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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다! - 『이기적 유전자』

〈C.S.I: 과학수사대〉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보편화한 인식 중 하나는 유전자에 대한 인식입니다. 유전자는 모든 사람의 모든 세포 안에 존재하며, 이는 60억 인류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고유한 값을 지닌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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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과학수사대〉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보편화한 인식 중 하나는 유전자에 대한 인식입니다. 유전자는 모든 사람의 모든 세포 안에 존재하며, 이는 60억 인류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고유한 값을 지닌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말입니다.

개개인을 구성하는 세포 단위의 가장 기본 요소 중 하나가 인간 개개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력적인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구석에 흩어진 물어뜯다 만 손톱, 나도 모르게 부서져 흩뿌려지는 피부의 각질 속에 모두 ‘나’를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들어있다는 것…. 많은 이는 그 유전자의 존재로부터 개성의 근원을 생각하고, 나아가 존재의 근원까지도 더듬어 갑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최종판 - 물론 현재까지입니다 - 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책이 『이기적 유전자』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 오만한 선언은 아닐 것입니다.

"생물은 유전자가 스스로를 유지시키기 위한 생존 기계로서 존재한다”

옥스퍼드 대학교 생물학 교수가 70년대에 첫 선을 보인 『이기적 유전자』는 크게 뭉뚱그리자면 위의 한 문장으로 무식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은 그냥 문장 하나만 뚝 떼어 놓고 보면 별 감흥이 없지만, 주장이 나오게 된 맥락을 더듬어 보면서부터 책은 자신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를 독자에게 보여 줍니다.

위 문장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생물의 존재’입니다. ‘왜 생물은 존재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일 수도, ‘생물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근원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는 존재론적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는 한 문장인데, 사실 이러한 질문에는 이른바 진화론과 창조론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논지가 각자의 틀 속에서 답을 구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중 진화론은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중심으로 하여 진화의 근거를 두텁게 하는 수많은 이론이 체계를 탄탄하게 갖춰 왔지만 일부에서 발생하는 오류에 대해서는 설명이 미진했습니다. 책에서 대표적인 예로 드는 것이 생물이 보이는 이타적 행위입니다.

아프리카 다큐멘터리에서 사자에게 쫓기는 역할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톰슨가젤은 무리 중 가장 점프력이 좋은 녀석이 포식자의 눈을 자기 쪽으로 집중시켜 다른 가젤들이 먹이가 될 확률을 낮추려고 매우 높이 껑충껑충 뛰는 행동을 보입니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놓고 볼 때, 이는 어처구니없는 행위입니다. 포식자에 의한 생명의 위기는 톰슨가젤 한 마리 한 마리가 놓인 생존 경쟁의 상황이며, 이 와중에 가장 빠른 개체가 포식자로부터 살아남아 발 빠른 가젤만이 개체군에 남게 된다는 것이 다윈의 이론인데, 이론과 실제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점프 행위는 1인자뿐 아니라 톰슨가젤 전체가 동시에 겅중겅중 뛰는 모습이 됩니다.

이렇게 자연선택설이 무너지는 상황을 저자 도킨스는 주체를 새로 정립하여 해결합니다. 진화란 종 전체도 아니고 생명체 하나하나의 객체도 아닌, 유전자라는 단위가 스스로 살아남고자 가져가는 과정이라는 관점입니다. 톰슨가젤의 가장 빠른 종이 사자의 시선을 돌리는 상황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가장 빠른 유전자를 가진 톰슨가젤 1마리가 사자의 추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확률은 일반적인 톰슨가젤보다 높습니다. 사자의 추격을 무리에서 가장 빠른 한 마리가 담당하고, 나머지 무리가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게 하는 이 행동 패턴은 전체 유전자군의 다양하고 안전한 보존성공 확률을 계산한 결과 중 가장 높은 확률의 행동 패턴이며, 이는 유전자 중심의 진화, 즉 자연선택설을 뒷받침합니다.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 생존과 경쟁의 이야기는 도킨스의 책을 통해 유전자 중심의 관점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원시 지구의 걸쭉한 유기물 바다 속에 떠다니던 수많은 유기체 중 형틀과 같은 형태로 자신과 대칭/동일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유기체의 출현이 있었고, 이 자기복제 유기체 중 급변하는 원시 바다의 변화 속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막(후일 세포막이 되는)이 있는 유기체가 살아남아 유기체 중 가장 많은 개체수를 유지합니다. 이 보호막은 점점 발전하여 세포막이 되고, 결국 하나의 세포가 되면서 내부의 유전자를 보호하고 존속할 수 있는 기계로 작용한다는 설입니다.

유전자는 스스로 계속 복제하고 존속하고자 자신을 보존하는 세포 자체를 끊임없이 복제합니다. 또한 이러한 단세포 체계는 더욱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유전자 생존 프로그램을 구현하고자 여러 개의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세포가 군체를 이루어 각자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는 다세포 생물의 형태로 발전합니다.

(단, 여기서 도킨스의 의인법 비유가 가져올 수 있는 치명적 오독의 우려가 있어 정리하자면, 유전자가 자체의 존속을 위해 의도적으로 어떤 행위를 구상하고 실행한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임을 저자도 밝힙니다. 이는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는 의인법적 비유일 뿐, 실제 그러한 선택은 유전자 자신이 아니라 환경 또는 여러 가지 내/외부 요인에 의한 확률적 소멸과 생존의 결과값일 뿐임을 명기하여 둡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그렇게 만들어진 생물은 충실하게 유전자의 존속을 위한 프로그램에 복무합니다. 진화와 자연선택에서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유전자의 존속이고, 생명체는 그 개체의 죽음이 유전자의 존속에 도움이 된다면 때로는 가차없는 죽음을 택하기도 합니다. (특정 유전병이 죽음을 유발하는 것 또한 이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고자 책은 다양한 이론과 관점을 사용합니다. 가장 자주 만나볼 수 있는 개념은 수학/경제학의 게임이론입니다. 유전자는 생존의 환경에 놓인 여러 변수에서 최적의 개체 생존 확률을 구하는데, 도킨스는 이를 게임이론을 통해 풀어냅니다.

‘죄수의 딜레마’로 익히 알려진 게임이론은 개체와 집단 속에서 개체의 최선 이익을 추구할 때, 집단의 최대 이익은 감소하며, 집단 전체의 보편적 최적 이익은 각 개체가 상호 간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고려하여 이른바 ‘차선의 선택’을 할 때 발생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유전자 또한 각 생명 개체의 존속이 문제가 아니라 유전자 전체가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에 게임이론의 적용을 통해 생명체가 갖는 행동 패턴에 접근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AI(Artificial Intelligence)의 개념에서도 많은 부분을 빌려온 흔적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구성 중 무생물의 학습에 관한 이론이 있습니다. 체스를 두는 컴퓨터 설계가 대표적인데,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입력한 컴퓨터를 체스 게임에 투입하면, 각각의 경우의 수가 갖는 실패와 성공의 결과값을 누적하면서 컴퓨터는 일련의 학습을 수행하여 체스의 왕과 겨룰 정도의 능력을 갖춥니다. 유전자 또한 기억력이 없는 무생물이지만, 유전자 하나하나를 경우의 수로 볼 때, 전체 유전자는 그 성공과 실패의 기억을 갖게 되며, 이는 유전자 전체가 존속을 위한 최적의 경우의 수로 다가가는 학습 과정이 됩니다.

컴퓨터공학의 프로그래밍 개념도 등장합니다. 각 생명체가 갖는 이른바 ‘본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련의 패턴은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일련의 집단 경험 결과값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경험은 각 유전자가 생명체 객체가 겪을 여러 위험 상황을 사전에 대비하고자 가능성의 범주 안에 있는 대응 패턴을 사전에 조건을 형성하여 대응하는 방식을 차용한다고 설명합니다.

생명의 탄생과 진화에 대해 기존의 관점과 다른 미시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진화론의 새로운 정초를 이룬 『이기적 유전자』는 비단 생물학, 진화론뿐 아닌 다른 학문 영역에서도 그 인식의 폭을 넓히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합니다.

『이기적 유전자』는 우선 생물학과 진화론을 철학의 개념까지도 확장할 수 있는 폭넓은 근거를 제공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행동과 사고 패턴이 유전자의 존속에 기여하며, 글 처음에서 밝힌 바와 같이 생명체의 존재 이유가 ‘유전자 존속’이라는 목표하에 설정된다는 주장은 사실상 유물론적 존재론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사고를 발전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 헤맨 수천 년의 기록이 철학이었다면, 그 해법을 철학의 사유가 아닌 물질적 존재에서 찾는 도킨스의 방식은 철학적이며, 유물론에 기반을 두고 인간의 존재를 연구했다는 점에서 독자는 자신의 생을 한번 돌아볼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한 진화킷의 틀을 생물학 외의 영역에도 적용하여 밈학(Meme學)이라는 개념을 도출합니다. 유전자가 보여주는 존속의 패턴이 유전자 자체의 의지가 아닌 자연의 법칙이라면, 생명체뿐 아니라 인간이 지닌 문화 등에서도 동일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책 후반부의 이야기는 인간의 문화가 가져왔던 진화의 역사를 밈Meme이라는 포괄적 유전자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시도를 보여 줍니다. 원시 바다의 유기물 수프에서 유전자가 시작되었듯, 인간의 뇌라는 새로운 복합 수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언어, 문화, 행동패턴 등은 그 나름의 존속 법칙에 의해 자연선택적 진화 과정을 거치고, 그 결과가 인간이 현재 누리는 문화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종교와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으로도 적용할 수 있어 보입니다. 조물주는 내 안에 존재하고,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며, 그 모두를 제어한다는 일신교의 포괄적 개념과 유전자 중심으로 해석되는 생물의 세계에 대한 개념은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요? 일신교뿐 아니라 각종의 유전자로 생각을 옮긴다면 다신교나 정령신앙 등도 또한 접근할 수 있습니다.

70년대에 처음 출간된 『이기적 유전자』는 또한 학문 사조로서의 의미도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68혁명 이후 거시적 관점에서 미시적 관점으로 돌아서는 연구의 흐름이 인문, 사회, 예술 등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나는 과정 속에서 생물학 분야에서 또한 같은 흐름이 있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책이 스스로 말하는 밈Meme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2004년쯤에 발간된 『기생충 제국Parasite Rex』과 같은 교양서는 인간을 단일 개체가 아닌 숙주와 여러 기생생물의 혼합체로 보는 새로운 인식론적 틀을 제공한 바 있는데, 이러한 사유의 기초에는 『이기적 유전자』의 미시적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대 역사학에서 천착하는 과거의 생활사, 문화사 등도 큰 덩어리를 덩어리로 보는 것이 아닌 그 세부 단위로부터 파악하는 흐름과 궤를 같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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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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