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와 여행을
제가 안노의 책을 알게 된 것은 필로멜 북스에서 출판된
『Anno's Spain』을 갖게 되면서입니다. 아무런 말이 없는 이 책은, 파란 바다를 마주하고 붉은 삼각지붕과 하얀 담의 집들이 언덕을 따라 촘촘히 늘어서 있는 표지 그림으로 시작됩니다. 책표지를 넘겨 첫 장을 보면, 살바도르 달리의 고향 마을 카다크 바닷가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생선을 파는 장사꾼, 어망을 다듬고 있는 어부들, 바위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이 광각렌즈에 담긴 듯 넓게 펼쳐집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정열적인 대기의 후끈한 냄새를 떠올리면서 다음 장을 넘기면, 이미 바르셀로나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에 보이는, 가우디가 설계한 ‘성 가족성당’의 탑이 이곳이 바르셀로나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콜럼버스 성인상 근처에서 카스텔(인간 탑)을 만드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구경하고 있는 관광객의 모습이 지금이 ‘라 마르세 축제’가 한창임을 알려줍니다. 책을 넘길수록 스페인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삶의 모습들이 전개되는데, 아직 스페인을 가보지 못한 저에게 당장에라도 짐을 싸서 떠나라며 유혹합니다.
이 책은 안노 미쓰마사가 1963년 카메라와 스케치북을 손에 들고 처음으로 유럽을 방문한 이후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안노는 차를 한 대 빌려서 자신에게 영감을 준 스페인 출신의 유명인들과 관련된 지역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림 그릴 장소가 정해지면, 접이의자를 펼치고 그곳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엘 그레코가 살았던 중세도시 톨레도의 풍광이 표지를 장식하게 되었고, 파블로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의 아픔을 담은 그림 ‘게르니카’의 역사적 배경이 된 바스크 지역 게르니카의 모습이 책 속에 담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가 느끼고 경험한 마음속 스페인과 함께 그가 직접 몸으로 경험한 스페인의 풍광들이 담겨있는
『Anno's Spain』은 제게 많은 이야기를 건넵니다.
안노는 다수의 여행 그림책을 펴냈습니다. 지금 소개하는
『Anno's Spain』 이외에도 『Anno's Journey (1977)』, 『Anno's Italy (1980)』, 『Anno's Britain (1981)』, 『Anno's USA (1983)』 등이 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고 그림책으로 출판하는 그의 부지런함과 재주가 무척 부럽습니다.
안노가 그린 그림책의 세계는 사실 무척 어렵습니다. 그는 독자에게 다른 그림책 작가가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 색다른 주문을 합니다. 그의 그림책은 직접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독자는 퍼즐을 풀어야 합니다. 심지어
『Anno's Spain』에서는 문자로 된 설명이 단 한 줄도 없기 때문에, 그림을 통해 그가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해설서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인터넷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다양한 정보를 검색하여 그림 속에 숨어있는 사실을 하나하나 발견하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실 안노의 여행 그림책 시리즈는 아직 국내에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안노의 그림책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그의 그림책을 어떻게 아이들과 함께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나 봅니다. 배스킨(Baskin)과 해리스(Harris)의 공저인 『Books for the gifted child. R.R. Bowker: New York (1980)』에 의하면,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의 전통적인 반응방식이 안노의 그림책의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다”라고 지적합니다. 그의 그림책, 특히 여행 그림책 시리즈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아이들은 책이 전달하고 있는 세부 정보에 대해 정보를 검색하고 그림을 관찰하고 생각하여 서로 정보를 공유해야 합니다. 그의 책에는 단순히 안노에게 강렬한 영감을 준 예술가와 역사적 인물의 작품과 삶에 얽힌 이야기뿐 아니라, 시각적인 메타포, 문화적?역사적 사건에 대한 은유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속담이 안노의 그림책 읽기에는 안성맞춤의 격언인 셈이죠. 안노의 그림책을 따라 여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대할 때 설명을 꼼꼼하게 읽듯이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림책과 수학, 과학의 접목을 꾸준히 시도하는 안노 미쓰마사(安野光雅)
1926년 3월 20일, 일본 시마네 현 작은 시골마을 쯔와노에서 태어난 안노 미쓰마사는 야마구치와 도쿄에서 10년 이상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한 뒤, 1968년 『이상한 그림(ふしぎなえ)』을 발표하면서 일본 그림책계에 등장하였습니다. 흐릿한 듯하면서도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하는 수채화로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만들어 낸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과학, 수학, 문학 등에 조예가 깊고, 호기심과 상상력이 풍부하고 독창적인 그림책을 발표하며 그는 전 세계 그림책 애호가와 전문가로부터 사랑과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상복도 많아서 1974년
『ABC 그림책』으로 일본에서는 산케이 아동출판문화대상을, 영국에서는 이례적으로 영국인 화가에게만 주어졌던 관례를 깨고 케이트 그린어웨이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1984년에는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안데르센 화가상을 받았는데, 이외에도 BIB 골든애플상,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그래픽 대상, 뉴욕 사이언스 아카데미상 등 국제적으로 유명한 어린이 책 상을 휩쓸었습니다.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는 안노의 대표작으로는 『여행 이야기』 이외에도
『수학 그림동화 시리즈』,
『여우가 주운 그림책 시리즈』,
『ABC 그림책』,
『천동설 이야기』, 『셰익스피어 극장』, 『즉흥 시인』 등이 있습니다.
안노 미쓰마사 미술관
안노의 고향 마을인 시마네 현 쯔와노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안노는 “산만 보고 자랐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어린 시절의 안노는 산 뒤쪽의 모습이 항상 궁금했고 산을 넘어가면 영국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그의 고향 쯔와노마저 시대의 변화에 휩쓸려 변해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던 그는 몇 년 전 그곳에 작지만 산자락의 모습을 헤치지 않는 깔끔한 외관의 미술관을 건립했습니다. 건립 이후 지금까지 자신의 그림책 원화를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전시하기도 했는데, 그곳에 가면 수많은 원화가 상설 전시되고 있다고 하니, 언제 기회가 되면 꼭 찾아가보고 싶어지네요.
안노의 미술관 홈페이지에서(//www.tsuwano.ne.jp/town/anbi/anbi.htm )
일본 미술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둥근 천장에 사계절의 천체 운행을 보여주는 플라네타륨을 설치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30분간 이어지는 플라네타륨의 천체 운행 프로그램 마지막 부분에는 그의 작품
『천동설 이야기』의 그림들이 펼쳐진다고 합니다. 과학과 예술은 안노의 작품 세계의 주된 테마이며, 그는 일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과학과 예술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소설가나 화가는 ‘수학이나 물리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과학적인 정신없이는 글을 잘 쓸 수 없고, 과학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조금은 허황되다 싶은 꿈을 꿀 줄 모른다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과학과 세계가 일체가 된 세계의 밑바탕에 천문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제 고향마을에 플라네타륨을 설치한 것입니다.”
『천동설 이야기』와 과학에 대한 그의 생각들
아직 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안노의 그림책을 만드는 데 있어 과학에 대한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 바로
『천동설 이야기』라 소개할까 합니다. 사실
『천동설 이야기』는 『지동설 이야기』를 위한 전편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지동설 이야기』를 제작하던 중에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림책을 통해 지구가 둥글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지 않더라도 언젠가 아이들이 스스로 알 때가 올 것이기에 그때를 위해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스스로 발견하여 놀라는 순간에 진정으로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작업하는 도중에 깨달았다고 합니다.
『천동설 이야기』를 보면, 지구가 둥근지 확인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고, 여행자들을 떠나보낸 가족들은 그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기도합니다. 이 부분은 우리뿐만 아니라 안노 역시 어린 시절 믿기 어려웠던 사실이면서 여러 가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동기가 되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안노는 어린 시절, 이웃집에 살던 이와라는 친구가 불쑥 “너, 지구가 둥글다는 것 아니?” 하고 물었을 때 ‘둥글다면 떨어져 버릴 텐데…’라고 걱정하면서 공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공의 안쪽 면에 살고 있다고 자신을 위안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 사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안노 미쓰마사는 불가사의함을 즐기는 어느 순간, 미지의 세계로 가는 문이 활짝 열린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 그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그의 그림책 세계로 통하는 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등학교의 선생님을 10년 정도 하셨다고 했는데, 그림책 작가로서 길을 걷게 된 계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특별한 계기는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리다 보니 어느새 그러한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림이 그저 좋았을 뿐이고, 간판 가게를 지나칠 때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면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죠. 또한, 잡지 속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궁금했습니다. 저도 간판이나 잡지 같은 곳에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어떤 계기로 그림책 작가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하도 많이 받게 되어, 그 해답이 될까 싶어 『그림이 있는 인생 - 보는 즐거움, 그리는 기쁨』(이와나미 신서)라는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
선생님의 그림책 속에는 ‘상냥함’이나 ‘그리움’이 느껴지는 대목이 많은데, 어떤 요소들이 그런 느낌을 자아낸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람은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하기까지, 자신을 둘러싼 풍경을 보며 자연 속에서 사계절 그때그때의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이는 사투리를 몸에 익히는 것과 같은 과정으로,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더라도 어느새 몸에 스며들어 오는 것들이죠. 저의 그림책을 보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든가 상냥하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자연에 대한 원시적인 동경을 건드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봐요.
이야기의 소재로 한 작품이나 외국에서도 많이 풍경을 그리고 계십니다. 어떤 점을 느끼면서 그림을 그리십니까?
유럽에 가서 그림을 그려도, 이상하게 제 그림의 바탕은 일본의 풍경이 되곤 합니다. 벨기에라든지 네덜란드에 가서 그림을 그릴 때 처음 깨달았는데, 그곳에는 산이 없으니까요. 산이 없는 곳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지평선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자신의 눈높이며, 나머지는 전부 하늘입니다. 이런 곳에서 자주 그림을 그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산에 둘러싸인 동네에서 자란 저 자신의 미의식과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젊을 때에는 외국의 풍경이 일종의 변명이에요. 일본의 풍경은 자신의 그림이 마치 ‘사투리’에 머무르는 것과 같기에, 젊은이들은 외국에 가서 하는 그림 공부를 거대한 미술사의 연장선상에 자신도 있는 것 같아서 그리기 쉽다고들 착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뭔가 대단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하는 의식이 일어난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고유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으면, 왠지 그림을 제대로 그린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세계적인 대문호인 셰익스피어는 사투리를 사랑했고 그것이 그의 문학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든 것처럼, 자신의 뼛속까지 스며있는 것을 표출해내는 것이 철이 들고 나서부터는 더욱 진정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학이나 과학에도 대단히 흥미가 있으시고, 자신을 ‘공상가’라고도 말씀하시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상’이라고 하는 것은 있지도 않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것이 아니에요. ‘하늘을 날 수 있다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공상이랍니다. 그러나 ‘그러다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면 망상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람은 이를 과학적으로 생각할 논리력이 있어서 자꾸자꾸 공상을 한다고 해도 안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상하는 것’은 아주 대단한 과학적인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즈음 아이들의 상상력이나 생각하는 힘이 없어져간다고 말합니다. ‘공상’이 중요한 일이군요.
‘혹시 이렇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기 전에 일을 진행합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될까?’를 공상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근거도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의 문제를 풀려면, 그것을 눈에 띄게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생각이든, 설령 그것이 터무니없이 보여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죠.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붉게 해야지’라든가 ‘검게 해야지’ 하는 생각은 별로 이치를 가지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작품을 끝내놓고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은 나 자신이 아닌 것이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즉, 다른 사람이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느낌 같은 것 말이죠.
자신은 단지 하고 있을 뿐이고 사실은 머릿속에서 누군가 다른 것이 명령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미국의 어느 수학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분이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그렇다고 하여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그분이 어떤 논문을 쓸 때, 처음에는 자신의 의지로 일에 착수하지만, 일단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 논문이 스스로 알아서 진행되어 버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머릿속에서 이래라저래라 말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거죠. 이 수학자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림을 그리는 것은 비과학적인 세계고, 과학은 과학적인 세계라고 결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학 그림동화
우리나라에 번역된 안노의 수학 그림동화 시리즈에는 김성기 교수(서울대 수학과)의 감수와 함께 자세한 해설이 붙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안노 미쓰마사가 오랫동안 수학 교사로 일해 온 자신의 경험을 잘 살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한, 수학적 이해를 돕기 위해 훌륭한 자료를 제공해 준 도쿄대학의 노자키 아키히로도 이 책의 저술에 참여하였습니다. 각각의 책은 아이들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수학 개념과 딱 맞아떨어지는 소재를 선택하여 이에 가장 적합한 구성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안노가 요구하는 수학적 개념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죠. 이 시리즈는 아이들의 인지적 발달을 고려해서 단계별로 5권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럼 단계별 특징과 다루고 있는 수학적 개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권
『즐거운 이사 놀이』는
『수학 그림동화 시리즈』의 첫 단계로, 10의 보수개념을 ‘이사놀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설명합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면 열 명의 이름 없는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책을 읽는 어린이는 이 아이들에게 이름을 정해주고, 아이들 머리 위에 바둑알을 놓아야 합니다. 책 속에는 여러 모양의 집이 등장하고, 각각의 집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지요. 방마다 다른 아이들이 있습니다. 남자 아이가 집집이 몇 명이고, 여자 아이는 몇 명인지 세다 보면, 나중에는 어떤 집에 누가 몇 번째로 이사를 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1권은 처음 수를 접하는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에게 적합하다는 설명이 있네요.
2권
『빨간 모자』는 수학의 논리 개념인 “…라면, …이다”라는 명제를 담고 있습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상대의 대답을 근거로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라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구성과 대화 형식의 글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뿐만 아니라 논리력과 추리력을 키워 줄 수 있다는 설명이 있군요. 초등학교 1학년부터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글쎄요, 제 생각에는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듯해요.
3권
『신기한 열매』는 수학의 기본 연산인 덧셈과 뺄셈을 담고 있어 초등학교 2학년부터 볼 수 있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나무에 열매가 달리고 떨어지는 과정을 통해, 수확한 열매의 개수를 더하고 빼면서 연산에 대한 개념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무 열매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농부들의 순수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대자연의 섭리를 느끼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4권
『항아리 속 이야기』는 수학의 기본 연산 중 하나인 곱셈을 ‘항아리 속 이야기’와 접목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수의 규칙성과 계산 원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덧셈에 익숙한 어린이가 곱셈 역시 잘 활용할 수 이끌어 줍니다.
5권
『아기 돼지 세 마리』는 집 다섯 채에 들어갈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풀어가는 과정으로, 순열과 조합의 기초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복잡한 공식을 통해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순열과 조합을 배웠습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 경우의 수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는지 알겠더라고요. 하지만, 그 공식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개념에 대한 설명을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지요. 제가 어렵게 생각한 것은 ‘어떻게 그 공식을 적용해야 하는가’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동화 형식의 글과 그림으로 그 원리를 간단하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이런 그림책이 있었다면, 대입 학력고사에서 수학 문제를 좀더 잘 풀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여간 이 책은 순열과 조합의 문제를 놀라울 만큼 구체적인 예를 통해 풀어냅니다. 이 책을 통해 순열과 조합의 논리를 더욱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이 부럽습니다.
안노 미쓰마사의 그림책 소개를 마치면서
사실 아직 안노 미쓰마사의 그림책 소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H.C. 앤더슨 원작에 그림을 입힌 『즉흥 시인』이나 빛과 그림자, 색채와 흑백이라고 하는 대조적인 화면으로 구성되어 우리가 일상에서 소홀히 하는 그림자의 존재를 조명하고 있는 『그림자』 등은 어쩐 일인지 아직 국내에 출판되지 않았고, 작은 것을 사랑하고 집착한다는 일본인들의 심리와는 달리 큰 것만을 좋아하는 임금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은 전체 내용과 어우러지지 않아 다루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허락된다면, 안노의 여행 그림책을 위주로 색다른 여행을 떠나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