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몇 번 이야기를 해야 합니까? 임수정은 39킬로그램이 아닙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찍을 땐 한동안 39킬로그램까지 내려갔겠죠. 하지만 전작인 <각설탕>을 홍보하고 삼성 노트북 광고를 찍던 여름에도 39킬로그램은 아니었어요. <행복>을 찍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홍보하는 지금도 당연히 아니고요.
그런데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홍보과정 중 임수정이 39킬로그램까지 내려갔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뭔가 일이 괴상해졌습니다. 갑자기 ‘임수정, 167센티미터, 39킬로그램’이 포털 인기 검색어가 되고 엉뚱하게도 어떤 사진에는 ‘39킬로그램의 이기적 몸매’와 비슷한 의미의 캡션이 달리기도 했죠. 놀랍게도 그중 상당수는 그 사람이 아직도 39킬로그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홍보 담당자들은 촬영 후반부였던 올해 여름에만 잠시 39킬로그램이었다고 자세히 말했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찍은 뒤로 그 사람이 그 몸무게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죠.
왜 이렇게 믿는 걸까요? 일차적으로 인터넷에서 정보는 왜곡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일단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통신망에서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아요. 그러면서 자신은 엄청나게 믿지요. 대충 읽고 머리에 담아두었던 것이 적당히 기억 속에서 썩고 나서 튀어나와도 자기 머릿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냥 믿어버리는 겁니다. 그게 다른 사람의 귀와 입을 통하면 사실과 거리가 먼 소문이 되는 거죠. 전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주 잘 압니다. 회원수가 웬만큼 되는 게시판 하나를 운영해도 알 수 있는 일이죠. 분명히 게시판에 반박할 자료가 있는데도, 상대방이 한 번도 한 적도 없는 말과 태도를 공격하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실제로 있는 것을 보고 기억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기억합니다. 오프라인 세계에서도 흔한 일이지만 인터넷에서는 사례를 찾기가 더 쉽죠. ‘임수정 39킬로그램’도 그 예인 겁니다.
그런데 왜 ‘임수정 39킬로그램’이 그처럼 믿고 싶고 담아두고 싶은 정보가 되었을까요? 이게 숫자의 마술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165센티미터에 45킬로그램이 모든 여자 연예인의 표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기준을 (대중이 생각하기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실험한다면 그건 굉장한 것이 되지요. 임수정은 40킬로그램대 이하로 몸무게를 줄인 엄청난 일을 했기 때문에 마땅히 기억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 겁니다.
|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임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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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정 키에 39킬로그램이라고 죽는 건 아닙니다. 전 그 비슷한 체격을 몇 년 동안 유지하면서도 멀쩡하게 잘만 돌아다녔던 애를 알고 있어요. 사람마다 다른 거죠. 하지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위해 이 사람이 했던 다이어트가 ‘이기적인 몸매’를 만들었다고 믿는 건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위험합니다. 임수정은 여전히 패셔너블하게 깡마른 편이지만 그래도 45킬로그램 전후는 되겠죠. 그게 원래 그 사람 체형이고요. 그 체격에 39킬로그램이 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는… 그거야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결코 미용 목적으로 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건
<성난 황소>의 제이크 라모타가 되려고 몇십 킬로그램을 늘린 로버트 드 니로나,
<머시니스트>의 불면증 환자를 연기하려고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살을 뺀 크리스찬 베일과 같은 수준의 감량입니다. 프로페셔널리즘을 칭찬해주어야 마땅하지만 미의 기준을 마련한 건 아니죠.
이런 걸 제가 말해주어야 합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그건 상식이에요. 하지만 그게 안 됩니다. 마땅히 의사소통과 계산의 도구로 머물러야 하는 단어와 숫자가 은근슬쩍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우리의 사고를 제한하고 엉뚱한 기준을 세우고 우리가 감각을 통해 직접 보고 느끼는 세계의 모습을 왜곡합니다. 순진하게도 우린 정말로 그런 걸 믿지요. ‘임수정 39킬로그램’은 그중 가장 극단적인 예일 뿐입니다. 네, 극단적일 뿐만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예죠. 다이어트와 십진법, 미터법의 세 개념이 의미 없는 한 점에서 만나자, 수많은 사람이 싸울 생각도 않고 굴복한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