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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비걸기로 살펴본 ‘김연수’와 ‘히라노 게이치로’

김연수 vs 히라노 게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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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면 내 시비걸기의 이유는 어느 정도 논술이 된 셈이다. 그렇담 이제 김연수의 작품에 대해 알아볼 일이다. 방식은 생뚱맞게도 '김연수 vs 히라노 게이치로'의 구도를 통해서다.

“이번 소설을 통해서 작가로서의 장취성(將就性)을 다시 한번 인정받은 김연수는 독자들의 읽고 싶은 욕구에 좀더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는 서사미학을 찾는 데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제5회 황순원문학상 심사위원이 김연수의 중편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 대해 촌평한 부분이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실로 오랫동안 잠복했던 내 안의 투사기질(?)이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끝내 그에 시비를 걸고 말겠다는 치기로운 충동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로부터 한 달여 동안 오로지 시비걸기를 위해 김연수의 소설들을 집중적으로 ‘읽어냈다’. 말 그대로 단순히 ‘읽은 것’이 아니라 ‘읽어냈다’고 표현할 만하다. 그만큼 그의 소설들은 낯설고 어렵다. 바로 그 점이 위의 촌평을 이끌어낸 빌미였음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독자들의 읽고 싶은 욕구에 좀더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는 서사미학을 찾는 데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인데, 그럼에도 ‘작가로서의 장취성은 인정받’은 것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그럴듯하게 보이면서도 실은 지극히 엉성한 모순어법이 아닐 수 없다.

뜻을 이해 못한 건 아니다. 얘긴즉, 작가의 진지성과 지적 치열성은 높이 살만 하지만 난독의 우려가 있으니 좀더 쉽게 풀어쓰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일 터. 그러나 그 말의 함의가 무섭고 서글프다. 다시 풀어본 즉, 언제까지 자기 스타일만 고집할 거냐, 작가도 생활인이니 이제 먹고사는 문제에 신경 써야 한다, 정도로 이해될 것이 아닌가. 그네들의 말마따나 폐를 녹여가며 밤을 지새워 창작에 매달리고 있는 후배에게 문단의 선배가 할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쯤이면 내 시비걸기의 이유는 어느 정도 논술이 된 셈이다. 그렇담 이제 김연수의 작품에 대해 알아볼 일이다. 방식은 생뚱맞게도 '김연수 vs 히라노 게이치로'의 구도를 통해서다. 둘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물론 가당치 않은 일이다. 자칫 양쪽 진영에서 지청구나 돌팔매가 날아올 것을 각오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연수를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히라노 게이치로를 보다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라는 미사여구를 슬쩍 끼워놓고 보면, 그런대로 한쪽 눈 질끈 감아 줄 수도 있는 일일 테다. 둘은 예의 문학에의 열정과 진지성, 지적 치열성, 그리고 각각 지식소설과 예술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한ㆍ일 양국을 대표하는 젊은 기수들이다.

그래서 애초 둘을 함께 묶겠다는 발상은 무모하고도 도발적인 시도로 보일 수밖에 없다. 단지 용납할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러한 도발적 발상 그 자체에 대한 인정 일뿐이며, 그 또한 내가 늘 그랬던 것처럼, 흥미유발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꾿빠이, 이상』 vs 『달』

『꾿빠이, 이상』은 명실공히 작가 김연수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반면, 『달』은 『일식』에 이어 다시금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가적 입지를 굳건하게 다져준 작품이다. 굳이 이 두 작품을 함께 묶은 이유는 두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비슷하고(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내용면에서도 새로운 시대 혹은 문화적 경향(전통의 퇴조, 낭만주의의 득세)의 출현이라는 점에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꾿빠이, 이상』은 이상의 ‘데드 마스크’의 행방과 난해시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의 진위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군상들 간의 갈등과 암투, 그리고 그 속에 면면이 스며있는 이상(문학)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고증과 소설적 상상이 결합된 절묘하고도 탁월한 작품이다.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선명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과연 진짜인가 가짜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이면서 동시에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곧 우리네 마음의 문제이며, 따라서 “어떤 사물의 진위 여부는 논리나 열정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달』은 지고의 사랑 혹은 시적 영감에 대한 젊은 시인의 갈구를 통해 환유된 인간 내면의 의식과 무의식 간의 충돌과 혼돈을 예의 매끄럽고도 절제된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케 하는 나비의 꿈(혹은 환상)에 이끌린 시인은 그것이 종래 환상인줄 모른 채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 삶의 궁극적 의미는 곧 절대 사랑의 경지에 이르는 것에 다름 아님을 확인해 준다. 그 극진한 사랑과 정열을 표현하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미려한 문체는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하다.

“내 사랑은, 제발 들어주시오. 내 사랑은 단 한 번 휘두른 검이오.(...) 나는 그 검을 뽑았소. 당신 앞에 뽑아 보인 것이오.(...) 당신은 그저, 그 칼자루를 쥐고 내 가슴팍에 서기만 하면 되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담아 찌르면 되고! 깊게, 깊게, 저 먼 곳으로 뚫고 나갈 만큼!”(163쪽)


『일식』 vs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이행기에 벌어졌던 대혼란과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절대 정신을 추구했던 종교인들의 철학적ㆍ학문적 열정과 의지는 종래 허공중으로 날아가고만 것인가. 아니면 그 신비로우면서도 실증적이었던 철학적 구도의 흐름들이 현대의 우리들이 갈급해마지 않는 종교적ㆍ철학적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인가. 그와 같은 참으로 어려운 질문에 당돌하게도 문학의 이름으로, 그리고 상상력을 무기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하는 약관의 작가가 있었으니, 이름 하여 ‘히라노 게이치로’이며, 그의 작품 『일식』이렷다.

더구나 그의 문학적 도전은 종래 격조 높은 문체의 유장함을 잃지 않고 끈기 있게 언어를 재창조하는 것이기도 해서 가히 일본 평단과 독자들을 지적 문화적 충격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하여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에 쏟아지는 문단과 평단의 찬사들은, 그대로 독자들의 지지와 환호로 이어지기도 했다.

“요즘 소설들이 보여주는 분위기나 내는 정도의 비현실감이나 자폐나 파괴충동, 그리고 종말의식 같은 단조로움에 나는 싫증이 난다. 그에 비해 소설의 정통에 서고자 하는 히라노의 일식을 나는 추천한다.” 히노 케이조(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 소설가)

“일식은 지적으로 구축된 재미있는 소설이다. 얼핏 고풍스러운 이 소설에 현대적 의미를 부여하자면, 도그마가 붕괴되고 이데올로기가 힘을 잃어 이교도의 철학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중세 말기와 현대는 참으로 비슷한 정황이다. 우리들이 안드로규노스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케자와 나츠키(동 심사위원, 소설가)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작가 김연수의 성장통의 기록이며, 비로소 작가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탐색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작품집이다. 거기 실린 9편의 중ㆍ단편은 제각각 다른 소재와 성격의 작품이지만 그 내막의 울림은 같은 음색으로 들린다.

각각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김연수의 작가적 부화 과정에 대한 분석은 평론가 김병익이 예리한 통찰을 통해 정리하고 있다. 우선 김병익은 “김연수의 소설이 현실의 사회학적 보고서라는 발자끄의 규정으로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엇나가고 있는 것이다. 전형적인 1990년대 작가인 그가 같은 세대에게 유행한 이른바 환상적이거나 에로틱한 작품을 거부하고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작품으로 나서지 않고 전통적인 문학적 진지성을 고수하면서도 사실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작품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자문한 뒤 곧 이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김연수가 기록된 역사를 끝내 불신하고 말해질 수 없는 삶의 비의를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삶의 엄숙성, 말하자면 인간의 실존적 성실성을 들추어내기 위해서일 터이다. 그리고 그가 들추어내는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불가능, 이해의 원천적 차단은 현대적 삶의 근원적 부정일 것이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vs 『장송』

히라노 게이치로의 역작
『장송』은 우선 그 엄청난 분량에 주눅이 드는 데다 무엇보다 19세기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낭만주의 예술가들에 대한 정밀하고도 정확한 묘사가 압권이면서 동시에 질릴 정도로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 쉽게 읽히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다. 고백하건데 나 역시 아직 완독하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로선 이 작품에 대해 달리 언급할 능력도 자격도 없는 셈이다. 다만 현재까지의 느낌만으로 말하고 싶은 건 어느덧 저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위상을 맞닥뜨리는 느낌에 대해서다. 최고 수준의 예술주의 소설가의 반열에 오른 히라노라는 지나치게 앞선 생각들이 오히려 난독을 조장하는 건 아닐까.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앞서 소개한 제5회 황순원문학상의 최종 후보작에 오른 작품이며 또한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굳이 이 작품을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대한 역작 『장송』과 짝을 지운 데는 이유가 있다. 비록 분량 면에서는 두 작품 간에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지만 내용과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이 추구하는 지고의 문학상(像)과 예술지향성과 지적 완벽성 추구라는 점에서는 결코 쉽사리 우열과 무게감의 차이를 말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우선 절묘한 시점 처리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고전을 매개로 현대를 살고 있는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욕망과 사랑과 지적 구도에 대한 열정을 파헤치려는 의도 자체의 참신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가 언제나 추구했던 대로 ‘있음이면서 동시에 없음’이며 ‘사실이면서 동시에 거짓’일 수밖에 없는 역사 혹은 현실의 현상들에 대한 허무와 부정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 단순 병치에 그치고 말았다. 그럼에도 두 작가의 공통점과 차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공통점은 문체의 다양성과 탄탄하다 못해 현란하기까지 한 지적 열정이 녹아든 예술소설ㆍ지식소설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매 작품 ‘작품에 합당한 혹은 주제에 합당한 문체’를 추구하고자 하는 둘의 노력은 결코 현학취미나 요란한 기교가 아닌 작가로서 독자들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자 하는 진지하고도 치열한 문학정신의 소산이라 여겨진다.

차이 역시 분명하다. 두 작가 모두 장취성을 엿보이고 있지만 한ㆍ일 양국의 평단과 독자들의 반응은 천양지차다. 한쪽이 열렬한 지지와 환호 속에 어느덧 일본문단의 중심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데 비해, 한쪽은 문단의 선배로부터 ‘까이 거, 그냥 대충대충’하라는 어이없는 조언을 듣고 있을 만큼 독자들의 관심권에서 유리되어 있다. 그렇기로 김연수가 새삼 얄팍한 기교주의와 세태영합적 소설쓰기로 전환한들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게 끌어들인 관심과 반응은 또 무엇에 소용될 것인가. 결국 가장 큰 차이는 한ㆍ일 양국 독자들의 소설에 대한 관심의 폭과 깊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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