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박상원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아왔길래 저렇게 반듯한 얼굴을 만들 수 있었을까?” 너무 꾸미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나이브하지도 않은,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모자라지도 않은, 예의바르되 단호한 미소를 띠고 있는 외유내강의 신사 박상원. 1986년 MBC 공채18기로 출발하여 1988년 ‘인간시장’의 장총찬 역으로 일약 주연급 ‘스타’ 배우가 되었으나, 박상원에게는 ‘스타’라는 말도 왠지 경박해 보인다. 그만큼 요즘 ‘스타’라는 말이 상업적이고 가벼운 말로 다가오는 감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대중문화계에서 박상원이라는 인물이 주는 신뢰감이 남다르게 여겨진다는 의미도 되겠다.
이십 여 년 동안 <여명의 눈동자>,<모래시계>,<그대 그리고 나>,<토지> 등 수많은 드라마와 <박상원의 아름다운 TV>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거기에 언뜻 언뜻 들려오는 그의 선행담까지 더하여) 어느덧 ‘박상원’이 참여하는 작품은 믿을 수 있다는 공감대까지 형성한 그가 뮤지컬에 도전한다. 바로 2005년 최고의 히트 뮤지컬 <헤드윅> 제작팀이 다시 의기투합해 만들고 있는 <벽을 뚫는 남자>로….
사실 박상원은 작품 출연 제의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OK 사인을 한 건 아니었단다. 새해가 되자마자 촬영에 들어가는 드라마(<태왕사신기>)에 이미 출연하기로 한 상태였고, 몇 년 사이 일취월장한 기라성 같은 국내 뮤지컬 배우들과 같은 무대에 선다는 것도 덜컥 걱정이 됐다. 그렇게 10일 정도 고민을 하면서 공연 자료들을 보고 또 보며 결국 <벽을 뚫는 남자>(이하 ‘벽뚫남’)에 참여하기로 결정은 내린 것은 그만큼 욕심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공연 자료들을 계속 보면서 음악이 정말 좋구나…,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라구요. 그래서 결정하게 되었어요. 드라마 촬영 스케줄을 저 혼자 변경해가면서도 욕심나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한 가지에 몰두하는 편이어서 현재 뮤지컬 ‘벽뚫남’을 깊이 파내고 있는 중입니다. 올 한해는 뮤지컬 ‘벽뚫남’으로 시작부터 꽉꽉 채워가며 힘들게 보낼 예정입니다.”
뮤지컬 ‘벽뚫남’은 다른 뮤지컬과는 달리 대사 없이 극의 모든 내용을 모두 노래로만 풀어가는데, 모두 47곡의 뮤직넘버가 있다. 주인공 듀티율 역을 맡은 그가 맡은 노래는 모두 28곡! 전문 가수가 콘서트에서 부르는 노래 수가 이 정도 될까? 그는 오페라도 이 정도로 노래가 많지 않다며, 그만큼 따르는 어려움이 연습량이라고 한다. 완벽하게 자기 역할을 소화하해내기 위해서 다른 활동들을 일체 끊고 연습에만 매진한다. 꿀물 먹어가며 운동해가며 그 어떤 때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무대 위에 오르기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한단다.
“요즘은 하루에 18시간에서 20시간 연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는 차를 타고 오면서도, 걸어다니면서도 줄곧 노래만 하고 있으니깐요.”
사실 박상원은 1979년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한 연극배우 출신이다. 1985년에는 서울예술단과 함께 평양에서 국내 최초로 공연을 하기도 했고, 그 후 뮤지컬 <한 여름밤의 꿈>, <애니>, <갓스펠>,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등 굵직 굵직한 작품에 출연해왔다. 겹치기 출연을 안하기로 유명한 그가 공연 작업을 한다는 것은 적어도 공연 작업에 임하는 시간만큼의 기회비용을 포기할 수 있는 매력이 바로 공연 작업에 있다는 것일 텐데, 그는 그 매력이 “많이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이라 한다.
“뮤지컬이 특히 그런데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예요. 저는 잘하는 배우가 아닙니다. 노력하는 배우죠. 저를 최대한 못살게 구는 거… 그게 제 취미이자 직업인 듯 합니다. 끊임없이 운동 하는 것도 그렇고, 무엇이든 도전해보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인생은 짧고 해보고 싶은 건 참 많죠. 이번 작품은 그간 제가 브라운관이나 연극 등에서 보여드렸던 것과는 달리 연기보다 노래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죠. 이런 작품이 드물기도 하지만 또 언제 이런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으로 도전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 노래하는 거, 음악 듣는 거 참 좋아하거든요.”
자신을 혹사시키면서까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 내려는 박상원의 이런 열혈 근성을 잘 아는 지인들은 이번 ‘벽뚫남’ 작업에 대하여 축하한다는 말로 연막을 친 다음, 바로 연이어 “참 힘들겠다, 고생한다.”는 얘기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잊지 않고 꼭 하는 말이 “건강 챙겨라”.
스스로 “2006년을 나를 혹사시키는 해”로 선포했을 만큼 어느 해보다 바쁜 나날이 예정되어 있는 박상원은 딱히 선호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진행자도, 뮤지컬 배우도, 연극 배우도, 탤런트도 모두 똑같은 일로 여긴단다.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노력해야만 하는 그런 일…. 문득 생각해본다. 그의 반듯한 얼굴은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지고 자신이 선택한 그 모든 일들을 어려운 마음으로 진지하게 임한 이십 년의 세월이 준 선물이 아닐까…. 뮤지컬 ‘벽뚫남’의 마지막 공연에서는 그의 기쁨에 찬 눈물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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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원이 직접 소개하는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Q :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어떤 뮤지컬인가요?
A : 파스텔톤 같은 뮤지컬, 몽마르뜨와 파리의 정취가 그득하게 묻어나는… 그런 뮤지컬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하던 공무원 듀티율에게 갑자기 벽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처음엔 그 능력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늘 지내오던 삶을 살았는데 어느 날 듀티율을 괴롭히는 직장상사를 골탕먹이기 시작하면서 유쾌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전쟁 이후 암울하던 프랑스 상황을 풍자하고 있는 이 뮤지컬에서 그는 약한 자를 위한 약탈을 하기 시작합니다. 또 벽을 뚫는 능력은 평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어서 몇 번을 지나쳐도 자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랑하는 여자와 듀티율을 고지식하고 너무 착해서 바보 같다고 생각하고 있던 직장동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수단이 되죠.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이 뮤지컬에는 발랄한 상상과 유쾌한 사건들이 가득 담겨져 있어요. 또 앙상블이란 것이 없이, 모든 배우들이 각각의 노래가 있는 특이한 뮤지컬이예요. 그만큼 배우들의 역량이 뛰어나야 하고 배우들의 몫이 큰 작품이죠. 지금 함께 하고 있는 배우들을 훑어보면 이름만 봐도 익히 뮤지컬무대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하던 베테랑들임을 아실 수 있을 거예요. 뮤지컬을 보신 후에는 이 작품의 노래를 한동안은 흥얼거릴 수 밖에 없어요. 제가 그랬듯이 말이죠.
Q :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은 어떤 점이 강점인가요?
A : 음악과 스토리가 단연 돋보입니다. 마르셀 에메라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탄탄한 극에 프랑스 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으로 유명한 미쉘르그랑이 음악을 붙여 만든 작품으로 굉장히 수준 높은 뮤지컬입니다. 그간 많이 접해오셨던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색다른 맛을 느낄수 있어요.
배우들이 2~3개의 배역을 맡아 여러 모습으로 등장하기에 공연을 보시면서 배우들을 찾는것도 아주 재미있는 요소 중의 하나가 될 겁니다. 그들이 노랫말로 엮어내는 가사 또한 일품. 연습하다가 다들 웃느라 바쁩니다.
Q : 뮤지컬 중 부르시는 노래 중 가장 마음이 가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노래 가사를 살짝 소개해 주세요
A :종이의 벽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 이사벨에게 띄우는 사랑의 메시지…. 가사 정말 좋죠? 멜로디는 더 좋습니다.
듀티율과 이사벨: 종이의 벽
듀티율
모든 벽 너머로 한줄기 빛처럼
환한 그대 모습 따라왔죠
어느덧 벽들은 얇은 종이처럼
사랑의 편지가 되었다오
그대여 이제는 새장을 나와요
내 손을 잡아주오
나를 인도하던 우리 사랑의 꿈
그 길을 따라온 나를 바라봐줘요
이사벨
모든 벽을 지나 내게 온 그대여
작은 나의 빛을 보았나요
나를 둘러쌌던 두꺼운 벽들이
모래처럼 스스르 무너지네
그대의 눈동자, 그대의 사랑이
날 자유롭게 하죠
그대가 따라온 우리 사랑의 꿈
내게 보여줘요 아름다운 그 길을
듀티율, 이사벨
누구도 무엇도 막을 수 없어요
모든 건 그저 종이 벽일 뿐
새로운 세상이 이제 열리나요
그대 고운 입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