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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쓰는 식물성 사랑 이야기 - 구효서

변화무쌍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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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원작인 『낯선 여름』을 비롯하여 작가 구효서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우선 그 다작에 놀라게 된다. 작품 수도 많을 뿐더러 그는 변화무쌍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이기도 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원작인『낯선 여름』을 비롯하여 작가 구효서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우선 그 다작에 놀라게 된다. 작품 수도 많을 뿐더러 그는 변화무쌍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이기도 하다.『늪을 건너는 법』이나『악당 임꺽정』『비밀의 문』처럼 역사와 권력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작품을 통해서는 이야기의 선이 분명하고 남성적인 힘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을 선보였다. 또한『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같이 치열한 작가정신이 살아 있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였고,『남자의 서쪽』『내 목련 한 그루』『라디오 라디오』등의 작품에서는 말랑한 감성적 이미지와 여성적 분위기가 중심이 되었다. 구효서 씨가 보여주는 방대한 폭과 깊이는 그의 작품세계를 쉽게 정의내리기 힘들게 만든다.

식물은 사랑의 상징물
 구효서 씨는 11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 이번 작품집『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에 2000년대의 사랑이야기, 그중에서도 식물성의 사랑이야기를 담으려 했다고 한다. 그의 이전 작품집의 이름도『도라지꽃 누님』이다. 책 제목뿐 아니라 그의 소설 속에 꽃 이름이 아주 많이 나온다. 시골에 태어나 들과 산에서 체험적으로 안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쓰게 되는 거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번 작품집에도 그는 별로 의식하지 못했는데, 책을 읽은 사람들이 이번엔 나무가 많이 나온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어떻게 보면 식물성에 대한 집착인데, 집착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식물성이 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식물성은 영원성과 같은 게 아닐까요. 씨앗이 자라나서 잎을 피우고 꽃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겨울을 지나 다시 똑같은 식물이 봄에 또 새싹을 틔고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아주 신기하거든요. 그런 과정이 영원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에게는 영원성이 유전자의 반복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어요. 「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에서 아버지와 딸이 만나고, 먼 이국의 대륙으로 나뉘어 있지만 몽골리안의 삶은 유전적으로 이어지지요. 우리는 한 삶을 살면서 그 삶이 마무리되고 완성되고 닫힌다고 하지만, 자식에게 이어지지 않습니까. 죽고 닫히지만 영원히 이어지는 것을 우리가 평생을 통해서 수없이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식물이 아닌가 싶어요. 어제 핀 꽃이 오늘 핀 꽃이 아니거든요. 또 내년에 필 꽃이 오늘 피어 있는 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같은 꽃으로 인식하지 않습니까. 식물이 어쩌면 사랑의 본질을 얘기해줄 수 있는 상징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는 식물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을 비춘다. 한번 핀 꽃이 죽는다. 다음해 봄에 다시 피는 꽃은 분명 다른 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개나리나 진달래로 인식한다. 식물은 짧은 생애동안 무수한 죽음과 태어남의 반복을 통해서 영원한 삶, 영원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사람도 식물처럼 죽어도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한 번뿐인 생명 속에서 계속되는 개체번식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존재를 이어나간다는 것. 그런데 인간의 생은 너무나 길어서 쉽게 자신의 존재가 계속 이어진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짧은 생을 반복하는 꽃을 볼 때는 꽃의 존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영원한 존재감을 인식하게 된다. 작가는 여기에서 식물과 사랑의 공통점을 발견해낸다. 기나긴 인간의 생애를 제대로 보긴 힘들지만, 식물은 인간의 생애보다는 훨씬 짧은 순간에도 영원한 존재감을 느끼게 해줄 수 있기 때문에 작가의 소설에는 식물이 많쳀 나온다. 작가는 사랑을 영원한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식물성을 강조해서인지『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에 나오는 인물도 식물성에 가까운 인물이 많다.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약간 망설이고, 건망증이 있고, 다가서기보다 기다린다. 작가는 현대사회가 복잡하고 다원화된 만큼 소설의 인물들이 망설이고 주저하는 것은 당연하고 독자와 사회 역시 그런 인물을 원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그 역시 작품 속의 인물과 조금 닮은 점이 있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자신과 닮지 않은 인물을 등장시킨다는 게 낯설어진다고도 한다.

삶 자체의 눈물겨운 풍경들을 그리는 소설
그는 이번 작품집의 작가 후기에 “삶 자체의 눈물겨운 풍경들에 무작정 발끝을 채여 덩달아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졌을망정, 생의 비의를 파헤치려는 치열성 따위에는 점차 미련이 없어졌다”고 적고 있다.

세상은 사실 어떻다고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인데,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하나의 징후로 파악하고 그걸 분석하고 탐구하고, 거기다 극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글로 써내는 것이 바로 소설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소설가에게는 인문학적 소양이 요구되는데, 요컨대 작가는 자신이 세상을 충분히 겪지 못했다고 말하며 자기의 생각이나 자기의 주관보다는 학습한 내용에 의해서 세상을 재분석하고 재설계한다는 견해를 밝힌다. 물론 그가 생각하기에 온전한 작가만의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다만 기존의 어떤 선입견과 인문학적 소양에 의해 대상을 분석하고 작품에 적용하는 창작방법의 습관이 나이를 먹으면서 저축되는 자신의 경험에 좀더 의존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내가 세상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세상에 비춰보는 것이죠. 과거에는 아무리 슬프고 가슴 찡한 일이 있어도 감정의 사치, 또 감정의 과잉이다 해서 자제하거나 배척했는데, 지금은 살아가는 데 있어 이 순수한 감정의 가치를 알게 되는 거예요. 그 어떤 담론과 이론, 이념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과 직접 소통하려다 보니, 도외시하고 배제하던 이웃들의 사소한 삶들과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에 충실해지고 가치 있게 받아들이게 돼요.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감동과 기쁨, 눈물로 충만해 있더라는 것을 느끼게 되더군요. 그 느낌을 기존의 틀에 의존하지 않고 그대로 써냈죠. 그러다 보니 진솔한 모습을 진솔한 그대로 바라보는 눈이 새롭게 생겨났다고 할까요.”

그는 이번 작품집에 들어 있는 「흔적」을 예로 든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 이야기고 작가의 고향집 기둥에는 작품에 나온 놋주걱에 찍힌 자리가 나 있다. 예전에는 그냥 단순한 흔적으로 여기고, 기둥에 그런 흔적이 나 있으니까 없었으면 좋겠다거나 왜 저기 저렇게 흉한 흔적이 있을까 하고 넘어가는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작가가 살던 마을에도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좌우대립이 소소하게 있었다. 그래서 작가의 아버지는 본의 아니게 그 어느 편에 속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을 가지게 된다. 마음속으로 서로 연민하고 좋은 감정을 품었던 사람들과도 갈등이 일어났다. 그리고 어느 한 여인에 의해 작가의 아버지가 오해를 받게 되었단다. 결국 그 여인이 오래 써서 끝이 닳아져 굉장히 날카로운 주걱을 작가의 아버지를 향해서 던졌고, 아버지가 피하면서 주걱이 기둥에 박혔다. 그런 내력이 있는 기둥이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당시 아버지의 나이에 다다르니까 작가는 작은 기둥 속 하나의 흔적이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흔적 하나에서 시대와 아버지 세대들의 삶의 방식을 읽어낼 수 있을 때 작가는 먼저 감동했고 그 감동을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생존을 위한 글쓰기, 전망
 등단 후 15년여 동안 그가 묶은 책이 이십여 권을 훌쩍 넘는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치열하다고도 하고 저력이 있다고도 하지만 작가 자신에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끝없이 해내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위협을 받는『아라비안나이트』의 ‘세라자데’처럼 끝없이 끝없이 이야기를 그치지 않고 토해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그에게도 있었다.

“권력자에 의한 생명의 위협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은 어찌되었든 먹고 살지 않으면 안 되슴 것 아닙니까. 작가에게 특별한 지위나 권력이 부여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작가가 어떤 명예나 이력이 아닌 말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를테면 육신이 살아남고 생존권을 지키려면 계속 써내는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어찌 보면 행복한 작가라 작품 한 권 가지고 몇 년 정도 인세를 받아먹으면 좋겠는데, 저는 불행하게도 끊임없이 써내야 끊임없이 쌀독에 쌀이 들어차는 구조 속에 편입되어 있어서, 쓰지 않으면 안 돼서 쓴 측면도 있죠. 사실 어떤 의무감이나 사명감, 또 치열성 같은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보다 더 나를 압박했던 것은 경제적인 중압감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데 그것이 꼭 작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에요. 사람은 어쨌든 존재 자체가 생산활동이고 소비활동이라, 적당한 경제적 압박은 뭔가를 생산해내는 생산력으로 직접 연결되기도 하기 때문에 저는 그걸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편이죠.”

앞으로의 작품들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는 자신은 사실 무계획하게 쓴다는 답한다. 계획을 안 갖는 것, 그는 계획이 없는 게 아니라 안 가지려 하고 있다. 계획을 가지면 그것이 자칫 낡게 되고, 소설을 쓰기 전에 낡아버리면 맥이 빠져버린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항상 싱싱한 문제의식을 갖기 위해 일부러 계획을 하지 않는다. 그가 지금 쓰고 있는 것은 세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제 시대를 겪으며 고통스러워했던 한 여자와 그녀의 딸이 있다. 고통스런 삶을 산 어머니의 2세인 딸이 또 그 역사적인 고통을 고스란히 이어 받는다. 1980년대를 청년으로서 관통해온 작가의 이 새로운 작품에는 1980년대를 지나온 한 불행한 여성도 등장한다. 역사에 의해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행한 삶을 사는 여인들이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어떤 작품을 쓰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이제는 한국전쟁이라든지, 베트남 전쟁, 광주민주화항쟁 같은 것에서 놓여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 작가의 세대 자체가 역사적 사건에서 벗어나기가 무척이나 어렵고, 그 역시 어떤 소설을 쓰더라도 항상 귀착점이 역사적 사건이 되곤 하지만 이제는 좀 벗어나려 하고 있다. 작가는 자꾸 과거로 회귀하는 문제의식이 아니라, 미래로 향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소설을 쓰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나이를 먹으면 센스가 좀 약해지고, 집중력이나 지구력은 떨어지지만 나름대로 시야는 넓어지고 깊어진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어쩌면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보고 해석하고 분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 모든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쪽으로 관점을 확대하고 분산시켜나가고 있다고. 그는 자신 아닌 것에 대해 관심과 사고를 기울이고, 자신의 삶 속으로 세상을 끌어들이는 것을 앞으로의 전망이자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자신을 부수는 동시에 확장하고 삶 자체의 풍경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그가 보여줄 다음 작품이 언제나처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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