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은 현대여성입니다 - 작가 김별아
색즉시공으로서 세 명의 왕을 섬기고, 나중에는 자신이 스스로 권력이 된 여인.
치마를 펄럭이기만 하면 온 세상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어버리는, 그런 여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치마를 펄럭이기만 하면 온 세상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어버리는, 그런 여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색즉시공으로서 세 명의 왕을 섬기고, 나중에는 자신이 스스로 권력이 된 여인. 그렇지만 여느 영화에 나오는 팜므파탈처럼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한 한 남자를 끝까지 일부종사시켜 자신을 대신해 병을 얻어 죽게 하는, 그런 여인 말이다. 분명한 것은 백만 명 이상의 독자가 그러한 여인 미실에게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미실은 “버드나무처럼 낭창낭창하고도 풍만”하고, “그늘 한 점 없는 쨍한 날처럼 명랑하고 발랄”하며, “화려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갖추었다지만, 『미실』의 작가 김별아는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차와 과자를 준비하고 낯선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2월에 큰 상을 받은 후 그 동안 많은 독자들을 만난 터라, 처음 작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독자들의 반응이 극단적이에요”다.
“독자들의 반응이 극단적이에요. 책이 저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인간관계를 보면 저를 아주 많이 싫어하거나 아주 많이 좋아하거나… 그렇거든요. 거의 극단적인데, 이것이 글에서도 똑같구나…. 소설을 가지고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싫더라도 책을 집어 던질 필요까지는 없을 텐데…”
작가는 일부 독자들이 『미실』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는 성 자체를 말한다는 것, 둘째는 여성이 자기 욕망을 얘기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불쾌감을 가지는 까닭을 조선시대를 지배했던 유교적 도덕관념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여성 인물이라는 것이 신사임당처럼 남성들에 의해 발굴되거나 추앙되는 인물이죠. 그렇지 않으면 장희빈 같이 왕의 비첩들. 이렇게 조선시대의 여성상만 생각하고, 그것이 우리를 계속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아요. 여성도 뭐 남자와 같은 인간인데 똑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잖아요. 인간인 이상 도덕이나 제도에 억눌려 있지만 원초적인 것은 같다고 생각해요. 잘 먹고 잘 살고 싶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갖고 싶고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고 사람들 위에서 호령하고 싶고 세상을 한번 뒤흔들어보고 싶고….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고, 신라라는 시대적 환경이 그 여성을 그렇게 권력자로 만들어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조선 시대 이전의 고대의 여성상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문란한 여자가 우선은 매혹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때가 그러한 여성상을 어떤 식으로든 현실에서 보고 있고 또 추구하기 때문이 않을까 한다며 “십년 전에 썼다면 아마 ‘즐거운 사라’가 될 수 있었는데, 확실히 사회가 바뀌었다는 것이 느껴진다”며 웃는다. 사랑과 권력을 모두 거머쥔 미실이 현대 여성이 추구하는 그 무엇과 일치한다는 얘기다.
“20대 직장 여성분들이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하여 고민을 많이 하고 계시죠. 여성으로서 일도 하고 싶고, 사랑도 하고 싶고. 이런 욕망에 대하여 갈등을 하고 있는 여성들이 『미실』을 읽고 굉장히 힘이 된다고 하세요. 내가 애초에 그런 식의 메시지를 줄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작가는 만약 『미실』을 전세대 사람이나 남자가 썼다면 정말 다르게 썼을 거라고 생각한다.
“에로 소설이 되었겠죠. 섹스 판타지 자체도 남성과 여성이 달라서…. 이 소설에 성묘사가 많이 나와요. 사실은 더 많이 쓰려고 했는데 저 스스로 차단되는 것이 있어서 그만큼은 안되더라구요. 남성들 같은 경우는 좀 더 자극적으로 여성들이 도구화되었을 거예요. 제가 가장 신경을 쓴 것이 미실의 성에의 자유의지에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 내가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그리고 하면 즐긴다. 억지로 한다, 해준다, 대준다, 이런 식의 묘사가 안되었으면 하고 바랬어요. 미실이 남자를 거의 강탈하다시피 하는 부분도 나오지만…. 적어도 여성이 묘사하는 성은 여성들에게 모욕적이지 않겠죠. 남성 작가들이 쓴 묘사를 보면 자신들이 일부러 그렇게 쓰지 않더라도 모욕적인 부분이 있는 거죠. 어쩔 수 없이… .”
박창화 선생의 『화랑세기』 필사본을 중심으로 『삼국사기』,『삼국유사』를 바탕으로 『미실』을 집필한 작가는 미실이 『화랑세기』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름이라고 한다. 작가는 그렇게 많이 거론된 만큼의 자기 확신이 미실에게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자가 아무리 이쁘다 하더라도 미모와 색을 가지고 오십, 육십이 되어서까지 세상을 지배할 수는 없을텐데, 미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거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가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미실이 700권의 일기를 남겼다는 대목과 미실이 화랑도의 원화가 되면서 화랑도들에게 천지인 사상을 설파?지도했다는 것.
그간 우리 문학에서 만나지 못했던 전혀 새롭고 개성적인 여성상을 그렸다는 이유로 국내 문학계뿐만 아니라 출판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미실』이지만, 정작 작가는 애초의 집필 동기는 그것이 아니었다며, 1500년 전을 잠깐이라도 되돌려 현재에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역사와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저는 생이 한번에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조상귀신들과 함께 산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 분명 누군가가 살아갔을텐데…. 다니면서 그런 생각 많이 해요. 풍납토성에 가서는 백제가 망하면서, 고구려군과 백제군이 실제로 맞붙어 싸우며 울고 웃으며 분노했을텐데…하고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그곳이 다 연립주택이에요. 그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알까, 하는 생각. 우리가 100년도 못사는 인생인데, 이게 정말 끝일까…, 이 끝 때문에 죽어라 살아라 머리 끄땡이 붙잡고 이렇게 살까…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더라구요.”
문단 데뷔 13년 만에 크나큰 행운을 쥐게 된 작가는 『화랑세기』필사본을 쓴 박창화 선생을 비롯하여 수많은 민간연구자들에게 감사하다고 하며 ‘보상을 바라지 않는 열정’을 말한다. 그 분들 모두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즐거움으로 연구를 한 것. 작가도 다만 소설을 쓰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이거 쓰고 나면 저거 써야지 하고 계획을 세워가며 시간을 견뎌나갔다.
1억원이라는 상금의 주인공이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이 갑자기 상승되는 것도 아니고, 또 많이 팔렸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만큼 충분히 지혜로운 작가는 지금까지 이렇게 왔던 대로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단, 감사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뀌어진 상황에도 휘둘림없이 꼿꼿이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준 단전이라고나 할까.(실제로 작가는 5년 동안 요가를 꾸준히 하며 수련을 했다.)
“제일 좋은 작가는 죽을 때까지 쓰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젊었을 때의 영화를 가지고 쓰지 않으면서 끝까지 가는 사람들을 저, 미워해요. 과거의 작가는 없다, 언제나 현직이어야 한다…. 작품의 내용, 수준과 상관없이. 박범신?한승원?김원일 선생님이 진짜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누가 보던 말던, 팔리던 안 팔리던 계속 쓰시니까. 꾸준히 쓰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믿어요.”
작가는 올 8월 아들과 함께 캐나다에 간다고 한다. 그 동안 일을 끊임없이 하다 보니까 고갈되는 느낌이 있어서 좀 놀아보려고 전부터 계획하던 거였는데, 이제 집 안 팔고도 갈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눈을 반짝이는 작가를 보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분, 살아남으려고 가는구나. 꾸준히 쓰는 것만이 살아 남는 길이니까…. 꾸준히 쓰려면 비축해놓은 힘이 있어야 하니까…” 아무쪼록 작가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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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별아는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93년 『실천문학』에 중편 「닫힌 문 밖의 바람 소리」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개인적 체험』, 『축구 전쟁』 소설집 『꿈의 부족』,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식구』가 있다. 2005년 장편소설 『미실』로 제 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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