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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과 반세기를 함께 나눈 헬렌 옥슨버리의 인생과 그림책 사랑 |
놀이 그림책의 대표작 『곰 사냥을 떠나자』
“곰 잡으러 간단다. 큰 곰 잡으러 간단다. 정말 날씨도 좋구나! 우리는 하나도 안 무서워.”
위 문구를 한 번 큰 소리로 읽어보세요. 리듬감과 운율감이 느껴지는 게, 글을 읽는 느낌보다는 마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지요? 독자가 누구냐에 따라 글을 전달하는 패턴도 달라져야 하는데, 이 책의 글 작가 마이클 로젠은 자신의 독자인 어린이에 대해 잘 알고 있음을 증명해 보이는군요. 사람은 태어나서 한동안은 귀로 책을 보지요. 글자를 익히기 전까지, 심지어 글자를 익힌 후 한동안은 귀로 듣고 그림을 보면서 책이 전달하는 내용을 알게 되는 거죠. 그래서 특히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 그중에서도 그림책은 어른이 읽어주었을 때 리듬감과 운율감이 풍부할수록 더욱 좋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곰 사냥을 떠나자』야 말로 그런 점에서 100점 만점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일까요? 이 책으로 두 작가는 1989년 Smarties Book Award를 받았습니다.
헬렌 옥슨버리는 아시다시피 영국이 자랑하는 3대 그림책 작가 존 버닝햄의 부인이자 그 자신도 어린이 그림책 작가입니다. 이제 책장을 넘기면서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이 책은 존 버닝햄의 대표작 중 하나이기도 한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의 분위기와 사뭇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두 그림의 서정적인 분위기나 단순한 선, 흑백과 컬러가 교차하며 펼쳐지는 그림 스토리 전개 방식의 유사성 때문이지요. 하지만, 두 분은 함께 살지만 작업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하게 독립성을 존중해준다고 했어요. 특히 작품이 완성되어 가제본으로 될 때까지는 서로 그림책을 보여주지 않는데요. 왜냐하면, 각자 개성이 강한 편이라 자신의 시각에서 상대의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제시하다 보면 싸움만 날 뿐, 결국 각자의 고집대로 밀어붙이게 되기 때문에 좋을 것이 하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다고 해요.
자 이제 책장을 함께 넘기면서 어떤 점 때문에 이 책이 어린이들에게 매우 매력적인지 살펴보도록 하지요. “어라! 풀밭이잖아. 넘실대는 기다란 풀잎. 그 위로 넘어갈 수 없네. 그 밑으로도 지나갈 수 없네. 아, 아니지! 풀밭을 헤치고 지나가면 되잖아!” 소리 내어 읽어보셨죠? 의성어 ‘어라!’ 그리고 ‘없네, 되잖아’ 식의 구어체 각운은 음악과 같은 리듬감을 그 자체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문구는 주인공들이 곰 사냥을 가는 도중 만나는 장애물(사실 장애물이랄 것도 없지만)인 풀밭이나 풀잎이 강으로 바뀌면서 계속 그 패턴을 유지하게 됩니다. 반복의 효과 아시죠?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고, 아이들도 서너 번 패턴이 유지될 때까지는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되어 학습 효과도 부수적으로 커지게 되는 점 말이에요.
곰 사냥을 떠난 주인공 가족이 난관을 만났을 때의 그림은 흑백입니다. 왜 있잖아요, 눈앞이 깜깜해지는 느낌… 그러니 흑백이죠. 그렇지만, 난관을 극복하고 장애물을 헤쳐나가는 장면에서는 컬러로 바뀌죠. 그리고 점점 활자가 커지면서 의성어와 의태어는 박스 속에 들어있어요. 따라해 보세요. “
덤벙 텀벙! 덤벙 텀벙! 덤벙 텀벙!” 글자의 크기만 봐도 점점 큰 목소리로 읽게 되지요? 주인공 가족은 풀밭을 지나, 강을 건너, 진흙탕을 밝고 곰 사냥을 하러 가요. 드디어 곰이 사는 숲에 이르렀을 때, “
바시락 부시럭! 바시락 부시럭! 바시락 부시럭!” 숲 속 덤불과 낙엽을 밟고 가지만, 눈보라가 휘몰아치죠. 자, 마침내 곰이 겨울잠을 자려고 들어간 동굴 속으로 어둠을 뚫고 들어갔어요.
이제부터는 헬렌 옥슨버리의 그림이 앞에서와는 달리 전개돼요. 앞의 그림이 양쪽에 걸친 흑백과 컬러가 반복되는 큰 그림이었다면, 지금부터는 한 면을 가로로 길쭉한 세 개의 커트로 보여줍니다. 행동이 더 구체적으로 나누어지게 되면 그만큼의 속도감과 긴장감이 느껴지게 마련이지요. 게다가 여기에 더해지는 마이클 로젠의 글 또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어요. 보실까요?
동굴 입구가 왼쪽에 보이고, 곰 사냥을 왔던 주인공 가족은 입구 가까이 뛰어가고 있어요. 주인공 소년은 바로 뒤까지 따라온 곰을 뒤돌아보죠. 이때 마이클 로젠은 이 장면을 이렇게 글로 묘사합니다. “어서! 동굴을 빠져나가자! 살금! 살금! 살금! 살금!”
뒤이은 장면에서는 눈보라 속을 헤치고 가족이 달리고 있어요. 물론 이들 뒤로 큰 곰이 쫓아오지요. 로젠은 이 장면을 “다시 눈보라를 헤치고 가자! 휭 휘잉! 휭 휘잉! 휭 휘잉!”으로 묘사해요. 이처럼 잘게 쪼개진 6개 컷 속에서는 가족에게 지금까지 장애물인 것들이 거꾸로 펼쳐져요. 그때 가족의 행동을 의성어와 의태어로 표현했던 것을 다시 한 번 끌어들여서 반복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집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뒤따라온 곰 때문에 허둥대는 가족의 모습을, 헬렌 옥슨버리는 세로로 길게 좌우 양면 네 개의 커트로 나눠 보여줍니다. 이제 마지막 모습은요? 평화 속 깨우침… 그들은 뭐라고 말했을까요?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그들이 한 말은요?
직접 만나 본 헬렌 옥슨버리 여사
올 7월, 헬렌 옥슨버리(Helen Oxenbury) 여사를 직접 만날 수 있던 기회를 제공해준 YES24측의 배려로 저는 그의 남편이자 위대한 그림책 작가인 존 버닝햄 씨와 헬렌 여사를 졸졸 따라다니며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헬렌 여사의 체구는 크지 않습니다. 160cm 정도의 중키에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딱 보기 좋은 체구에 영국식 악센트를 구사하는, 그러면서도 어딘지 아직도 빅토리안 풍의 느낌이 묻어나는 말씨에, 뒷머리를 틀어 올린 머리칼은 회갈색이었지요. 어쩐지 제게는 딱 영국 할머니 같았어요. 부드럽고 상냥하지만 자존심이 여전한 그런 여인 말이에요. 그는 영국의 이프스위치 출신으로 1938년생이니까 이제 우리 나이로 예순 중반이니 할머니 맞지요? 하긴 아이들이 장성해서 이제는 손자, 손녀를 위해 작품을 쓴다고 했으니 할머니가 확실하죠. 옥슨버리는 런던에 있는 센트럴 아트 스쿨에서 무대 디자인을 공부했고, 연극과 영화, 텔레비전 분야에서 일했어요. 그때 존 버닝햄 씨와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죠. 전시회와
『존 버닝햄(나의 그림책 이야기)』에 보면 그들이 60년대 미국의 히피들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유럽을 여행하는 사진이 있어요. 그리고 두 분은 결혼을 해요.
남편인 존 버닝햄 씨가 그림책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 헬렌 여사는 당시 여섯 살짜리 큰딸을 위해 직접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을 갖게 됩니다. 무대 디자인을 전공한 그에게는 남편이 하는 일이 그다지 남다르거나 독특해 보이지는 않았겠죠? 게다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고 있던 그에게 자신의 재능도 살리고 큰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드는 일은 정말 매력적으로 보였겠지요. 그러던 차에, 운 좋게도 Walker Books의 세바스찬 워커(Sebastian Walker)가 그에게 책을 만들고 싶지 않느냐며 의견을 물었고 헬렌은 보드북 시리즈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게 되었죠. 그리고는 당장 실행에 옮겼어요. 그게 바로
『Clap Hands』,
『Say Good Night』, 『Working』, 『Friends』, 『Playing』,
『I Touch』,
『I Can』,
『I See』,
『I Hear』,
『Tickle, Tickle』 등이 태어나게 된 동기에요. 글을 쓸 때면 힘겨웠지만, 그림만으로 이루어진 글자 없는 그림책(wordless picture book)을 제작할 때는 그만큼 신바람이 났어요. 정말 헬렌 여사에게는 딱 어울리는 일이었지요. 자신의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서 헬렌 여사의 그림책의 주인공들도 성장했어요.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가정을 일구는 헬렌 여사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도 시종일관 부드럽고 따듯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그녀는 1970년도에
『쾅글왕글의 모자』와 『여염집에 사는 용』, 『스낙 사냥』 등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오 년 전만 해도 저는 헬렌 옥슨버리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때 함께 일하던 직원 중에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분이 있었는데, 루이스 캐럴 원작의 동화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에 헬렌 옥슨버리가 삽화를 그린 책을 보여주면서 무척 자랑을 했지요. 헬렌 여사가 좋아하는 가장 이상적인 책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라나요? 사실 그때까지 제 머릿속에 앨리스의 원작 그림은 루이스 캐럴의 친구 존 태니얼 경과 리스베츠 츠베르거의 그림만 있었지요. 둘 다 정말 훌륭해서, 저는 제 동료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헬렌 옥슨버리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를 보고 그만 폭 빠져서 저 역시 몇 권 구입해서 제 조카들에게 나눠주었답니다. 정말 따듯한 앨리스죠. 존 태니얼의 앨리스는 흑백의 날카로운 펜화로서 후대에 정신분석학자들의 분석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고, 츠베르거의 그림은 그만의 원색 위주의 특징과 만화적인 인물 창조로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헬렌의 앨리스는 우아하고 아이답고 소녀답고 정말 루이스 캐럴이 사랑했던 앨리스의 실제 모델 린델(Lindell)의 사진 속 모습을 떠올리게 한답니다.
7월 초 성곡미술관에서 헬렌 옥슨버리 여사를 만났을 때, 어느 기자가 자제분들은 그림을 공부하느냐고 물었지요. 존과 헬렌 여사는 이구동성으로 대답했어요. 꼭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부모가 모두 그림을 그리니 자연스럽게 그림을 전공하는 아이가 있더라고요. 그분들은 아이들의 개성을 해치지 않게 친구같이 아이들을 대한다고 합니다. 두 분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억압적인 환경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두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말씀처럼 그렇게 자유롭되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아오신 것을 알게 되고 존경심을 표하게 됩니다.
존 버닝햄 씨와 헬렌 옥슨버리 여사에 대한 자료는 인터넷에도 많고, 〈TV, 책을 말하다〉에도 집중적으로 소개된 바 있으니, 저는 이 정도로 이야기할게요. 다만, 여전히 한 작가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남편 존을 아끼고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그를 보면서 사람 사이의 신뢰와 존중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는 말씀은 꼭 전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부모의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하지요. 부모의 사랑 방식은 그래서 따듯해야 하고 적절해야겠지요. 이제는 손녀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말하는 헬렌 여사를 보면서 저는 한 예술가이기 전에 한 인간인 헬렌 여사에게 더 존경을 표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늙고 싶어요.
순무를 통해 본 자연의 위대함
사실 순무는 조그맣습니다. 샐러드에서도 장식용으로 쓰일 정도니, 순무는 우리가 아는 무와는 그 크기와 용도에서 많이 다르지요. 광활한 러시아, 척박한 토지 위에 보릿고개가 오면 농부의 가족은 배가 고파요. 배고픈 농부는 순무 하나라도 잘 자라주길 바랍니다. 순무 하나라도 가족과 나누어 배고픔을 덜고 싶은 것이 그의 소박한 욕심이지요. 러시아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지주의 생활을 비판하는 작품을 쓰고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우뚝 선 알렉세이 톨스토이가 어린이를 위해 글을 썼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알지요. 그런 그의 작품으로는 『니키타의 소년 시대』, 『황금 열쇠』와 옛 이야기 모음집 『불새』가 있습니다.
자, 이제
『커다란 순무 이야기』로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일단 판형이 작아요. 대체로 보드북이 아이들의 체구를 고려해 작은 판형인 점과 최근의 그림책 판형이 커지는 현상을 생각해 볼 때, 판형의 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편집자의 설명을 들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취학 전 아이들이 혼자서도 읽을 수 있도록 한 배려라고 하는군요.
이야기 속에서, 척박하게 얼어붙은 흙에서 커다랗게 자란 순무를 뽑아내려고 농부가 애를 쓰다가 그의 아내가 합세하고, 그의 손녀가 거들고 나서고, 그래도 부족해서 강아지와 그의 원수지간인 고양이, 심지어 쥐구멍의 쥐까지 불려 나와 모두 영차 영차 힘을 씁니다. 그리고 마침내 식탁 크기만큼 커다란 순무가 뽑혀 나오자, 그들은 나눔의 기쁨을 함께합니다. 간단한 줄거리지만 자연의 위대함 속에 인간 개개인의 힘은 어찌 보면 무척이나 미미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거대한 것은 숭고하다고 했던가요? 우스갯소리고 적절한 비유가 아니지만, 브루크너의 음악이 지닌, 기대 이상으로 점점 커지는 효과, 인간의 기대를 넘어서는 거대함 속에는 숭고한 미학적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연은요? 마찬가지로 비록 작고 작은 순무라지만, 혼자 힘으로도, 가족의 힘으로도 뽑히지 않자, 자연의 천적까지 동원해 식탁에 올려졌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놀라운 자연의 경이를 발견하게 되는 셈이죠.
그런데 헬렌 옥슨버리의 이 그림책 속에서 왜 자꾸 존 버닝햄의 존재가 느껴지는 것일까요? 저만 그런 것인가요? 저는 이 점이 궁금해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펼쳐보았습니다. 역시나 이 책은 그의 초기작이었기 때문에 남편 존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한 스승 밑에서 배운 여러 명의 제자가 그린 그림을 보면, 스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 전까지는 스승의 붓 터치와 구도상의 영향을 느끼게 되듯이 말입니다. 이 그림책에서는 섬세한 붓의 방향과 펜으로 가는 선을 처리한 것이 꼭 존 버닝햄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혼잡 재료를 이용해 살려낸 질감이나 배경을 최소한으로 줄인 점은 존 버닝햄의
『검피 아저씨』 시리즈에서 주로 보여준 기법이 아니던가요?
그럼에도, 존의 그림과 구별되는 헬렌만의 독특함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내의 도움을 청하려고 창문에 기대선 농부와 새장 속의 새 부리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아내의 그림은 존의 그림에서는 볼 수 없던 원근감의 조화가 느껴집니다. 또한, 붉은 색의 온화함은 아기자기한 살림을 잘 보여주는데, 헬렌이 러시아인이 아니라 전형적인 영국인임을 드러내는 섬세함이 살아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뭇가지에 앉아 책을 읽던 손녀를 할머니가 부르는 장면은 존의 그림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시죠. 손녀의 옷과 머리카락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얼굴 표정을 보세요. 존의 그림 속 인물이 평면성을 갖고, 대체로 감상자가 인물의 감정을 느낄 수 없지만, 헬렌의 그림 속 주인공은 표정이 풍부합니다. 손가락 끝까지 표정을 담고 있을 정도지요. 그림책을 자꾸자꾸 보다 보니, 그림책은 글보다는 그림으로 말을 걸어오는 텍스트라는 점을 생각하게 되네요. 미술을 좀 공부해볼까요? 요즘 들어 저는 그림책의 그림 읽기가 얼마나 까다롭고 정교한 눈을 요구하는지 새록새록 느끼게 되네요.
행복의 조건
먹을 것이 충분하고, 편안하고 따듯한 집이 있고 신나게 뛰어놀 장소도 있고, 예쁜 꽃 가득한 공원도 있고, 낮잠 잘 시간도 있고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여러분은 충분히 행복하실 수 있어요? 여기
『행복한 돼지』에 등장하는 베르타와 브릭스 부부는 만족할 수 없었어요. 둘은 돈 많은 부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지요. 그렇게만 되면 멋진 일도 많아져 정말 행복해질 줄 알았던 거죠. 그러던 중에 그들의 꿈이 이루어졌네요. 브릭스가 보물 상자를 발견했거든요. 그들은 반짝거리는 새 차를 사고, 고급 옷을 걸치고, 은행에 큰돈을 맡겼어요. 어떻게 돼지가 은행에 돈을 맡기느냐고요? 그렇죠. 그래서 은행장은 처음에는 마구 소리를 질러대며 쫓아냈지만, 브릭스의 진귀한 보물을 보자 굽실거리며 아양을 떨었지요. “사모님, 사장님, 여기 좀 앉으시겠습니까?” 하하, 정말 은행에서 그러더군요.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조롱이라 저는 이 대목에서 박장대소를 했지만, 속마음은 써늘하더군요. 자, 이제 브릭스와 베르타의 화려한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집도 최고급으로 바꾸었으니 멋진 꿈을 꿀 것만 같았지요. 예전과 다름없이 하루하루의 일상을 즐겁게 보냈지만, 점점 빈둥거리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하루는 베르타가 밥을 하는 동안 남편 브릭스는 새 차를 몰고 시골길을 달리는데 엔진에서 연기가 치솟았어요. 차를 세우고 보닛을 열었지만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알 수 없었지요. 결국, 한숨을 쉬며 집까지 먼 길을 걸어서 왔어요. 그때부터 그들 생활에는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어요. 모든 것이 즐겁지 않았지요. 멋진 집과 번쩍이는 자동차, 상당한 액수의 저축, 화려한 옷이 있었지만, 그들은 갑갑했어요. 틀에 갇혀 지내느니 갑갑한 옷을 훌훌 던지고 예전처럼 마음껏 자유롭게 활동적으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했어요. 두 돼지는 넓게 펼쳐진 풀밭에서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우리 영원히 여기서 살아요.” 피곤하지만 그들은 다시 행복해졌습니다.
혹시 ‘행복’의 사전적 정의를 아시나요? 찾아보니,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라고 되어있네요. 그런데 지금과 같이 며칠 사이에 집값이 껑충껑충 뛰어오를 때는 박탈감을 느끼게 되지요. 물론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워지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진정으로 노력해서 하나하나를 성취해 본 사람은 행복이란 온전히 한 개인이 느낄 수 있는 절대적 감정이라는 것을 알 거예요.
이 그림책은 1973년에 헬렌 옥슨버리 여사가 직접 글까지 썼지요. 자유롭게 살아가는 생활을 실천하던 헬렌 여사와 존 버닝햄 씨에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직접 물을 필요는 없을 듯해요. 그분들이야말로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신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예순이 넘어서까지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친구로 지내고 있으니까요. 진정으로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하지 못한다면 아이들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지요. 저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면서 인생을 살고 싶은지, 자신의 욕망을 확실히 알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현재진행형의 삶을 사는 사람이에요.
이 그림책은 헬렌만의 유머와 귀여운 캐릭터로 산뜻한 인상을 남겨줍니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뛰어난데요, 그런 색상의 조화 때문에 상당히 리드미컬하게 느껴집니다. 한 면에 두 개 혹은 네 개의 그림을 배치하고 짧고 간결하게 그림을 한 줄로 묘사하다가, 커다란 한 면 통 그림이 나올 때면 아이들의 눈높이보다는 책을 함께 보는 어른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끌어가지요. 아크릴화로 그린 그림일까요? 불투명한 느낌이긴 하지만 유화처럼 덧칠한 느낌은 전혀 없고, 그렇다고 수채물감처럼 투명성이 느껴지지도 않아요. 반질거리지 않지만, 부자가 된 돼지 가족의 번질번질하고 윤택한 생활을 표현하는 데 딱 알맞은 소재로 그림을 그린 듯해요. 부자가 된 돼지 부부와 행복한 시절의 돼지 부부를 묘사한 그림은 방법적 기법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자연 속에서는 파스텔화처럼 밝고 화사하고 따듯하고 온화한 색으로 표현하지만, 인공적 부를 획득한 상황에서 그들은 딱딱하고 칙칙한 회색조의 녹색 바탕에 요란한 색에 둘러싸여 있어 정작 주인공 자체는 코믹스러워 보이거든요. 그림에서도 코믹하고 신랄한 풍자가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음… 그래서 유명 그림책 작가의 그림에는 뭔가 있어요. 그 무엇이 정말 무엇인지는 더 연구해봐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