후에는 계단이 되고 싶습니다.

견고한 성(成)이, 이제는 무용해져버린,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도시와 제후를 지킬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이제는 겨우 제 아름다움으로 오직 자기 자신만을 보호할 수 있게 된 고성이 오래된 도시와 더 오래된 강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빛이 무언가를 비추고, 그 무언가가 받은 빛을 되쏘고 그리하여 그 빛이 다시 스스로에게 돌아가는 것. 그런 빛의 순환을 기록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카메라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이유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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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김영하> 저 8,8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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