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드디어 아카데미 감독상 받은 마틴 스콜세지

문제는 타이밍에 맞추어 상을 주는 건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디파티드>는 분명 스콜세지 최고 걸작은 아닙니다.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보면 그냥 중간급 정도죠. 그러나 아카데미가 늘 적절한 시기에 배우들에게 상을 준 건 아닙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드디어 마틴 스콜세지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결과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람들이 많았을 거예요. 물론 <디파티드>는 스콜세지의 마지막 영화도 아니고 그가 더 나은 영화를 만들어 아카데미를 찾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지만, 그래도 이 괴상한 기록은 빨리 깨는 게 좋았습니다.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는 사람이 미국을 대표하는 영화상을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문제는 타이밍에 맞추어 상을 주는 건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디파티드>는 분명 스콜세지 최고 걸작은 아닙니다.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보면 그냥 중간급 정도죠. 그러나 아카데미가 늘 적절한 시기에 배우들에게 상을 준 건 아닙니다. 폴 뉴먼이나 알 파치노와 같은 배우들도 최고 걸작으로 상을 수상한 적은 없죠. 생각해 보세요. <컬러 오브 머니>나 <여인의 향기>가 과연 그들의 최고 걸작인가요?

다시 스콜세지로 화제를 돌린다면, 과연 언제 그가 상을 받았어야 정상으로 보였을까요? 이게 은근히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민 스트리트>? 당시 그는 무명이었고 이 작품도 아카데미상용은 아니었지요.

<택시 드라이버>? 아카데미에서 온전한 대접을 받기엔 지나치게 자극적인 영화였지요. 사람들은 이 악몽같은 영화를 지지하는 대신 익숙한 아메리칸 드림의 이야기를 펼치는 <록키>를 옹호하는 쪽을 택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스콜세지는 그 때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어요.

차라리 몇 년 전에 만든 <앨리스는 더 이상 이곳에 살지 않는다> 쪽이 더 가능성 있는 영화였습니다. 안전하고 기분 좋은 아카데미용 영화였지요. 하지만 당시엔 더 센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차이나 타운>, <대부 2>, <컨버세이션>이 모두 당시 영화였지요. 물론 스콜세지는 당시에도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른 건 <성난 황소> 때부터였습니다. 80년대 최고의 미국 영화로 손꼽히는 작품이고, 다들 이 때 스콜세지가 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주장하죠. 그 때문에 정작 상을 받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보통 사람들>이 이와 비교되어 필요이상으로 저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여담이지만 툭하면 배우 출신의 감독에게 패한다는 스콜세지의 징크스가 시작된 해이기도 해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물론 <성난 황소>는 걸작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중 과연 얼마나 이 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하나요?’ 분명 굉장한 영화적 성취이고 놀라온 연기와 연출로 채워진 작품이지만, 이 작품에 진심으로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습니다. 레드포드의 <보통 사람들>에서는 그게 가능했지요.

그가 다음에 후보로 오른 영화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었습니다. 걸작입니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가장 훌륭한 예수영화죠. 하지만 이 영화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엔 주변 사정이 지나치게 시끄러웠습니다. 스콜세지 역시 후보가 되는 것으로 만족했을 거고요.

드디어 아카데미 감독상 받은 마틴 스콜세지
<좋은 친구들>은? 역시 스콜세지의 걸작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도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너무 차갑고 냉정하지요. 캐릭터들 역시 동정할 구석이 전혀 없고요.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은 감상적이고 괴상한 영화였지만 적어도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았습니다. 못 타는 건 당연했어요.

<순수의 시대>는? 그는 역시 감독상 후보엔 오르지 못했습니다. 공동 각본가로 각색상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요. 전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상을 받기엔 지나치게 문학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갱스 오브 뉴욕>은? 글쎄요. 다들 좋은 영화지만 스콜세지 수준의 걸작은 아니야... 정도로 생각했겠죠. 게다가 <시카고>나 <디 아워스>가 더 재미있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애비에이터>는? 역시 좋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사랑하기는 쉽지 않죠. 주제에서부터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아주 모범적인 스콜세지의 영화지만, 관객들에게 확 다가오기엔 조금 차갑습니다. 전 이 영화로 그가 아카데미상을 탔으면 훨씬 구색이 맞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훨씬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이고 역시 거장의 향취를 풍기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 쪽에 손을 들어주는 건 그만큼이나 당연했습니다.

슬슬 분위기가 잡히지 않습니까? 이 영화들이 수상의 기회를 놓친 데엔 다 그럴싸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걸작들을 만들었지만 관객들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며 설득시키는 작품은 의외로 적습니다. 대부분 예술적 자의식과 스타일로 관객들을 압도하는 편이죠. 마틴 스콜세지에게 상을 줘야 해!라는 압박감만 없었다면 <디파티드>가 상을 탈 기회도 훨씬 적었을 겁니다. 이번 해 후보작들 중 <디파티드>는 가장 아카데미와 어울리지 않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상을 탄 건 어느 순간 그의 존재감이 영화를 넘어섰기 때문이죠. 스콜세지는 몇 십 년 동안 미국 영화계의 중심과 아카데미의 변방에서 활동하는 동안, 그 고유의 가치와 무게를 쌓아올렸습니다. 아카데미는 언젠가 고개를 숙여야 했어요. <디파티드>가 상을 받은 건 그 영화가 바로 그 압력이 최대한인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게 의미가 있을까요? 결국 우리가 평가하는 건 수상한 상의 숫자가 아니라 영화의 가치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올림픽이 아닌 이상, 예술계열의 상이란 타협과 정치의 산물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디파티드>가 상을 받은 것에 미심쩍어하는 사람들도 지금의 분위기가 썩 좋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 된 거죠. 아카데미란 기본적으로 업계 사람들의 잔치니까 말입니다. 괜히 냉소적으로 굴면서 이런 분위기를 깰 필요는 없지요.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